제목 | Re:에루살렘으로 입성한까닭은?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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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현호 | 작성일2009-04-07 | 조회수684 | 추천수0 | 신고 |
+찬미예수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의 최대명절인 파스카 축제를 지내시기 위해서 그동안 제자들을 모으고 설교과 기적을 행하시던 갈릴레아 지방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파스카 축제는 모세의 인도로 이집트(에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홍해를 건너,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사건을 기념하는 유대교의 최대 명절로 유태인으로 태어나신 예수님도 그 명절을 지내기 위해 유대교의 중심인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파스카 축제의 참가는 표면적으로 나타난 것이고 진짜 이유는 십자가 죽음으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사람들이 성지가지나 옷가지를 깔아놓았다는데 왜 그랬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말도 아니고 나귀를 타고 오시는 예수님께 성지가지(종려나무와 올리브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가 온다. 만세! 높은 하늘에서도 호산나" 를 외치며 환영하고 지나가시는 길에 겉옷을 깔아 놓았다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존경과 환영의 뜻을 나타낸 것입니다.
각종 기적과 설교에 대한 소문을 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께 메시아로서 환영과 존경의 예식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오늘날에도 높으신 분들이 오면 양쪽 길에 죽 늘어서서 국기나 그런 것을 흔들며 환영의 표시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입니다. 또한 중요한 행사에 중요한 손님들을 위한 카페트를 깔고 길을 마련하는 것 처럼 겉옷을 깔아 예수님의 길을 마련한 것 입니다. 중요한 분을 환영하는 예식을 갖춘 것이지요.
그러므로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께 메시아로서의 기대와 희망으로 환영과 존경의 예를 갖추어서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환영하는 예식이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당시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구원자)는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유대인을 구원해 주었던 모세와 같이 로마의 압제에서 유대인들을 구원해 주시는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메시아 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지고 파스카 축제때 오시는 예수님을 환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이 직접 본 예수님의 모습은 하느님의 권능을 받은 강력한 힘을 가진 메시아가 아니라 힘 없는 젊은이의 모습에 불과 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메시아를 칭한 예수님이 더 노여웠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신성모독죄(십자가에 씌여진 죄목이 유대인의 왕 나자렛 예수)로 고발당해 십자가형에 쳐해지게 됩니다. 그 십자가형이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시작이 되었으며 인류의 구원이 되었던 것 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겉옷의 의미 (허영엽 신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겉옷의 의미는 특별하다. 여기에서 말하는 겉옷이란 당시 사람들이 입었던 외투를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유다인들은 속옷과 겉옷을 입고 허리띠를 띠고 샌들을 신었다. 팔레스티나 지역은 대체로 일교차가 무척 심하다. 낮에는 기온이 상당히 높이 올라가서 한 여름에는 40도를 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습기는 많지 않아 그늘에 들어가면 금새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기후이다.
그러나 밤이나 겨울이 되면 기온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때문에 두툼한 옷을 입고 모닥불을 피워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이다. 기후가 이렇다 보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겉옷인 외투가 필수였고, 겨울이 되면 옷을 여러 벌 겹쳐 입기도 했다.
대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겉옷은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의 긴 띠처럼 생긴 옷감으로 폭이 2-3m정도의 외투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염소 털로 조악하게 짜서 만든 겉옷을 입었다. 가난한 이들은 이 겉옷을 잠잘 때 이불로도 사용했다. 그래서 율법에 따르면 겉옷을 담보로 잡아도 해질 때까지는 반드시 돌려주어야 했다.(출애 22, 26-27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행하는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의복은 주변 여러 나라들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이스라엘 남성들의 복장은 대대로 거의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었다. 내복은 가벼운 옷감으로 만들고 겉옷은 무겁고 따뜻한 옷감으로 만들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외출복은 확연히 구별되었다. 부자들은 훨씬 더 좋은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다인들은 성전에 들어갈 때 외투를 입고 예를 갖추었으며, 돈이 있는 사람은 외투의 끝을 화려하게 장식하거나 여러 벌을 마련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거리로 삼기도 했다. 겉에 입는 외투는 워낙 비싸다 보니 사정이 어려운 이들은 한 벌을 가지고 가족 전체가 돌려 입거나 담보로 잡힌 채 돈을 빌리기도 했다. 이처럼 근동지역에서는 여러 벌의 겉옷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부유한 사람의 척도가 되었다. 따라서 겉옷이 많은 사람은 부자이고 능력이 많은 사람임을 나타내주며, 겉옷이 적은 사람은 가난한 사람임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또한 유다인 남자들은 이 겉옷의 가장자리를 자줏빛 끈으로 장식했다(민수기 15,38참조). 유다인들은 옷 술을 만들어 그것을 볼 때마다 하느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그대로 지키도록 자신을 일깨웠던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들의 옷 술을 크게 하여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주의 계명을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려 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타신 나귀가 밟고갈 수 있도록 길에 겉옷을 길에 깔았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밟고 가시도록 내어 놓았다는 것이며 존경과 복종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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