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세례란 과연 무엇일까요?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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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두석 | 작성일2009-05-20 | 조회수1,428 | 추천수2 | 신고 | ||||||||||||||||||||
형제님께서 궁금해하시는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소제목들을 순서로 해서 종합적으로 제 생각을 적어봅니다. 1.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는가? 2.과연,"모든 의로움"이 세례를 통해 이루어지는가? 3.세례의 예형은 무엇이며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가? 세례의 본형은 무엇인가? 4.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우리에게 구세주이시자 구속주가 되시는가? 5.하느님의 사랑(죄인을 용서하심)과 공의로우심(죄의 삯은 사망)이 어떻게 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가? 6.하느님의 사랑과 공의로움은 대속(구약에는 짐승의 피와 죽음, 그리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피와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다. 구약과 신약 공히 일관되게 대속을 통해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이신 것이다. ///////////////////////////////////////////////
1.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실 이유가 없는가? 주님께 세례주기를 거부하던 세례 요한에게, 왜 주님께서는 "마땅히" 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시어,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셔야만 "모든 의로움(하느님의 공의를 말함)"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다음의 성경말씀에 비추어 볼 때, 예수님께서는 마땅히 세례를 받으셔야만 되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즉, 주님께서 세례를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받으셔야만 하느님의 모든 의로움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세례(십자가 구속)에 있음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마태복음 3장의 성경말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함)
2.과연,"모든 의로움"이 세례를 통해 이루어지는가? 주님께서 마태복음 3장 15절에서 말씀하시는 "모든 의로움"이란 과연 우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하느님의 공의로우심이란 하느님의 말씀(율법)대로 공의롭게 완성하심을 의미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원죄로 인해 우리 모두에게 죽음이 오게 됨을 의미함)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의 속죄제사의 대속물의 피와 죽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해주시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에 있어서의 피흘리심과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느님의 공의(죄에 대한 심판)가 이루어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세례(십자가 구속을 상징)를 통해 하느님의 모든 의로음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세례의 예형은 무엇이며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가? 세례의 본형은 무엇인가? 세례란 그저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거나, 또는 물 몇 바가지 끼얹는 것일까요? 구약에 있어 세례의 예형은 노아의 홍수입니다. 노아의 홍수란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입니다. 즉, 죄인들을 물 밑에 처하게 하여 모두 죽게 하시고, 노아 일가족 8명(8은 부활 상징)만 방주(교회 상징) 안에서 살아남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이 성경과 교리서를 통해 노아의 홍수가 세례를 상징함을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 1서 3장 20절에서 21절까지의 말씀및 교리서 1219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노아의 홍수는 세례를
예표합니다.
설명드리자면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물 밑에 처한 옛사람(죄악된 자아)은 마치 노아홍수 때에 물 밑에서
심판으로 죽음을 당한 사람들과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같이 죽게 됨을 영적으로 예표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교리서에서 다음과 같이 세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삯인 사망이 이루어지고 해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는 순간 죄인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영적으로 죽기 때문에 세례받기 전의 원죄와 본죄에 대한 죄사함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공로로 흘리신 피로 죄사함이 이루어져, 레위기 17장 11절의
말씀. " 피가 그 생명으로 속죄한다." 라는 말씀이 성취되어 그리스도의 성혈로 죄사함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음에 인용하는 교리서에서도 노아의 방주를 세례를 통한 구원의 예표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리서 1219 : 교회는 노아의 방주를 세례를 통한 구원의 예표로 보았다. 구약의 노아의 홍수란 다름 아닌 세례의 예형인 것이며 세례가 바로 홍수의 본형입니다. 그러면 세례의 본형은 무엇일까요? 바로 십자가 구속입니다. 즉, 세례는 십자가 구속의 예형(상징)인 것이고 십자가 구속이야 말로 세례의 본형인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교리서를 인용하여 세례가 그리스도의 죽음(십자가 구속)에 일치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교리서 1220 :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일치함을 의미한다. 교리서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세례란 그리스도의 죽음, 즉 십자가 구속에 일치하여 주님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이 되고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이 됨을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바오로 사도께서 주장하시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아계시게 됨을 의미합니다. 다음과 같이 신구약을 연결하여 묵상하시면 도움이 됩니다. 노아의 홍수---->세례------>십자가 구속 노아의 홍수나 세례, 그리고 십자가 구속은 동일하게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의미하고 동시에 의인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노아의 홍수에서는 죄인은 모두 물 밑에 처해서 죽음이라는 심판을 당한 것이며, 의인인 노아의 가족 8명만 방주(교회 예표)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분의 전능하심에 의해 물 밑에 처한 우리의 죄악된 옛사람은 심판으로 죽음을 당하는 것이며, 물 위로 올라올 때 하느님의 전능하심에 의해 우리 안에 하느님의 새생명(그리스도의 부활생명)으로 거듭남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례 받을 때 새로운 세례명 (본명)을 받고 죄에 대해서는 죽고, 새생명으로 태어나 의롭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이러한 계시를 받고,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 6장 3절과 4절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남기신 것입니다(우리가 받는 세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임)).
그러나 주님의 입장에서의 세례는 십자가 구속을 의미하며, 이러한 세례(십자가 구속)가 바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은총의 샘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가 바로 주님의 십자가 구속임을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여러번 복음서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마르코 10장
루카 12장
위에 인용한 복음서 말씀은 십자가 구속을 앞두신 주님께서 세례가 바로 십자가 구속임을 우리에게 알게하시려 수차례에 걸쳐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받으신 세례는 바로 십자가 구속을 상징하는 것이며 이러한 십자가 구속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며, 주님의 십자가 구속이 바로 은총의 샘이 되는 것입니다.
4.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우리에게 구세주이시자 구속주가 되시는가? 세상과 죄와 사탄의 종이 되어 살던 우리를 그분의 십자가 성혈로 죄를 사하여 주시고(되사시고) 대속적 죽음으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하느님의 공의로운 말씀을 완성하시어,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주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유일하신 구세주이시자 구속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에게만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영원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십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은 영원히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시며 모든 것 안에 모든 것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합니다.
부연해서 우리가 갖기 쉬운 의문에 대해 한 말씀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음에도 갖게 되는 의문 중의 하나가 이천년 전의 십자가 구속으로 어떻게 오늘을 사는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가 에 대한 것입니다. 즉, 이천년전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고 죄를 짓지도 않았는데 짓지도 않은 죄에 대해 어떻게 이천년 전의 십자가 구속으로 우리의 죄를 예수님이 대속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됩니다.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말씀으로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성경에 "그렇다(대속했다)" 라고 말씀하시면 대속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그분을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가 모두 영적으로 도말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신적행위이므로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며 우리의 신앙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와 같은 의문을 수십년간 지니고 살다가 어느 날 주님의 은혜로 깨달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5.하느님의 사랑(죄인을 용서하심)과 공의로우심(죄의 삯은 사망)이 어떻게 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가?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또한 하느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사랑과 공의로움이 서로 간에 충돌하게 됩니다. 사랑으로는 용서하셔야 하지만 공의로움으로는 율법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형벌을 집행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서는 공의로우심과 사랑을 동시에 이루실 수 있으실까요? 하느님의 말씀(죄의 삯은 사망<---원죄와 관련된 말씀으로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중한 아담과 하와에게 말씀대로 죽음이 임하고, 모든 인류에게 죽음이 임하게 되었음)을 공의롭게 이루셔야 할 책임이 있으신 사랑의 하느님께서 그분의 사랑과 공의로우심을 동시에 충족시키신 신적행위가 바로 십자가 구속입니다. 스스로 사람의 몸으로 오시어 모든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이 되시어 십자가 상에서 피흘리고 돌아가심으로써, 그분을 믿는 우리에게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그리스도 자신)을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공의로우심을 스스로 속죄제물이 되심으로써 완성하신 것입니다.(성경은 신구약 공히 대속제물에 의한 속죄제사를 드림) 하느님의 사랑과 공의로우심이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즉, 하느님 스스로 대속제물이 되시어 스스로의 피와 죽음으로 죄인들의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에서 하느님의 공의로우심(율법) 또한 완성됩니다. 신구약에 흐르는 속죄제사에 있어서의 대속물 봉헌에 의해서 말입니다. 공의로우시고 사랑 자체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찬미와 영광을 바칩니다.
6.하느님의 사랑과 공의로움은 대속을 통해 이루어진다. 구약의 속죄제사(레위기)를 주의 깊게 읽어 보시면,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느님께 드린 속죄제사에는 항상 대속제물의 피와 죽음이 필요했습니다. 즉, 제사장이 속죄제물이 되는 짐승에게 안수함으로써 백성의 모든 죄를 짐승에게 지우고 그 짐승이 피흘리고 죽음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용서된 것으로 간주하셨습니다. 이와 동일한 영적인 법칙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 죄인을 대신하여 우리의 죄를 지고가신 속죄제물 (유월절 어린양) 이 되시어 십자가 구속을 완성하심으로 우리에게 죄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속죄제사의 중요한 원칙은, 첫째로는 대속입니다. 즉, 죄는 사람이 지었는데 짐승을 죽여서 피로 제사를 지내고 속죄제물을 바친 사람의 죄를 하느님께서는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이러한 대속제물이 되는 짐승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짐승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이라는 말은 죄가 없는 대속제물만이 죄인을 위한 속죄제물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죄가 있는 속죄제물은 자기 죄로 죽는 것이지 남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이시고 사람이시며 죄 없으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유일하게 우리를 위한 속죄제물이 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주님이 받으신 세례와 다른 이들이 받는 세례의 차이를 영적으로 살펴보면, 주님은 죄가 없으셨으나 죄인들을 위한 속죄제물(대속물)로 세례(십자가 구속)를 받으시어 은총의 샘이 되신 반면에 우리들은 죄인으로서 죄사함을 얻기 위해 주님의 십자가 죽음에 동참(일치)하는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체(은총의 샘)성사가 이루어지는 제대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세례는 은총의 샘(우리 죄인을 위한 속죄제물)이 되는 것이고, 우리들 죄인이 받는 세례는 주님의 죽음 (십자가 구속)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세례(십자가 구속)를 받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세례(세례는 교리서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주님의 십자가 죽음에 일치하는 것임)를 통해 새생명으로 태어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맺는 말; 영적으로, 세례란 십자가 구속이며, 나아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즉 성령세례를 의미합니다. 그리하여, 세례 요한이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마태오 복음 3장 11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세례는 오순절에 마르코의 다락방에 성령강림이 이루어짐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령께서 충만하게 임하시어 인도하시면 믿는 이의 영적인 눈을 열어주시어 성경말씀을 깨달아 알게 되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성경은 신구약 모두 하느님의 말씀이며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실 때에만 신구약이 연결되고 그 뜻을 알게 됩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신비롭게 완성하시어 오직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에만 성경 말씀 안에 있는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이상은 나눔 차원에서 적은 글입니다.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제가 쓴 내용이 틀린 것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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