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로마서>와 <야고보서>의 <믿음>과 <행동>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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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삼용 | 작성일2009-09-30 | 조회수1,032 | 추천수0 | 신고 |
위 글을 읽다보니, 얼마 전 목회자가 되겠다고 신학공부를 하고 있었던 극성스런 개신교 친구랑 야고보서에 관한 격론이 있었던 것이 상기됩니다. 자기는 개인적으로 평소에 야고보서, 특히 2장 24~26절의 말씀에 대해서 (거부에 가까운) 무척이나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자기가 이 본문을 주제로 연구해서 발표하기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믿음만으로 의로워진다”라든가 “오직 믿음”이라든가 하면서 천주교를 “佛家的이다”, “행위로 구원받으려 한다”라든가 하면서 억지부렸던 것을 보면 얼마나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 오묘하신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차제에 내가 이 친구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어야겠다”는 사명감(?)이 문뜩 들어서 아래와 같이 내 평소의 의견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로마서>에서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라는 것과 <야고보서>의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 실천으로 의롭게 된다”라는 말씀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같은 상호보완적인 이야기이다. 다만 <야고보서>는 <로마서>의 “믿음”이 어떠한 것이 “참”인지를 보충설명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면서 마태오복음 7장 16~21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나무”를 알려면 “열매”를 봐야하듯이, “믿음”이란 “본질”이 정말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인 “참믿음”인지, 아니면 입술로만 떠벌리는 것인지를 알려면 그 믿음의 “현상”으로 나타나는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는 뜻으로서, 믿음의 결과로서의 “실천(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야고보 2:26)이라는 뜻이 아니냐 ? 그리고 코린도1서의 13장 13절 말씀에 나오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우리는 향주삼덕(向主三德)이라 하는데, 이 세가지 덕목이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결국 “믿음”의 필요조건들을 말할 뿐이다 라고 본다. 즉, “참믿음”은 “구원의 희망(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하며, “희망을 갖는 믿음”이라 하더라도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 (faith working through love)이어야 “참”이 된다는 뜻이 아니냐?, 그래서 信 ,望 , 愛의 三德 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한 것이 아닌가 ? 물론 내 친구가 얼마나 닫힌 귀를 열고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소형제님께서 올려주신 자료중에서, “ 성 바오로가 로마서 3,20-31과 갈라티아서 2,16; 3,2.5.11에서 말한 바에 대한 하나의 바로잡음(correction)으로서 야고보서가 기록되었다는 주장이 제시되고 있다”라는 대목에 솔깃해졌고, 내가 내 친구에게 했던 나의 “사견”들을 뒷받침해주고 있는듯해서 특히 반갑게 읽었습니다. 차제에 바오로 사도의 “눈높이선교”를 묵상해 봅니다. 상대가 유다인이냐 ?, 헬라인이냐 ?, 로마인이냐 ? ~~~ 예수를 믿는 사람이냐 ?, 믿는 사람이면, 믿는 정도는 어떠냐 ? 그리고 어떤 경우나, 상황에 따라서 “눈높이”를 맞추어 선교하고, 설파해 나가는 것이 여러 바오로 서간을 통해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바오로 사도는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신조는 어떠한 경우에도 일관되고 굽힘이 없이 단호하다는 것도 ~~~
관련 성경의 집필 연대와 목적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됩니다. (가톨릭 홈피에서 “성경해설” 참조) - 갈라디아서 (“오직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 54년경에 사도 바오로가 쓴 서신이며, - 로마서 (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 55~57년경에 사도 바오로가 로마인에게 쓴 것이며, 로마서를 쓴 목적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로마 교회는 사도 바오로가 직접 전도해서 세운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의 판도 하에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복음을 선교해 나갔던 바오로가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를 염두에 두지 않을 리가 없었죠. 더군다나 이 편지를 집필할 즈음에는 바오로가 복음을 전하면서 맞부닥치게 된 적대자들의 공격을 반박하고 자신의 사상을 옹호해야 할 필요성이 아주 고조되어 있었을 때였습니다. 그러니 로마를 거쳐 스페인까지 복음선교 여행을 떠나려 하였던 사도 바오로로서는, 앞으로 선교의 전진기지 역할을 톡톡히 할 로마 교회에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밝히지 않을 수가 없었을 거에요. 이런 까닭에 바오로는 각 선교지 교회가 당면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자 로마서를 쓰게 되었답니다.“ - 야고보서 (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 : 누가 썼냐는 것은 확실하지 않으나, 야고보 사도가 썼다라고 알려지고 있으며, 그렇다면 62년 또는 67년에 순교하기 전이나, 만약 차명서한이라면 1세기 말 이나 2세기 초에 집필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집필 목적을 인용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교회는 지역상으로도 도시와 농촌에 걸쳐 있고, 직업상으로도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그 안에 모여들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생김새나 차림새를 보고 박대하거나, 선행은 뒷전에 밀쳐놓은 채 믿음만이 최고라는 환상을 갖기 쉽지요. 이에 야고보는 진정 하느님의 자녀라면 가난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야 하며, 주님 앞에서 겸손하고 정결한 마음으로 이웃을 위해 사랑을 실천해야 함을 일러주고자 이 서간을 집필했어요.“ - 마태오복음서 ( “그들이 맺은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 마태오복음은 50-60년경에 쓰여진 예수의 어록과 70년경에 완성된 마르코복음서를 참조해서 대략 80--90년경에 쓰여졌을 거라고 추정합니다. 위에서 성경을 집필연도 순서대로 열거해보았지만, 제일 먼저 쓰여진 것으로 파악된 사도 바오로가 쓴 “갈라디아서”에서 “오직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이 이미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다음에 같은 바오로 사도가 쓴 “로마서”에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수를 배척하고 “적대자”이었던 로마인에게 쓴 서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라고 전제하고 있듯이, 사도 바오로는 “율법을 모두 잘 실천해서 의로워지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능력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라는 요점을 가르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당시의 로마인에게 “믿음”은 어떤 것이 “참”이냐 라는 필요조건 에 관하여 설명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요지를 흐리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로마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젖’만 먹였을 뿐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은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코린토 3:1~2) 때문과도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의 “야고보서”를 쓴 목적을 보게 되면, 지금의 많은 개신교신자들이 그러하듯이, “선행(사랑의 실천)은 뒷전에 밀쳐놓은 채 믿음만이 최고라는 환상만을 갖고 있는” 당시 “믿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 즉 로마서상의 “믿음으로 의롭게 됨”의 진의를 잘못 이해함으로 인하여 잘못 믿음생활을 하고 있었던 교회내 사람들 (“영적으로 단단한 음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를 “바로잡아주기(correction) 위해서” 집필했다고 봅니다. 80~90년경에 쓰여진 “마태오복음서”에도 “행동(실천)이 뒤따르는 믿음”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로마서에서의 “오직 믿음”은 야고보서나 마태오복음서에 의해서 보충되고 바로잡아지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결론 지어 집니다. 성경의 각 권들, 특히 서간문들의 집필 목적과 상대와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채 문구적으로만 자기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갑자기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행동 없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다!” “행동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라는 성경의 말씀을 버리려고 했던 루터나 요즈음의 일부 개신교신자들 (내 친구를 포함해서)의 믿음이 “참”인지 아닌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묵상 차원에서 공부 해보았는데, 너무 장황한 것 같습니다. 혹시 교회 가르침과 다른 것이 있으면 저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분명하니 지적바랍니다. 좋은 공부재료 주신 소순태형제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곳에 들르시는 모든 형제 자매님들, 추석 잘 보내시고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수확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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