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들에겐 생명, 행복의 상징 -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실장)
창세기에 유명한 자매, 레아와 라헬 이야기가 나온다. 성격이 전혀 다른 언니 레아와
동생 라헬은 모두 한 남자 야곱을 남편으로 섬겼다. 그런데 남편 사랑은 늘 예쁜 외모를
지녔던 라헬 차지였다. 당시 사람들 관점에서 보면 아들을 더 많이 낳은 레아가 행복한
여성이었겠지만 레아는 남편 사랑을 얻지 못해 한 여자로서는 불행했을 것이다.
그래서 레아는 아들을 더 많이 낳아 남편 사랑을 얻으려고 눈물겨운 노력을 했다.
보리 추수 때에 레아의 큰 아들이 임신 촉진제인 합환채를 밭에서 따왔다.
그 소식을 들은 동생 라헬이 언니 레아에게 달려왔다.
"언니! 그 합환채를 나에게 줘요. 나도 아들을 낳고 싶어요." 그러자 레아는 라헬에게
화를 버럭냈다. "네가 남편 마음도 독차지하고 무엇이 또 부족해서 합환채마저 달라고
떼를 쓰는거냐?"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레아의 분노가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라헬은
언니 레아의 역정에 눈도 깜짝 않고 거래를 했다. "언니, 합환채를 주면 오늘 밤
그이가 언니와 함께 자게 해주지요."
결국 레아는 라헬에게 합환채를 주었다. 그날 밤 남편이 들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레아는 그를 맞으며 말했다. "저에게 오셔야 해요. 내 아들 합환채를 주고 당신을
빌렸거든요"(창세기 30, 14~16 참조).
합환채란 어떤 식물인가? 합환채를 영어 성경은 ''사랑의 사과''(Love Apple), 일본 성경은
''연애가지''라고 번역했다. 또 아랍인들은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고 믿어
''악마의 사과''(Devil''s Apple)라고 불렀다.
그런데 공동번역 성서는 합환채를 자귀나무로 잘못 번역했다. 지난해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출간한 성경은 합환채로 바르게 번역했는데, 자귀나무는 지중해 연안에는 없는, 합환채와 전혀 다른 식물이다.
그렇다면 합환채를 왜 자귀나무로 번역했을까? 합환채와 자귀나무는 비슷한 점이 많다. 자귀나무
꽃은 6~7월 초여름에 피는데,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자귀나무가 첫번째 꽃을 피울 때 팥을
파종했다고 해서 이 이름으로 불렀다.
자귀나무는 예로부터 부부 금실을 상징하는 나무로 안마당에 심어 놓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고 생각했다.
특히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잎을 접고 깊이 잠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자귀나무를 합환목(기쁨으로 만나는 나무), 합혼수(혼인으로 만나는 나무), 유정수(정이 많은 나무),
야합수(밤에 만나는 나무) 등으로 달리 부르지만 모두 비슷한 뜻을 지니고 있다. 하나같이 부부간 만남과
즐거움을 상징하는 뜻을 갖고 있는 이유로 공동번역 성서는 합환채를 자귀나무로 번역했던 것 같다.
서구사회에서 합환채는 가장 미신적이고 공포를 주는 식물 중 하나였다. 합환채 뿌리는 독성이 강해 다량
섭취하면 뇌신경이 손상된다. 유독성분이 규명되지 못했던 옛날에 합환채를 먹고 흥분이 지나쳐서 미쳐버리는
것을 악마의 장난이라고 믿었다. 합환채 과실은 향기롭지만(아가 7 ,14) 열매 속에는 약하기는 해도 유독성분이
있어서 많이 섭취하면 구토와 설사를 일으킨다. 그러나 중동지역에서는 유독성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태력 증진
효과와 약간의 마약 성분으로 부부들이 즐겨 먹었다.
고대 사회에서는 극소량을 술에 담가 외과수술용 마취약으로 사용했다. 유효성분이 열매에 들어 있어 이것을
말려 예로부터 약품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특히 마취, 최면, 진정, 최음의 효과도 있으며 적당량을 사용하면 치통,
두통 등을 경감시켜 주고 사람 마음을 상쾌하게 해준다. 따라서 서양에서 합환채처럼 영적, 의학적, 미신적으로
크게 영향을 끼친 식물도 흔하지 않다.
합환채를 자귀나무로 오역했지만 자귀나무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부부의 행복과 관계가 깊은 나무이다.
신학교에서는 자귀나무 꽃이 필 즈음이면 여름 방학을 한다고 해서 ''방학나무''로 부르니 합환채처럼 자귀나무도
기쁨을 주는 나무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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