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믿기만 하면'과 '믿어보기 위해서'에 대해서 카테고리 |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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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질문 하느님을 찾는다는게 어떤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3|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15 조회수1,658 추천수2 신고

'믿기만 하면'과 '믿어보기 위해서'란 두 의미에 대해서 한번 묵상한다.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기면서 “그러면 메시아라고 하는 이 예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라는 빌라도 총독의 물음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예수님 처형을 외치는 성난 군중과 같이 '사랑실천'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다. 우리도 이렇게 사랑 실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곤 한다. 외관상으로는 '사랑'을 외치면서도 그것보다는 가끔은 '증오'를 내 뺏는다. 그렇다. 그런 행동을 보이곤 하는 것이 우리다. 꼭 누구누구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해당한다. 우리는 '믿기만 하면'과 '믿어보기 위해서'란 두 의미에서 둘 중의 하나 아니면 때론 양쪽을 시의 적절히 갖고자 하는 나쁜 속성이 있다. 그래서 회개를 하여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믿음의 삶이다.

 이즈음에 정반합[正反合]이란 말을 되새긴다. 사랑 아닌 것과 그것에 반대되는 사랑과의 총합 된 결실은 더 값진 아름다운 참사랑이 생겨날 수 있다. 사랑 아닌 것들이 있지만, 그 사랑을 더 빛나게 해 주는 사랑인 것이 있다. 스스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시어 사랑 실천을 보여 주신 하느님,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라고 부름에 순명하신 성모님, ‘당신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소?’라고 그들이 다그쳐 묻자, ‘나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대로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라고 답변한 세례자 요한, 이 모든 것이 우리 믿음의 크고 작은 기준들이다. 이것들에 대한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참된 믿음의 신앙생활을 꾸려 갈 수 있다.

 '믿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시는 분'과 '믿어보기 위해서 주장하신다는 분'의 자기주장의 논리는 다 타당성이 있다. 정반합의 논리에서 보면 더 큰 사랑 실천을 위해 거쳐야 할 길이리라. 이 타당성 있는 자기주장의 논리 전개 방법에 대해 종교적인 측면, 인터넷상의 공공성인 현실을 한번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곳은 최대한 하느님을 믿는 로마 교황청[가톨릭]을 중심으로 하는 신자들의 '묻고 답하기' 칼럼이다. 대부분의 내용은 다소 견해가 다를지라도 한 발짝 물러서면 쉽게 이해되는 것들이라 여겨진다. 믿음의 속성상 일단은 개진된 것이 내 견해와 다르다고 너무 의심하면 끝없는 토론으로 갈 수밖에. 어떤 것은 너무 형이상학적이어서 문제만 있고 답이 없는 것도 있을 수 있다. 아니 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없다고 생각하는 그것 자체가 답'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참으로 많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가 아닐까! 차라리 답을 만들려고 하는 그 자체가 무리일 수 있다. 나의 답 그 자체가 혹자에게는 오해의 소지를 유발할 수 있다. 답을 꼭 만들려니 그게 자꾸 이상한 방향으로만 간 게 원인이리라.

 그러나 믿음의 세계는 반드시 출발이 있고 그 집합체가 있다. 이것이 신앙 공동체이다. 이상하리만큼 어리석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 '이상한 것'을 '타당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그 무언가의 힘이 작용한다. 이 힘이 때로는 '게시'와 '교도권'이라는 측면으로 종결된다. 이 '교도권'으로 신앙인 대부분은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수긍한다. 참다운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랑 아닌 것을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랑 아닌 것을 더 관심이 있다 보면, 사랑인 것에 대한 진리를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성숙한 믿음의 생활을 위해서 이런 정반합 적으로 묵상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결론적으로 '믿기만 하면'과 '믿어보기 위해서'란 두 의미에 대해서 차분히 묵상해 보자. 둘 중의 어느 것이 좋다고 누구도 선뜻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리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여기에 누가 답을 내릴 수 있는가? 이것은 '의문'이 아니고 '느낌'이다. 의문표보다는 느낌표를 많이 만드는 삶이 참다운 '신앙인'의 삶이요 참다운 '지식인'의 삶이다. 차분히 '믿기만 하면'과 '믿어보기 위해서'에 대해 우리가 모두 다 함께 진솔성을 가지고 묵상해 보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답'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 보면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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