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순태 님이 올려주신 주석들은 잘보고 있습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영어라서 읽기 불편하다는 것인데 수고롭게도 매번 번역을 해 주십니다. 소순태님의 열정과 수고에 감사드리는 바 입니다. 편하긴 하네요.
일단 제 의견이 어느주석서를 근거로 하느냐고 물으셨는데 당연히 이런 내용의 주석서는 없습니다. 출판 허가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지 저의 고유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이미 설명드렸듯이 예수님을 존경하지않고 무시하고 믿지않고 심지어는 미쳤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이런 사실을 잘알고 계셨습니다. 마르코 복음서 3:20-35의 내용이 서로 이어지는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건 아니시겠지요? 예수께서 집에 오셨고 친척들(형제들)이 이 소식을 듣고 잡으러 출발합니다. 예수께서 율법학자들을 꾸짖고 계실때에 형제들(친척들)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문맥의 흐름과 연결을 부정하실수 있으신지요? '누가 내 어머니이고 형제이냐?'는 물음은 이러한 맥락에서 비추어 볼때 형제들을 꾸짖은 내용입니다. 문제는 왜 이 무례한 무리가운데 마리아께서 함께 계시는가 입니다. 마리아께서만 없으셨어도 아무문제 없습니다. 예수께서 당신이 미쳤다고 생각해서 붙잡으러 온 형제들을 꾸짖으실때 왜 마리아도 함께 언급하셨는지를 생각주시면 좋겠습니다.
(올려주신 이부분 주석에서는 그냥 별다른 설명은 없군요-이 주석에 의하면 마르코 복음 3:20-35이 이어지는 내용임이 분명해집니다-다만 예수께서 육적인 유대관계보다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생긴 관계를 더 높이 사셨다는 설명만 되어있습니다. 이부분에 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어찌됐든 당신을 미쳤다고 생각해서 잡으러온 형제들에게 예수께서 단순히 일반적인 가르침을 주셨다기보단 꾸짖으셨다는게 더 자연스럽니다.)
제 고유의 의견은 마리아께서도 베드로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주님의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완전 순명의 자세로 첫 순명을 한 이후에도 인간이기에 이런저런 실수도 하고 인간적인 감정이 상하는 꾸중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꾸짖으실때 베드로를 미워해서 그러셨겠습니까?(마태 16:23, 마르코 8:33) 오히려 교회의 반석이요 기초가 될 베드로를 사랑하셨기에 그러셨습니다. 마리아께서도 첫 순명이후에 인간이기에 한 번쯤은 실수를 하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나약하고 죄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는 이유에 더 합당합니다. 예수님께 인간의 육신을 빌게 해주신 인간인 마리아께서 너무나 완벽하기만 하다면 이러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어 인간과 같이 유혹당하시고,슬퍼하시고, 배고픔을 느끼시고, 고뇌를 느끼시고 죽음을 당하신 예수님의 의미가 오히려 퇴색한다고 봅니다. 예수께서는 부족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어 우리와 함께 울고 웃고 하시고 돌아가셨다가 결국엔 아버지에 대한 완전무결한 순명으로 부활하심으로서 우리같은 인간도 구원받고 부활할수있다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우리같은 나약하고 실수도 종종하는 인간도 부활할 수 있다는 희망에의 위대한 협력자가될 것입니다. 하느님이 왜 하필 일부러 외아드님을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의 육신의 형태로 보내셨는지, 그러기 위해 완전무결한 인간을 선택하셨을지 아니면 일부러 부족하고 실수도 종종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태를 쓰셨을지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참어머니라 할수 있는지가 논쟁의 소지가 있다는것은 마리아께서 평생 실수 한번도 안하시고 신앙적으로 완전무결하게 사셨는가는 논쟁의 소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루카복음 11:27-28의 참행복선언을 (마르코서의 베엘제불일화를 고려하지않은채) 그것자체만 봤을때는 링크걸어주신 교황님의 해석도 타당합니다. 하지만 두 개를 동시에 고려했을때는 논쟁의 소지가 다소 있다는 것입니다. 아 그리고 답글주신 문경준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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