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거인족 설화(창세 6,1-4)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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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타한인성당 | 작성일2010-11-07 | 조회수1,581 | 추천수0 | |
거인족(창세 6,1-4)
인간의 지혜로 하느님의 지혜를 격하시키는 이러한 사고와 가치관은 창세 6,1-4절에 나오는 풍산신 우상 숭배로 인한 세상의 무질서를 초래한다. Breukelman의 견해에 따르면 여기에는 나필족(거인)과 깁보림(장사)이라는 2개의 전승이 혼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하고 있다. 유다 6장에는 이와 유사한 전승이 전해지고 있지만 천사의 타락으로 설명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분명 가나안 전승과 관련이 있다. 가나안 지방의 신화에는 신과 인간이 결합해서 태어난 거인 족에 관한 전승이 발견되는데 여기서 인간은 신과의 결합을 통해 도달할 수 없다고 여기던 신적 존재와 유사해 지려는 시도가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성서에서는 이와 달리 종교적 측면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에서는 거인과 장사의 탄생이 직접적으로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하느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한자리에 들어 그들에게서 자식이 태어나던 그때와 그 뒤에도 세상에는 나필족이 있었는데, 그들은 옛날의 용사들로서 이름난 장사들이었다”(창세 6,4). 하느님의 심판으로 내려진 생명의 한계는 하느님이 지닌 신성의 거룩한 신비와 영역을 공유하려는 인간의 저의가 결국 실패로 끝나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들은 살덩어리일 따름이니, 나의 영이 그들 안에 영원히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들은 백이십 년밖에 살지 못한다”(창세 6,3). 생명의 한계가 의도하는 바는 인간은 하느님의 영의 은총에 의존해야하는 존재란 사실을 명확히 입증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은총은 정복하거나 점유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데 있는 것이다. ----------------------------------------------------------------------------------------------------------------------------------------------------------
굿뉴스에서 김호경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 찬미 예수님 !!!
"하느님의 아들들"이 등장하는 이 단락(창세6,1-4)은 소위 말하는 "거인족 설화"입니다. "하느님의 아들들"이 이 단락 속에 등장하므로 "하느님의 아들들"의 의미를 파악하려면 아무래도 이 단락 전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실 이 단락은 여러 가지 전승들이 혼합되어 있어서 이해하기가 무척 힘들고, 또 창세기의 이 자리에 끼어들어 있는 이유도 참으로 애매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오직 창세기 편집자들만이 그 이유 및 의도를 정확히 알겠지만, 아무튼 이 단락은 야훼계 저자에 의해 저술되어 이 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는 당시 가나안 지방에서 유행하고 있었던 메소포타미아의 "우가릿 신화"를 접하고서는 여기에 옛부터 전해내려오던 "하느님 아들들"에 관한 전승을 접목시켜 이 설화를 형성했던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우가릿 신화"의 내용은 셈족의 황소신이었던 "엘"이 두 여자를 유혹하여 2명의 신통력을 가진 남자를 탄생시켰다는 내용입니다).
이 설화가 갖는 의미는 대체적으로 3가지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첫째 홍수 이전의 인간의 죄가 다양하게 전개되어 가는 상태를 부각시키는 독립된 설화이고, 둘째 이 신화를 이용하여 "느빌림 거인족"의 정체를 밝히고자 했으며, 셋째 거인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운데서 윤리적인 가르침(가나안의 우상숭배 배척, 신전 창녀들과의 성관계 방지)을 주기 위한 설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설화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이 메시지 안에 "하느님의 아들들"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단초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1) 인간의 유한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의 결과로 인간의 수명이 단축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수명이 900세 전후에서 120세 정도로 단축됨을 볼 수 있는데, 생명에 대한 권리는 오직 하느님에게만 있는데 인간이 이를 뛰어넘으려는 데 대한 벌로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120"이란 숫자가 바로 영원불멸성과 대립되는 인간의 유한성을 상징하고 있다고 합니다. 2) 하늘과 인간과의 경계가 무너질 경우 이는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깨뜨리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천상 존재와 인간이 성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창조질서를 깨는 행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결국 인간은 벌을 받게된다는 것입니다. 3) 공동체의 죄악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즉 인간에게서 죄의 확산, 인간 타락이 집단적인 성격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단락에 대한 이러한 이해 속에서 "하느님의 아들들"의 의미를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사실 여기에 대한 해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사람 혹은 집단들에 의해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들"에 대한 해설서들에 나타나고 있는 다양한 해석들을 소개합니다. 어느 해석이 가장 적합한가에 대한 것은 저로서는 판단할 위치나 자격이 없으므로 유보합니다.
1) "하늘의 영"이라는 해석 - 성서에서는 "하느님의 아들들"이라고 복수형으로 사용할 경우, 사람보다 하느님에 더 가까운 하늘의 영을 뜻하고 있습니다(욥기1,6; 2,1; 시편29,1; 89,7).
2) "육체적 죄"라는 해석 - 유다의 전통에는 "하느님의 아들들"이 거인을 낳은 천사의 육체적 죄라고 여긴다고 합니다(「희년서」4,15.22; 5,1-10; 「열두족장의 유언」르우벤5; 납달리 3). 탈무드의 랍비들도 마찬가지 생각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3) "천사"라는 해석 - 꿈란 공동체의 문헌에서는 천사들로 해석되고 있다고 합니다. - 구약성서 일부에서는 하느님 백성들을 "하느님의 아들들"로 묘사하는 대목도 있지만(신명14,1; 이사1,2; 호세1,10; 참조 마태2,1),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아들은 천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욥기1,6; 2,1; 38,7; 참조 다니3,25).
4) "거인, 위대한 사람, 특권층"이라는 해석(C. Westermann) - 특권층이 개인적인 욕망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때는 하느님의 개입이 야기되어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인정하도록 처벌하신다는 것입니다. - 전통적으로 군주나 임금들이 "하느님의 아들들"로 간주되었는데(2사무7,14; 시편2,7; 89,27 참조), 이들의 권능은 특히 종교적인 이탈까지 불러오는 그들 혼인의 중요성으로 드러나기도 합니다(1열왕11장). - 타르굼에 나타난 유다의 어느 랍비의 해석에 따르면 귀족이 평민인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고 하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5) "우주적 능력"이라는 해석(시편29,1; 89,7; 욥기1,6; 2,1; 38,7; 성서 이전의 페니키아 문헌들). - 이방인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을 신격화했으나, 성서는 이들을 인간보다 월등한 지력과 능력을 가진 자들로 인정하면서도 신격화하지는 않았으며, 참된 하느님 밑에 종속시키고 있습니다. 바울로의 편지들에서 이러한 개념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6) "거룩한 셋의 후손"이라는 해석 - 도덕적인 해석으로 "하느님의 아들들"은 셋의 집안이며, "사람의 딸들"은 카인의 자손일 것이라고 하는 해석입니다. Thomas Aquinas가 이런 주장을 하였고, 이 해석은 16세기까지 지지를 받았고, 현대에서도 이 해석을 따르는 이가 많다고합니다.
7) "죄지은 천사"라는 해석(유다6절; 2베드2,4) - 그리스도교 전승에 따른 해석입니다.
8) 기타 해석으로는 - "하느님의 아들들"은 "남성"을, "사람의 딸들"은 여성을 뜻한다는 해석 - "하느님의 아들들"은 "올바른 사람들"을, "사람의 딸들"은 악한 사람들을 뜻한다는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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