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님의 적극적인 배려이십니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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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0-11-07 | 조회수489 | 추천수0 | 신고 |
예수님은 참 친절하십니다. 정말 사랑이십니다.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신 후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나는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는 사흗날에 되살아 날 것이다.”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힌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제 마지막 그분의 예루살렘에서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한 막바지 시점에 제자들의 낙담과 슬픔을 씻어주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당신의 참모습의 존재를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의 출현을 총동원해서 당신의 거룩하심을 제자들에게 각인시켜 주십니다. 그 삼위의 출현도 모자라 모세와 엘리야까지 동원 시키셨다. 참 대단하신 예수님의 판단이십니다. 엿새 전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꾸짖은 분 같지 않게 세심한 배려를 보여 주신다. 사실 이 높은 산에서의 변화만이 그분의 영광스러운 변모이겠습니까? 그분의 일거수일투족에 영광이 아닌 것이 있을까요! 모든 게 다 영광스러움 아닐까요! 나자렛에서, 예리코에서의 치유, 예루살렘에서의 부활 등 영광 아닌 영광이 없을 겁니다. 사실 수난과 부활을 처음으로 예고하신 후라,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어야하는 심리적인 부담감이 가진 제자들에게 예수님 나름의 위로를 보여 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더더구나 예수님은 세 번이나 모른다고 잡아 뗄 베드로의 수없는 거짓과 배반을 알고 계셨을 것이고, 십자가 사건 때 달아 날 제자들을 이미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분은 이런 영광된 모습으로 자기가 구세주이심을 뇌리에 담아 줄 필요가 있었기에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 이런 변모의 광경을 목격시켜 주셨다고 생각이 든다. 그게 현실의 실제 상황이 아닌 꿈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그때에는 너무 침체된 분위기였기에 그 장면이 너무나 큰 영광으로 보여 졌을 것이고, 복음사가의 눈과 귀에는 더할 나위가 없이 큰 영광으로 판단되었기에 ‘영광스러운 변모’로 기록되었다. 우리는 이 큰 영광의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예수님의 영광과 영광들이 모여진 믿음의 광장으로 우리들은 초대되었고, 덕분에 우리는 지금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이죠. 이제 우리는 그분의 모든 영광을 믿고, 그분의 영광을 더러 내기 위해 복음 사업을 하는 믿음의 사람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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