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함수 관계는 대한 독립 만세이다. | 카테고리 | 성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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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0-11-08 | 조회수354 | 추천수0 | 신고 |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예수님의 말씀이다. 총칼을 휘두른 자는 반드시 총칼로 망함을 일컫는다. 이것은 순리이다. 안중근 의사는 만주 하얼빈 역에서 아시아 침략의 원흉 이등방문을 저격 살해했다. 칼을 든 자에게 총으로 의연함을 보였다. 이것이 안중근 의사의 정의로움이다. 예수님도 유다의 배신을 예고하시면서(요한 13,27),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하고 말씀하셨다. 자신을 죽이려는 폭력에 가담하라는 것이었다. 부활과 승천을 통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유다로부터 십자가 사건의 서막을 시작하도록 한 것이다. 예수님의 묵인 하에 시작된 유다의 배반은 예수님에게는 큰 폭력이었다.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유다에 관하여 분명히 말씀하셨다.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그렇다. 유다의 행위는 예수님은 물론 온 인류에게는 큰 폭력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폭력을 행하라고 재촉하셨다. 하느님 자신의 큰 영광을 위해서 폭력을 묵인하신 것이나 다름없다. 안중근 의사의 저격 사건은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한 정의로운 의거이다. 동양 평화를 위해서, 더 큰 폭력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결행한 구국의 업적이다. 폭력을 막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결행한 이 업적을 폭력으로 간주할 수는 없다. 자기 방어요, 비폭력적인 칼잡이에 대한 항거였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26, 52) 칼을 잡은 자에게 칼을 칼집에 도로 꽂도록 한 이 행위야 말로 정의로운 정당방위이고, ‘칼을 잡은 자는 모두 칼로 망함’을 보여 준 세기의 거사라 여겨진다.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동양 평화 정신과 대한 독립 정신을 기리며 추모의 발길이 이어진 여순 감옥의 그 형장의 자리가 새롭게 떠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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