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열두 장면 - 성경 번역
하느님이 하시는 한국말
조광(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
우리 조상들은 창조주 하느님이 우주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의 말까지도 창조하신 분으로 굳게 믿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드리는 기도와 가슴속 깊은 염원까지도 하느님이 알아서 들어주시리라 생각했다. 사실 하느님이 조선 사람도 창조했음에 분명하지만, 조선 사람이 창조주 하느님을 분명히 알게 된 때는 이땅에 교회가 창설된 이후부터였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한 성경이 한글로 번역됨으로써 하느님이 한국말을 하셨고, 이땅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성경의 한글 번역은 교회 창설 직후인 1787년부터 착수하였고, 이 작업은 최근 2005년도까지도 계속되었다. 이리하여 성경의 번역 문안은 시간의 경과에 비례하여 다듬어져갔다. 한국말을 하는 하느님의 백성들도 이로써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잘 알아듣게 되었다.
한문본 성경의 전래
우리나라는 천주교 신앙을 중국에서 받아들였는데, 중국에서 완역본 성경이 출판된 때는 1822년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 천주교회가 세워지던 18세기 후반기 조선사회에서는 한문 완역본 성경을 접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당시 조선인들은 중국에서 한문으로 간행되었던 “성경직해”와 “성경광익”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들은 각기 교회력에 따라 주일과 주요 축일의 복음을 발췌하여 한문으로 번역해서 제시해 주고 있었다.
이 책들 가운데 “성경직해”는 예수회 선교사인 디아즈가 1636년에 베이징에서 8책으로 간행한 뒤 1790년에도 다시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는 해당 축일의 복음을 제시하고서 이에 대한 주해를 시도했다. 이 책의 저자인 디아즈 신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동양문화와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하여 이 책에 수록된 성경 구절의 해설을 달았다.
예수회 선교사인 마이야가 지은 “성경광익”도 주목할 만한 저작이다. 1740년 북경에서 2권으로 간행된 이 책에는 먼저 성경 본문을 제시한 데 이어 묵상 후 ‘마땅히 실천해야 할 덕목’과, 묵상을 마친 다음 ‘당연히 힘써야 할 기도’가 수록되어 있었다. 이처럼 비록 완역본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발췌본 성경을 접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우리 겨레는 한문을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기 시작했다.
이 책들은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창설되던 때를 전후하여 이미 전래되어 있었으며, 교회 창설 직후인 1787년부터 한글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성경을 부분적으로나마 우리말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한글본 성경의 번역은 1801년의 박해 때에 순교한 최창현에 의해 착수되었다. 그리고 당시의 일반적 관행을 감안할 때, 아마도 박해시대 교회 공동체도 최창현의 번역작업에 적지 않게 관여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은 한문본 “성경직해”와 “성경광익”을 읽고 하느님 말씀인 성경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했기 때문에 이 책의 번역에 착수했고, 이를 보완해 나갔을 것이다.
한글로 번역되는 성경
최창현을 비롯한 우리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두 책을 단순히 번역하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여기에도 독창성을 발휘하여 두 책에 수록된 내용을 하나로 엮어냈다. 곧 그는 그 두 책에 함께 수록되어 있는 주일과 축일에 봉독되는 성경을 번역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문본 “성경직해”에서 본문에 대한 ‘주해’와 ‘묵상 자료’를 취해왔다. 그리고 “성경광익”에서는 성경을 읽고 ‘마땅히 실천해야 할 덕목’과 ‘당연히 힘써야 할 기도’를 취해 와서 하나로 합쳐냈다. 이리하여 우리 교회에는 한글본 “성경직해광익”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처럼 “성경직해광익”은 성경의 본문과 그 주해, 그리고 묵상과 실천과 기도를 한꺼번에 할 수 있도록 편찬되었다. 이는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중국에서 들여온 천주교를 중국인들보다 더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결과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회는 거듭된 박해와 성경의 중요성에 대한 미숙한 이해로 말미암아 신구약 성경의 완역본을 간행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요청되었다. 곧, 박해는 서적의 출판을 어렵게 했다. 그리하여 교회창설 직후에 번역되었던 발췌본 성경인 이 책마저도 그 당시에는 출판할 수 없었다. 당신의 신자들은 이를 필사하여 읽었을 분이었다.
박해시대 몰래 읽었던 “성경직해광익”이 “성경직해”라는 단축된 이름으로 활판인쇄로 간행된 때는 1892년 이후에 이르러서였다. 당시는 신앙의 자유를 눈앞에 두던 때였다. 지난날 천주교회가 성경의 중요성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유로 개항기 신앙의 자유를 얻은 이후에도 성경 완역을 위한 노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그러나 개신교의 경우 개항 직후인 1877년부터 매킨타이어 목사가 만주에서 조선인 이응찬, 서상윤, 백홍준 등의 도움을 받아 신약성경 가운데 루카복음의 번역본을 출간했다. 그 뒤 개신교 형제들은 계속된 노력을 통해 1900년 신약성서를 완역해 냈고, 1911년에는 구약을 합한 “성경전서”를 간행했다.
남은 말
한국천주교회에서 성경 번역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손성재, 한기근 신부의 번역으로 1910년에 이르러서야 첫 4복음서가 발행될 수 있었다. 그리고 선종완 신부는 1955년부터 히브리어 원문에서 구약성서 번역에 착수했다. 한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경에 대한 인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리하여 천주교회는 1968년 개신교와 함께 ‘성서 번역 공동위원회’를 조직해서 1977년에는 세계 최초로 “공동번역 성서”를 간행해서 사용하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1974년부터 가톨릭 성서학자들이 모여서 새로운 성경 번역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에서는 “성경”을 새롭게 간행하여 2005년 11월 27일부터 각종 전례에 이를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거듭된 성경 번역을 통해 하느님과 우리 민족 사이에는 쌍방 간의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고 더욱 깊어졌다.
박해시대 신앙의 선조들은 “마암으로 가난한 이는 진복쟈이로다. 텬국이 너희의 거심이요./ 우는 이는 진복쟈이로다. 뎌희 위로함을 밧을 거심이오.”라고 성경을 읽었다. 오늘 우리들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라는 새롭게 번역된 성경을 읽고 있다.
하느님은 이렇게 시대에 따라 더욱 세련된 한국말로 하느님 백성 한국인을 위해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어 나가고자 노력해 왔다.
조광 이냐시오 -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교수로 “한국 천주교회사1, 2”, “조선 후기 천주교회사 연구”, “신유박해 자료집” 등 저술활동을 통하여 한국교회사 연구에 힘쓰고 있다.
[경향잡지, 2006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