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톨릭 - 과거에서 현재까지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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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성훈 | 작성일1999-01-04 | 조회수1,707 | 추천수6 | 신고 |
안녕하세요. 안젤로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개신교 신자들과 대면했을 때 그들의 장황한 성서 해석 녹음기(?)로 인해 기를 못 펴는 게 사실입니다.
여기에 필자는 늘 안타까움을 느껴왔기에 비교종교학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영국의 저명한 프로테스탄트 역사가 매콜리의 평론을 인용해 우리의 신앙이 왜 가톨릭이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아주 장황하게 글을 쓰도록 하겠습 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은 가톨릭에 대해 성경 구절을 들어 논박하는 개신교 인들이 있는 줄 압니다만 결론부터 말하면 개신교인들의 성경 구절을 이용한 가톨릭 비방은 절대 이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편찬 정리한 것은 가톨릭의 성 예로니모 성인이셨고 그분은 당연히 가톨릭에 어긋나는 그 어떤 것도 성경에 들어가지 못하게 편찬정리하 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 서론은 접고 본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참고로 아래 글은 이와시타 소이치 신부의 가톨릭 신앙에서 발췌한 것임을
말해둡니다.
- 초대 교회의 인상 -
초대 교회를 언뜻 보면 처음에는 신자 수가 비교적 적었으나 모두 열심으로 불타고 있었음이 눈에 띈다. 성령의 직접 발현이 기적이나 불가사의한 영적 선물로 현저히 눈에 띈다. 그것은 그들의 신앙 증거가 된다.
가시적으로 권위있는 발동은 그다지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다. 성직 제도는 아직 충분히 조직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신자 수가 늘어 초기의 감 격이나 열심이 시들어 가기 시작하고 기적이나 카리스마의 발현도 점차 드물 어지고 하느님의 직접 간섭이 가시적으로는 나타나지 않게 된다. 안으로는 이단이 일어나고 밖으로는 박해가 덮쳐 들어 교회 존립을 위태로운 지경에 빠뜨린다.현세의 한 구석에 그 특수한 존재를 보존하지 않으면 안 되 는 교회는 자가 방위의 필요에서 자연히 결속해야만 되었다. 따라서 가시적 권위의 기초인 성직 제도는 점점 조직적으로 되어간다. 즉 교회조직은 서서 히 발전하는 소지가 주어진다. 즉 교회의 사회적, 법적 요소와 그 초기에 특 히 주목을 끈 영감적 요소의 경중이 거꾸로 된다.
교회 조직과 역사와의 관계
이러한 것은 단지 초대 그리스도교만의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그것은 모든 단체의 역사에도 볼 수 있는 일반 법칙이다.그리스도 교회가 시공 속에서 발 전하는 인간 단체인 이상 역사에 이러한 법칙이 증명되는 것은 당연하다. 만 일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타락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교를 절대적으로 초역사 적 존재로 만들어야만 된다. 더욱 철저하다면 하느님 말씀이 사람이 되어 동 정녀에 잉태되고 인간으로 태어나 성장한 것도 신성의 타락을 물리칠 용의가 있어야만 된다. 그러나 그것을 주장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부정이다. 비신자 라면 몰라도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지지할 수 없는 모순이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유한한 존재의 제약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참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성은 그 갖추신 신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적 제약 속에 매여 있지 않았 다. 그는 그 인성을 통하여 초인간적 가르침을 주고 또 기적을 행하였다. 그 리하여 죽어 묻혔음에도 불구하고 3일만에 부활하였다. 그의 교회도 그러하 다. 이것은 가시적으로 시공을 통하여 일반적인 역사적 법칙에 따라 발전하여 갔 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구세적 사명의 역사적 연장인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의 인성과 같이 역사적 제약 속에 갇혀 버리지 않는다. 다른 모든 인간 단체에서 결국 멸망을 초래하는 것이 도리어 참된 교회의 생명을 점 점 더 풍부하게 해주고 있다. 즉 다른 단체에는 영감적 요소가 쇠퇴하여 법질 서가 현저하게 되는 것은 그 단체의 발전을 의미하는 동시에 그 내적 생명의 종말이 가까움을 말한다. 다음 시대에는 제도는 정비되어도 이것을 살리는 정 신은 따르지 않는 공허한 껍질만이 남는다.
당초 활발한 의기는 소멸하여 그 조직의 크기와 복잡도가 가해질수록 그것을 살리는 정신은 쇠약해져 와해 시기를 재촉하게 된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생명은 그 조직과 평행하여 점점 발전해간다.
가톨릭주의의 완성기로서 프로테스탄트 역사가들이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 는 2세기 말의 교회는 대단한 박해, 무서운 이단과 용감하게 싸우면서 로마 제국의 정신적 정복을 향하여 착실하게 전진하였다. 그 후 100년 그리스도교 는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다. 이 정권과의 악수가 낳은 위험은 보다 더 큰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붕괴하지 않았다. 교회는 로마 제국으로 침입 한 만족들을 교화하고 중세기 문화를 창출하는 데 충분한 활력을 지니고 있 었다.
일찍이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사가 매콜리는 랑케의 교황사에 대한 평론 중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간의 정치적 지능이 만들어낸 것 중 로마 가톨릭 교회만큼 우리 연구 의 가치가 있는 것은 과거나 현재에도 볼 수 없다. 이 교회 역사는 인간 문 화의 2대 시기를 상호 연결하고 있다. 판테온에서 희생의 연기가 솟아오르고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세운 원형 극장에서 맹수가 날뛰고 있다. 그 시대를 회고할 수 있는 제도는 이 교회를 빼놓고는 찾아볼 수 없다. 교황의 계승에 비하면 가장 명예로운 왕통도 어제부터 시작한 것과 같다.
이 계승은 19세기 나폴레옹 대관식을 행한 교황에서 8세기 페핀 왕에게 기름 부은 교황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계속되고 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에 다음가는 오랜 국가 체제이나 로마에 비하면 이것도 근대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것도 멸망해 버렸는데 반하여 교황 제도는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 교황 제도는 오늘에도 존재하며 더욱이 쇠퇴하거나 단지 고물로 남아있 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젊은 힘으로 충만해 있다.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그 옛날 아우구스티누스와 더불어 켄트에 상륙한 선교 사들에게 뒤지지 않는 열심한 전도자를 땅 끝까지 내 보내고 있다. 현대 교황 들은 적대하는 군주들에 대하여 레오 1세가 아틸라에 대하여 그런 것처럼 용감 하게 맞서고 있다. 그 긴 지배가 이제는 종말에 가까워짐을 암시하는 것 같은 아무런 징후도 볼 수 없다. 가톨릭 교회는 현존하는 모든 교파의 탄생을 보았다. 그들 모든 것의 종말을 보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은 보증할 수 없는 일이다.
색슨인이 영국땅을 밟기 전까지, 프랑크인은 라인 강을 건너기에 앞서, 그리스 의 웅변술이 아직 안티오키아에서 번영하고 메카의 전당에서는 우상이 숭배되었 던 그 시절에 교회는 이미 위대했으며 존경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장래 뉴질랜드 여행자들이 헤아릴 수없는 황폐 속에 런던교의 깨어진 주춧돌에 앉아 성 바오로 대성당의 폐허를 그림 그리게 될 그 때에도 여전히 힘이 쇠약해지지 않고 존속할 지 모른다..."
16세기 종교 개혁이야말로 타락한 교회에 대한 순진한 신앙의 반항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살아 있는 것은 형식에서 타락하였다고 말하는 가톨릭 교회인 가 그렇지 않으면 이른바 순진한 신앙인가. 오늘날 어느 나라에서 프로테스 탄티즘이 살아 있는 사회문제로 되어 있는가. 그것은 멕시코나 러시아에서인 가, 혹은 최근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에서인가. 그것은 어디서도 문제가 되고 있지 않다. 문제로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와해되고 있는 근대문명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방임된 채 자연 소멸의 운명을 걷고 있다.
이에 반하여 가톨릭 교회는 방임하여 둘 수 없는 존재이다. 그것은 공산주 의와도 파시스트 국가 지상주의와도 서로 용납하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서로 받아들이지 않는 입장에 있을 뿐만 아니라 반대자는 이를 박해하고 쓰러뜨리 지 않으면 자기 존재에 위험을 느낄 정도로 살아있는 세력이다. 이 세력의 근 원은 단지 가톨릭 교회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를 활동케 하는 생명이다. 단순 한 제도나 조직으로는 현대 국가는 교회에 대하여 뒤지지 않는다.
교회는 소련의 공산주의와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히틀러의 나찌즘에 대항해 싸웠다.
그들은 모두 잘 조직된 제도 아래 총칼의 힘으로 교회를 억압했다. 그러나 로마 교황은 한 사람의 병사도 거느리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바티칸의 백 발 노인은 독재자들에게 그들에게 감히 누구도 말하지 못하였던 노골적인 탄 핵장을 던지곤 했다. 무솔리니는 교황에게 결국 화해책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타락한 그리 스도교의 형해(形骸)를 상대로 하였던 것일까.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세워진 교회는 반석 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영 원히 흔들림이 없다. 주님과 더불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적 약점과 결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만 외길로 천부의 사명을 수행해 간다. 예수의 참 된 교회 설립을 부정하는 모든 학설은 이 살아있는 사실 앞에 숨을 죽인다. 진실로 그를 믿는 자의 눈앞에는 얄팍한 인간의 지혜가 만들어 낸 그러한 들 뜬 설은 구름처럼 날려 일고의 가치도 없게 되는 것이다.
- 이와시타 소이치 신부의 ’가톨릭 신앙’ 중에서 -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안젤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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