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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답변2]아래 개신교 자매님의 글 - '카톨릭과 개신교' 카테고리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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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성훈 쪽지 캡슐 작성일1999-01-27 조회수1,406 추천수4 신고

안젤로입니다

 아래 글에 대한 저의 답변입니다.

 아래 개신교 자매님께서는 말씀하신 개신교와 천주교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동일함에 대해서는 물론 사실은 개신교와 천주교는 왜 전혀
다른 신앙인지에 대해서 논리적이고도 신학적인 아주 긴 장문의 글 - 그
러나 읽기에는 그다지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 을  다음의 제
글에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티나 누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저는 일반적인 가톨릭 신자 그러니까 자매
님이 생각하시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만만한(?) 가톨릭  신자
는 아닙니다. 오히려 교리면이나 역사적인 지식면에서 보건대 가장 까다
로운 신자라고 해야  옳은 말이 되겠지요. 그런 이유에서 개신교 신자이
신 자매님이 보시기에 제가 펼치는 이야기들이 역겹게 그리고 너무나 야
속하게 들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자매님이 개신교 신자이시니까  잘 아시겠지만 개신교계에서 인정
받는 한성과(韓聖果) 목사의 저서 "성서(聖書)를 통하여 본 천주교(天主敎)
의 오류(誤謬)"에서도 자매님의 그런 심정이 잘 나와 있기에 그 책의 구절을
인용해서 자매님의 심정에 대해 왜 그런 심정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동정적인 면을 가지고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도
개신교 목사님의 글을 가지고 추후 이야기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신학생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찌보면 신학과 반대 위치에
있다고도 볼 수 있는 - 개신교 근본주의의 시각에서는 그렇겠지만 - 물
리학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그러나 감히 말씀드린다면 저는 이미 개신교에서 신앙생활하는 동안 그
냥 주일에 교회만 나가는 수준이 아니었으며 나름대로 교리에 대해 연구
하고 여러 서적을 읽고서 목사님과 여러 개신교인과의 대화를 통해 이미
진리는 개신교에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 결과 한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신앙마저 잃어버렸었습니다. 마치 칼 마르크스가  그랬던 것
처럼 말입니다. 개신교인들이 잘 모르는 역사적 사실 한 가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가면 유물론과 무신론의 시조라 일컫는 마르크스와 니체는 개
신교 교회의 목사 아들이었습니다. 그럼 그들이 처음부터 유물론자이거나
무신론자였던 줄 아십니까?

 그들은 어린 시절 나름대로 아버지의 밑에서 종교 교육을 철저히 받았습
니다. 그런 면에서 마르크스는 청년 시절 비교적 요즘 기준으로 보기에도
모범적인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습니다.  그러면 그런 마르크스가  어째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유물론의 창시자가 되었을까
요? 자매님은 그런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가 역사를 왜 배우겠습니까?  과목 배열상 숫자를 맞추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역사학과라는 게 있으니 실업자 구제 차원에서 역사 교과목을 만
든 겁니까?

 제가 개신교인이었을 당시 너무나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개신교인 대부
분은 역사에 대한 인식이 아주 잘못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  단적인 예
로 가톨릭과 개신교의 역사 인식의 연대 구분의 차이입니다. 우리 나라의
그리스도교의 성립 시기를 천주교에서는 200년으로 봅니다만 개신교에서
는 그 역사를 100년으로 줄여서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무엇인줄 아십니까? 개신교인들은 우리 나라에
개신교 선교사가 들어온 시점을 한국 기독교의 출발시점으로 본다면서
우리 나라에 맨 처음 가톨릭 신앙을 성립시킨 선조들의 수난의 역사를
반으로 뭉텅 잘라먹은 개신교인들에게 기독교 신앙 -여기서 말하는 기독
교란 개신교인들 표현이며 이것은 개신교를 지칭하는 것임을 말해둡니다
- 의 역사에 대해 말해보라면 엉뚱하게도 이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고 말합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뚱딴지 같은 이야기입니까? 개신교인들은 필요에 따라
세계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사실은 가톨릭의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역사를 이 천년으로 소급해서 말하곤 합니다.

 그게 어떻게 기독교(개신교 신자들이 자신들을 부르는대로 하자면)의 역사
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럼 그게 어떻게 이 천년의 역사가 될 수 있냐고,
종교 개혁을 통해 최초의 개신교는 1517년 파문당한 독일의 가톨릭 신부 루터
가 만든 게 처음 아니냐고 이렇게 다시 한 번 되묻게 되면 뭐라고 대답하는
줄 아십니까?

 대부분의 개신교인 아니 개신교인 거의 전부가 이렇게 대답하곤 합니다.
 

 루터 이전에 역사를 통해 가톨릭 교회의 압제를 피해 가견적으로가 아니
라 불가견적으로 존재했었다고 주장합니다 -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면 가
견적이라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성당이나 교회 조직 등의 모습을
말하며 불가견적으로는 좀 더 쉽게  그들 개신교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락방이나 비밀스런 장소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마치 밀교처럼 존
재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말이 얼마나 허구를 반증해주는 말인지
아십니까?
 

 예수께서 자신의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
지에 대해서도 모르시는 그런 별 볼일 없는 분이신 줄 아십니까? 저는
어지간하면 성서를 들추는 것을 자제합니다만 개신교 형제 자매님들이
인용하는 것을 즐겨하시는 성서 어디에  그런 이야기가 있느냐고 말씀하
실 것 같아 성서의 예수님 말씀을 한번 인용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
  (마태 5, 14-15)

  "내가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서 말하고, 귀에 대고 속
 삭이는 말을 지붕 위에서 외쳐라." (마태 10:27)
 

 자매님이 그래도 개신교는 불가견적으로 존재했고 그것이 예수님의 뜻이
었다고 주장하실려면 마음대로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그런데 한번 그런 주장의 근거가 될  만한 구절을 성서에서 찾아 이야기
해주시면 저는 기꺼이 자매님의 의견에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
연히 저의 가톨릭 신앙이 거짓된 것도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도 이것은 이미 결론이 나와 있는 게임입니다.

 제가 앞의 글에서 - 비신자방과 가톨릭에 관하여 방의 글 - 말씀드렸다
시피 애석하게도 개신교인과 가톨릭인의 교리  논쟁은 탁구 게임과도 같
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주의할 것은 우리 가톨릭은 이미 다  이겨놓은 게
임을 하는데 반해 개신교는 이미 게임의  상황이 돌이킬 수 없는 가운데
게임을 하다보니, 가톨릭 신자로서는 답답할 이유가 없는데 반해 -  왜냐
하면 논쟁의 대상이 되는 질문마다  얼마든지 충분하고도 납득할만한 자
료와 증거들로(성서는 물론  말할 것도 없고  가톨릭의 역사 자료가 아닌   
개신교 측의 자료들마저 개신교의 논리를  부정하므로) - 이야기를 진
행해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 입장인 개신교 신자로서는 참으로
분통이 터지고 답답한 노릇일 거라는 점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제 글은 어디까지나 교리면에서 그리고 역사적인 면에서 고찰해
보건대 가톨릭만이 진리라는 것을 강조할 뿐 가톨릭 신자는 누구나 구원
받고 개신교 신자는 구원받지 못한다거나  비신자는 아예 논의의 대상에
서조차 제외되는 그런 식의 주장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구원 받고 못 받고 영원한 삶을 누리고 못 누리고는 우리 인간의 주관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데에 대해서는 어떤  이견도 있을 수 없을 것입
니다.


 필자는 분명히 말하거니와  개신교인이든 불교  신자이든 천주교인이든
그 사람들의 인간적인 선의를  의심하는 의도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개신교인 중에도 천주교 신자 못지 않은 신심을 가진 이가 많음을 인정
합니다. 또한 그들 중 대다수가 교리에 대한 철저한 연구 없이 그저 인간
적 선의에 의해 그리고  자신의 탓없이 가정의  환경에 의해 개신교인이
되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만일 개신교인이 주위에 가톨릭에  관해 적절한 정보와  가톨릭에 대해
올바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에  가톨릭에 관해 편견에 사로잡혀 있
다면 그로 인해 그들에게 뭐라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
또한 이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별해야 할 것은  개신교인들의 인격적
인 면을 의심하거나 그들의 사람됨됨을 가지고 따지려는 게 아니라는 점
입니다.

 단지 가톨릭과 아주 다른 교리면과 그 역사적 분열의 원인을 살펴본다면
그 분열에 직접적 책임이 없는 현재의 개신교인들을 몰아세울 이유가 없
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 알아둘 것은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이미 언급되었듯
이 갈라진 형제들인 개신교 신자에 대해 이단시하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
어나 형제애적인 자세로 대한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런 면에서
분명 포용의 자세가 개신교 측의 입장과  많은 부분 다른 것을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아울러 알아둘 것은 진리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분명 가톨릭 교
회의 가르침이 개신교의 그것과  다르며 다른 데에만  끝나지 않고 오직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참된  교회인 가톨릭안에만 살아 있다
는 것을 이성의 힘으로 파악했음에도 인간적 정의(情誼)에 이끌린 나머지
그 진리를 거부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영원히 구원이 없다는 것 또한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입장이라는 것 또한 말해두는 바입니다.


 약간은 엉뚱한 질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장미와 꿀벌의 공통점이 무엇
인줄 아십니까? 그것은 둘 다 인간 생활에  유익한 점이 많은 것 그리고
둘 다 가시와 독침이라는 아주 달갑지 않은 것을 몸에 지니고 있다는 것
입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모든 신자의 영적  어머니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예
수 그리스도의 배필 - 개신교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이 얼마나 아름다
운 칭호입니까 - 로서 지금까지 그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왔음은
개신교 역사가 랑케의 ’교황사’에 잘 나타나 있으며 그 ’교황사’에 대한
아주 적절하고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평론을 쓴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평론
가 매콜리의 글에서 - 아래 제 글 중 ’우리는 왜 가톨릭인가’를 참조 - 이
미 잘 아셨으리라 믿습니다.

 진리를 품고 있는 한송이 장미와도  같은 가톨릭 교회에서 만약 가시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
의 수단이라면 과거에는 그 가시가 칼과 창으로써 이교도의 칼 아래서 신음
하던 교회를 구출하는 십자군이라고 한다면 현대에 와서는 그 가시와  독침
의 역할은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정하신 교리에 반항하는 무리들에 대한 적
절하고도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호교론(護敎論)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글을 보신 많은 가톨릭 신자 분들께서는 너무나 시원하고 통쾌하고 생각
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제 글의 어투가 너무 강한 게 아니
냐는 의견도 있긴 합니다만.

 그러나 제 글을 보신 많은 개신교 신자들은 분하고 답답한 심정 내지는
반박의 논리를 찾아내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음을 아시고 주관으로 주장
하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이라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 마
디로 저의 글이 가톨릭이라는 장미에게는  보호의 역할을 했을 것이지만
그 장미를 감히 꺾어보려는 이에게는 고통을 안겨주었다면 그것이 바로
저의 글이 의도한 바였다고 이 자리에서 말해두는 바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개신교인의 선의의 신앙생활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 가톨릭 신자는 사실 개신교인들이
지하철에서 확성기로 구원을 외치는 것이나 하느님 대신 하나님이라고
부르짖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굳이 개신교인에게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권유하거나 그렇게 강제하고 싶은 마음은 더더구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진리의 가톨릭의 교리에 반대되는 그 어떤 학설이나 괴설도 필자
는 용납할 수 없으며 이 점은 앞으로도 분명 개신교인의 선의와는 상관
없이 어느때나 이 점을 확실히 밝혀둘 것이라는 점을 말해둡니다. 필자는
가톨릭이라는 장미의 가시 역할을 할 수 있는 글을 앞으로도 연재할 것
이며 듣는 이에 따라 그것이 보호막으로도 가시로도 느껴질 수 있을 것
입니다.

 참고로 개신교인들의 역사인식에 대한 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
기를 하겠습니다. 얼마전 클래식 음악 잡지에 우리나라의 유명한 여자 소
프라노 김 아무개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필자는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
다. 그 소프라노는 말하길 자신이 출연하는 오페라 - 베르디의 오델로 -
의 작곡자인 베르디는 기독교인이 아니었지만 그가 작곡한 작품에서는
기독교적 색채가 짙게 배어 있다고 말을 하면서 자신이 부르게 되는 아
베마리아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사를 필
자는 곰곰 보면서 참으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천주교인이었던  베르디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니 참으로 언어도단이 아닐 수 없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럼 천주교는 기독교와는 다른 종교라는 인식이 분명 그 소프라노에게
는 있었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분명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오페라 공부를 하려면 당연히 이탈리아에서 유학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고 그렇게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면서 그 소프라노는 개신교회가 없
는 그 곳에서 얼마나 적막감을 느꼈을지 짐작은 갑니다만 오히려 기독교
라고 굳이 표현을 하자면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괄하는 것으로 사용을 해
야 옳은 일이 될 것입니다. 더욱 머리 숫자로만 따져서 기독교를 나눈다
해도 신자수가 10억이 넘는 가톨릭이 기독교에서  빠지고 신자 수가 4억
이 안 되는 개신교가 기독교라 칭할 그 어떤 논리도 성립하지 않기 때문
입니다.
 
 외국에서는크리스챤이라고 하면 당연히  가톨릭 신자를  가리키는 말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나라에서는 그 반대로 크리스챤하면
사람들이 개신교 신자를 먼저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아래 자매님이 말씀하신 예수회의 활약으로 전 세계
방방곡곡 가톨릭 신앙이 안 퍼진 곳이 없습니다. 그것도 아주 구석진 태평
양의  외딴 섬에까지 말입니다. 예수회가 선교한 같은 지역에 개신교 선교
사가 들어온 것은 예수회보다 최소한 100년에서 300년이나 나중의 일입니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그렇게 가톨릭 신앙이 먼저 전파된 나라 중에서 유일
하게 우리나라만이 개신교에 비해 100년이나 앞선 가톨릭이 인구면에서
지극히 열세인 점은 가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고무적인 것은 얼마전 미국 뉴스위크  지의 동경 특파원
이 일본과 한국의 가톨릭 인구와 역사를 비교 분석하는 특별 리포트 취재를
위해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의 교수님 한 분 - 참고로 이 교수님은 감리교 신자
입니다 - 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인터뷰 내용의 일부를 필자가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로 필자는 그  교수님으로부터 종교
학을 수강했기에 그 인터뷰 내용에 대해 알게 된 것임을 밝혀둡니다.


 
 기자 : "한국은 가톨릭의 역사가 긴 일본에 비해 가톨릭 인구가 많은  것
은 사실이지만 여타 다른 나라들, 가톨릭 신앙을 개신교보다 먼저 받아들
인 나라와는 반대로 개신교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에 대해 교수님은
어떻게 설명해야 된다고 보십니까?"


 교수 : "그것은 한국이 다른  나라와는 다른 여러 가지 상황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점은 한국 내 개신교의 압도적인 위상이 그다지
고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 각종 통계자료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과거 30년 동안 개신교 신자의 증가속도가 천주교 신자의 그것보다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요인이고 두 번째로는 한국의
경제 발전에 따라 점차 높아지는 학력 수준이 종교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
통계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고학력 경향이 통계 자료에서 개신교 신자보다 천주교 신자의 학력
수준이 월등 높다는 데서 알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천주교 신자의 경우 교회 이탈이 그다지 심하지 않은 반면
개신교 신자의  경우는 교회 이탈이  천주교 신자의 그것보다 월등히 높아
통계 자료에서 교적을 확인하면서 생기는 오차가 그만큼 개신교가 더 커서
사실 한국에서의 가톨릭과 개신교의 상호 위상의 변화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해야 할 흥미있는 주제라고 봅니다."  



  필자는 개신교의 교리와 역사인식에는 분명  잘못된 점이 많이 있으며
이러한 점들은 가톨릭 신자로서 당연히  알아두어야 옳은 일이라고 생각
하기에 그리고 가톨릭과 개신교의 차이에 대해 모르는 너무나 많은 사람
들이 있음으로 해서 글을 올린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예
수 그리스도 믿는 것은 똑같지 않냐고  아래 준철 님의 글에서처럼 다시
한번 자매님이 말씀하시는 데 거기에 대한 저의 충분하고도 확실한 답변
"개신교인은 왜 가톨릭  신자의 신앙과 그들의  신앙을 혼동하는가?" 는
다음 글에서 이어질 것이니 그 글을 읽어보시고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시
기 바랍니다.


  참고로 신앙이라는 것에 대해 개신교인과 가톨릭인 모두 그 용어를 사
용합니다만 그 내용에는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냥 대동소
이한 게 아닙니다. 같은 거라곤 ’신앙’이라는 술어를 사용한다는  것 말고
는 없을 정도입니다. 그 아주 단적인 예로서 제가 이 아래 올린  글 가운
데 ’고통을 대하는 가톨릭 신앙인의 참모습’에서  그 일면을 소개해 드린
바 있습니다.
 

 앞에서 마르크스가 왜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음에도 유물론자가 되었는
지 말씀을 안 드렸군요. 마르크스의 아버지는 유대인으로  변호사인 동시
에 목사였었는데 나중에는 목사로만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르크
스의 누이동생이 폐결핵으로 병상에 눕게  되자 마르크스는 철야 기도와
단식기도로서 예수 그리스도께 누이동의 쾌유를 기도했으나 끝내 누이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온 힘을 다바쳐서 예수님께 기도를 했
건만 그 기도를 예수님이 들어주시지 않은 나머지 사랑하는 누이 동생을
잃었다고 생각한 마르크스는 자신의  개신교 신앙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그는 모든 종교에 대해  반대하는 유물론의 창시자가 된 것입니
다. 마르크스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설파했다는 것은 제가 말 안해
도 잘 아시는 것일테지요.
 

참고로 저희 교회를 카톨릭이라고 말씀하시는 데 이것은 옳은 표현이 아닙
니다.정식 명칭은 라틴어로 "Ecclesia Catholica Romana"이며 가톨릭 혹은
천주교가 옳은 표현입니다.


 이제까지 저의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가톨릭의 진리는 현대의 어떠한
사조나 사상에도 함락되지 않는 진리의  기둥이라는 것을 아셨으리라 믿
습니다. 그 이외의 어떤 경우의 우문(愚問)에 대해서도 확고 부동하고 지
극히 논리적인 그리하여 어느 누구라도 제대로 된 지성의 소유자라면 이
성과 지성이 모두 수긍하지 않을 수 없을 답변을 약속합니다.  가톨릭의
진리를 의심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가톨릭의 답변은 더 이상 의심을 갖
게 할 수 없을 만큼 명백하고 확고부동함에 할 말을 잃게 될 것을 장담
합니다.


 이것은 필자의 의견이 아닌 맹렬히 가톨릭을 비난하던 성공회 신자였으나
모든 회의와 의심을 극복하고 마침내 가톨릭의 품에 안긴 영국의 대문호
체스터턴의 말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린다면 정말로 고고한 지성의 소유자로서 개신교 신자
였던 위인들 모두가 천주교의 교리를 연구해 보고서 모든 것을 개신교와
확실히 비교해 보고는 백 퍼센트 열렬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는 사실만은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천주교에 대해 모든 것을 확실히 알게 된 개신교 신자는 더 이상 개신
교 신자로 지구 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그리고 위인
들의 입과 글을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증언되고 있음을 말해둡니다.
물론 필자도 그 중의 한 사람임을 부인하지는 않겠습니다.


 아니 무엇보다 가톨릭 신자가 된 것이 인생에  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상의 선택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안젤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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