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가톨릭 신앙과 개신교 신앙은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인가? (3)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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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성훈 | 작성일1999-01-27 | 조회수1,130 | 추천수4 | 신고 |
- 신앙과 교리의 관계 -
프로테스탄트 신자들 가운데는 신앙과 교리를 완전히 분리하여 신앙에만 치중할 뿐, 교리에 대하여는 도무지 마음을 쓰지 않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아마 교리란 사람들이 만든 ’전설’이나 ’관례’ 로만 여기는 듯하다. 이것은 신앙을 프로테스탄트적 신뢰인줄로만 알고 신앙만 있으면 확실히 구원되는 신앙 만능론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이것 이야말로 지긋지긋한 오류 그 자체이다.
교리란 하느님께서 직접 계시하신 진리와 우리에게 내리신 계명이다. 한 국 「천주교 요리문답」에는 "천주교 요리는 세 끝을 포함하나니 1) 믿 을 교리와 2) 지킬 계명과 3) 은총을 얻는 방법이니라. …믿을 교리는 대충 사도 신경에 실려 있는 것이니라. …지킬 계명은 천주 십계와 천주 교회의 모든 법규니라. 은총을 얻는 방법은 특별히 기도와 성사니라"(4. 5. 6. 7)라고 하였다. 이를 총괄하여 ’교리’라고 한다. ’요리’는 교리 중 주요한 것이란 뜻이다.
앞의 글에서 구구절절이 이야기했거니와 지금까지 필자의 글을 읽어 온 사람은 앞에서 말한 교리의 기원이 예수께 있음을 즉시 깨달을 것이다.
사람이 만든 종교(人造宗敎)에는 물론 사람이 만든 교리가 있겠지만, 천 주교는 사람이 만든 종교가 아닌 하느님이신 주 예수께서 몸소 세우신 유 일한 신적기원의 종교(神的起源宗敎)이며 주 예수께서 몸소 가르치시고 명 하시고 제정하신 교리가 있다. 천주 성삼, 강생, 구속, 교회 창립, 으뜸 사도 베드로와 그 후계자에게 권위를 부여하심, 교회의 무류성, 성세·견 진·고해·성체·미사·신품·병자 성사 등의 교리는 모두 하느님이신 주 예수께로부터 직접 온 것이다.
교회의 법률이란 예수께서 가르치신 진리와 계명을 충실히 수호하기 위 하여 제정한 한 방편일 뿐이다. 예를 들면 주 예수께서 고해 성사와 성체 성사를 세우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성실히 받아 영적 이익을 얻게 하 셨는데, 교회에서는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성사를 받으라는 규율을 세워 신자들로 하여금 주님의 뜻을 준수하도록 독려하며, 성사 거행의 예식을 제정하여 성사의 존엄을 보전한다.
비록 규율은 규율이지만 신자들은 거기에 마음으로 복종한다. 이것은 주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제정하신 것으로서 영구 불변한 것이므로 사람이 마 음대로 고치지 못한다. 따라서 예수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은 모 든 교리를 기쁜 마음으로 지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들이
고 지키는 사람이 바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에게서 사랑받을 것이다. 나도 또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나를
나타내 보이겠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요한 14, 15. 21-24).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1요한 5, 3).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예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은 또한 그의 계명 을 준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신앙과 선행이 병행되어야 하고 선행 의 유무에 따라 영생과 영벌이 판정된다는 것은 앞에서 이미 말했다.
따라서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보통 도덕’의 행위만으로는 영생을 얻지 못한다. 주 예수의 계명이란 남을 미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부모에게 효도하라 등의 미신자들도 다 실천하는 도덕 적 계율일 뿐 아니라,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내리신 특수 계명도 포함되 어 있다. 즉, 교회 제도의 확립, 영혼의 성화를 위하여 세우신 칠 성사가 그것이다.
계명이란 곧 권위 있는 명령이다. 그러므로 계명에는 절대 복종할 의무 가 있다. 주 예수께서 베드로 사도와 그 후계자에게는 권위를 맡겨주시고 신자들에게는 그 권위에 복종할 의무를 명하셨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그 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그 순종으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그들에게 순종해 야 한다. 한 나라의 원수에게 충성을 다하는 이는 으례 그 원수의 임명을 받은 지방 장관에게도 복종하는 법이 아닌가. 국가 원수에게는 순종하면 서, 그 원수의 권위를 대행하는 지방 장관을 거역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 는가.
예수께서 성체 성사를 세우실 때, 이 성사에 당신이 실재함을 믿어야 할 의무와 함께 이 성사를 받아야 할 의무까지 명하셨다. 믿든 말든, 모시든 말든, 각자에게 맡겨 버릴 성질의 일이라면 아예 세우지도 않으셨을 것이 다. 주 예수께서 세우신 다른 성사와 다른 제정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다. 하느님께서 계시하신 교리를 믿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주를 믿는다고 하 는 것은 한갓 말장난일 뿐이다.
주님의 계명은 다 수행할 의무가 있고, 의무가 있는 이상 어찌 한 가지 인들 범할 수 있겠는가. 이미 말한대로 교리적 신앙에 있어서는 계시 진 리 중 하나라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주님의 권위를 부인하는 죄가 된다. 계명 수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계명 중 한 가지라도 지키지 않 는다면, 그것은 곧 하느님의 권위를 모독하는 죄이다.
"누구든지 계명을 다 지키다가도 한 조목을 어기면 계명 전체를 범하 는 것이 됩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하신 분이 ’살인하지 말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간음은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살인을 한 사람은 결국 계명을 어긴 자가 되고 맙니다."(야고 2, 10-11).
여러 계명을 내리신 주 예수께서는 또한 교회 제도와 모든 성사를 세우 셨다. 따라서 비록 다른 계명을 다 지킨다 해도 교회의 제도나 칠 성사 중 한 가지만이라도 부인하면 이것은 곧 천주님의 계명을 어기는 죄이다. 나라의 법률 중 하나만 어겨도 곧 국가의 죄인이 되지 않는가.
"그래도 나를 설마 주께서… 내가 이처럼 주를 믿고, 이처럼 주를 사랑
하고, 이처럼 마음이 착하여 착한 사람으로 지내려고 힘쓰는데 설사 내
가 한 두 가지를 믿지 않았다고 해서 인자하신 주께서 설마 나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주관주의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부연하면 사실 이것은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의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아래 개신교 자매님의 글을 보면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의 전형적인 소위 ’예수를 믿는 신앙’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울행 기차를 타고도 "나는 지금 부산행 기차를 타고 있다. 부산은 꼭 가야만 한다. 내가 틀림없이 부산으로 간다"라고 주관적으로 확신한다고 해도 엄연한 객관은 그대를 서울로 끌고 간다. 주관의 우물에서 좀 튀어 나와 보라.
대체 그대가 믿어야 할 진리 중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믿고 나머지 것 은 믿지 않으며, 계명 중 마음에 드는 것만 선택하여 지키고 다른 것은 지 키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는 근거가 어디 있기에, 이 중대한 구원의 대 사(大事)에 있어서 그런 헛되고 고식적(姑息的)인 안심의 허방 위에 누워 위험 천만한 낮잠을 자고 있는가.
이제 그대와 같은 사람을 주 예수께서 아무 말씀 안하시고 받아들인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역시 그대와 같은 태도를 가진 사람이 수십 명 있다고 하자. 그들은 모두 다른 신조와 계명은 잘 신봉하면서 각각 한 가지씩만 을 부인한다고 하자. 만일 이들을 다 받아들이신다면 교회를 세우시고 진 리를 계시하시고 계명을 내리시고 한 일들은 모두 헛일이 되지 않겠는가. 믿어야 할 진리도 없고 지켜야 할 계명도 없다는 것밖에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희대의 사기꾼으로 모는 것 밖에는 다름 아니다. 한 번 생각해보라. 그렇게 수많은 이가 예수를 위해 목숨까지 버려가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정하신 교리를 지키고자 온갖 희생을 다 치렀건만 이제 와서 아무 신조나 태도를 가진 사람이건 간에 상관없이 구원을 받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대가 진실로 주를 믿는다면 그 신앙을 행동으로 보여라 (야고 2, 18 참 조). 그대가 진실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대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 을 수 없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요한 14, 23. 24).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
니다. 하늘에 계신 내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날
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
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마태 7, 21-23).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마귀를 쫓아 내고 기적을 행하는 것은 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어느 한 점이라도 성부의 뜻을 어기면 이런 무서운 선고를 받게 된다. 성부의 뜻이란 주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명하신 바로 그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들려주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요한 14, 24).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내리신 명령을 들어 보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 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 19-20).
즉,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는 주님의 모든 명령 중 마음에 드는 것 만 골라서 가르칠 자유는 없다. 모든 것을 다 가르칠 의무밖에는 없다. 따라서 우리도 그 중에서 마음에 맞는 것만 골라서 신봉할 자유는 더더 욱 없다. 모든 것을 신봉할 의무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양보하여 주 예수를 믿고 따라가며 그분이 가르치신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믿고 실행함으로써 구원을 받든지, 예수께서 양보 하시어 그대를 따라오시어 그대가 마음대로 선택한 것만을 신봉하는 그 대로 묵인 허락하시어 그대가 구원받든지, 이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오직 그대에게만 양보하실 수도 없고 또 양보 하실 의향이 없으신 것도 확실하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내리는 눈이 하늘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흠뻑 적시어 싹이 돋아 자라게 하며 씨뿌린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
을 내주듯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그냥 나에게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이사 55, 10-11).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마태 24, 35).
"그러므로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 그대로 실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큰물이 밀려오고 또 바람이
불어 들이쳐도 그집은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한 말을 듣고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비가 내려 큰물이 밀려오고 또 바람이 불어
들이치면 그 집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마태 7, 24-27).
참고로 위의 글은 ’교부들의 신앙’ 중에서 故 윤형중 신부님께서 책의 마지
막 부분에 가톨릭의 신앙과 교리에 대해 추가하신 것을 필자가 발췌했음을 알
려드립니다.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안젤로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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