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가톨리시즘은 참되다 ; 지성인은 로마로 - 왜?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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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성훈 | 작성일1999-02-09 | 조회수796 | 추천수3 | 신고 |
- 지성인을 끌어들이는 로마의 자력(磁力) -
; 지성인은 로마로 - 왜? (1)
사도로부터 이어 온 교회
교회는 사도로부터 이어져 내려왔다. 곧 교회의 교리는 사도들이 가르친 교리이 며, 그 통치자의 계통이 사도들과 그들의 으뜸인 베드로까지 소급된다는 말이다. 교리의 사도 전래성은 교회의 신앙이 하나라는 데서 나오는 논리적 귀결이다. 저 유명한 천재 뉴먼(John Henry Newman)은 그 때 옥스퍼드의 성공회 신학자 로서, 교리의 사도 전래성을 주장하는 가톨릭을 뒤엎기 위해서 성 아우구스티노, 성 예로니모, 성 바실리오, 성 크리소스토모와 그 밖에 5세기까지의 여러 교부 (敎父)들의 저서를 연구했다. 그는 이들 초대 교부들의 저서로 성사(聖事)나 성 체의 실재설(實在說)이나 마리아의 공경 등에 관해 조사하면, 이 저서들과 당시 의 영국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의 사이에 반드시 엇갈리는 점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와는 달랐다. 놀랍게도 그는 이들의 교리가 아주 정확히 일 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그는 현재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초대 교 부들의 가르침이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의심의 그림자조차 품을 여지가 없게 됐다. 친구, 친척, 지위, 세속적 명예와 재산 등 크나큰 희생 을 치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성공회의 유망한 성직자를 드디어 가톨릭의 양우리에 끌어들인 것은 바로 이 ’사도로부터 이어져 오는 교회’ 의 빛나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몇몇 옥스퍼드의 뛰어난 학자들이 모여 일으킨 운동이 ’옥스퍼드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위의 이러한 표지는 진리를 찾아 헤매는 순례자를 참된 양우리 안에 인도하는 등대이다. 실로 이는 너무나 명백하고 너무도 틀림없는 가톨릭의 징표이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 마음을 터놓고 편견없고 주의 깊게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 도 가톨릭의 신성(神性)을 확신할 것이 틀림없다. 교회는 교회의 주장이 진실함 을 확신하기 전에는 누구에게든지 이를 믿으라 강요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교회 위에 신적 기원(神的起源)의 없어질 수 없는 인호(印號)를 박았다는 것을 믿은 다음에 교회에 들어오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누구든지 이 진리를 인식하기 만 하면 어떠한 세속적 애착도 손해도 거리낌도 그가 교회 안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개신교 내부의 그치지 않는 분열
가톨릭 교회가 20세기 동안 줄곧 유일한 최상 통치자의 통솔 아래 신앙의 일치 를 영속하여 온 것과는 정반대로 그 동안에 나타난 갖가지 교파들은 나타난 시 기도 엄청나게 늦거니와 영속성도, 안정성(安定性)도 없어, 자기 파(派) 안에서 도 쉴 새 없이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노바시아누스파나 마케도니우스파 나 펠라지안파 등, 초세기에 갈라져 나간 이단파들은 그 이름과 오류만 남겨 놓 은 채 이미 세상에서 꺼져 버렸다. 줄기에서 잘려 나간 가지는 생명의 수액(樹液) 을 받지 못하므로 곧 시들어 죽어버리듯, 자모(慈母)이신 성교회(聖敎會)에서 갈 라져 나간 이들 이단파들도 유기체의 모든 지체들에게 연결된 성사의 핏줄로부터 나오는 생명의 은총을 받지 못해서 즉시 시들어 죽어 버리게 마련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천재 학자 존 헨리 뉴먼이 그리스도의 양우리 안에 들어온 것 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가 젊어서 모노피지스트(一性派)와 그 밖의 몇몇 이단파의 역사 연구에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있을 때 갑자기 놀라운 의문이 그를 엄습했다.
’나는 결국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해서 5세기의 모노피지스트파와 꼭 같은 입장 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개신교 내부의 헤아릴 수 없는 분파(分派)를 검 토하면서 수많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16세기에 역사적 통일체에서부터 스스로 잘려 나온 개신교와 5세기에 이미 그 짓을 한 이단파와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이 의문은 그의 마음을 쉴 새 없이 들볶아 댔다.
그의 저서 ’제 생명을 위한 호교론(Apologia pro Vita Sua)’에서 그는 16세기 또는 당시의 개신교가 5세기의 이단파와 비슷한 자리에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달 았다고 했다. "지난날의 죽은 기록과 오늘의 열광적 기록은 무서울 만큼 닮았다. 아니 말이 없고 냉랭한 그만큼 더욱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게 비슷하다. 내 발판 은 ’고대성(古代性)’ 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5세기 중엽에 16세기, 19세기 그리스도교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거울 속에서 내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는 무서워 떨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나는 하나의 모노피지스트였다."
뉴먼이 진리에 굴복하다
악착스런 고집쟁이 뉴먼도 자기 앞에 밝게 떠오른 역사적 유사(類似)의 뜻을 깊 이 깨닫자, 그의 생애는 다른 방향으로 내닫기 시작했다. 몸서리치는 혈투(血鬪) 를 치러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그는 굽히고 말았다. 그는 온갖 지력(知力) 을 모두 쏟아 성공회가 로마에서 독립된 하나의 교파 또는 가지(枝)임을 논리적 으로 정당화하려고 기를 썼다. 그러나 역사의 기록을 악착같이 파고든 결과로 얻은 흔들릴 수 없는 확신은, 가톨릭 교회만이 그리스도가 세운 교회이며 이것 만이 사도들의 가르침을 완전 무결하게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가톨릭 교 회가 세상에 있는 유일한 참된 그리스도 교회라는 어쩔 수 없는 논리적 결론은 뉴먼 이전이나 이후에도 천재들을 끌어들였고 이 위대한 학자도 그리스도의 양 우리 안에 끌어들였다.
20세기에 있어서도 5세기 때나 마찬가지로 줄기를 떠난 가지는 시들어 죽는다. 개신교가 자모(慈母)이신 성교회를 배반한 이후 그들 내부에서 쉴 새 없이 분열 을 거듭하고 있는 꼴은 제도가 시들어 감이요 신조가 죽어가는 과정일 따름이다. 개신교를 창설한 자들이 이제 부활한다면 자신들이 세운 신조도, 자기의 후손도 지금의 세상에서는 찾아 얻을 자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미국의 가톨릭 신자 수는 그 사상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 큼 가파른 증가 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1785년에는 캐롤 주교 밑에 34명의 신부 와 약 2만 3천명의 신자가 있었다. 즉 그 당시 미국 인구 약 240만명의 1퍼센트 였다.
몇몇 이민(移民)에서 비롯한 이 교회는 오늘날 미국 최대의, 그나마 비교도 안 될 만큼 가장 큰 종교 단체를 이루는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차별과 험담과 중상을 무릅슨 이 놀라운 증가 속도는 초세기의 미미하고 박해를 받아 온 ’작은 무리’였던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 세계 최대의 종교 단체를 이루고 있다는 기적 적 사실과 기막히게 비슷하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흐른 지금 1997년 통계자료를 통해 보면 미국 전체 인구 약 2억 6천만명 중 가톨릭 인구는 6천만명을 이미 넘어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1세기에 당신 교회와 맺은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더할 수 없는 뚜렷한 증거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어떻 게 가톨릭 교회는 여러 제국들의 흥망 성쇠 속에서, 또 강력한 로마 제국까지도 몰락하게 한 야만족의 침입을 견디어 냈는가? 어떻게 그는 그리스도교계의 뿌리 까지 뒤흔든 16세기의 종교 혁명도 버티어 냈는가? 어떻게 오늘날에도 현대 불 신앙(不信仰)의 공격과 탈바가지를 뒤집어쓴 이교 사상의 파괴도 견디어 낼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제자 요한은 이에 대한 현저한 이유를 날카롭게 밝혔 다. 곧 그는 이미 1세기에 예언자다운 선견(先見)의 눈으로써 다음과 같이 외쳤 다.
"하느님의 자녀는 누구나 다 세상을 이겨 냅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 4).
가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세웠고, 그분이 항상 함께 계셔서 오류를 범하지 않게 보호하고 있는 까닭에, 과거 19세기 동안 그랬음과 같이 지금도 세상 에 있는 유일한 참된 그리스도 교회이다.
2부는 다음의 글에서 계속됩니다.
갈현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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