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319] 간략한 대답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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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신부 | 작성일1999-08-07 | 조회수551 | 추천수1 | |
성모송(Ave Maria) 아베 마리아 노래. 천사의 축하인사(루가 1장 28). 이 기도는 두 부분으로 되는데 천사가 성모 마리아께 인사드린 말씀과 엘리사벳이 성모 마리아께 인사드린 말씀을 묶어서 전반을 이루어 11세기부터 사용되었고, 교회의 성모께 대한 기구(15세기 첨가)가 후반을 이룬다. 전체기도가 공인된 것은 비오 5세 때이다. Ave Maria, gratia plena(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로 시작함. 주의기도, 영광송과 함께 3대 기도문이라고 함.
짧은 답변이지만 그런대로 설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기도문이 하루 아침에 누군가에 의해 씌여졌다기보다는 오랜 교회 역사 속에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 다듬어지고 그래서 사용되던 것이 후에 교회의 인가를 받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전반부는 루가복음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성모송의 저자가 누구라고 말하기도 어렵겠지요?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아래 글은 자료실에 그전에 올렸던 것인데 참조하십시오.
마리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 성서에서 본 성모송
우리가 매일 드리는 성모송은, 루가 복음 1장 28절에 나오는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와 42절 엘리사벳의 찬미에 교회의 기도가 덧붙여진 것이다. 첫째 부분인 천사의 인사와 엘리사벳의 찬미는 6세기 경부터 기도문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거의 천년의 형성 역사를 거쳐 16세기 경에 둘째 부분인 교회의 기도가 덧붙여지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성모송의 의미를 바로 알기 위해 첫째 부분을 먼저 살펴보고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인 루가 복음 1장 28절은 "기뻐하소서, 은총 받은 이여,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이다. 엘리사벳의 찬미인 42절은 "당신은 영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시나이다"이다. 그러나 우리말 성모송은 천사의 인사와 엘리사벳의 찬미를 한 문장으로 연결시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중에 복되시며"로 만들었다. 이것만 보아서는 어디까지가 천사의 인사이고 어디까지가 엘리사벳의 찬미인지가 분명하지 않을뿐더러 "여인 중에 복된" 직접적인 이유가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물론 초세기의 몇몇 필사본과 라틴어 성서 사본인 불가타 역에는 "여인 중에 복되십니다"라는 찬미의 말이 가브리엘 천사의 입을 통해서도 발설된 것처럼 되어 있지만 오늘날 사본학의 연구 결과 "여인 중에 복되시나이다"는 천사가 아니라 엘리사벳의 찬미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지만 주님께서 함께 계신 것은 마리아가 축복 받을 이유라기보다는 기뻐해야 할 이유에 더 가깝다. 마리아가 복된 이유는 오히려 45절에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라는 엘리사벳의 말에서처럼 믿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믿는 자는 복이 있다. 믿음 안에서의 잉태와 그로 인한 기쁨이 축복의 원천이다. 예수님은 신앙과 축복의 결실인 것이다.
기뻐하소서
성서 원문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건넨 첫 마디는 "기뻐하소서"(카이레)이다. 예로니모는 이 단어를 라틴어로 옮기면서 '아베'로 번역하였다. '카이레'는 '안녕하세요' '샬롬'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천사가 마리아를 기쁨으로 초대하는 명령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인류는 처음부터 자기를 죄와 고통에서 구해줄 해방자,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줄 구원자를 갈망하고 희망해왔다. 그런데 이제 그 메시아가 탄생한다는데 기쁨이 넘치지 않을 수 없다. 천사는 마리아를 이 기쁨으로 초대한다. 이런 명령형은 구약의 여러 군데서 보인다(즈가 9,9; 스바 3,14-17 참조). 마리아가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고(루가 1,30),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루가 1,28)이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택해 당신의 성전으로, 당신의 거처로, 당신의 어머니로 삼으셨다. 잉태된 아기는 곧 하느님의 아들(루가 1,35)이다. 마리아의 모태에 성령이 작용하여 성자가 자라고 있으니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마리아
천사는 28절에서 마리아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다만 '은총 받은 이'라고만 하였다. 마리아의 이름은 두 절 다음에 나온다. 마리아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미리암'이다. 미리암은 애인이라는 의미의 이집트어 '뮈르'와 야훼의 축소형 '얌'이 결합된 단어로 야훼의 애인, 하느님의 애인을 뜻한다. 마리아는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여인이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통해서 구세주를 보내시고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셨다. 고고학적 가치가 큰 시리아의 옛 도시 우라리트에서 발견된 문서에 자주 나오는 므림(마롬)이라는 단어에서 마리아의 어원을 찾을 경우 마리아는 '높이 들어올린 여인' '고결한 여인'이라는 뜻이 된다. 마리아는 구원사에서 높이 올림을 받은 고결한 여인이었다.
은총이 가득하신 여인
성모송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단어는 "은총 받은 이"(케카리토메네:루가 1,28)이다. 이 표현은 '(하느님의) 은총을 붓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채우다'라는 동사의 수동완료 분사형으로 되어있다. 이 표현의 수혜자인 마리아는 '하느님의은총으로 이미 채워진 자'이다. 이는 "너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다"(루가 1,30)에서 잘 설명된다. '케카리토메네'에는 충만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서 예로니모 성인은 이 말마디를 라틴어로 번역할 때 '그라씨아 플레나'(충만한 은총)로 번역하였다. 우리 기도문 "은총이 가득하신"은 이 라틴어에서 옮겨온 것이다. "은총 받은 이"라는 천사의 인사에는, 인간이 자기의 피조성을 거부하고 하느님의 자녀임을 잊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과 선하심에 의해 불림 받고 또 받아들여졌다는 은총론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은총론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구원이지만, 그렇다고 마리아의 인격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마리아를 공경하는 이유를 마리아의 인간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리아는 성령의 현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리아와 함께 우리는 천주 제2위이신 성자만이 아니라 천주 제3위이신 성령의 신비도 묵상하게 된다. 마리아는 성령의 소식을 받고 지속적인 성령의 소유자가 된다. 성령이 먼저 마리아를 사랑하였고 마리아 안에 머물러 계신다. 마리아와 성령의 관계는 "성령이 너를 감싸주실 것이다"(루가 1,35) 라는 천사의 말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성령이 마리아에게 내려와 머문다는 것은 마리아가 곧 성령의 집이 된다는 말이다. 성령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직접 마리아에게 와 머문 것이다. 마리아가 바로 성전이 된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성령이 머무는 성령의 집이 되었으니, 은총 그 자체를 받은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마리아를 두고 성령으로 형성된 새 창조물, 새 하와라고 서술한 것은 이런 근거에서이다(교회헌장 56항). 하느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기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먼저 마리아를 신적인 인간(하느님의 성전)으로 꾸미셨다. 마리아가 신적인 인간으로 꾸며지고 성령의 집이 되었기에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기도 거룩하며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루가 1,35).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
은총은 마리아 안에서 삼위일체 하느님과 인간의 인격적 만남으로 실현되기 때문에, 천사는 "은총 받은 여인"이라는 말에 이어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라고 말한다. 이 말은 오늘날 미사를 드리면서 사제가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며 신자들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단순한 인사말이기도 하지만, 힘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말이기도 하다. 이 표현은 구약에서 모세나 예레미야 같은 하느님의 종이 그분으로부터 중요한 사명이나 신탁 및 예언자적 선언을 받을 때 자주 나온다. 천사는 이 말로써 마리아에게 "주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이 말은 또한 성령을 통한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낸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음으로써 당신께서 이스라엘 안에 지속적으로 현존하실 것임을 보증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이제 마리아를 하느님의 집, 성령의 궁전으로 만드심으로써 마리아를 신약의 계약의 궤가 되게 하신다. 이스라엘이 계약의 궤로부터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였듯이, 신약의 하느님 백성은 새로운 계약의 궤인 마리아를 통해서 하느님의 현존과 그분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된다.
여인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또한 복되시나이다
마리아의 문안을 받은 엘리사벳의 성령으로 가득 차서 큰소리로 "모든 여인들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루가 1,42)라고 외친다. '복되다'(에우로게인)는 말의 성서적 의미는 '감사를 표하다' '축하하다' 칭찬하다' '∼에 대해서 기쁘다' '칭송과 영광을 돌리다' '찬미하다'(루가 1,64) '축복하다'(마르 11,9; 루가 12,13) '번영케 하다'(사도 3,26) 등이다. 루가에 의하면, 이 아기는 장차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기쁨보다는 아픔을 가져다 줄 존재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가슴에 칼을 꽂을 존재이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이셨지만 높은 데 머물러 계시지 않고 가난 그 자체가 되셨고, 고통과 십자가와 하나가 된 분이시다. 예수님은 보통 사람들이 바라는 구세주와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행복과는 거리가 멀고, 축복을 얻기 위해서라면 멀리 피해 달아나야 할 분이었다. 마리아가 축복 받은 여인인 것은 이 고통의 예수님을 잉태하였기 때문일진대, 그것을 과연 축복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고통을 잉태하신 분이 모든 영인 중에 가장 축복받은 여인이 될 수 있을까? 엘리사벳은 인류가 그토록 박을 구하면서도(기원) 얻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 고통을 외면하고 피해가려고만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엘리사벳은 예수님의 이 미래를 아는지 모르는지 큰 소리로 마리아를 "여인 중에 축복받은 여인"이라고 부르고, "태중의 아들 도한 복되시나이다"라고 찬미한다. 이 찬미는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당신의 구원 계획으로 쓰신 데 대한 찬미이다. 엘리사벳은 45절에서 마리아가 복된 이유를 댄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믿음이 바로 복됨의 이유이고 원천이 것이다. 엘리사벳은 '복되다'는 말에 이어 "여인들 가운데"라는 말을 덧붙인다. 엘리사벳이 보기에 마리아는 모든 여인들 중에 가장 뛰어난 방식으로 하느님의 선물을 받은 여인이다.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우신 그런 사람이야말로 인정받겠기 때문"(2고린 10,18)이다. 선물은 하느님의 자비에서 오는 것이며, 선물받은 인간을 내면적으로 새로 정돈하고 새로 창조하여 하느님의 사람으로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축복하다'가 수동부사로 쓰였다는 것이다. 즉 마리아가 하느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는 원칙적으로 성령의 활동 덕분이라는 것이다. 마리아는 스스로 잘나서가 아니라 성령의 활동으로 말미암아 축복받은 자가 되었다. 인간이 되시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이 마리아를 은총의 여인으로 만드신 것이다. 마리아가 모든 여인 중에서 축복을 받은 것은 온전히 하느님의 덕이며, 마리아 안에 활동하고 계신 성령 덕분이다. 결국 천사의 표현인 '은총을 받은 자'나 엘리사벳의 찬미에 나오는 '축복받은 자'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예수님
본시 엘리사벳의 인사에는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교회가 나중에 "태중의 아들"에 예수를 첨가하였다. 축복받아야 할 예수님의 삶의 의미는 예수라는 이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예수라는 이름은 '야훼께서 구원하시다'라는 뜻이다. 영원한 하느님의 아들이 파멸의 세상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고자 세상 안으로 인간이 되시어 오셨다. 이 사건을 두고 성목요일 예절 때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찬양한다: "예수님 안에서 구원이 우리에게 왔고 부활과 생명이 이루어졌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구원되었고 해방되었다." 예수님과 함께 성모송의 첫째 부분은 끝난다. 성모송 첫째 부분은 마리아에게서 시작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끝난다. 하느님 아들과 성령의 신비를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는 성모송에는 인생의 근원적인 진리가 표현되어 있다. <이제민 신부, 생활성서 1999년 5월호, pp.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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