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서란 무엇인가? - 성서에 대한 상세 고찰 (자유 해석 비판)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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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성훈 | 작성일1999-08-20 | 조회수2,213 | 추천수4 | 신고 |
1. 성서란 무엇인가?
성서, 혹은 성경이란 하느님이 자기 자신과 인류에 대한 자신의 의지에 관 하여 계시한 바를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기록자가 작성한 책들의 집합체로 교회에서 정전(正典, Canon)이라 인정한 것들을 말한다. 하느님이 인류구원 을 인간들에게 약속한 계약이란 의미에서 ’Testament’라고도 하며, 이스라 엘 백성이 하느님과 맺은 ’옛 계약’을 뜻하는 구약(Old Testament)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새로워진 ’새로운 계약’인 신약(New Testament) 으로 구분된다.
이 구약과 신약을 합하여 성서(biblos)라고 부른다. 그리고 구약은 46권으로 이루어져 있고 신약은 27권으로 이루어져 있어 총 73권이 된다.
이러한 성서는 처음에 구전 전승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사실을 지적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서가 성문화된 것은 비교적 후대 의 일로서, 정확히는 다윗 왕조가 세워진 이후이기 때문이다. 성조들의 시 대와 모세의 시대 그리고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시대, 판관과 사울 의 왕정시대 등 다윗 이전의 시대는 구전 전승의 시대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당시에 기록된 문헌이나 일정한 형식을 따르는 문학 작품들이 전 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서기관들이 보존해 온 옛 문헌 들과 병행해서 구전 전승이 고대의 기억과 관습과 예절과 신앙을 대대로 전해주는 주요한 수단으로 남아 있었다.
하느님 백성은 수백년 동안 선조들이 유산으로 물려준 이 재보로 생활해 왔으며, 이 유산 자체도 성문화된 책자의 형태를 취하지 않고 대대로 풍부 히 보충되면서 내려왔다. 다윗과 특히 솔로몬 시대에 와서 서기관들의 지위 가 국가 행정 체제 안에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을 때, 이 모든 전승 자료들이 종합되어 편집되었고 동시에 역사 편찬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 의해야 할 것은 역사 편찬자들이 과거의 문화 유산을 문서로 기록하고 이 스라엘 국가의 기원과 성립 과정을 밝히려는 데에만 전념하지 않았다는 점 이다. 이스라엘의 문학은 성전(聖殿)의 그늘에서 태어났다. 초창기부터 이 문학은 하느님 백성의 신앙을 양육하는 데에 주목적을 두고 있었다. 역사 편찬 사업은 성스러운 구세사를 상기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성서의 구전 전승이란 점은 신약성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수께서는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으셨다. 다만 당신의 가르침과 인류 구원을 실현한 사건들을 제자들의 생생한 기억에다 맡겨 놓으셨다. 그렇기에 정경으로 인 정된 신약성서의 원천에는 구전 전승이 존재했음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 다.
이 구전 전승은 누구든지 제멋대로 행동하던 익명의 집단에서 생겨난 것 이 아니라, 처음부터 예수님에게서 그분의 메시지를 전파할 임무를 부여받 은 제자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사도 시대에 쓰여진 모든 저서들은 여하 간에 이 전승을 원천으로 삼고 있다. 신약성서의 문학적 전개는 구약성서 의 경우와는 달리 약 60년 간이라는 단기간 내에 성취된 것이다. 그런데도 여기에는 상당한 다양성을 엿볼 수가 있으며, 그 형성 과정도 현재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성서의 논리적 배열과는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상에서 설명한 성서의 개념을 염두하면서 대표적인 몇 작품의 특징을 알 아보자.
2. 성서 각권의 특징
그리스도이신 예수에 관한 구전(口傳) 복음은 사도들을 통해 일정한 유대계 크리스찬 공동체 또는 이방계(異邦系) 크리스찬 공동체들에게 소개되었고 여기서 ’일정한 종교적 강조점’의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팔레스티나의 유 대계 공동체’에서는 나자렛의 예수를 구약성서에서 약속된 메시아로 강조하 게 되었고, 한편 ’이방계 공동체’에서는 예수를 유일무이한 참된 주님(Kyri os)으로 선포하고, 이분에 비하면 로마 황제나 이교(異敎)의 신(神)들은 결 코 ’주’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1) 창세기 구약성서에서 제일 처음에 나오는 성서로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고 사람은 또 어떻게 있게 되었는지, 이스라엘 민족과 하느님과는 어떤 관계이며 언제 부터 그 관계가 시작되었는지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2) 출애굽기 에집트에 와 사는 성조 야곱의 자손이 하나의 공동체로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즉 야훼 하느님이 모세를 시켜 에집트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고 이끄시며, 시나이 산에서 계 약을 맺어 그들이 지켜야 할 각종 법률과 규정을 일러주신 내용이 기록되 어 있다.
(3) 판관기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면서 부족연맹을 이루고 살게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훼 대신 가나안신 바알을 숭배함으로써 벌을 받아 주 변에 사는 다른 민족들의 지배를 받게 된다. 고통스러워 잘못했다고 빌면 하느님께서 판관을 세우셔서 그 위기를 극복하고 평화롭게 살게 된다. 판 관기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4) 열왕기 솔로몬이 왕이 된 다음부터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라가 갈려져 존속 해 오다가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게 멸망하기까지 왕조의 역사가 실려있다.
(5) 이사야 구약성서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예언서로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를 훌륭하게 제시하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거룩하신 하느님을 믿 고 의지할 것을 일깨우고자 한다. 거대한 외세가 밀어닥칠 때는 물론 나라 가 망해서 유배지에서 생활할 때나 유배에서 풀려나 폐허가 된 예루살렘으 로 귀향해 올 때에도 하느님은 언제나 함께 하시므로 희망을 잃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다.
(6) 마카베오서 구약성서 맨 끝에 나오는 성서로 구약과 신약을 잇는 시기에 쓰여진 성서 로 신앙 때문에 박해받은 초대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책이다. 상 하권 모 두 이스라엘 역사에 깊이 개입하시는 하느님을 일깨우고자 한다. 이렇게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만이 이스라엘이 살 길임을 되새기게 한다.
(7) 마태오 신약성서의 첫번째에 나오는 성서로 다른 복음서에 비해 예수의 말씀과 교 회공동체를 위한 설교를 가장 풍부하게 담고 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 들의 생활 규범으로서 교회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온 책이다.
(8) 마르코 예수의 말씀과 활동에 관해 처음으로 쓰여진 복음서로 다른 복음서를 연구 하는 데에 중요한 토대가 되고 있다. 감추어진 ’메시아 비밀’이 예수의 행 적과 십자가 죽음, 부활 안에서 서서히 밝혀지는 생생한 예수 사건의 증언 록이다.
(9) 루가 공관복음서 중 세번째 복음서인 루가복음서는 마태오복음서나 마르코복음 서에 없는 내용을 꽤 많이 담고 있어 예수의 행적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전 해 준다. 특별히 ’소외 받는 이들의 복음서’라 불리우는 루가복음서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찬미와 기쁨, 희망과 평화의 분위기가 넘쳐나고 있다.
(10) 요한 세례에서 부활까지 예수의 행적과 말씀을 전해 주는 복음서이지만, 공관복 음서와는 다른 내용이 많으며, 문체도 현격하게 차이가 나고 있다. 특히 깊은 신학적 통찰을 바탕으로 예수 스스로 당신이 누구이며 어떤 분인지, 하느님과는 어떤 관계인지를 직접 밝히는 부분이 많다.
(11) 사도행전 사도행전은 교회의 기원과 성장에 관해 전해 주는 중요한 책으로, 성령의 역할이 두드러지게 강조되고 있어 ’성령의 복음서’라고도 불리운다. 오늘 날 교회가 초대교회의 모범을 따르고자 열심히 공부하는 성서이기도 하다.
(12) 사도들의 서간 이 서간들이 추상적이거나 체계적인 신학 저서는 아니다. 이 서간들은 상 황의 필요에 따라 집필된 것들로서 사도들과 그들의 직제자들의 사목 활동 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성서 각권들은 서로 상이한 내용을 전하며 가르치 고 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내용을 가지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 즉 하느님은 우리 인간의 창조주이시며,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고, 죄로 말미암아 고통과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게 구원을 허락하시어 당신 아들을 이세상에 보내셨으며 그분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상에서 못박혀 돌아가셨지만 다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여 우리 인간 에게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다는 내용이다.
3. 성서의 저자
이제 우리는 본 단락에서 성서의 저자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한다. 성서의 저자는 물론 각 성서마다 다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것 은 각 성서를 쓴 저자들이 앞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한가지 메시지에로 집 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서를 중심으로 해서 볼 때 저작과정은 대체로 3단계에 걸쳐 이루어졌 다고 보고 있다.
첫째 단계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시던 단계로서 이른바 ipsissima verba단계이다. 이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예수님과 제자들 사 이에서 직접 구전으로 전해 주고 받아들이던 단계이며 예수의 공생활 시작 순간부터 부활과 승천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둘째 단계는 예수의 승천 이후부터 성서의 마지막 편집 단계가 시작되 기 이전까지의 중간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오늘날 갖고 있는 그런 형태 의 복음서들이 기록으로 나타나기 이전 시기로서 예수님의 직제자들이 부활의 조명을 받아 구전으로 예수를 주님과 구세주로 선포하던 시기이 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이미 복음선포의 요약들을 정형화(定型化)해서 기록해 놓은 단편들은 많이 있었다.
이것들이 나중에 성서 안에 받아들여졌을 것이고 그러한 단편들의 저자는, 비록 그것들이 익명으로 기록되었다 할지라도, 본래부터 사도들의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단편 들은 예수님의 생애나 가르침들 중에 어떤 일정한 것을 골라 특정한 회중 들의 관심사에 알맞게 해석 적응 정리된 것들이었을 것이다.
세째 단계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헌장이 말하는 바와 같이 "어떤 것은 말로나 혹은 이미 글로 넘겨 전달된 많은 것들 중에서 선택하고, 어떤 것은 종합이 되도록 편집하고, 혹은 어떤 것은 교회들의 상황에 맞추어 설 명함으로써, 마침내는 복음선포의 형태를 갖추게 하여" 복음서들을 기록하 는 시기이다. 즉 복음서의 저자들은 부활절 체험의 조명과 성령의 비추심 (inspiratio, 영감)을 받아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관한 자료들을 선택하고 종합하며 해석(설명)하였다.
이러한 작업을 진행함에 있어 그들은 자신들이 미리 세워 놓은 목표와 또 한 예상되는 독자들의 사목적 상황에 적합하도록, 관련된 일화들을 이 문맥 에서 저 문맥으로 옮겨 적응시키기도 하면서 현실성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복음서들 안에서 우리가 읽게 되는 것은 그 당시에 예수께서 친히 발음하시던 그대로의 말씀들이 아니라 대부분 성서저자들이 신학적으로 해 석해 놓은 예수님의 말씀들이다.
그러면 이러한 경우에 성서 저자들이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서를 기록함에 있어 성령의 영감이란 것은 계시헌장의 가 르침에 따르면 "성서를 저작함에 있어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을 선택하셨고 그들의 능력과 역량을 그대로 발휘하면서 그들을 이용하심으로써 저자로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모두 또한 원하시는 그것만을 기록으로 넘겨 전 달하도록 하신"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영감이란 것은 그 성서저작자를 내적으로 자극하여 인격적으로 감동시킬 뿐만 아니라 또한 그가 깨달은 그것을 기록하는 행위에 영향을 미치며, 내용 면에 있어서는 엄밀한 의미의 종교적 진리들뿐만 아니라 성 서 저자들이 참으로 주장하고자 그 모든 것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성서 저자는 자기가 영감받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의식하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감은 이점에 있어 예언과는 구별된다. 단적으로 말해서 "영감이란 것은 그 사람 안에 하나의 새로운 의식(깨달음) 상태를 만들어 주며 지식에 대한 새로운 전망과 연상작용을 일으켜 주고 전체 안에서 개 별적인 것의 위치를 알아보게 하며 그의 이러한 발견들을 기록된 말씀을 수단으로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할 마음이 생기도록 자극하는" 현상 을 말한다.
이를 유비들 들어 설명해 보자. 대통령이 공문이나 담화문을 발표할 때 그 것을 직접 대통령이 쓰는가? 그렇지 않다. 의례 장관이나 비서를 시켜 글 을 작성하게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대통령의 공문이며 대통령의 담화문이 다. 마찬가지로 성서의 사상과 내용은 하느님의 것이다. 따라서 성서의 원 저자는 하느님이시고 그것을 쓴 사람은 하느님의 서기, 혹은 비서의 역할 을 한 것이다. 토마스 성인은 그것을 쓴 기자를 도끼와 붓으로 비유했다.
즉, 인간의 생각이 붓을 통해서 표현되듯이 하느님의 사상도 인간을 통해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글을 쓸 때 빨간 잉크로 쓰면 빨갛게, 검은 잉크로 쓰면 검은 글자가 되듯이, 성서저자의 성격과 환경, 그 당시 풍속, 그의 지식 상태, 문장력 등이 성서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서를 올바로 알아들으려면 성서 저자의 성격과 지식 상태, 생활환경 등 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제 성서의 영감에 관련된 몇 가지를 질문해 보자. 먼저, 복음서들의 저 작과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직접 간접으로 참여하였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과연 그들 중에 누가 영감을 받은 것인가? 성서의 저작과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이것은 의심스러운 일이며 확실치 않은 견해이다. 또 어떤 이들 은 성서를 기록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 그리스도 공동체의 구성원 전체가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데 이것도 역시 근거없는 주장이다. 그러나 적어 도 성서의 마지막 편집자가 성령의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또 한 가지를 질문해 보자. 성서의 저작에는 하느님 성령의 저작권(auth orship)과 인간 성서저작자의 저작권이 서로 경합을 벌이는 것처럼 보이는 데 이 경우에 성서는 한마디로 말해서 과연 누구의 저작이라고 해야할 것인 가?
초세기에 구약성서의 기원(起源)을 악마에게 돌리는 이단설이 나왔기 때문 에, 이 이단설을 대항하기 위하여 4세기 이후부터 교회 안에는 ’성서의 저 자는 성령이시며 인간 편 저자는 성령의 도구(instrumentum)일 뿐이다’는 표현법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러한 표현방식이 스콜라신학시대에 들어와서 는 좀더 세련되어, 성령은 성서 저작의 주된 원인(causa principalis)이시고 인간 저자는 부차적 혹은 도구적원인(causa secundaria vel instrumentalis)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방식의 경우에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성서의 인간 편 저자의 참된 저작권이 축소되지 않고 온전히 살아 남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 있어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서를 저작함에 있어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을 선택하셨고 그들의 능력과 역량을 그대로 발휘하는 채 그들이 참된 저자로서(ut veri auctores)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모두 또한 원하시는 그것만을 기록으로 넘겨 전달하도록 하셨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서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저작이고 또한 전적으로 인간 의 저작이다. 그러나 이 둘은 각기 고유한 행동방식과 역동성으로 활동하 여 참된 저자로서 성서를 저작하였다. 왜냐하면 이 둘은 그 존재 면에 있 어서나 활동 면에 있어 결코 경합하거나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 침투 하며 보완하고 유지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새로 태어난 어린이가 전적으로 아버지의 자식이고 전적으로 어머니의 자식이지만 이 둘은 각기 고유한 행동방식과 역동성으로 활동하여 참된 부모가 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성서의 이러한 신적 및 인적 저작권 문제를 고려할 때, 단적으로 말해서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좋은가? 아니면 인간의 말씀이 라고 해도 좋은가? 성서의 책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으며 또한 그 것들은 영감받은 것이므로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성서는 또한 하느님의 말씀 이외의 것을 또한 포함하고 있으므로, 성서와 하느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동일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 지만 역시 그것은 모두가 영감받아 기록된 것이므로 "사람들의 관습대로 (more hominum) 표현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 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이 표현은 의인화적 표현이며 이것은 하느 님께서 주도권을 가지시고 그 말씀을 시작하셨고 하느님 친히 그 말씀의 내용이 되시고 하느님 친히 그 말씀을 인간과 더불어 완성하시어 당신 자 신의 말씀이라고 보증해 주신 그것을 말한다.
다음의 몇 가지 예는 성서가 몇몇 제자들이 꾸며낸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것이다. 신약성서의 예를 보더라도, 성서는 각각 그것을 쓴 저자가 있다. 만일 그 내용에 조금이라도, 거짓말이 있었다면 그리스도교를 말살하려던 그 당시 유태인들이 이것을 가만 두었을 리 없고,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들 이 아무리 교묘한 수단을 썼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의 교리와 행적을 직접 듣고 본 허다한 군중들이 아직도 살아 있던 그 당시, 그렇게 쉽게 사람들을 속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성서의 내용을 보더라도, 모든 사건이 눈앞에 보는 듯이 기록되어 있어, 이것을 읽는 사람에게 이 기사는 분명히 직접 목격한 사람이 쓴 것임 을 확신케 한다. 그리고 성서에 나타나는 역사적 인물, 즉 헤로데, 빌라도, 안나, 가이파의 성격이나 환경은 성서 아닌 다른 책과도 모두 일치하고 있 다. 또한 성서를 쓴 사람들이 같은 시대 사람들이 아니었고, 같은 지방의 사람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기록한 4복음서의 저자인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을 볼 때, 마태오와 요한만이 그리스도의 직접 제자였다. 이들이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지방에서 썼지만, 그 내용이 똑같다는 것이다. 마 태오는 기원 42년경에 썼고, 요한은 기원 90년경에 썼다. 그런데도 그 내 용이 같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애,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그대로 기록되었 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성령의 감도하심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 는 일이다.
여기서 성서의 저작과정 안에 인간이 "참된 저자로서" 참여했다는 그 사실 로 말미암아 당연히 성서 안에는 오류가 담겨져 있을 수 있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성서의 진실됨, 즉 무오성 문제에 관련하여 우리가 중요 하게 여겨야 할 것은 "영감받은 저자들인 성서저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모 두가 성령께서 주장하신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또한 "성서저자들의 의도 를 추출해 내기 위해서는 다른 여러 가지 것들 중에 문학적 유형들도 또한 살펴보아야"한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성서의 진실됨은 예수님의 말씀을 말마디 그대로를 전달해 주는 데 있지 않고 계시된 그 현실내용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데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태초에는 "초가삼간을 지어 주마"라고 했던 것을 나중 에 시대와 장소가 달라졌기 때문에 그 내용을 옳게 전달해 주기 위해서 말 마디들을 바꾸어 "아파트 서른 세 평을 사 주마"라고 했다면, 이 경우에 말 마디 상으로는 변화가 있었다 할지라도 "삶의 터전을 제공해 주겠다"는 그 내용을 전달해 주는 데는 틀림이 없는 것과 같다.
사실상 어떤 경우에는 그 내용(현실)을 올바로 전해 주기 위해서는 본래의 말마디(글자)들을 일부러 제쳐놓고 그 듣는 자들의 입장에 맞추어 달리 표현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언어적 현실이다. 그러므로 성서의 무오성은 글자상 의 무오성이 아니라 현실 내용상의 무오성을 말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4. 성서의 정경성(正經性) 및 해석
현재 개신교는 성서가 66권이고 가톨릭은 73권인데 그렇다면 성서 중에서 가짜가 있다는 말인가? 옛날에는 가짜 성서도 있었다. 그리고 신약성서를 보더라도 예수님이 직접 성서를 서술한 사실은 없고 처음부터 성서 목록이 만들어져서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래서 성서 목록을 만드는 데 에 있어서 가톨릭 교회의 역할은 대단했다. 그렇다면 우선 성경 목록을 제 정하기까지의 역사적 경위를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자.
구약에서 내려오는 책들, 그리고 신약 시대에 쓰여진 책들 중에서 어느 것 이 진정 하느님의 계시가 담겨 있는 성서인지를 판명하여 성서 목록을 만 드는 데에 있어서는 크게 두 사건이 있었다. 첫째는 누구도 의심 없이 처 음부터 성서라고 인정이 되어온 성전 중심에서 나타나는 책들을 모은 것이 소위 제 1경전이라고 하고 제 1경전 목록이 생긴 다음 얼마 후에 다시 지 방에 따라 의심스러웠던 책들이 시일이 지남에 따라 성서로 밝혀진 성서를 제 2경전이라 해서 두 차례에 걸쳐 73권의 성서 목록이 완성된다.
이제 성서의 해석에 대한 문제를 간단히 다루어 보고자 한다. 우선 성서의 해석을 위해서는 권위가 있는 교회의 가르침이 있어야 함을 강조한다. 성 서 자유 해석을 주장하고 성서만이 구원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한다면 개신 교에서 어찌하여 주일마다 목사가 설교를 하는가? 어찌하여 주일학교에서 교리를 가르치는가? 어찌하여 신도들은 목사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가? 성서 자유 해석이란 이름 하에 얼마나 많은 교회 분열을 가지고 왔는가? 그 종파가 모두 하느님의 진리를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서의 어떤 예언도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베드로 전서 1, 20)
성서 자유 해석은 할 수 없다는 것이 곧 성서의 말씀이다. 그러니 처음으 로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성서만을 내민다면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 소화 를 시키겠는가!
그렇다면 성서의 내용을 우리는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교회의 권위 있는 교도권의 해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교회의 교도 직에 부여된 "진리에 대한 확실한 은사"(무류성)는 성서의 무오성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성서가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을 아무리 옳게 표현해 놓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죽은 글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살아 있는 말로 현실화시켜 놓아야 하는데, 그것을 틀림없이 올 바르게 현실화시켜 놓는다는 보장이 없다면, 성서의 무오성은 무의미한 것 이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주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진리의 성령을 약속 하셨고, 또한 사실로 그들에게 보내 주셨던 것이며, 주님께서 교회의 복음 선포 활동 중에 언제나 함께 계시겠다고 하셨던 것이다.
5. 결론
성서의 기록은 우리가 위에서 알아본 바와 같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성서저자들이 그들의 환경과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이룩된 것이며, 이렇 게 쓰여진 성서의 올바른 해석은 교회의 교도권에서 성령의 은사를 받아 할 수 있는 것이다.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안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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