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35] 교황 리베리오는 과연 무류성을 지녔는가?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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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성훈 | 작성일1999-08-29 | 조회수452 | 추천수1 | 신고 |
[35] 교황 리베리오는 과연 무류성을 지녔는가?
♤문: 교황 리베리오는 이단적인 ’아리우스파’에 가담했고, 또 니체아 신경의 위대한 옹호자인 아타나시오와 관계를 끊기도 했는데 어떻게 그가 무류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답: 리베리오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사실밖에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즉 그는 성 아타나시오를 단죄할 것을 거부함으로써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의해 추방당했고, 그가 죽은 후 그의 정통성이 신랄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리베리오가 유배되어 있을 때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펠릭스를 교황의 자리에 앉혔으며, 리베리오가(이른바 그와 아타나시오와의 절연 후에)돌아왔을 때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펠릭스가 리베리오와 함께 교회 행정을 맡아 보도록 제안했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한 하느님, 한 그리스도, 한 주교’를 외치면서 펠릭스를 시내에서 끌어냈으며 원로원에서는 그를 영구적인 추방형으로 단죄하였다. 대립 교황 펠릭스는 때로는 그보다 전 시기에 순교한 로마인 펠릭스와 혼동되어 성인으로 잘못 전해지기도 했다.
그후 몇몇 저술가들에 의해 교의적 논쟁이 벌어졌는데 그중 성 히레로니모는 리베리오 교황이 ’아리우스의 문헌’에 서명을 한 후에야 유배에서 돌아오도록 허용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그가 이단적인 ’아리우스의 신경’에 서명을 한 것이 아니라 시르미움의 제3차 교회회의 타협 헌문에 서명을 한 것이다. 이 문헌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사용된 동질이란 말을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있으나, 정통적 신앙을 직접적으로 공격한 것은 아니었다. 리베리오는 이 용어가 사베리오와 포티누스의 이단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해석되고 있다고 전해 들었다. 그의 행동이 오해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리베리오는 성부와 성자의 동질성을 옹호하는 내용의 긍정적인 선언을 했다.
교황 리베리오는 이단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배생활에서 돌아와 그리스도의 양떼인 신자들을 다스리고 싶은 강한 욕구에서 2년전 밀라노에서 보여준, 아타니시오에 대한 그의 굳건하고 충실한 지지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스스로 약한 면을 드러내고 말았다. 성 아타나시오는 리베리오의 서명이 죽음의 위협 속에서 행해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그의 친구를 옹호하였다.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것은 4세기의 교부들과 교황들의 증언으로도 증명이 된다. 성 암브로시오, 성 바실리오, 시리치오 교황 등은 리베리오 교황의 성성과 교리의 정통성을 크게 칭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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