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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의 구원관 (2) - 프로테스탄티즘의 귀착점은 자유 사상 카테고리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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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오성훈 쪽지 캡슐 작성일2000-01-11 조회수1,352 추천수5 신고

 

 

 

 하느님 중심주의와 자아 중심주의

 

 도대체 종교 생활의 진수(眞髓)는 하느님의 무한한 권위(權威) 앞에

겸손하게 무릎 꿇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특징은 사람의 아들로서

지상에 오신 살아 있는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주권

을 인정하고 예수의 영이신 성령에 의하여 거룩해지고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교회의 활동으로서 하느님의 외

아들에게 있어 신성이 인성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교회의

본체인 그리스도도 또한 그 가시적 제도의 형태로서 우리에게 임하

심은 전술한 바와 같다고 하면 우리는 당연히 감사하며 이에 따라야

하지 않을까.

 

 육체로 그리스도를 인정하면서 그 신비적 개체인 가시성을 부정함

은 결국 옛 도케티즘(Docetism: 물질은 그 자체가 악이라는 주의)  -

그리스도의 육적 존재를 부정한 이단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주님

께서 제정하셨다는 것을 무시하고 그들의 눈앞에 엄연한 가톨릭 교회

의 존재를 승인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바에 따라 하

느님의 모습을 만들어 내어 그것을 예배코자 하는 우상 숭배에 지나

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영적인 예배자라고 하여 주관으로 만들어

낸 신의 모습 앞에 무릎 꿇을 때 실은 자아의 모습우상 숭배하는

데 지나지 않음을 깨닫지 못한다.

 

 한 프로테스탄트 저술가가 "인간은 하느님을 자기들의 모습과 닮게

만들었다. 이것이 모든 기성종교의 진수이다."(P. Gohre, Der Unbe-

kannte Gott, Leibzig, 1919, S.148)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실로 지당한 말이다. 프로테스탄트인 그 저자는 교도권을 통하

여 계시를 받는 것을 몰랐음이 틀림없다. 그는 주위 사람들이 자유라

고 하는 애매한 미명 아래 자기의  이른바 체험에 따라 제각기 마음

대로 하느님을 설명하는 데 기가 막혀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 같다.

 

이미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슐라이어마허가 "가톨리시즘은 개인과 그

리스도의 관계를 교회와의 관계로 의존시키는데 반하여 프로테스탄

티즘은 개인과 교회의 관계를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연유시키고 있다"

라고 말한 것은 옳은 것이다.

 

 가톨릭 신자와 개신교 신자는 많은 점에서 공동 신조를 가질 수 있

으나 불행하게도 양자의 신앙 동기에서는 전연 그 모양을 달리 하고

있다.

 

 전자가 자신도 타인도 틀림없는 하느님의 위엄 앞에 엎드려 그 신조

를 구체적 교도권을 통하여 받아들이는가 하면 (그 교도권이 그리스도

에 의하여 제정되고 성령으로 지도받는 것을 승인하므로) 후자의 신앙

은 그 형식이나 내용은 여하튼 간에 결국은 자신을 직접 비판하는 결

과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신조는 자신이 발견한 것이고 가톨릭 신자

처럼 그리스도가 명하는 바대로 주어진 그대로 절대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 그렇게 자신만의 신조를 스스로 발견해야만

프로테스탄트인 것이다.

 

 그 때 중요한 것은 신조 그 자체가 아니라 그가 어떻게 하여 그것

에 도달하였는가 하는 과정, 그리고 그가 어떻게 이것을 믿는가 하는

태도이다.

 

 그는 하느님의 진리가 이러이러하다고 권위를 가지고 자신에게 제

시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는 레싱처럼 말할 것이다.

 

 

 "하느님이 만일 오른손에 모든 진리를 들고 그 왼손에는 단 하나의

끊임없는 진리욕, 더욱이 영원히 헤맬 것이라는 조건을 가지고 나에

게 선택하라고 하신다면 나는 하느님께 무릎꿇고 왼손을 잡고 말할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시여, 이것을 주소서. 진리 그 자체는 실로 당

신만의 것이니까요."

 

 그리스도가 구원의 길을 가르치기 위하여 지상에 오시게 된 것을 그

들은 어느 사이에 잊고 있다. 그러한 태도는 그 자신에게 프로테스탄

티즘의 사이비 겸손 - 숨어 있는 교만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

 

 물론 나는 여기서 프로테스탄트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것을 말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이론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다행

하게도 프로테스탄티즘에서 개종한 사람에 의하여 전해지는 것같은 좋

지 못한 사실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프로테스탄트는 가

톨릭에 대한 편견 또는 의식치 못한 무지와 놀라운 논리적 사색의 결핍

(물론 철저하게 반성하는 자가 영구히 만족하는 프로테스탄트인 것은

곤란한 일일 것이다.)을 빼놓으면 모두가 인간적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

들이다.

 

 내가 보는 바로는 그들 대부분은 이상과 같은 문구를 인용하거나 혹 그

와 비슷한 태도를 취할 때 결코 그 의의에 대한 깊은 자각에 의하여 하

는 것이 아니라 흔히 철학적 편견에 지배를 받아 진리 포착에 있어서의

깊은 문제를 생각하지 아니하거나 반성 없이도 번민하는 것이 어쩐지 용

하게 느껴서든 또는 사실 진리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어 그렇게 말할 수

밖에 다른 길이 없거나, 심지어는 그저 교단에서 누군가로부터 그렇게

말한 것을 들었다든가 어떤 책에서 우연히 그런 것을 읽은데 지나지 않

는다.

 

 그러나 가령 프로테스탄트 역사가 비네(Vinet)가 아주 솔직하게 고

백한 것처럼 "프로테스탄티즘은 나에게 출발점에 지나지 않는다. 나

의 종교는 그 건너편에 있다. 나는 프로테스탄트로서 가톨릭적인 설

을 받드는 것도 가능하며 그리고 현재 그러한 두세 가지 설을 받들

고 있지 않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절대적으로 배

척하는 것은 곧 권위이다."(Literature au XVII. siecle, t. III,

p.392)라는 명확한 주장을 하는 자도 얼만가는 있을 것이다. 이 고백

은 실로 프로테스탄트의 진수에 들어맞고 있다.

     

 그 외에 이른바 개신교의 여러 양상은 모두가 여기에 근원을 두고

출발하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비로소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교의상 서로 다르거나, 신교의 개인주의나 주관에 기인한 끝없는 분

열의 깊은 골짜기, 특히 프로테스탄티즘의 발전 단계 최후에 나타나

는 유물주의와 무신앙으로의 추이가, 한 원칙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

관된 당연한 발전으로 이해될 것이다.

 

 

 

 자아 중심주의는 루터에서 시작

 

  사람에 따라서는 그러한 경향이 이른바 종교 개혁의 개조(開祖)들

에 의하여 시인되는 것이 아닌가 반문할지도 모른다. 시험 삼아 루터

주장의 변천 등을 점검해 보면 이 점에 관하여 아주 암시에 가득찬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루터가 1513년 대사(大赦)문제

에 관하여 처음 항의하였을 때는 그 선포가 마침 아우구스티누스 수

도회의 경쟁자인 도미니칸에 맡긴 것이 원인이 되어 대사의 남용에

반대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그는 얼마 되자 않아 대사 자체를 반대

하여 그 결과 선한 일의 뜻마저도 부정하게 되었다. 그 때는 그래도

아직 로마 교회의 교도권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교황에게 제소하겠

다고 하였으나 1523년 거절되자 교황에게 공의회에 제소한다고 주장

하고 나아가서는 공의회의 권위마저 거부하여 드디어 계시의 원천으

로서는 단지 성령의 개인적 영감에 의한 성서의 해석만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신자가 사제가 되어 성직 제도는 물론, 교회의 가시

성, 성사의 의의 등이 뒤를 이어 부정되었다. 후년에 칼뱅이 제네바

에서 조직적으로 수행한 일의 앞잡이가 되어 재침례 교도 등에 대해

서는 다시 교회의 가시성을 주장하였다는 것은 흥미 있는 모순 덩어

리이다. 그것은 아마도 현대 프로테스탄트 교회들과 무교회주의주의

자들과의 반목의 전초전이었을지 모른다. 어쨋든 이들 루터의 변설

(變說)은 언제나 교도권에 반항하여 자기의 종교적 체험에 따라 이

루어졌다. 혹은 사실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루터 자신은 그렇게 주장

했다는 역사는 전술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진수라고도 할 두 가지 점,

교단의 배척과 신앙의 기준으로서의 종교적  체험이 처음부터 종교

개혁의 기조가 된 것을 증명하고 있다.

 

 

 

 

순체험주의(純體驗主義)로의 추이와 그 모순

 

 

 윌리엄 제임스가 그의 저서 ’종교적 체험’ 속에 "내면 생활의 방향

으로 발전한 결과 그리스도교는 더욱 구원의 내적 위기에 중점을 두

게 되었다. 로마부터 루터에, 그리하여 칼뱅으로, 또 칼뱅주의로부터

웨슬리에로, 그리고 다시 메서디스트주의에서 드디어 순수한 이른바

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Mind Cure 식이건 아니건 관계없이

이들 서로 다르게 이어지는 그리스도교의  모든 형식에서… 우리는

직접적인 영적 구제의 관념으로 향하여 부단한 진보를 인정할 수 있

다. 그리하여 이 직접적인 영적 구제의 체험은 교의적 배경(Appareil

doctrinal)이나 위로하는 제식(祭式) 등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형평을

잃은 개인이 경험한 것이다."(프랑스어 번역, p.179) 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은 루터 이후 프로테스탄트의 변천을 적절히 요약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최후의 "교의적 배경과는 관계없는 것으로"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종교적 체험은 그것이 무엇이든 반드시 교의적 배경 없이는 존

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루터 이후 그 흐름을 이은 것은 그가 칼뱅교

도(장로교도)이건, 메서디스트(감리교도)나 얀센파에 속하건 여기에

말하는 직접적 구제는 반드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은총이나 하느님

앞에서의 의리, 또는 예정설(豫定設)의 관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것은 체험적 프로테스탄티즘에 내재한 모순에 기인하는 것이다.

 

 제 아무리 신앙이 진리의 승인이 아니라 하느님에로의 인격적 신뢰

라든가 사랑의 관계(지적 요소를 제외한 인격적 관계도 있을 수 있다

고 본다.)라고 정의해도 적어도 그 체험하는 하느님이란 무엇인가, 그

리스도는 어떤 분인가, 하느님 앞에 우리는 무엇인가 등 교의적 배경

없이 위에서 말한 관계가 성립될 수는 없다. 그래서 체험주의의 무교

회론자가 성서에서 제시한  대로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여

동료인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비난하거나 가톨릭주의의 공격에 "성령

이냐 교도권이냐" 하는 어이없는 논문(?)을 쓰게 된다.

 

 가령 그가 무신론자라 해도, 유리론자(唯理論者) 또는 유물론자(唯

物論者)라 해도 위에서 말한 인격적 신뢰나 사랑의 관계가 가능하다

면 구원은 그리스도에 의해야 한다는 이유는 소멸하게 된다. 또한 신

앙이 전연 진리의 승인과 관계가 없는 일이라면 성서에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를 인정하건 않건 또는 교도권을 주장하건 말건 그러한 교

의적 문제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열심히 파사현정(破邪顯

正)의 글을 쓰는 것은 성서에 제시한 대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교

도권을 승인해서는 하느님에로의 인격적 신뢰도 사랑의 관계도 불가

능하다고 믿으므로 -결국 신앙과 교의는 뗄레야 뗄수가 없으므로-

그러한 불신 완고한 도배(徒輩)의 무식을 깨닫게 하려고 크게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가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히 사도신경의 승인이 신앙이

라면 크리스찬보다 악마가 더 잘 알고 믿고 있다고 말하는 프로테스

탄트들의 논법은 첫째로 가톨릭 교회의 주장으로 거론되는 전제가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둘째로 "신앙으로만 의롭다."고 주장하는 개신

교에 대하여 "특히 신앙만이"라고 루터가 고의인지 잘못해서인지 성

서를 오역(誤譯)한 것이 실로 하늘이 도운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에

대하여는 완전히 유효하나 가톨릭 교회에 대한 비난으로서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루터에 의하여 지푸라기 서간이라고 무시되었으나 가톨릭 교회에

의하여 로마서와 마찬가지로 신약의 정전으로 쓰이고 있는 야고보서

에서는 일찍이 여기에 대하여 답하고 있다.

 

 즉 "당신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고 있습니까? 그것은 좋은 일입니

다. 그러나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

이여,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싶습니까?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친

행동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 아닙

니까? 당신도 알다시피  그의 믿음은 행동과 일치했고 그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의 믿음은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라함

은 하느님을 믿었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해 주셨다’라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졌으며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친구라고 불리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람이

믿음만으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행

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알아두십시오. 이와같이  창녀 라합도 유

다인들이 보낸 사람들을 친절히 맞아들였다가  다른 길로 떠나 보낸

행동으로 말미암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까?  영혼

이 없는 몸이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행동이 없는 믿음도 죽은 믿음

입니다." (야고 2, 19-26).                

 

 

 모든 그와 같은 오해나 모순은 신앙과 신뢰, 그리고 신뢰와 신뢰의

감정 또는 의식을 혼동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특히 현대인에게 있

어 이와 같은 생각의 배경에는 적어도 무의식적으로 근대 철학의 주

관주의(主觀主義)가 잠재해 있어 그것으로 화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경향의 실례로 가톨릭 신앙은 "신조의 Furwahrhalten(진리로

보는 것)이다."라는 정의로 설명하고 있는 프로테스탄트들의 서적에

서도 볼 수가 있다.

 

 주관적 인식론(오캄의 유명론(唯名論)에 근거한)에 입각한 그들은

여기서 말하는 wahr(진실)의 뜻을 스스로  단순한 관념적 진실-주관

이 진실로 보는 뜻으로 풀이하고 객관적 실재 파악의 뜻으로는 풀이

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하느님의 존재를 Furwahrhalten(진리로 보는

것)한다는 것은 단지 "하느님이 계시다고 생각하고 또는 상상하는 것

뿐인 일"로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오해는 깨닫지 못하고 "교리만으로 어째서 진리를 전하

지 못하는가. 그것은 살아 있는 진리를 죽어 있는 형태로 독점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앙 신조 중에 묶여 들어가 있을 때 어째서 종교

에 생명력이 없어지는가. 그것은 살아 있는 종교 진리를 죽어 있는

고정된 신조 조항 속에 가두어 두고 신앙의 자유로운 성장을 저지하

기 때문이다."(三谷降正 지음, ’신앙의 논리107’, pp.130-131 참조)

라는 결론을 내린다.

 

 다른 신앙에 관하여는 모른다고 치고 그러한 견해는 현실주의에 입

각한 가톨릭 사상을 표현하기에는 가장 부적당하고 진상을 아주 심하

게 왜곡시키는 것이라 하겠다. 이른바 복음주의라 불리우는 개신교

근본주의(Fundamentalism)의 이론이라는 것이 그 뒤의 가면을 벗기면

결국 주관주의의 조잡한 철학에 지나지 않음을 세상 사람들은 거의 깨

닫지 못한다. 뒤에 진정한 가톨릭 신앙관 - 그것은 교회관과도 뗄 수

없는 것이다.- 을 말하기 전에 종교 개혁에 기원하는 자기 중심주의의

신앙관이 현대 사조에서 어떤 사상으로 끝을 맺었는가를 기술하는 것

은 현대의 개신교 근본주의자들 - 자칭 복음주의자라 말하는 - 의 좋

은 참고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칼뱅의 반동적 객관주의

 

 현대 프로테스탄트 일부에서도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종교 혁

명은 당초부터 주관주의의 혼란에 지쳐서 그것을 어느 범위 내에서

가두어 두려고 하는 노력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 루터의 폭발적

프로테스탄티즘을 라틴 민족적으로 질서 지우려 한 것이 칼뱅이었다.

 

그러나 스스로 독재적 권위 하에서 제네바에 신정(神政)을 펴고 시민

에게 절대 복종을 강요하고 이른바 개별적 견해(個別的見解, Opinions

Particulieres)에 대해서는 화형(火刑)에 제소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

던 프랑스 개혁가는 게르만 민족의 개인주의를 철저히 방어할 수 있었

을까.

 

 자기의 성서 해석을 가지고 가톨릭 전통으로 바꾸어 개인의 권위를

교황과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과 바꾼 것은 우연히 개인주의의 무서

운 적용의 일면을 나타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실례는 현대의

프로테스탄트 중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칼뱅의 상

상할 수 없는 굳은 의지가 일시적 강제성을 성취했다 해도 로마 교

도권에 대하여 반항한 것 같은 그 힘이 개인적 권위에 대하여 반항

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이치였다. 하물며 그의 교설(敎說) 자

체가 적지 않은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데는 어찌하랴.

 

 즉 한편으로 칼뱅에 의한 이 새로운 교파는 내심의 성령의 증명을

가르침과 동시에 개별적 견해를 허용하지 않는 가시적 교회 제도가

되었다. 은총은 잃을 수 없는 것이고 구원은 자기 구제 예정의 확신

- 이것은 물론 주관적인 것이다 - 과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결합되

어 있었다.

 

 여기에도 하느님의 절대 규범의 의지가 인간의 자유를 사실 무가치

한 것,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다만 칼뱅은 좋은 일을 신자가

자기의 구원 예정을 믿는 하나의 근거가 되는 뜻으로 이것을 긍정하였

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러한 견해는 - 일종의 Petitio Principii(논점

회피, 論點回避)인 것이다.  

 

그렇게 루터도 칼뱅도 인간의 도덕적 자유를 부정하였는데도 불구하

고 그 뒤를 따른다고 자칭하는 현대의 프로테스탄트가 흔히 도덕 운

운하고, 그런 데다가 도덕적 자유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왜냐하면 도

덕적 가치의 기준은 객관적 권위에 바탕하는데 프로테스탄트들은 모

든 객관적 권위를 배척하기 때문에) 이른바 "신앙의 자유" - 그것은

결국 자기 편의에 맞게 생각한다는 종교상의 Freigeisterei(무신론사

상, 無神論思想)에 지나지 않는다 - 를 도덕적 자유라도 되는 것처럼

주장한다. 특히 이 점을 가지고 가톨릭주의를 공격하는 도구로 삼으

려는 것은 그들의 사상적 혼란이 얼마나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를 우리에게 알려 준다.    

 

 

 

개신교의 귀착점은 자유 사상

 

 프로테스탄티즘은 이어지는 변천을 본질적인 것으로 설명하고자 희

망한다. 그리하여 그 설명에는 두 가지 단계가 있다.

 

제1 단계는 윤리와 실제 두 가지 방면에서 그들의 주장이 결국 여러

가지 폐해를 일으킨다는 지적을 받는데 대하여 우선 그런 결과가 절

대로 생기지 않는다고 항변한다.

 

제2 단계로는 사실 처음의 예견이 적중하자 그 진상을 직시하는 것을

피하여 반대자가 폐해라고 말하는 것을 도리어 희망적인 것이라고 말

한다.

 

 예컨대 성서에서 말하는 대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크리스찬을 공격

하는 프로테스탄트에게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흐트러짐을 이론과 실제

현실 양쪽 모두를 제시하면, 신앙은 성령에 의한 것이기에 만일 통일

이 필요하다면 성령 자신이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 성령은 서낭당을 믿

으라고는 하지 않으실 것이므로 신앙의 통일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우연히 어느 크리스찬이 서낭당을 믿었다고 해도 그것은 좋지 않은가.

각자 그 나름대로의 신앙이야말로 진실된 신앙이다라고 말하는 부류이

다. (’성서의 연구’, 334호, p.14 참조).

 

 

 과거에는 가톨릭도 프로테스탄트도 그리스도교 진리는 변하지 않는

다는 주장에는 일치했었다. 이렇게 변화한 것은 가톨릭 측으로서, 개

신교는 사실 초대 교회를 부흥시킨 구교에 지나지 않는다고 프로테

스탄트들은 주장하곤 하였다.

 

 

 그러나 객관적인 역사적 연구가 그들의 억지 주장과 궤변을 곤란하게

만들었을 때(하긴 일본의 무교회주의 창시자 우치무라 칸조의 초대 교

회론에 따르면 베드로도 요한도 바오로도 모두 현대의 무교회주의자

같은 평신도였다고 그들은 주장하지만.) 그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변화

는 프로테스탄티즘의 본질이라고 말을 바꾸어 주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변설(變說)에 대하여는 우리는 조금도 이의가 없다. 그것은

단지 거역하기 어려운 사실의 승인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하 독자

들이 참고할 철저한 외국의 프로테스탄트의 언설(言說) 두세 가지를 소

개하여 주관적 프로테스탄티즘의 맹신자들이나 무교회주의자가 만일 처

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의 주관을 일관시키려고 하면 당연히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그들 사상의 마지막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옛날 종교의 가치 판단 기준은 그 제도나 교리의 불변성에 있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변화를 알리는 것은 훌륭한 사람들에게 철회할 수

없는 선언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이에 반하여 생명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진화가 있고, 운동이 있고, 유기적 변화가 있다(J. Reville,

Le Protestantisme liberal., p.23).

 

 

 이것으로는 아직 선명치 못하다면 프랑스 교육계에서 숨길 수 없는

저명인사인 프로테스탄트 뷔송(Buisson)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자.

 

 

 

 그 일반적 정신이나 원동력적인 방법에 대해서만 말하면 두 가지 프

로테스탄티즘이 가능하다. 그리고 역사는 실제 끊임없이 서로 다투어

평행적인 발전을 한 두 가지 형태를 제시한다. 하나는 종교 개혁으로

서 앞으로 계속되어야 할 운동의 기점으로 하고 다른 것은 거치지 않

았으나 그것을 넘어서는 안 될 과정의 종점이 된다. 진보적 프로테스

탄티즘은 움직일 수 없게 된, 즉 퇴보하는 프로테스탄티즘에 끊임없는

불안의 근원이 되고 있다.

 

 

 전자는 무제한으로 "주리적(主理的) 자유주의를 실행하는"  것이고,

후자는 "뼈 빠진 잠재적 가톨릭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테스탄트는 이 두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의 선택은 이미 끝났다…. 나에게는 자각하고 철저한 프로테스탄티

즘은 자유 사상(libre pensee)의 방법 그 자체의 최초의 응용에 지나

지 않는다. 그리하여 철학 체계와 같이 종교관이 분류된 것은 그 방

법에 따라서이다. 세상 사람은 때로는 프로테스탄티즘은 자유 사상에

도달한다고 말하나 그것은 이미 자유 사상 그 자체인 것이다. 적어

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 암묵 상태이다. 자기 행위에 이유를

붙여 스스로 심적 상태에 대하여 반성하는 프로테스탄트는 모든 외부

적 권위, 모든 교리적 또는 역사적 경험을 거부하고, 또한 쉽게, 그

대소를 막론하고 모든 초자연적인 것만이  아니라 이성이 통하는 이

밖의 모든 절대적인 것 혹은 절대자의 이른바 계시를 배척하는 사람

이다. 그렇다면 원컨대 어떤 점에서 자유 사상가는 프로테스탄트보다

도 더 해방된 인간인가를 제시하라(Libre Pensee  Protestantisme

liberal, par F. Buisson et Ch. Wagner, Paris, 1903, p.15).

 

 

 

 과연 그렇다면 우리도 역사가 가브리엘  모노(Gabriel Monod)의 말

을 가지고 결론을 짓자.

 

 

 

 프로테스탄티즘은 자유 사상의 종교적 형성에 나타난 연계(聯繫)

또는 모임에 지나지 않는다(Revue Historique, mai 1892, p.130).   

 

 

 

 프랑스 속담에 "천재와 바보의 거리는 단지 종이 한 장 차이(Du

sublime au ridicule, il n’y a qu’un pas)"라는 것이 있다. 스스

로 경계하지 않으면 이른바 성령과 자유 사상의 거리도 결코 그렇

게 멀지는 않다는 것이다.

 

 

 

 

 

 

 

 

 

 - 이와시타 소이치 신부의 ’가톨릭 신앙’ 中에서 -

 

 

 

 

 

 

 

 

 

 

 

 

갈현동에서

 

catholic knight 안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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