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521 루시아와 빛의 성인...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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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시몬 | 작성일2002-04-12 | 조회수441 | 추천수0 | 신고 |
빛의 성인이라면 바오로 사도의 생애를 보시면서 이 분에게 비춘 성령의 빛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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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바오로는 소아시아의 시리아 다르소에서 출생해 처음은 사울이라고 불렀다. 양친은 유다인으로서 열심히 그 종교의 율법을 지켰으며 아들 사울에게도 그 정신을 심어 주려고 애썼다. 아버지는 사울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유명한 학자 가므리엘의 슬하에서 유다교의 신학과 히브리어를 연구하게 했다.
지식이 풍부하고 엄격한 생활규범을 지키며 열정적이었던 사울은 유다의 율법에 대한 존경심에서 맹렬히 그리스도교에 대해 탄압하는데 앞장섰다.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을 탄압하던 바오로가 어느날 다마스커스에 있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체포하러 말을 타고 가던 길에 성령의 빛이 하늘에서 찬란하게 바오로를 비추면서 특별한 예수의 부르심을 받게 된다.
"사울아,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는 소리에 " 당신은 누구십니까? " 라고 질문하는 사울에게 예수는 "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네 발로 송곳을 차면 너만 해로울 뿐이다." 라는 예수님의 대답에 사울은 경악하여 말에서 떨어졌고 눈이 어두워졌으며 다마스커스에 있는 아나니아를 만나 영육의 치유를 받고 개종하게 되었다.(사도행전 9장 1절 - 19절)
그의 복음선포의 시작은 다마스커스 마을이었고, 한 나라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나라를 다니며 하느님 나라를 선포했다. 바오로는 3차례에 걸쳐서 전도여행을 했다. 1차여행은 약 3년간이었으며 소아시아의 안티오키아, 이고니온, 리스트라, 데르베 등지에 교회를 세웠으며 3년에 걸친 2차 여행에서는 전에 세운 교회를 다시 방문하고, 소아시아의 다른 도시와 유럽의 필립비, 데살로니카, 베레아, 아테네, 고린토지방, 에페소 지방도 방문을 하였다.
3차 전도여행은 약 5년간이었는데, 그중 3년은 에페소에서 머물렀으며 예루살렘에서 유대교도들에게 체포되어 2년간의 감금생활 후 무죄선고로 자유롭게 활동하다가 다시 체포되어 67년에 칼로 참수 당하여 거룩한 순교자가 되었다.
바오로의 순교장소에 성당이 세워져 순례자들의 기도처가 되었으며, 그의 묘지 위에는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대성전 - 성 바오로 대성전 - 이 건립되었다.
바오로의 활동은 다른 사도들보다 훨씬 많았으며, 종종 감옥에도 갇히고 죽을 위험을 당하고 냉대와 학대를 받았으며, 유다인들에게 5섯차례나 매를 맞았고 로마인들에게서 태형을 세번 당하였으며, 세번이나 파선을 당하기도 했다.
가끔 닥쳐온 죽음의 위험, 병고, 기갈, 단식, 추위, 노고, 영적고통, 등 그는 일체를 그리스도를 위해 인내했다. 예수야말로 그에게 있어 모든 것이었다. 그는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갈라디아서 2장 20절)라고 하신 그의 말대로 사랑하는 예수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을 그 무엇 보다도 가장 열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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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녀 루치아(또는 루시아) 동정 순교자 (304년 순교)
축일;12월 13일
루치아라는 세례명을 가진 소녀들 중에는 그 성인에 대하여 알고자 노력할 때에 절망을 느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옛날 책들은 몇 가지 사소한 전승들을 상세하게 다루어 놓은 것들이 있겠지만 새로운 책들은 이러한 전승들에 역사적인 근거가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단 하나의 사실로, 절망적인 구혼자가 루치아를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발하여 304년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서 그녀가 처형되었다는 것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이 로마 미사 경본에 언급되어 있다는 것, 장소를 표시하는 지명에서 그녀의 이름을 땄다는 것, 대중 가요의 제목으로 그녀의 이름이 쓰여졌다는 것, 수세기를 두고 내려오면서 수천 명의 소녀들이 루치아라는 이름을 자랑으로 여겼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젊은 그리스도인 여성이 시칠리아의 이방인들과 얼마나 투쟁해야 했었는지 쉽게 상상 할 수 있다. 이것을 상상하기가 어렵다면 오늘날 우리 주변의 이방인 세계를 둘러보고 착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는 데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보면 된다.
루치아의 친구들은 2백 년도 넘는 오래 전에 파괴되어 버린 머나먼 노예의 나라에서 은밀하게 돌아다니며 설교하던 사람,루치아가 영웅으로 생각하는 이 사람에 대하여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한때는 목수였다고도 하는 그는 자기 백성들이 사형 선고를 내린 다음 로마 군인들에 의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루치아는 이 사람이 죽은 사람들로부터 부활했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영혼 전체로 믿었다. 그가 말한 것과 행한 모든 것에 하늘이 날인을 찍었다. 루치아는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동정 서원을 했다. 이것은 그녀의 이방인 친구들 사이에 매우 큰 잡음을 일으켜 가장 절친한 사람까지 그녀가 약간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기 전에 순결을 지키는 것은 고대 로마인의 이상이었고, 매우 드문 일이었지만 단죄받을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무엇인가 끔찍한 것을 숨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루치아는 초기 동정 순교자들의 영웅심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표양에 충실했고 또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는 그 목수의 표양에도 충실했다.
설명 ; 당신이 만일 루치아라는 세례명을 가졌다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당신의 수호 성인은 진실되고 뛰어난 영웅이며 당신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성녀이다. 시칠리아의 젊은 순교자의 윤리적인 용기는 304년에 밝게 빛났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젊은이들에게도 밝게 빛나는 등대 처럼 우리의 앞을 환하게 비추어 주고 있다.
인용 ; "복음은 예수께서 당하신 모든 고통과 그분에게 가해진 온갖 모욕을 우리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서 갈바리아까지 예수의 신적 순수성에서 비추는 광채는 점점 더 퍼져서 온 군중을 사로 잡습니다. 그분의 행동은 그렇게 큰 진실성과 매력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딸들이여, 여러분도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덕행을 더욱 빛내기 위하여 찾고 있는 겸손과 절제 그리고 포기가 축복받기를 …. 여러분의 행동은 정결이 가능한 덕행일 뿐 아니라 사회적인 덕행임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덕행은 감각을 다스리고 절제하며 기도를 통하여 강력하게 보호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황 요한 23세, IL Tempio Massimo, 수녀들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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