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 1560 천주교 윤리운동 (내탓이요,똑바로)... | 카테고리 | 천주교 | ||
---|---|---|---|---|
이전글 | 천주교윤리운동(내탓이요,똑바로)에 관해서 | |||
다음글 | 어느 개신교인의 기독교역사관 |1| | |||
작성자한시몬 | 작성일2002-05-28 | 조회수750 | 추천수0 | 신고 |
(질문)
제가 여쭈어볼 말씀은, 다름이 아니라, 천주교에서 주창했던 윤리운동-이라 해야 할지 의식개혁 캠페인이라 할지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죄송...-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내탓이요", 그리고 최근의 "똑바로"운동이 제 기억에는 나는데요. 그 이전이나 이후, 혹은 "내탓이요", "똑바로"운동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데, 설명해주실분이나 자료 도움주실분 안계신지요.
(의견)
’똑바로’ 운동이란?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우리 사회의 무너진 도덕성을 바로잡아 나가고자 ’똑바로’ 운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10월 15-18일에 열린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의 승인을 얻음으로써 전국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갈 전망이다. 주교회의가 끝난 바로 다음날 한국 평협 여규태 요셉 회장을 만났다.
똑바로 운동이란 무엇입니까?
똑바로 운동이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똑바로 하자는 운동입니다. 한마디로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실생활 가운데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자는 것입니다. 이미 1983년부터 신뢰회복 운동을 전개해 온 우리 평협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위하여 이 사회의 무너진 도덕성을 바로잡아 나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특히 신뢰회복 운동의 일환으로 1989년부터 2년 동안 펼쳤던 ’내 탓이오’운동은 비단 교회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좋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내 탓이오 운동은 사회의 계층간 지역간 집단간의 불신의 골을 메우고자 우리 자신부터 반성하자는 성찰의 뜻이 강했습니다. 똑바로 운동은 그때의 내 탓이오 운동의 맥을 이으면서도 실천의 의지를 더욱 다져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자는 생활 실천 운동입니다.
그러면 왜 이 운동을 벌입니까?
사실 오늘의 우리 현실은 가정이나 이웃간의 예의범절을 비롯하여 사회의 공중도덕은 물론, 더 나아가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어느 하나라도 똑바로 서있는 분야가 없을 만큼 큰 혼란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근본 원인이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사회의 잘못된 구조적인 원인들도 있겠지만 그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양심과 도덕성이 무딜 대로 무디어져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해 우리 생활의 근본이 되는 도덕과 윤리가 바로 서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생각에서부터 말과 행동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반성하고 하나하나 똑바로 잡아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여겨 ’똑바로’라는 구호를 외치게 되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적용시켜야 하겠습니까?
’똑바로’는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양심을 똑바로, 생각을 똑바로, 기도를 똑바로, 말을 똑바로, 운전을 똑바로, 칭찬을 똑바로, 비판을 똑바로, 교육을 똑바로, 정치를 똑바로, 경제를 똑바로…. 이렇게 우리 생활의 모든 면에 해당될 만큼 무궁무진합니다.
특히 이 운동은 어른들뿐 아니라 한창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요즘 아이들 입에서 나오는 얘기 한번 귀기울여 보십시오. 듣기도 민망할 정도로 상스러운 말이 얼마나 많습니까. 각 가정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이 똑바로 운동을 잘 가르쳐주시고 이끌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전개해 나가겠습니까?
똑바로 운동은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강요해서 이루어질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가 스스로 모든 일에서 실천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너무 많은 것을 하기보다는 한 가지라도 똑바로 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만이 아니라 가족끼리, 친구들끼리, 직장 동료들끼리 가정이나 직장에서 다양한 실천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 동안 서울대교구에서는 이 운동을 널리 알리고자 지난 9월 8일 교구청 마당에서 차량 스티커 부착식과 똑바로 운동 선포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 차원에서 전개되어야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고 판단하여 어제 끝난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다 상정하였던 것입니다. 전국의 모든 주교님께서 적극적으로 호응하시며 허락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각 교구에서 전개될 이 운동에 주교님들의 많은 사목적 지도와 격려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평협에서는 이미 서울대교구 내에 발표하고 배포한 선언문과 실천 지침, 차량용 스티커 외에도 똑바로 운동을 더욱 널리 홍보하고 전개해 나갈 수 있는 내용의 리플릿과 소책자도 준비할 생각입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야고 2,7)이라는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이 똑바로 운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촉매제가 되어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바로잡아 나갈 수 있도록 여러 사람들과 힘을 모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
최근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는 1983년부터 펼쳐온 신뢰회복 운동의 맥을 이어 ’똑바로’운동을 펼치고 있다. 1990년대에 벌인 ’내 탓이오’ 운동이 지나치게 자기 성찰에만 머물렀던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자기 성찰은 물론 적극적인 실천 운동으로서의 ’똑바로’ 운동을 벌인다는 설명이다.
날마다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엄청난 부정부패 사건이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뿌리부터 썩어있는지 우리는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 신자들부터 나서서 작은 것부터 똑바로 바로잡기 시작하면 결국 우리 사회도 조금씩 변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어느 누가 반대할 것인가. 나 역시 ‘똑바로’ 운동의 성공을 누구보다 원하지만, 한편 걱정이 앞서는 구석이 있다.
그 동안 한국 천주교회는 적지 않은 운동을 벌였다. 앞서 든 운동들말고도 ‘한마음 한몸’ 운동, ‘새날 새삶’ 운동이 있다. 이들 운동 모두가 전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치 유신 때의 새마을 운동처럼 위에서 끌어가고 밑에서는 마지못해 쫓아가는 식의 운동에 그쳤다는 느낌이다.
교회 밖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한국 창조’니 ’제2의 건국’이니 하면서 기초부터 다시 세우자는 운동을 펼쳤지만 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만일 ’똑바로’ 운동이 성공하려면 그 원인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도의 성인 간디는 수억 인도인의 마음을 움직여 하나로 모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어냈다. 간디는 손수 물레를 돌려 지은 옷을 입고 다녔다. 이처럼 말을 앞세우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말을 몸소 실천했기에 인도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도 무엇을 해서는 안된다는 율법의 금지 조항을 늘어놓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는 달리 어떻게 해야 율법 정신대로 살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똑바로’ 운동이 성공을 거두려면 그 안에 감동이 있어야 한다. 감동은 말에서 오는 게 아니라 진실한 삶에서 온다. 그러니 차량에 “똑바로” 스티커를 붙이는 일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 모든 게 아니라 중요한 단 한 가지를 정해 그 하나라도 모든 이가 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누가 보든 말든 이를 묵묵히 행동으로 옮기는 이들이 필요하다.
.........
년 대희년 직접 준비의 마지막 해인 1999년 ‘성부의 해’를 맞이하면서도 신자들은 대희년의 정확한 의미는 물론이고 어떻게 구체적으로 대희년의 정신을 실현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이제 곳곳에서 “2000년 대희년”이라는 말은 들어 2000년이 대희년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떻게 사는 것이 대희년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신자들이 많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들이 함께 모여 많은 논의를 거친 끝에 주교회의에 상정한 “새날 새삶” 운동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지난해 가을 총회(10월 15일)에서 한국 천주교회가 전국적으로 이 운동을 대희년 정신의 실천 운동으로 펼치기로 하고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이 “새날 새삶” 운동은 희년의 정신을 우리의 삶 안에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실천운동으로서 그 취지가 담화문 안에 잘 나타나 있다. “‘새날 새삶’ 운동은 새로운 천년기라는 새날을 맞아 2000년 전에 베들레헴에서 우리의 구세주로 태어나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그분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의 바람과 다짐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강생의 사건을 오늘에 살려 인간의 본모습을 되찾고 모든 이가 함께 기쁨을 나누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이 기간은 우리의 신앙을 깊게 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하고 매력적이고 호소력 있게 복음의 메시지를 세상에 선포하여, 우리가 사는 공동체들, 곧 가정, 이웃, 일터, 시민 공동체 그리고 사회 전체의 변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시기입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고, 복음을 선포하며, 입으로 선포하는 복음이 참되다는 것을 삶으로 세상에 증언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온 인류의 바람을 유일하고 결정적으로 이루신 그리스도(제삼천년기, 6항 참조)의 복음이 오늘 모든 이에게 ’기쁜소식’이 될 것입니다 (제삼천년기, 38항 참조).”라고 하였다. 이 담화는 대희년 정신의 핵심을 매우 잘 전해주고 있다.
또한 “새날 새삶” 운동의 기본 주제와 세부 실천방안들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2000년 대희년의 정신을 구체적인 삶 안에서 실현하고자 하는 ‘새날 새삶’운동을 통하여 우리는 나 자신부터 시작하여 가정과 사회를 새롭게 하고 우리 모두 함께하는 세상을 이룩하고자 합니다. ‘새날 새삶’ 운동은 대희년 맞이 실천운동으로서 새로운 천년기라는 새 시대, 새날을 맞이하면서 복음에 비추어 우리의 삶 전체를 돌이켜보고, 우리의 삶을 복음에 기초를 둔 새삶으로 바꾸어가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새날 새삶’ 운동을 통하여 우리는, ‘나부터 새롭게’, ‘참된 가정 이루기’, ‘좋은 이웃 되어주기’, ‘함께 가요, 우리’라는 네 가지 기본 방향을 바탕으로 여러 구체적인 방안들을 실천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나부터 새롭게”는 그리스도인 각자가 그리스도께 받은 구원 사명에 대한 새로운 각성을 고취시키면서 온 인류의 시선이 하느님을 향하도록 이끌고 세상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봉사하도록 각자 자신부터 새롭게 하자는 것이다.
"참된 가정 이루기”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이며 핵심인 가정이 이기주의와 물질주의 팽배, 이혼의 증가로 곳곳에서 파괴되고 있는 현실을 가슴 아파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참된 가정을 이룸으로써 삶의 모범을 보이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사람들에게 깨우쳐주어 사회 전체가 바로 설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좋은 이웃 되어주기”는 희년의 정신을 사회 차원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루가 10,25-37)로써 우리가 먼저 나서서 다른 사람의 좋은 이웃이 되도록 가르쳐주셨다. 그러므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우리가 좋은 이웃이 되어줌으로써 그 갈등들을 줄이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의와 평화에 대한 투신은 희년의 준비와 경축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제삼천년기, 51항).
마지막으로 "함께 가요, 우리”는 “새날 새삶” 운동의 최종 목표로서 온 민족과 인류를 향한 외침이다. 이는 계층과 신분의 갈등, 종교간의 갈등, 집단 이기주의와 지역주의, 민족 차별주의 등 모든 분리와 갈등, 차별을 없애고 “모든 이가 하나 되어” 세상을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습대로 되살리자는 운동이다.
이 주제들과 세부 실천방안 하나하나를 깊이 살펴보면 그 연결의 고리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현장에서 희년의 정신을 실현하려는 의도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대희년을 준비하면서 ‘말씀’에 더 귀기울여 그리스도의 강생의 신비를 더 잘 깨치고, 이 "새날 새삶” 운동을 통하여 우리의 일상적인 삶 전체에 변화를 가져오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곧 희년의 삶을 사는 것이다.
자료: Copied ex. 경향잡지 편집
|
||||
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