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 1584 교황에 대하여...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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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시몬 | 작성일2002-06-26 | 조회수447 | 추천수0 | 신고 |
(질문)
주일학교 교사를 하는 사람인데요. 교황주일을 맞아 교황에 대해서,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해서 초등부 아이들에게 알려주려고 하는데 아시는 분은 목요일까지 좀 알려주세요.
(답변)
질문하신 내용에 대하여는 예수님의 제자이시고 제자들 중의 맡형 격인 베드로가 교황 1대에서부터 현재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64대로서, 님께서 질문하신 교황에 대하여는 백과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습니다.
교황청 연감(敎皇廳年鑑)》에 따르면 교황이란 “로마의 주교,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 사도(使徒)의 우두머리인 베드로의 후계자,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수장, 서(西)유럽의 총대주교(總大主敎), 이탈리아의 수석대주교(首席大主敎), 로마 관구대주교 (管區大主敎)이자 수도대주교(首都大主敎), 바티칸의 주권자”로 규정되어 있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는 12명의 사도 중 베드로에게 특별한 수위적(首位的) 권한을 부여하였고, 베드로는 그리스도로부터 위탁받은 교회의 수장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을 사목(司牧)하는 권능을 부여받아 로마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후 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하였으나, 그의 무덤 위에는 가톨릭적 ·사도적(使徒的) ·로마적 교회의 웅장한 건물이 세워졌다. 초대교회 시대는 바로 ‘사도시대’인데, 사도들은 일정한 장소에 정주(定住)하지 않아, 교회는 말하자면 ‘유동적(流動的)’인 순회적 사도직제에 따랐다.
사도시대 이후 교회의 우두머리는 고정된 지위를 갖게 되었고, 주교들이 사도들의 뒤를 이었다. 교회 전반에 걸쳐 정주적 주교제(定住的主敎制)로의 이행(移行)이 시작된 셈이다. ‘전체 교회’에서 일어난 일은 특히 로마에서 일어난 일을 의미하였다. 그래서 사도의 우두머리인 베드로가 세운 로마 교회의 수장은 바로 ‘전체 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가톨릭 교회의 성직 품계는 크게 세 계층으로 나눌 수 있다. 주교, 사제, 부제가 바로 그것이다. 교황, 추기경, 대주교, 주교, 부주교, 보좌주교, 몬시뇰 등 성직자의 다양한 지위를 가리키는 이 호칭들은 이 세 계층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하게 되어있다. 예를 들어 교황은 가톨릭 교회의 수장(首長)이지만, 한편으로는 로마교구의 ’주교’이다. 추기경 역시 주교들 중에서 임명되는 주교 계층의 직위이다.
그래서 ’로마의 주교’라고도 불리는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 ’베드로의 후계자’, ’로마 교황’ 등 여러 호칭으로 불리고 있고, 로마 교황청의 주요 기구에는 국무성성(國務聖省), 성성(聖省), 사무국과 위원회 그리고 법원(法院)이 있으며 교황의 교회 내에서 역할에 대해서 교회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 1 관 교황
제 331 조 주께로부터 사도들 중 첫째인 베드로에게 독특하게 수여되고 그의 후계자들에게 전달될 임무가 영속되는 로마 교회의 주교는 주교단의 으뜸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이 세상 보편 교회의 목자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 임무에 의하여 교회에서 최고의 완전하고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직권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
제 332 조 제1항. 교황은 합법적 당선을 수락함과 함께 주교 축성으로써 교회에서 완전한 최고 권력을 얻는다. 따라서 교황직에의 당선자가 주교 인호가 새겨져 있다면 수락의 시각부터 그 권력을 얻는다. 만일 당선자가 주교 인호가 없다면 즉시 주교로 서품되어야 한다
제2항. 혹시라도 교황이 그의 임무를 사퇴하려면 유효 요건으로서 그 사퇴가 자유로이 이루어지고 올바로 표시되어야 하지만 아무한테서도 수리될 필요는 없다
제 333 조 제1항. 교황은 자기 임무에 의하여 보편 교회에 대한 권력을 가질 뿐 아니라 모든 개별 교회들과 그 연합들에 대하여도 직권의 수위권을 가지며, 이로써 주교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개별 교회들에 대하여 가지는 고유한 직접적 직권이 강화되고 보장된다
제2항. 교황은 교회의 최고 목자의 임무 수행 중에 다른 주교들 및 더구나 보편 교회와 친교로 항상 결합되어 있다. 교회의 필요에 따라 이 임무를 수행할 방식을 개인적으로 혹은 합의체적으로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권리가 그에게 있다
제3항. 교황의 판결이나 교령에 불복하는 상소나 소원은 용인되지 아니한다
제 334 조 교황은 그의 임무 수행 중에 주교 대의원 회의를 포함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협조를 제공할 수 있는 주교들의 도움을 받는다. 또한 추기경들과 그 밖의 사람들 및 시대의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기관들의 보필도 받는다. 이 모든 사람들과 기관들은 그의 이름과 권위로 자기들에게 맡겨진 임무를 모든 교회들의 선익을 위하여 법으로 규정된 규범에 따라 수행한다.
제 335 조 교황좌의 공석이나 완전한 유고 때에는 보편 교회의 통치에 아무것도 혁신되지 못하며, 이러한 상황을 위하여 제정된 특별법이 준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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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참고적인 사항을 보태드린다면 교황도 죄를 지으며 고해성사를 하실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는데, 물론 무류성을 지니신 교황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교황도 인간이기 때문에 나날의 유혹을 받게 마련입니다. 만일 그가 대죄를 지었을 경우, 그가 용서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해성사를 받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께서는 교황이 이런 식으로 용서받기를 원하셨고, 교황의 고백을 받는 사제도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한으로 그 일을 행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를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있을 것이다"(요한20:23)". 그리스도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음으로서 그의 지위가 낮아진 것이 아니었 듯이 교황이 일반 신부로부터 고해성사를 받았다고 해서 그가 지위를 포기했다거나 그의 권위가 줄어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교황이 자주, 아니 거의 매일같이 다른 신부님에게 고백성사를 받는 것은 전통이 되다시피 되어 있는데, 이는 교황이 많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이를 통해 그가 성사의 은총을 얻고,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느님으로부터 힘을 얻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하여 추가로 질문을 하셨는데 그의 일상과 사상, 그리고 가르침에 대하여 가톨릭신문(1998)에서 발췌한 내용을 참고로 올려드립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78년 베드로의 후계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이래 20년간 세계 가톨릭의 아버지로, 주님의 ’종중의 종’으로 봉사해 오고 있다. 가톨릭 교회가 교황주일을 매년 거행하는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편교회의 목자인 베드로에게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 주도록 (루가 22,32)명하셨기 때문이다. 교황주일은 가톨릭 교회의, 가톨릭 가족의 공동의 아버지의 축제이다. 교황주일을 맞아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목적 삶과 업적을 정리했다.
1. 일상과 업적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가 아직 잠들어 있는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자정이 가까워 서야 자리에 든다. 6시15분 교황은 제대가 마련되어 있는 경당에서 기도와 묵상을 바친다. 교황은 여러 가지 결정 사항들을 여기에서 눈을 감고 무릎을 꿇은 채 내리곤 한다. 7시에 미사를 봉헌하고 아침 식사를 한 뒤 오전 알현시간 전까지 교황은 한시간 남짓 집필을 한다.
날렵하고 날아가는 듯한 필체로 교황은 빠른 속도로 각종 서한과 문서를 작성한다. 지금까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발표한 문헌들은 1백50여편을 넘어선다. 8개국어에 능통한 교황은 철학, 역사, 사회학 등의 분야에 관한 책들을 주로 원어로 읽는다. TV는 거의 보지 않고 신문도 고향인 크라코프의 가톨릭 주간신문외에는 거의 보지 못하고 그 대신에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으로부터 주요한 일간지 보도들을 보고 받는다.
교황은 주치의로부터 제시된 엄격한 스케줄에 따라 점심식사후 30분 가량 낮잠을 잔다. 그후 성무일도를 바치거나 묵주의 기도를 하면서 산책 겸 운동을 한다. 교황은 원래 등산, 수영, 스키, 축구등 만능 스포츠맨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행동하는 교황으로 평가받고 있다. 끊임없이 세계를 다니는 교황은 지난해까지 77번 해외 순방을 해 무려 1백만km 이상, 즉 지구를 모두 26바퀴 이상을 돈 기록을 남겼고 전세계 191개국 중 117개국을 방문했고, 금년 들어서도 쿠바와 나이지리아, 오스트리아 등지를 사목방문했다.
제264대 교황으로 1978년 10월16일 선출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 출신 카롤 보이티야 추기경이다. 이탈리아계가 아닌 교황의 선출은 1523년 네덜란드 출신 교황 하드리아노 6세 이후 455년만의 사건이었으며 당시 공산국가인 폴란드에서 교황이 탄생한 것은 현대사에서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탄생은 냉전 체제하에서 교회가 세계에 던진 화해와 평화의 전조였으며, 교황 자신도 동서 냉전의 빙하를 녹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교황은 즉위 이듬해인 1979년과 83년, 87년 97년 폴란드를 방문했고, 1990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1998년 1월에는 쿠바를 사목순방했다. 또 1989년 12월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세기적 만남’을 이룸으로써 냉전시대의 종식을 앞당겼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행동하는 교황’이다. 세계 구석구석을 방문하면서 세상 안에서 세상을 향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 ’가정의 소중함’을 강론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더 적극적으로 교황문서를 통해 그리고 카이로 인구와 개발회의 등 각종 국제회의에 교황 특사를 파견, 인간생명의 가치를 거스르는 어떤 일에도 강력한 반대의 뜻을 표명해 왔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금까지 일관된 사목적 표양을 통해 교회와 세상 안에서 ’평화의 사도’, ’인간 생명의 수호자’, ’행동하는 교황’으로 불리고 있다.
2. 사상과 가르침
재위 하시는 기간 동안 150여편의 각종 문헌을 발표해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목 문서 전체에 나타나는 신학적 사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과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특히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목 문서 중심부에는 교황 자신의 고집스런 ’신학적 인간학’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인간을 가톨릭 사상의 중심에 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만 참다운 인간 존엄성의 가능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항상 강조해 왔다. 이러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신학적 인간학’은 ’사회교리’와 ’인간생명’에 관한 교황 자신의 문헌에서 생생하게 드러나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문헌들을 보면 인간학에서 출발, 그리스도론을 거쳐 교회론에서 종합되는 일관된 흐름을 가지고 있다.
교황은 각 인격 안에서 인간 생명의 가치를, 문화와 시민생활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찾고 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또한 자신이 2천년 대희년을 준비하고 희망의 제3천년기를 여는 사도적 소명을 받았음을 항상 자각해온 교황이다. 그는 첫 회칙인 ’인간의 구원자’ (1979.3.4) 에서부터 2천년 대희년과 제3천년기에 대한 열망을 표시했다.
그래서 교황은 항상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신원을 재천명하기 위해 ’내적쇄신’과 ’복음선교’를 강조했다. ’새로운 복음화’로 설명되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제3천년기를 향한 교도권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쇄신과 선교를 위한 새로운 방법, 새로운 열의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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