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1861] 익명의 그리스도인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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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시몬 | 작성일2003-07-02 | 조회수1,299 | 추천수0 | 신고 |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
가톨릭에서는 "비록 무신론자라도 진리를 탐구하며 자기의 도덕적 양심에 요구하는 바를 실천하는 자를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Annoymous Christian)이라 하며, 인간 쪽에서 보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무신론자일 수 있어도, 하느님 쪽에서 보면 엄연한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목표로 고백하고 있는 영생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인은 비(非)그리스도인, 설령 무신론자라도 그들의 구원 가능성에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깨달음에 도달하기를 원하시는"(1디모 2,4)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구원 가능성을 비관적(悲觀的)으로 본다는 것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 뜻을 과소 평가하게 되는 것인 만큼, 그리스도인은 다른 종교인들을 얕보거나 무시하지 않고 형제적 자세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그리스도께서는 신앙과 세례의 필요성을 명백한 말씀으로 강조하셨고, 모든 사람이 마치 문(門)을 통하는 것처럼 세례(洗禮)를 통하여 들어가는 교회의 필요성을 역설하셨으므로 교회가 구원의 정상적 방법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본인의 탓이 없이 복음(福音.그리스도)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비록 하느님만이 아시는 길로써 구원으로 이끄실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여러 신학자들의 연구와 발표를 근거로 하고 있는데, 다른 가톨릭 사이트에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을 복사하여 붙여 드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타종교인들의 구원
본 문헌은 공식적으로나 혹은 가시적으로 교회의 구성원이 아닌 이들도 구원에 도달할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타종교인들이나 비그리스도교인들이 그들의 힘으로 구원에 도달할 가능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결과로써, 그리고 성령에 의해 주어진 은총을 통하여, 그리고 그들의 자유로운 협력을 통하여" 오는 것으로 본다.
다양한 종교 전통들도 그들 민족의 역사와 문화 안에 고상하고 품위있는 가치들을 담고 있는데, 그리스도교 입장에서는 이러한 가치들도 궁극적으로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 안에 부어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특히 타종교의 기도문들과 의식들이 인간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개방되도록 도와주는 성격을 갖고 있을 때, 그것들은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타종교인들의 구원은 그들이 갖고 있는 종교 문화들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창조 때 주신 보편적인 선물을 통해 구원의 가능성을 갖는 것이며 그것이 독자적이고 사효적(事效的)인 구원 효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세상 구원을 위해 파견하신 그리스도와 그분이 세우신 교회와 관련하여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 문헌이나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도 타종교의 구원적 가치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신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으므로 이 문제는 구원신학의 지속적 과제로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가톨릭 교회의 입장에서 타종교의 구원 가능성에 대한 이론으로서 가장 무난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리스도 중심적 포괄주의이론"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노선을 따르고 있는 이들은 칼 라너의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 한스 큉의 "가능적 그리스도교설", 그리고 화쿠와의 "성취이론", 그리고 요셉 라칭거의 "비그리스도교의 대림적 성격 이론"으로 열거된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칼 라너(K. Rahner)의 "익명의 그리스도론"이라고 볼 수 있다. 라너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과 인간의 구원 가능성을 유비적(analogous) 방법에 입각한 초월적 신학(超越的神學)을 전개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하느님은 선과 사랑으로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셨으므로 인간은 선험적으로 (a priori) 하느님의 창조섭리와 은총을 깨달을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萬物)과 만사(萬事)를 통해 건네오시는 하느님의 자기 전달을 인간은 일상적인 체험(日常的 體驗)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실존적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와 더불어 인간은 하느님의 자기 계시의 절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체험의 전형을 보게 된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와 자기 전달의 절정이며 영원한 로고스께서 육화되신 분이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체험의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명시적인 신앙고백(explicit confession)을 통해 이 은총에 감사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타종교인들도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보편성 안에 있으므로 하느님 체험의 가능성이 열려 있기에 "함축적 그리스도인"(implicitly Christian)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비록 명시적으로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선한 양심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 때, 이들도 그리스도인과 같은 착한 삶을 살아가게 되므로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도 이 상태로 계속 머무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 구원의 충만한 의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체험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라너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고 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가시적 공동체이며 인간 역사 안에 그분을 보여주는 영원성의 현존이 된다. 그러므로 익명의 그리스도인도 가톨릭 교회 안에서 명시적으로 신앙을 고백함으로써 구원의 충만성을 이루는 신앙적 상승(信仰的 上昇)을 하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타종교인들의 충만한 구원을 위한 선교적 차원이 열린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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