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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순호 | 작성일2004-05-04 | 조회수637 | 추천수0 | 신고 |
찬미 예수님 ! 부활 축하드립니다 ! 오늘은 성소(聖召 ; 거룩한 부르심)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지존하시고 지엄하신 야훼 하느님, 당신의 끊임없는 부르심 저희에게 내려 주시고, 아둔한 저희에게 주님의 착한 목자 허락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사랑도 많으신 야훼 하느님 성부시여, 당신 부르심에 따라 우리 교회가 날로 번성하여 주님 사랑 널리 전하게 하시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모든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나약한 저희가 주님 말씀 잘 알아듣고 강건하게 해 주시고, 예수님을 찬미하며 주님의 도구로써 기쁘게 봉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 베풀어 주시옵소서.
아멘
미카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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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부르심 (성소;聖召), (소명;召命)
......................................................................< 가톨릭 대사전 >
중국어 : 라틴어 : vocatio 그리스어 : Klesis 독일어 : Beruf 영어 : calling, vocation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을 불러 특별한 목적의 도구가 되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 자신이 베푸는 은혜와 구원을 풍성히 받게 한다는 성서상의 가르침이다. 소명(召命)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구약의 카라(qare)는 ’부르다’의 의미를 가지며 ’초대하다’(1사무 16:3), ’소환하다’(2사무 1:15), ’이름을 부르다’(창세 11:9) 라는 뜻으로도 쓰였다. 즉 하느님이 그의 백성을 선택하여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모세(출애 3)와 예언자들(사도 6, 예레 1:4-10, 아모 7:14-15)을 불렀던 사실에서 부르심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신약에서는 Klesis로 카라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신약 전체를 통하여 하느님이나 그리스도 성령이 사람을 부르시는 행위를 가리킨다.
부르심에 대한 교리는 바울로의 신학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바울로의 문헌에서 부르심은 그리스도교 안으로의 초대가 일차적이고, 이를 통한 하느님의 목적과 행동의 전개는 부르심의 예정, 부르심, 영광으로 이어진다. 즉 하느님은 인간 구원의 영광스러운 계획에 모든 사람을 참여시키기 위해 유태인뿐만이 아니고 모든 이방인들도 부르셨다(로마 9:24). 바울로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현세적 생활에서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항을 지켜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
첫째, 부르심이 머무르는 곳은 교회다. 그러므로 각 개인은 교회의 공동체적 생활에 참여해야 한다. 둘째,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셋째,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생활 속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깨닫고, 자기가 해야 할 역할과 임무를 수행해 나가야 한다. 넷째,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합심,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중세시대에는 성직 제도, 수도원 제도의 발달에 따라 성속(聖俗)의 구별이 생겨나고, 교회에서는 성직만을 부르심(vocatio)이라고 생각하였다. 대체로 스콜라신학에서는 성직자 우위와 일반직에 종사하는 자의 하위적 개념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이 모두 하느님의 역사 속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공동선을 이뤄나갈 수 있다는 사실에서 이웃에 봉사하며 노동하는 직업은 모두 상하의 구별 없이 부르심에 속할 수 있겠다.
즉 성서에 있어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통된 부르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이 되는 일이었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지 하느님에 대해 복종해야만 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자신은 왜 창조되었고, 하느님은 무엇을 위하여 자신을 부르고 계시는가, 그러한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의 문제가 곧 신앙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구원은 인간이 이룩한 성과나 업적만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은혜와 믿음으로써 주어지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L. Brancherau, De la Vocation sacerdotale, Paris 1896/ J. Lahitton, La Vocation sacerdotale, ed. 2, Paris 1928.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성소(聖召)
......................................................................< 바오로딸, 자료실 >
성소(聖召)라는 말은 "거룩한 부르심", 곧 "하느님의 부르심"이라는 뜻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어 각자 나름대로의 조건 속에서 당신의 뜻을 따라 살아갈 사명을 주셨다. 그리하여 사람은 아버지나 어머니, 교육자, 근로자, 예술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특히 그리스도 신자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거룩하게 살아갈 소명(召命)을 부여받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1디모 1,9) 이처럼 하느님의 뜻에 따라, 곧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이루어지는 각 사람의 고유한 삶,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넓은 의미의 성소(聖召)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성소(聖召)라고 할 때에는 주로 좁은 의미의 성소(聖召)를 말하는데, 이는 일생을 바쳐 오로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생활, 곧 성직자와 수도자의 삶을 일컫는다. 이런 삶은 자신의 뜻과 의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먼저 주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 자신이 여기에 응답해야 가능한 것이다.
성직자와 수도자의 성소(聖召)가 있다고 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자신이 진정 그러한 생활을 원해야 하고, 교회가 인정하는 장상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성소 생활(聖召 生活)을 강요해서는 안되고 막아서도 안된다. 성소(聖召)는 글자 그대로 하느님의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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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심 <><><>
부르심의 장면들은, 성서의 가장 인상깊은 부분에 속한다. 불타는 가시덤불에서 모세의 부르심(출애 3장), 성전에서 이사야의 부르심(이사 6장), 야훼와 청년 예레미야와의 대화(예레 1장) 등, 이 모든 장면들은 하느님과 인간의 대면을 보여 주는데, 하느님은 엄위와 신비속에 계신 분으로, 그리고 인간은 그 앞에서 두려움과 열광을 느끼는 저항과 수용의 능력을 갖춘 존재로 드러난다.
성서 속에서 이러한 이야기들이 하느님의 당신 계시와 인간의 구원 역사안에 언제나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부르심은 중대한 위치를 접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 1 > 구약에서 하느님의 부르심과 파견
구약의 모든 부르심은 파견을 목표로 삼고 있다. 즉, 하느님께서는 파견하기 위하여 부르신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창세 12,1), 모세(출애 3,10;16), 아모스 (아모 7,15), 이사야(이사 6,9), 예레미야(예레 1,7), 에제키엘(에제 3,1;4)을 부르시어 한결같이 "가라 !" 고 명령하신다.
부르심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구원 계획과 당신의 백성에게 수행해야 할 특별한 사명을 위하여, 당신 친히 선택하신 사람에게 내리시는 하나의 호출이다. 그러니까 부르심의 시원에는 신적 선택이 있고 그 종국에는 실현해야 할 하느님의 뜻이 있다. 그러나 부르심의 개념은 다만 선택과 파견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즉 부르심은, 그 사람의 가장 내밀한 의식에로 직접 향해지기 때문에, 다만 그 사람의 외부적 삶뿐 아니라 마음 속 깊이에 이르기까지 변화시켜 전혀 다른 사람이 되게 한다. 부르심의 이러한 위격적 성격은, 성서 속에서 다음과 같이 확인되고 있다. 즉 부르심을 받은 자는, 흔히 하느님께서 자기 이름을 부르시는 것을 듣는다(창세 15,1; 22,1; 출애 3,4; 예레 1,11; 아모 7,8; 8,2). 어떤 때는 부르심으로 말미암은 임무와 실존의 변화를 더 잘 보여 주기 위하여, 선택된 그 사람에게 새로운 이름이 주어지기까지 한다(창세 17,5; 32,29; 참조 이사 62,2).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 불리운 사람이 당신의 부르심에 의식적으로 그리고 신앙과 순명으로 응답하여 오기를 기대하신다. 이러한 응답이 때로는 즉석에서 나오기도 하지만(창세 12,4; 이사 6,8), 흔히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부르심을 회피하려고 한다(출애 4,10-12; 예레 1,6; 20,7). 왜냐하면 부르심은, 그 사람을 따로 분리시켜 자기 친척들로부터 격리된 이방인이 되게 하기 때문이다 (창세 12,1; 이사 8,11; 예레 12,6; 15,10; 16,1-9; 참조 1열왕 19,4).
이러한 부르심은 하느님의 도구로 선택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왕들은 "주님의 기름 발리운 자" 임에도 불구하고 부르심을 직접 받지 못했다. 예컨대 사울(1사무 10,1)과 다윗(1사무 16,12)에 대한 부르심은 사무엘이 대신 전달해 준다. 사제들 역시 하느님의 부르심을 직접 받지 못하고 다만 세습적으로 사제직을 맡게 된다. 히브리서 5, 4 에 보면 아론을 가리켜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은 자" 라고 했으나, 그 부르심은 직접 받은 것이 아니라 모세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받았다(출애 28,1). 아론이 내적으로 그것을 승낙했는지의 여부는 알 길이 없다. 레위 지파의 사제직에 대한 이러한 부르심의 간접성은,아론의 경우까지 포함하여, 하느님께서 직접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너는 멜기세덱의 사제 직분을 잇는 영원한 사제이다" (히브 5,5-6)라고 말씀해 주신 그분의 사제직에 비교해 볼 때, 그 부르심의 성격이 보다 낮은 형태의 것이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하겠다.
< 2 > 이스라엘의 불리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불리움
이스라엘의 백성 전체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는가 ? 부르심이라는 말의 일반적 의미로 볼 때,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성서가 말하는 부르심의 엄밀한 의미로 볼 때, 비록 백성이라는 것은 "개인"과는 다르게 취급될 수밖에 없고 또한 그 부르심에 대한 반응도 다르게 나올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중개인들을 통하여 특히 모세를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단체라고 하는 점을 고려할 때 달리 어쩔 수 없기도 한 이러한 차이점만 빼고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르심받은 개인에게서 발견되는 모든 요소를 다 갖추고 있다.
계약은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그들의 마음 속에 들려 주신 하나의 부르심의 말씀이다. 율법과 예언서들은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들으라"(신명 4,1; 5,1; 6,4; 9,1; 시편 50,7; 이사 1,10; 7,13; 예레 2,4; 참조 호세 2,16; 4,1). 이러한 부르심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른 백성들의 경우와는 다른 삶을 영위하도록 만들었고 (출애 19,4-6; 신명 7,6),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는 마음을 두지 못하게 하였다(이사 7,4-9; 참조 예레 2,11-13).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은 이스라엘에게 하나의 응답, 즉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헌신(출애 19,8; 여호 24,24)과 전 삶을 그분께 내맡기는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이 모든 특징들이 부르심의 성격을 드러낸다. 어떤 의미로 볼 때, 부르심의 이러한 특징들은 완전한 하느님의 종으로서, 아버지의 목소리를 항상 들으시며, 거기에 순명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전한 형태로 실현된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는 신약 성서가 엄밀한 의미에서의 "부르심"이란 개념을 그리스도께 적용시켜 사용하는 일은 없다. 예수님으로서는 당신이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어 오셨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키지만 하느님께서 그분을 부르셨다는 표현은 어디에도 없는데, 이 사실은 의미 심장한 것이다.
부르심은 이를 받은 자의 실존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 그리하여 그 사람은 자기의 일상적 임무와 친지들을 떠나 오로지 하느님만이 그 비밀을 아시는 방향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내가 네게 일러 줄 그 땅"(창세 22,1) 을 향해 떠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르심을 받으셨다는 의식을 전해 주는 귀절은 아무데도 없다. 예수의 세례 장면은, 한편으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만족스런 종을 인간에게 소개시키는 장면이다. 여기에 부르심의 장면으로서의 흔적은 하나도 없다. 복음서 전편에 걸쳐 살펴볼 때, 예수께서는 당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계신다(요한 8,14). 따라서 그분이 다른 사람으로서는 따라 올 수 없는 곳을 향해 가고 계시고, 그분의 운명이 아주 독특한 것은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고, 그분의 존재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는 데에서 연유한다.
< 3 > 제자들의 불리움과 그리스도 신자들의 불리움
예수께서는 스스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지 않으셨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신다. 부르심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당신 주위에 열두 제자들을 모으셨는데(마르 3,13), 그들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이처럼 부르신다(마르 10,21; 루가 9,59-62). 또한 그분의 설교 전체가 부르심을 내포하고 있다. 즉,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마태 16,24; 참조 요한 7,17) 등의 말씀을 통하여, 그분만이 알고 계시는 그 새로운 길을 따라오라고 부르신다. 그리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은 것은"(마태 22,1-14), 하느님 나라에의 초대는 위격적 부르심이므로, 어떤 사람은 그 부르심을 알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초창기의 교회에서는 그리스도 신자들이 부르심을 받은 입장임을 바로 깨달았다. 예루살렘에서 행한 베드로의 첫번째 설교는, 예언자들의 경우와 비슷한 것으로, 이스라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의 인격적 결단을 내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 패악한 세대로부터 피해 달아나라"(사도 2,40). 바울로에게 있어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신과 "부르심을 받아 거룩한 백성이 된" 로마나 고린토 신자들을 다시 진리에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이 받은 부르심을 상기시킨다(로마 1,1;7; 1고린 1,1-2). 왜냐하면 그들을 한 공동체로 형성시켜주는 것은 이 부르심이기 때문이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이를 생각해 보십시오. 세속적인 견지에서 볼 때 여러분 중에 지혜로운 사람, 유력한 사람, 또는 가문이 좋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습니까 ?"(1고린 1,26). 바울로는 그들이 지나가 버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하나의 규범으로 "각각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 가십시오"(1고린 7,24)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신자의 생활은 하나의 불리움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령 안에서의 삶이며,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의 말씀이 들려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며, 또한 우리 안에 자녀다운 응답을 일깨워 주시기 위하여 "우리의 정신에 결합되어 계시기"(로마 8,16) 때문이다. 그리스도 신자들의 불리움은 성령께로부터 오며,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위한 유일한 생명의 원천이시므로, 그 유일한 부르심 안에는 "선물과 직무와 업적의 다양성"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은사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오로지 한 몸과 한 성령이 계실 뿐이다(1고린 12,4-13).
불리움을 받은 자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그 스스로 엑클레시아(Ekklesia), 즉 "불리움을 받은 자"이며 동시에 "선택된 자", 엑클렉테(Eklikt : 2요한 1장)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응답하는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은 신랑의 목소리를 듣고 "오소서, 주 예수여"(묵시 22,20)라고 응답하는 전체 교회의 유일한 부르심에, 각기 자기의 처지에 따라 응답하는 것이다.
<참고서적> * 사도 바울로의 생애와 편지, 이홍기, 분도 출판사, p.47 * 부르시는 하느님, R.파브리스, 성바오로출판사, p.15-19,148-157 * 부르심, 첸치니, 성바오로출판사 * 결혼성소와 수도성소, 박도식, 가톨릭출판사 * 부르심 받은 이야기, 마리아 로사 리푸리니, 가톨릭출판사 * 부르심과 응답, A.니콜라스, 성바오로출판사 * 너 나를 사랑하느냐, M.R.괴르니니, 성바오로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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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후원회(聖召 後援會)
.............................................................................< 가톨릭 대사전 >
중국어 : 聖召 後援會 라틴어 영어 : Vocation Promotion Association
사제 성소(聖召)의 개발과 육성을 돕기 위한 단체.
물질 숭배와 황금 만능의 풍조가 현대인으로 하여금 방향감각을 잃고 방황하게 하는 이 시대에 영신적인 차원에서 인간을 지도할 사제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 지원자의 숫자는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구별로 성소후원회(聖召 後援會)가 조직되어 성소(聖召)개발과 신학교 후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서울 대교구에서는 1969년 3월 가톨릭 여성 단체연합회 산하에 신학교 후원회가 발족되었고, 1970년 7월 18일에는 마산교구에 성소 후원회(聖召 後援會)가, 같은해 4월 19일에는 대구 대교구에 사제 양성 후원회가 발족된 이후 인천, 청주, 춘천, 제주 등에 각각 성소 후원회(聖召 後援會)가 조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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