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세레명에 대해서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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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호경 | 작성일2004-07-15 | 조회수549 | 추천수0 | 신고 |
+ 찬미 예수님 !!!
www. mariasarang.net에서 퍼온 글입니다. 미국의 한 가톨릭 사이트에 나온 내용도 거의 같은 내용입니다.
성녀 [마리안나]의 외국어 표기는 [Mariana]입니다. 그래서 발음상의 차이로 [마리안나 ; 이전 표기] 또는 다음과 같이 두분의 성녀가 계신데 축일이 언제인지를 교적에서 먼저 확인하셔야 님의 수호성인이 두분 중에
*영문 : Mariana (MARIANA of Jesus)
마리아나는 현재 가경자이며, 1577년 2월 17일에 스페인의 톨레도 주의 에스칼로나(Escalona)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마음과 정신이 탁월하게 맑았으며, 기도정신과 종교심이 뛰어났다.
결혼을 한 후, 며칠 지나지 않아서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되었다. 그래서 18세에 프란치스코회의 제3회에 가입하여 은둔생활과 극기생활을 하였다. 성프란치스코의 본을 따라 프란치스코 회원의 영적지도를 받아, 가난을 생활하고, 병약한 이들을 치료해주는 애덕의 삶을 추구하였다. 쉬임없이 기도와 묵상을 하였으며, 금식과 극기를 행하였다.
*영문 : Mariana (MARIANA of Quito)
성녀는 당시 에쿠아도르의 수도는 페루비안 마을인데, 이곳에서 그녀가 태어났고, 마리아나 파레데스 이 플로레스, 즉 '귀또의 꽃'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스페인 귀족 딸인데 젊은 나이에 귀천하였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신심이 뛰어나서, 언니들과 더불어 로사리오와 십자성로 바치는 것을 매우 좋아하였다. 12세 때에는 몇명의 친구들과 어울려 일본인들을 개종시키려다가, 귀또 교외 산에서 은수자로 살려는 생각이 떠올라 포기하였다. 그러나 이 일 역시 정치적인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 고해 신부인 예수회원의 지도를 받으면서 성당에 가는 일을 제외하고는 독수자처럼 생활하였다. 또 그녀는 관을 하나 마련한 뒤, 매 금요일마다 그 속에서 지내며 죽음을 묵상키도 하였다. 팔과 다리를 쇠사슬로 묶고, 고행자가 입는 말총 속옷을 입었으며, 가시관과 쇠못관을 만들어 고행하였다. 음식은 극히 소량만 먹었고, 물은 그리스도의 갈증을 느낄
1645년, 귀또지방에 지진과 더불어 전염병이 번졌다. 사순 제 4주일날의 강론을 들은 그녀는 자신이 백성의 희생물이 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나섰다. 지진은 멈추었으나 그녀는 26세의 나이로 운명하고 말았다. 그녀는 1950년 시성되었다.
시복 후보자에게 잠정적으로 주어지는 존칭. 시복조사가 교황청 예부성성에 접수되면 시복 후보자에게 이 존칭이 주어진다. 한국교회는 1857년에 처음으로 82명의 가경자를 갖게 되었다. 성인이 되기 이전에 [하느님의 종 → 가경자 → 복자 → 성인]의 단계를 거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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