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교회 제2시복시성운동 추진 현황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교황은 이때 103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을 성인으로 탄생시키는 시성식을 한국 땅에서 거행했다. 한국교회로서는 엄청난 은총의 시간이었다.
그 후 한국교회는 다시금 103위 성인에 포함되지 못한 초기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다. 특별히 2000년 대희년, 그리고 올해 신유박해 200주년이라는 역사적인 시기를 맞아 84년 시성식이래 줄곧 추진돼 온 제2 시복시성운동이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범교회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더욱이 이번 시복시성운동은 각 교구별로 별개로 이뤄져오던 것이 주교회의 주관 아래 통합추진되고 있어 더욱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제2시복시성 추진 작업은 시성식 전인 1982년부터 이미 시작됐다. 1980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 사업위원회의 '시복시성추진위원회'로부터 시작된 이 작업은 그러나 103위 시성식과 맞물려 중단됐었다. 그후 시성식 직후 재개된 시복추진은 총 98명의 초기 교회 순교자들을 선정해 1985년 5월 20일 '한국 천주교회 창립 선조 98위'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을 주교회의로부터 인준받았다. 하지만 청원서와 약전을 교황청에 제출했지만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이는 시복청원서를 제출하기 전에 먼저 '장애 없음(nihil obstat)'을 교황청 시성성에 신청하고 교회 법정에 관한 교령 발표를 해야 하는 절차상의 무지로 인한 것이었다. 이러한 절차 규정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완덕의 천상 스승'과 시성성의 '주교들이 행할 예비심사에서 지킬 규칙'에 의한 것이었다.
'200주년 시복시성추진위원회'가 성과 없이 해체되자 교구별 시복 추진 움직임이 시작됐다. 전주교구가 1987년 시복청원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윤지충 등 5명의 순교자들을 '하느님의 종'으로 신청하고 이듬해 9월 교황청 특별법에 따라 위원회를 구성, 청원서를 작성해 교황청에 발송했으며 4월 12일 시성성으로부터 시성 청원에 이의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어 청주교구가 1995년부터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1996년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에서 시복 추진을 인정받았다. 수원교구는 1996년 1월 윤유일과 주문모 신부 등 8명의 시복 추진을 결정하고 10월에는 교황청으로부터 장애 없음의 응답을 받았다. 수원교구는 이어 강완숙 골롬바 등 9명 순교자들의 시복을 한데 묶어 추진하기 시작했다. 한편 천진암에서는 이와 별도로 정약종을 비롯한 창립 선조 5명의 시복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대교구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을해, 정해, 병인 박해 순교자들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기 시작했고 교구 순교자 현양위원회를 구성해 1997년 11월 23명의 '하느님의 종'을 확정하고 이듬해 9월 교구장이 이들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을 선언했다. 한편 서울대교구는 한국교회사연구소가 1996년 31명의 순교자를 일차 선정, 시복시성 추진을 교구에 건의한 바 있고 순교자현양위원회도 꾸준한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다.
이처럼 각 교구별로 이뤄지던 시복 추진이 새로운 계기를 마련한 것이 1997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한국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시성 작업을 주교회의 차원에서 통합 추진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1999년 1월 처음으로 통합추진회의가 개최됐고 9월에 2차 회의가 열렸다. 회의에 참석한 각 교구 관계자들은 시성성의 특별법에 따라 해당 교구에서 예비심사에 필요한 모든 자료와 순교 행적을 조사하고 자발적인 현양운동을 전개하며 자료 통합과 시성성과의 연락, 청원인 선정 등은 주교회의 차원에서 추진하고 매년 주교회의 정기 총회 전에 통합 추진회의를 개최한다는 내용이 결정됐다. 이어 2000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는 시복시성 작업을 통합 추진할 청구인(actor)에 주교회의 사무총장 김종수 신부, 청원인(postulator)에 청주교구 배티성지 담임 류한영 신부를 임명했다.
12월 한국교회는 통합 추진에 관한 의견을 시성성에 문의, 공동추진을 위해서 한국 주교회의를 청구인으로 선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등의 의견을 담은 답변을 받았다. 이에 따라 주교회의는 주교회의 의장 박정일 주교를 시복시성을 공동으로 추진할 교구장 주교로 선출했다. 올해 6월 18일 제5차 회의에서는 추진 대상자 확인 작업과 확정을 위한 실무진 구성, 주교특별위원회 설치 문제 등이 논의됐고 앞으로 창립 선조들의 건, 103위 성인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순교자의 건, 최양업 신부와 김범우 등 증거자의 건 등 세가지로 묶어 진행시킨다는 안을 논의했다. 한편 각 교구에서는 이러한 통합 추진 작업과 함께 순교 행적 조사와 현양 운동이 이어졌다.
이제 한국교회의 시복시성 추진작업은 먼저 '교회 법정의 권한에 관한 교령'을 발표해 주도록 요청하고 '장애 없음'을 확인 받은 다음 시성 특별법에 따라 이를 추진해나갈 단계이다. 이를 위해 우선 한국교회는 '하느님의 종'을 정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 통합추진회의에서는 위원회를 구성해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아직 대상자 명단이 제출되지 않은 일부 교구의 순교자들이 정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교회의 시복시성 추진은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프랑스 선교사들의 주도로 이뤄졌던 103위 시성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한국교회가 주도적으로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시복시성운동이 한국교회로서는 더욱 자발적인 순교 신심을 함양하고 한국교회 순교자들의 순교 신심을 정착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성인들이 탄생함으로써 한국교회는 신앙적인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만 시복시성 추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참된 순교자 현양 운동이 정착되고 신자들의 순교 신심이 자리잡는 것이다. 따라서 시복시성운동이 교회 지도층이나 학자들에 의해서 이뤄지는 행정적인 절차로 끝나지 않도록 꾸준하고 지속적인 현양 운동과 신심 운동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자료: 가톨릭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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