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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 성서 이전의 가톨릭교회의 문헌들 카테고리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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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정제 쪽지 캡슐 작성일2004-12-31 조회수616 추천수0 신고

<<성서이전의 가토릭 , 혹은 유태교 문헌이 있는지~~~>>

라는 질문은 우선 잘못된 질문입니다.

 

왜냐하면

성전이란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말하는 것이므로

가톨릭교회와 함께 전수되어 온 것입니다.

 

하여 성전은

그리고 성전의 근고로 씌여진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이 저술한 서간(편지) 형식의 모든 문헌들은 가톨릭교회의 신앙을 증거한 것으로서 가톨릭교회의 토대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들이 어떻게 교회를 세웠는가를 잘 고찰해보면 또한 가톨릭교회의 정체성을 잘 볼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말씀들을 사도들이 서간 형식 혹은 에수님의 일대기(복음서) 등의 형태의 기록물로 남긴 것을 성서라 합니다.

 

성서에서도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것을 다 기록하였다고 하지 않았으며

기록되지 않은 말씀들은 사도들을 통해서 전하여 왔음을 보여 줍니다.

 

((요한복음20.30~31))

    

30 예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기적들도 수 없이 행하셨다.   

31 이 책을 쓴 목적은 다만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볼수 있듯

사도들은

여러 지방으로 복음선교를 다녔고

그 지방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교회가 성장을 하면 그 교회를 후계자에게 맡기고 다시 전교를 떠났으며 교회를 세우곤 하였지요.

하여 교회는 지역을 중심으로 세워졌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교회들 중 대부분은 다른 지역교회에 흡수되었습니다.

하여 초대교회부터 로마에 세워진 교회와

예루살렘에 세워진 교회, 안티오키아에 세워진 교회, 알렉산드리아(이집트지방)에 세워진 교회들이 크게 성장을 하였습니다.

 

이 중에서도

사도 베드로와 바울로가 순교하고 베드로의 후계자가 로마의 교회를 이끌어간 로마교회가 특히 성장하였으며 다른 교회들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때에도 교회는 신약성서를 가지지 않았으며

사도들이 쓴 서간문들과 사도들을 통해서 후계자(주교)들에게 전헤진 성전들을 근거로 신앙을 확립하여갔으며

이 신앙은 전례를 통해서 더욱 섬세하게 표현되어졌습니다.      

 

신약성서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언급하기로 하고, 

이렇게 기록되지 않은 말씀들을 근거로 사도 이후 사도들의 계승자들은 여러가지 글들을 남겼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100년도 경에 씌여진 <디다케>입니다.

 

다다케라는 책은 사도들의 가르침이란 제목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책에서는 보다 명확하게

주님의 날(주님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에 말씀을 선포하고 성찬을 할 것을 가르쳤으며

또한 침례(세례는 원래 사람을 물속에 담그며 주엇음)를 할수 없을 만큼 물이 없을 때에는 <이마에 물을 흘려내려 할수 있다>고도 하였습니다.

 

또한 100년도 이전에 씌여진

베드로의 4대 후계자인 클레멘스 교황의 서간

즉 로마의 클로멘스 서간이라는 서간집도 아주 유명합니다.

 

이 서간은 고린토 교회가 분열을 하면서 속을 썩히자

베드로의 후게자로서 로마 주교인 클로멘스가 고린토교회에 훈계를 한 서간이기도 합니다.

 

또한 유명한 것은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성인의 일곱편지가 있는데

이냐시오 성인은 안티오키아의 3대 주교로서 약 100~105년도경 로마로 짐승밥이 되는 순교를 당하러 끌려가는 과정에서 

당대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이 편지들중 <스미나르인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주교가 있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이  교회는 가톨릭=보편교회이다>라 하셨습니다.

 

이때부터  기독교의 교회 이름이 가톨릭회로 고착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왔으며

가톨릭교회란 바로 <기독교의 고유명사화한 교회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명한 분들 말고도 이후 계속 위대한 순교자겸 학자들이 등장하면서 성장하고 있는 교회를 더욱 성장할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주교들이자 학자들은 많은 저술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저술들은 성전을 근거로 사도들로 부터 전해진 신앙을 증거하고 전하기 위해서 씌여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성서를 찾아보고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신앙을 사도들과 그 후계자가 교회에서 가르치는 믿는 것입니다.

나중에 우리 교회에 의하여 신약성서로 확정된 바울로의 서간분에도 이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고린토 전서 15.1~3))

 1 형제 여러분, 전에 내가 전해 준 복음을 여러분의 마음 속에 되새겨 주려고 합니다. 이 복음은 여러분이 이미 받아 들였고 또 여러분의 믿음의 기초가 되어 있습니다.   

2 그러므로 여러분이 헛되이 믿는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내가 전해 준 복음 그대로 굳게 지켜 나간다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나는 내가 전해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하여

기독교는 유대교의 문헌이나 다른 어떤 것에 의하여 교리가 성립되지 않았으며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셨고

사도들이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근거로 형성되어진 것입니다.

나중에 이러한 전해받은 교리(복음)들의 확신을 위해서 신약성서가 가톨릭교회에 의해서 만들어 집니다.   

 

하여 초대교회 이후 약 370여년간은 신약성서라고는 없었습니다.

사도들이 복음서나 서간문들을 쓰기도 하였으나 사도들은 자기의 복음서나 서간들을 성서로 간주하지도 않았으며

초대교회에서는 구약성서(70인역) 중에서 집회서 등을 교리자료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유대교에서 가지고 있는

구약성서를 인용하여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것을 증거하고자 하였을 뿐입니다.

 

이 와중에서도 사도들이 편지나 복음서들을 써서 여러 교회에 전해지기도 하였고

여러 교회들은 이 사도들의 서간문들을 

전례(예배)에서 낭독하고 예수님의 말씀들을 선포하였으며 그 이후 성찬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사"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들은 모두 전례(예배=미사)를 거행하면서 정해젔습니다.

 

이러자 수많은 서간문들이 나돌았고 대부분은 가짜들이었습니다.   

교회는 이 가짜와 진짜 서간문들이 혼합된 것들 중에서도 진짜로 하느님의 영감으로 적혀진 사도 문헌들을 골라 교회의 책으로 삼기를 원하였는데

교황 다마소님이 376년도에 로마에서 교회회의를 소집하여 수많은 사도들의 문헌이라고 하는 것들 중에서

27권을 골라 신약성서로 확정하였고

이 결정은 동방의 다른 교회에서도 받아 들여졌습니다.

 

다시 397년 아프리카의 카르타고 교회회의에서 이 신약성서들은 교회의 확실한 책이라 거듭 천명되었습니다.

물론 376년 가톨릭교회가 교회의 책으로 결정한 것은 신약성서 외에도

유대교가 사용하는 히브리어 구약성서와 예수님과 사도들이 사용하신 그리스어 구약성서(이를 70인역 성서라 함)를 교회의 책으로 확정하였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하느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가르칠 권한=교도권"으로 성전과 성서를 하느님의 계시를 담은 최고로 거룩한 보화로서 오늘날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성서가 결정되기 전에 이미

가톨릭교회에는 로마신경이라고도 하는 신앙고백문을 세례전에 고백하여왔으며

이 로마신경은 세월이 흐를수록

교회안에서 밝혀진 주님의 가르침을 신조문 형식으로 발전시키면서 전례안에서 고백하여 왔는데

이것이 사도신경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에 전해진 하느님의 계시들은 새월이 흐를수록 보다 명확하게 그 내용이 밝혀져 교리로 확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로 부터 전수되어져 우리 교회가 믿는 가장 중요한 교리들을 12개로 요약하여 놓은 것입니다.

마치 신약성서가 교회의 책으로 결정되기까지 약 370여년이 흐른 것 처럼 말입니다.

 

신약성서가 확정되기 이전에 씌여진 책들은 위에서 몇가지 언급한 것들 외에도

100년도 초중반의 헤르마스의 목자,

100년도 초중반의 폴리카르투스의 <편지와 순교록>

210년도~250년 사이의 치프리아누스의 <도나투스에게, 가톨릭교회의 일치, 주의 기도문>

등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문헌들은 우리나라에서도 대부분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 베네딕토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분도출판사의 교부문한 총서라는 시리즈로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문헌들은 초대교회이후 교회가 전해받은 신앙을 증거하고 전하기 위해서 씌여진 것이지만

간혹 주관이 섞인 난해한 것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도

교회는 세상을 인도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힘입어 복음을 전하고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계속 순교의 길을 밟아 왔습니다.

로마제국에서 순교가 공식적으로 멈추었을 때는 305년도 경입니다.

 

또한 성서 이전의 교회의 정통성과 존립역사를 증명하는 것으로는 각 교회의 족보

즉 사도로부터 세워진 교회의 교구장 주교의 족보들이 있습니다.

 

특히  모든 지역의 가톨릭교회의 중심이 되었단  

로마교회의 교황의 족보들은 베드로 이래 게속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집니다.

 

베드로이래 베드로의 계승자들인

로마교회의 주교(교황)족보야 말로

로마교회의 사도성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한번 올린 것이지만

성경이 확립이 되기 전인 300년 중반까지의 전체가톨릭교회의 중심이며 기둥이었던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황 족보^^를 아래에 실어 드립니다.

 

  ((((교황연대)))

괄호안의 숫자은 교황 재임기간임


1. 베드로===>순교
2. 리노(64~79년)==>순교
3. 아나클레토(79~92<90?>) 순교
4. 클레멘스1세(90<92>~101) 순교

===>저서 클레멘스의 서간이 남아있음

5. 에바리스트(101~107)==> 순교
6. 알렉산더1세(107~116)==>순교
7. 식스토1세(116~125)
8. 텔레스포르(125~138)==>순교
9. 하지노(138~142)
10 비오1세(143~155)==>순교

11 아나체토(155~165)==>몬타누스파를 이단으로 규정

12 소테로(166~174))==>순교

13 엘레우테리오(174~189)==>몬타니우스 이단과 투쟁

14 빅토리오1세(189~199)==>소아시아 교회에게 로마교회와 같은 전례력(교회력)을 가질 것을 명령, 소아시아 교회들은 로마교회와 같은 교회력을 가짐

15 제피리노(199~217)==>사벨리우스 이단과 투쟁

16 갈리스트(217~222)==>노예출신 교황~~>
이때 이분이 노예출신이라는 것을 비방하여
자기스스로 교황이라는 자가 등장(이를 공식 교황과 비교하여 "대립교황"이라 함) 이자 이름은 히폴리토(217~235)

17 우르바노(222~230)
18 폰시아노(230~235)==>순교 (이때 대립교황도 함께 순교)

19 안테로(235~236)

20 파비아노(236~250)==>로마교회를 일곱개의 지역으로 나누어 부제(봉사자)를 파견, 순교

21 고르넬리오(251~253)==>배교자의 죄를 용서해 주며 다시 교회로 받아들임. 순교, 대립교황 노바시아노 등장하였으나 공의회에서 파문됨

22 노바시아노(251~258) 대립교황==>파문 됨

23 루치오1세(253~254)==>로마황제에 의히여 추방됨 황제 사후에 복귀함

24 스테파노254~257)1세==>재세례주의자들과 논쟁, 재세례파 단죄

25 식스토 2세(257~258)==>제세례파 단죄. 순교

26 디오니시오(260~268)==>성자종속설 주장자 단죄

27 펠릭스1세(268~274)==>성자종속설 단죄
28 에우티키아노(274~283)
29 카이오(283~296)

30 마르첼리노(296~304)==>배교자라는 누명을 받음,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 이 누명이 벗겨짐

31 마르첼로 1세(307~309)==>황제에 의해서 귀향감 거기서 순교

32 에우세비오(309~310)==>황제에 의하여 귀향감 거기서 순교

33 멜키아데스(310!314)==>종교의 자유를 획득한 시기의 교황
도나투스파 이단단죄
신앙의 자유의 기념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교황에게 라테란 궁전을 선물로 줌.

34 실베스테르(314~335)==>도나투스 이단 단죄,
황제가 소잡힌 공의회를 인정하지 않음.
황제가 선물한 라테란궁전을 라테란 대성당으로 건축함 그리고 바티칸 언덕의 베드로 성당을 재 건축함.

33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콘스탄티누스의 도시)로 옮김=천도

35 마르코(336)

 

** 글이 너무 길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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