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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성배 쪽지 캡슐 작성일2006-09-02 조회수445 추천수0 신고

안산홍증인회 카페에서의 펌글을 올립니다.


아래글 내용 중 어느 부분이 틀렸나요? 가르쳐 주세요.

 

 

초대교회 이후 2세기경의 교부들과 문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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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부명 내용 _
<이그나티우스> 안디옥 교회 감독.(사도 요한의 제자)
유대인 반란 전쟁과 관련 ,로마에서 반역죄로 원형 극장에서 순교.
(AD37-115년) "마그네시아 교회에게 보내는 서한"중.

"더 이상 안식일을 위해 살 것이 아니요. ... 주님의 생명에 의해 살것이니..."

 

★진본 서한: 절대로 일요일에 관하여 신성시 하여 진술한 곳은 없다.

 

★위조증보 서한: 일요일을"주의 날"이라 했는데 주의 날(쿠리아케 헤메라)에서 명사 "헤메라"(날)이 없이 형용사 형 낱말만 가지고 "주의 날"이라고 표현됨

(특징)유대인식 안식일준수 방법을 반대한 것이지, 날짜 변경론을 교시한 것이 아님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의 명의로 된 위서에만, "주의날" 이란 표기로 된 단어가 발견된다
(진본서한에는 절대로 일요일 신성 흔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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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 서신> 작가 미상.

(위경서) 저자가 바울의 동료 바나바가 아님.
AD135년경
일요일을 신성한 날로 예배할 것으로 주장.

이 책의 내용에 "디다케"의 내용이 들어있는 것을 보면 이 책 연도가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117-178년) 이전으로 볼 수 없다
교회역사가 유세비우스도 이 책을 불경한 책으로 배척했음.

※오늘날 모든 학자들이 위조서로 인정.

(특징)이 서신에도 어떤 형태로든 결코 "주의 날"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일요일을 "오그도에스"(제8일)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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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스티누스> 순교자로서, 최초의 일요일이란 이름을 최초로 사용한 그리스도교 변증 신학자.

150년경.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에게 보내는(114-165년) 그의 변증서 1권 67장.

 

<로마시의 그리스도인들도 이 태양의 날을 성일로 회집한다고 변증한 것을 볼수 있음>

반 유대주의 사상가로 황제의 환심을 살려고 쓴 것 같음.

"태양이라 불리운 날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회집합니다."

 

(요약) 여기서도 제 8일째날이라고 했으며 "주의날"이라고 호칭하지 않았다. 그 뒤 현대 학자들이 번역하면서 "태양의날"을= "주의 날"로 바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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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다케> 작가 미상.

(Didache) "12사도 교훈"이라 불리우며 교리연구안내서.
(위경서) 교리문답의 형식으로 모두 16장으로 되어
2세기말? 있음.
"유세비우스"는 위조책으로 분류함.

 

디다케14장1절: "주의 , 주의 것에 따라, 다 모여 떡을 나누며, 애찬을 베풀고...(직역한다면 이렇게 되어 있음)"

그 뒤 현대 학자들이 재판하면서 의역하여 아래와 같이 번역했다.

"주의 날에 다 모여 떡을 나누며 애찬식을 열고..."

 

헬라어 본문에는 "날"(헤메라:day)이라는 명사형 낱말이 없다:主의"라는 형용사"쿠리아켄"(Lord's)다음에 명사 "날"이 있는 것으로 하여 번역하고 있음.

 

(특징)그러므로 이 책이 "주의 날"이 일요일이라 증거하는 책이라 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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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 알렉산드리아 교회 감독. 신학자. (153-216년)

일요일 신성론 선구자
최초로 일요일을 주의 날로 기록함.


일요일 신성론 학자들이 이 클레멘트 서신을 일요일 신성을 뒷받침 하려고 인용하는 이유는, 24장에서 27장까지 부활에 관해 다루고 있기 때문.


그러나 부활한 날짜와 일요일예배에 관한 말은 전혀 없다

 

(특징) 이곳에도 일요일 예배에 대한 언급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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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복음서> 1886년경 이집트의 수도승 골방에서 발견.(175-185년경?)

 

유세비우스는 이 문서를 이단적인 것으로 정죄했음.

이 문서에도 일요일을 "주의 날"이라는 의미로 쓰여 있으나, 디다케 문서와 같이 주의 날에서 날이 빠진, 형용사"주의" 라는 말만 가지고 "주의 날"이란 의미로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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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고 플리니우스(62-112AD)의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왕복 서한에도, "...그들은 "정해진 날"에 새벽에 모여 그리스도에 대하여 마치 신에 대하여 하는 것처럼 차레로 노래를 부르고..."

 

여기서도 이 정해진 날(stato die)이 아마 일요일(dies Solis) 이 아닌가라고 생각되지만 그의글 과 다른 학자들의 글을 종합해보면 그날이 그 집회일이 일요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결론(1):(일요일이 경배의 날로 나타나는 요인)

 

1)로마의 반 유대정책의 관계로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이 아니라고 변증하다가 황제의 환심을 살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사회상이 교부들의 문서에서 나타난 것임.

2) 일요일이 예배일이라고 하고는 있으나,, 태양의 날 또는 제8일로 나타내고 있음
3)원본에는 주의 날이라고 되어 있지 않는데 현대학자들의 재본에서 오역되고 있음
4)결론적으로 고대 현대 일요일 신성론 학자들이 억설, 위증, 원본의 오역 문제임.

 

결론(2)
그리스도인들을 전멸시키려던 1차 작전에 실패한 사단은 이제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를 통해서 그의 두 번째 전략은 이제는 핍박이 아니라, 온건 정책으로서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발표하고 기독교를 공인하고 교회에 자유를 선포했다.

이 때부터는 자유는 좋았지만 이제는 교회에 세속과 타협으로 부패되어 이방종교의 풍습과 오류들이 서서히 교회안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 가운데 살펴본 결과 기원 132년 유대인 발코체바 폭동 이전에는 일요일을 지켰다는 기록을 찾아 볼수없습니다.

이 반란 이후 로마인들은 유대인들을 더욱 박해하기 시작했고 유대인 취급받은  기독교인들은 같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부자유스러워지게 된 것입니다

 

아래 책에도 살펴봅시다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피하기 위하여 예배를 새벽이나 혹은 밤중에 비밀리에 행하였습니다", "일요일은 안식일이 아니었지만 데틀리안 시대인 기원 200년경에도 일요일을 휴업하고 즐거운 날로 지킬 것을 장려했다."
(송낙원 .저 -기독교회사-82페이지)

 

그 후, 그래서 콘스탄딘 황제 등극 이후 , 1)법률 개정 2) 교회법에 국가의 공인 3)일요일 휴업령 4)신앙자유허가 등이 실시되었지요.


그는 일요일 법령을 반포할 당시에 그는 일요일을 주일이라 부르지 않고 " 존경할 만한 태양의 날에" 라고 불렀던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321년 3월 7일 ==일요일 휴업령을 공식적으로 발표 <콘스탄틴 황제>
325년 니케아 총회==일요일을 주의 날이라고 호칭하며 부활절이라고 성수토록 결의(343년 사르디카 회의에서도)

364년 라오디게아 총회==일요일 준수가 국법과 종교 총회에 의해 교회법으로 강요됨 .<종규 제 29조내용>

 

이렇게 해서 오늘날까지 이름.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뀐 것이 지금부터 약 1600년전의 일이므로 일요일 개신교의 역사책에서 그 기초를 찾을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으며 오직 천주교의 역사의 자료에서만 변경 흔적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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