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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새로 번역안 성경과 공동번역 성경의 다른점 카테고리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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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죽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6-10-17 조회수748 추천수0 신고
새 번역 [성경] 발행 작성일 05-10-12 15:40
참고하세요. 주교회의 소식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본문’에 충실한 번역과 한국 천주교회의 공용 성서를 목적으로 우리말 완역 신구약 합본 성경을 발행하였습니다.

주교회의 1988년 추계 정기총회에서 가톨릭 구약성서 번역 사업을 성서위원회에 추진하도록 하였으며, 이후 임승필 신부를 성서위원회 총무에 임명하여 1992년 6월 「구약성서 새 번역 1 - 시편」을 시작으로 낱권 성서를 출간, 1999년 12월 「구약성서 새 번역 18 - 마카베오 상하」를 끝으로 구약성서의 새 번역을 마쳤습니다.
이어 2000년 10월 신약성서 번역 위원을 위촉하여 2001년 7월 「신약성서 새 번역 1 - 마태오 복음서」를 시작으로 2002년 12월 「신약성서 새 번역 10 - 요한묵시록」을 출간함으로써 신약성서의 새 번역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1990년부터 2002년까지 26차례의 히브리 말․그리스 말 본문 대조 독회와 34차례의 신구약 우리말 독회를 거쳐, 18권의 구약성서 새 번역과 10권의 신약성서 새 번역을 모두 출간한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03년 3월 임승필 신부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2003년 5월, 공석인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성서번역 담당 총무에 이기락 신부가 임명되었고, 2003년 6월 ‘새 번역 성서 합본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이어 그해 7월에는 ‘새 번역 성서 합본 실무반’을 구성하여 「신구약 성서 새 번역」 윤문과 용어통일 작업을 하였습니다.
주교회의 2005년 춘계 정기총회에서는 새 번역 성서에 「성경」이라는 제목을 붙여 공용 전례 성서로 사용하기로 결정하되 3개월의 기간을 두고 우리말을 좀더 다듬도록 하였습니다. 이에 윤문위원회를 임시로 구성, 2005년 4월 7일부터 5월 24일까지 12차례의 모임을 갖고 신약 성경 전체와 시편을 검토하여 합본위원회에 수정 제안을 하였으며, 2005년 6월 27일부터 30일까지 합본위원회 위원들과 실무반이 같이 모여 최종 번역문을 확정하였습니다. 마침내 2005년 9월 20일 새 번역 「성경」을 발행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 번역의 과정과 발행 계획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는 1988년 7월 12일과 1989년 2월 28일에 성서학자 회의를 열고, 고 임승필 신부를 번역 전담 총무로 선임하여 성경 번역진을 구성한 뒤, 1989년 7월 4일에 열린 번역위원회 회의에서 번역의 원칙과 절차를 정하였다. 그 세부 원칙은 번역 작업과 병행하여 마련해 왔다.

대원칙
새 성경은 ‘본문’에 충실한 교회 공용 번역본의 완성을 목표로 한다. 곧 새 「성경」은 두 가지 목표를 지닌다. 첫째는 가능한 한 성경 ‘본문’에 충실한 번역이다. 둘째는 교회 공용으로 전례에서 사용하는 번역본이다.

번역 대본
구약성경의 히브리말 부분은 스튜트가르트 히브리말 성경(BHS: Biblia Hebraica Stuttgartensia, 히브리말 본문을 출판하면서 판면 하단에 본문 비평의 각주를 덧붙인 성경)에 실려 있는 마소라 본문을 그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부분은 원칙적으로 괴팅겐 칠십인역 성경(Septuaginta: Vetus Testamentum graece auctoritate Societatis Goettingensis editum)을 그 대본으로 삼았다.
신약성경은 세계성서공회가 발행한 그리스말 신약성경(The Greek New Testament 4th edition, The United Bible Societies, 1993년)을 그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번역 과정
번역 위원은 각자 나누어 맡은 부분을 개별적으로 번역하고, 이 번역 초안은 일차로 번역 위원들의 독회를 거쳐 수정하였으며, 이차로 우리말 위원들의 독회를 거쳐 수정하였다. 우리말 독회에는 번역자와 성서위원회의 번역 전담자들도 참여하였다.

번역과 관련된 제반 사항에 관한 결정권은 번역 위원회가 가졌다. 따라서 번역 위원들의 독회는 자문 역할이 아니라 결정 역할을 하였다. 다만, 번역과 수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위원회가 번역자에게 (명시적으로 또는 함축적으로) 일정한 결정권을 위임하기도 하였다. 번역 위원회의 위임을 받아 국어를 다듬는 우리말 위원회는 경우에 따라서 번역 위원회를 대표하는 이들과 함께 우리말에 관한 결정을 내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번역 위원회에 수정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독회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번역 원칙들을 다듬고 수정하여 왔다. 그런 다음에 단행본으로 출판하는 과정에서 책임 번역 위원이 한 번 더 교정하는 작업을 하였다.

성경의 책 하나하나가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번역되는 대로 단행본으로 출판하였다. 이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번역을 그때그때 선보임과 동시에 번역에 대한 비판과 비평을 수렴하여 추후의 완본에 반영하려는 것이었다.

신구약 성경 전체가 28권의 단행본으로 출판된 다음에 번역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들을 전국적으로 수렴하여 최종 수정과 윤문 작업에 반영하였다. 시편, 욥기, 잠언 등은 그러한 의견들을 수렴하여 단행본의 개정판을 내기도 하였다. 그 동안 새 번역 성경 단행본은 10여 년에 걸쳐 10만 부 이상이 배포되었다. 그리고 지난 해 가을에는 각 교구와 대신학교, 수도회, 성서 모임 등에 새 번역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2004년 11월 23일에 새 번역 성경 공청회를 열고, 그 자리에서 제시된 의견들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하였다.

성서위원회는 또한 합본 위원회와 합본 실무반을 구성하여, 번역 원칙과 세부 사항들을 다시 검토하고 다듬은 뒤, 이를 신구약 성경 전체에 일관성 있게 적용하려고 노력하였다. 합본 실무반에서 성경 전체를 다시 읽고 용어들을 일관성 있게 통일하고 문장을 다듬은 다음에 합본 위원회에서 이를 확인하였다. 합본 위원들은 각자 나누어 맡은 성경을 다시 검토한 다음에 회의를 열어 이를 낱낱이 검토하고 수정하였다. 복음서의 경우에는 새 번역 성경 공청회가 끝난 다음에 이러한 과정을 한 번 더 거쳤다. 이러한 합본 작업 과정에서 또 우리말 전문가들에게 성경 전체를 통독하여 평가와 수정 의견을 제시하여 주도록 위촉하였다.

공용 성경의 채택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5년 춘계 정기총회(3월 7-10일)에서 “1988년부터 시작하여 15년 이상 한국 천주교회의 여러 성서학자들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원문에 가깝게 완역한 새 번역 성서를 ‘성경’이라는 제목을 붙여 가톨릭 공용 성경으로 채택”하였다. 그러나 공용 성경으로 발행하기 전에 3개월의 기간을 두고 우리말을 좀더 다듬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로 하였다. 이 결정에 따라, 성서위원회의 임시 기구로 윤문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 윤문위원회에 우리말 감각이 대단히 뛰어나다는 명성을 지닌 유만근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신자가 아님에도 참가하여 귀중한 의견들을 제시한 것이 특기할 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윤문위원회는 4월 7일부터 5월 24일까지 열두 차례의 회의를 열고 신약 성경과 시편의 우리말 표현에 대한 수정 제안을 하였다. 이 제안을 합본위원회가 검토하여 최종 번역문을 확정하였다.

성경 본문과 우리말의 문제
성경 본문에 충실한 번역과 교회 공용으로 쓸 수 있는 번역이라는 새 성경의 두 가지 목표는 현실적으로 서로 조화를 이루기가 어려운 지난한 작업을 거쳐야만 하는 것이었다. 본문에 충실하다 보면 우리말이 매끄럽지 못하고, 부드럽고 좋은 우리말을 중시하다 보면, 공동 번역의 예에서 보듯이, 불완전한 번역이나 오역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성경 본문에만 충실하고 우리말에서 멀어진다면, 또 한편으로 성경 본문에 충실하지 못한 채 우리말만 번지르르하게 다듬는다면, 새 번역의 의의를 찾지 못하는 난제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번역 위원들과 우리말 위원들, 합본 위원들과 실무진은 언제나 이 두 가지 목표를 염두에 두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우리말이 아주 부드럽지는 못하다 하여도 성경 본문의 뜻을 제대로 옮기고, 아무리 본문에 짜 맞추어도 우리말이 되지 않을 때에는 최소한의 가감으로 의미를 살려 옮겼다. 물론 여러 사람의 끊임없는 손질을 거쳐야 반드시 번역문이 나아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필요한 과정을 모두 거치며 가능한 노력을 다하였기에, 이 두 가지 목표에 어느 정도는 가깝게 다가섰다고 보인다.

단행본 일부에서 쓰였던 예스러운 표현들은 운문에서 “-- 소서.” “--리라” 등 한두 가지만 예외적으로 남기고, 산문에서는 모두 요즘의 어법으로 고쳤다. 시편도 그렇게 수정하였다.

편집 원칙
1. 성경 각 책의 순서는 새 대중 라틴 말 성경(Nova Vulgata)을 따른다. 다만, 마카베오기 상하권은 공동번역 개정판처럼 역사서 맨끝, 곧 에스테르기 뒤에 두었다.
2. 이 성경에는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각주만을 붙인다.  
3. 우리말은 국립국어연구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삼는다.
4. 외국말 고유명사와 외래어 표기는 정부에서 발표(문교부 고시 제85-11호, 1986.1.7.)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되, 주교회의에서 확정한 용어와 공동 번역 등 현대 성경 번역에서 널리 쓰이는 관용을 폭넓게 존중하면서, 번역위원회에서 정한 원칙에 따라 음역하고 고딕체로 표기한다.
5. 히브리 말 “야훼”는 “주” 또는 “주님”, 때에 따라서는 “하느님”으로 옮기고, 굵은 고딕체로 표기한다. 다만, 하느님께서 직접 이름을 계시하시는 곳에서는(탈출 3,15; 6,2 등) “야훼”를 그대로 썼다.
6. 히브리 말 ‘기름붓다’에서 나온 특수 명사 “기름부음받은이”와 예수님을 가리키는 칭호 “사람의 아들”은 고딕체로 표기한다.
7. 히브리 말, 그리스 말 도량형은 원칙적으로 음역하여 옮긴다. 부록에 제시한 도량형의 환산은 기본적으로 로쿰 방식(Ökumenisches Verzeichnis der biblischen Eigennamen nach den Loccumer Richtlinien)을 따른다.
8. 한 문단에서 “너”와 “너희”가 섞여 나올 때에는, 되도록이면 “너희”로 통일하였다.
9. 신약성경의 각주에 기재한 구약성경의 구절들이 우리 성경 본문과 다른 경우는, 기본적으로 칠십인역 성경을 바탕으로 삼은 것이다.

번역에 참여한 분들
지금까지 성경 새 번역 작업에 참여한 분들은 다음과 같다. 성경 번역의 초안을 위원 개인이 마련하기는 하였지만, 여러 위원들이 독회를 비롯한 여러 차례의 수정 작업을 공동으로 수행하고, 성경의 단행본 출판에 따라 10여 년 동안 전국적으로 의견을 수렴하였기에, 새 번역 성경은 한국 교회의 공동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서위원회 위원장: 강우일 주교, 이병호 주교, 장익 주교, 권혁주 주교
번역 전담자: 고 임승필 신부(총무), 정태현 신부
번역 위원: 김건태 신부, 김민수 신부, 김영남 신부, 김학무 신부, 민병섭 신부, 박광호 신부, 범선배 신부, 신교선 신부, 심용섭 신부, 안병철 신부, 이기락 신부, 이영헌 신부, 정영한 신부, 정학근 신부, 황봉철 신부.
우리말 위원: 강대인(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구자명(소설가), 민병숙(외화 번역가), 배봉한(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신애경(성서위원회), 유혜숙(성서위원회), 이광호(서울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 이승화(한글학회), 이안구(서울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 일본 교토대학교 박사과정), 이우식(성서와 함께), 이해인 수녀(시인,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정양완(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최용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합본 위원: 이기락 신부(총무), 김영남 신부, 신교선 신부, 정학근 신부, 홍승모 신부. 합본 실무반: 강대인, 배봉한, 신애경, 심은영.
통독 위촉: 심재기(서울대학교 명예 교수, 전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이안구(서울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 일본 교토대학교 박사과정)  
윤문 위원: 심재기 교수(서울대학교 명예 교수, 전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성찬경 교수(성균관대학교 명예 교수), 유만근 교수(성균관대학교 명예 교수), 구자명(소설가), 강대인. 신애경.

성경 새 번역을 논의한 1988년과 1989년의 성서학자 회의들에는 정양모 신부, 김병학 신부, 서인석 신부, 백민관 신부가 참석하여 매우 유익한 의견들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위에 적은 번역 위원들과 우리말 위원들은 처음에 번역 임무를 분담하여 작업하다가 개인 사정 등으로 번역 전담자에게 분담 과제를 넘겼거나 독회에만 참석한 분들도 있고, 마지막 독회 때까지 참여하지 못한 분들도 있다. 어떻든 1980년 말과 9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있던 거의 모든 성서학자들을 모시고 성경 번역 작업을 해왔다.
그리고 이명순 님께서 성경 제목의 글씨를 써 주셨다.

발행 계획
새 성경은 우선 4․6배판과 국판으로 본문을 전단 조판하여 펴낸다. 그런 다음에 신자들이 쓰기에 편리한 여러 판형으로, 또 본문도 2단 조판하여 발행할 계획이다. 그리고 단행본으로 발행된 낱권 성경의 각주와 해제를 재정리하여 덧붙인 합본 각주 성경도 펴낼 계획이다. 또한 새 성경의 전례 사용을 위하여 “미사 전례 성서”(독서집)의 재편집을 성서위원회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편집진에 맡아, 전례위원회의 감수를 거쳐 주교회의 2006년 춘계 정기총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재편집 작업이 이루어진다면, 내년 상반기에는 새로운 “미사 전례 성서”가 발행되고, 주교회의 총회의 승인을 거쳐 사도좌에 보내 인준을 요청할 것이다.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완역 합본 성경을 발행하는 이 뜻 깊은 작업에 온 교회가 참여하고 협력한다는 의미에서, 새 성경의 인쇄 제본 작업도 가톨릭출판사와 분도출판사에서 나누어 맡도록 하였다. 새 성경의 제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교회 출판사들이 직접 한다는 것은 교회의 출판 문화 발전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성경의 보급 또한 지역별 총판 형태로 위 두 출판사가 맡기로 하였다. 가톨릭출판사는 대전교구를 제외한 서울관구에, 분도출판사는 대전교구와 대구관구, 광주관구에 성경을 보급하도록 하였다. 물론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직접 보급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것은 예외적으로 제한적인 수량에 그칠 것이다. 새 성경은 올해 대림 제1주일인 11월 27일부터 “매일 미사”에 수록하여 전례에서 사용될 것이다.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는 미사 전례 성서가 발행될 때까지 본당 공동체의 전례 거행을 위하여 현재 “매일 미사 고유 기도문”을 만들어 배부하듯, 그달 전례에서 사용할 성경 본문도 따로 만들어 각 본당에 무료로 나누어 드릴 계획이다.

바뀌는 성경 제목


‘성경’이 더 적합한 말

주교회의 총회는 성서위원회에서 제출한 새 번역 성서를 공동 번역 성서 대신 공용 성서로 채택하여 이를 전례용 성서로 사용하자는 성서위원회의 제안을 논의하면서, 먼저 새 번역 성경의 명칭에 관한 의견 교환을 하였다. 앞으로도 성경을 새로 번역하거나 개정하여야 할 경우도 있을 터여서, ‘새 번역’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기로 하였다. 그리고 성서와 성경이라는 말(Biblia Sacra 또는 Sacra Scriptura)을 같은 의미로 써 왔지만, ‘서’보다는 ‘경’이 좀더 적합하다고 보아 ‘성서’가 아닌 ‘성경’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로 결정한 것이다.  

우리가 전례에서 공동 번역 성서를 사용한 뒤, 우리 귀에는 “성서”라는 말이 익어 왔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가톨릭이든 프로테스탄트이든 처음부터 “성경”이라는 말을 써 왔다. 천주교 용어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주교회의에서 확정한 공용어에서도 “성서”와 “성경”을 함께 쓰기로 하였다. “성경”이란 종교상 신앙의 최고 법전이 되는 책 또는 교리를 기록한 경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특히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서와 똑같은 의미로 써 왔다. 그러나 사람마다 자신의 언어 습관이나 느낌에 따라, 그 두 말에서 어감의 차이를 느낄 수도 있다. 동양의 전통에서 유교의 경전인 사서오경을 두고 어떤 책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거나 더 종교적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으나, 일반적인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불교의 경전들은 대개 다 “경”이라고 한다. 한편으로, 일반인들은 성경이라는 말에 더 익숙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는 성서라는 말이 더 친근하다고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는 어느 말이 옳고 그르냐 하는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할 것이다. 어떻든 주교님들께서는 “성경”이 종교적으로 더 의미 있는 말이라고 보아 공용 성서의 제목으로 “성경”을 선택하신 것이다.

탈출기

이번에 채택된 공용 성경에서는 각 책의 제목도 몇 가지를 수정하였다.  
먼저 공동 번역 성서의 출애굽기를 “탈출기”로 바로잡았다. 본디 히브리어 성경 제목은 고대 근동의 방식에 따라 그 책의 첫 낱말로 불리지만(이를테면, 창세기는 ‘한처음에’: בראשית), 그리스어를 비롯한 여러 말로 옮겨지면서, 그 내용이 지금처럼 제목에 드러나게 되었다. 모세오경의 둘째 책인 탈출기는 그 첫 말마디인 “그리고 이것들은 이름들”(ואלה שמות), 또는 이를 줄여서 “이름들”로 불린다(우리말에서는 첫 문장의 끝에 “…… 이름은 이러하다.”로 옮겨진다).

그러나 히브리 말 성경을 그리스말로 옮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유다인 번역자들은 이 책의 내용에 따라 ‘나감, 탈출’을 뜻하는 ‘엑소도스’(Exodos)를 제목으로 붙였다. 라틴 말과 현대 서양 언어들에서도 이 제목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한자말로, Exodos에 해당하는 ‘출(出)’과 이집트를 음역한 ‘애굽’ 또는 한자 표기 ‘애급’(埃及)에, 일의 내력을 기록한 문서를 뜻하는 ‘기’(記)를 덧붙여 이 책의 이름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자식 명칭은 이제 버려야 한다. ‘출’을 맨 앞에 세우는 것은 명백히 중국식 조어법이다. ‘애굽’ 또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집트에 해당하는 한자말은 ‘애급’(埃及)인데(국어 사전과 선종완 신부 번역본 참조), 우리는 현재 이 나라 이름을 ‘애굽’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를 우리말 어법에 맞게 고친다면 ‘이집트 탈출기’가 될 것이다(생명의 말씀사 판 「현대인의 성경」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그러나 Exodos는 과거에 한 번 이루어진 이집트 탈출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이미 구약성경 시대에 제2 이사야는 하느님의 백성이 바빌론에서 귀향하는 것을 ‘제2의 Exodos’로 표현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영성에 따르면, 모든 인간의 여정은 완전한 해방을 향한 Exodos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우들을 보더라도 계속 ‘출애굽’과 ‘출애굽기’라는 개념과 제목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결론적으로, ‘일정한 환경이나 구속에서 빠져 나감’을 뜻하는 일반적인 개념인 ‘탈출’을 쓰는 것이 더 마땅하다고 여겨지므로, 우리는 Exodos라는 말의 뜻과 이 낱말을 제목으로 선택한 이들의 의도를 살려 ‘탈출기’라 부르기로 한 것이다.

코헬렛

그리고 전도서를 “코헬렛”(קהלת)으로 바꾸었다. ‘전도서’(傳道書)라는 한자로 된 책 이름은 1장 1절의 코헬렛이라는 히브리말에 기인한다. 유다교에서 시작하여 예로니모를 거쳐 루터에 이르는 전통 중의 하나는 이 낱말을 ‘전도자’, ‘전도사’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전통을 동양권에서도 받아들여 이 책을 전도서라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붙여진 책 이름은 논리적이라 할 수 없다. 본디 ‘전도자/전도사’에 ‘서’를 붙여 ‘전도자서’ 또는 ‘전도사서’라 해야 했다. 그러나 그냥 전도서라는 이름을 붙여, 이 책이 이를테면 종교의 도리를 전파하려고 집필된 책으로 오해될 여지가 생겼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공동 번역 성서는 코헬렛을 “전도자”라 하지 않고 “설교자”로 번역하였다. 그렇다면 이 책의 이름은 “설교서”, 더 정확하게는 “설교자서”라 하여야 했다.

그러나 코헬렛의 뜻이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이 낱말은 ‘집회’, ‘회중’, ‘국민 공동체’ 등을 뜻하는 ‘카할’의 동사형 ‘모이다’의 단순형 여성 단수 분사이다. 그래서 이 낱말은 집회를 이룬 공동체 안의 어떤 직책이나 직능, 더 나아가서 이 직책/직능을 맡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칠십인역은 우리말로 음역하여 에클레시아스테스(이대로 책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곧 ‘회중’, ‘교회의 구성원’으로, 히브리 성경을 라틴말로 번역한 예로니모는 ‘연사’(演士, concionator)로 옮긴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코헬렛은 ‘집회의 의장’ 또는 ‘집회의 연사’라는 뜻을 지녔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이 밖에도 ‘수집가’, ‘수집 책임자’, 또는 ‘대변인’으로 옮기는 학자들도 있다. 원뜻이 어떠하였든 간에 코헬렛은 일반 명사에서 출발하여, 이 명칭을 지닌 이의 가명 또는 제자들이 부르던 호칭이 되고, 그럼으로써 이 현인의 이름처럼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뜻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근래에 와서는 코헬렛을 번역하지 않고 음역하는 경향이 짙은데, 이는 옳은 추세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말에서도 책 이름이자 동시에 본문에도 나오는 이 명칭을 일관성 있게 ‘코헬렛’으로 옮겼다.

신약성경의 서간 제목

현재 신약성경의 서간 제목은 수신인이나 필자에 따라 세 가지 형태로 쓰인다. 특정한 장소의 신자들에게 보낸 것은 ‘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처럼 ‘고을 이름 + 인들에게 보낸 편지’, 특정 개인에게 보낸 것은 ‘디도에게 보낸 편지’처럼 ‘수신인 이름 + ~에게 보낸 편지’, 여러 곳의 신자들에게 보낸 것은 ‘야고보의 편지’처럼 ‘필자 이름 + ~의 편지’로 표기한다(‘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각각의 편지를 또 세 가지로 부른다. 예컨대 로마의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정식 명칭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약칭은 ‘로마서’, 약어는 ‘로마’이다(프로테스탄트에서는 제목을 ‘로마서’라 하고 약자를 ‘롬’이라고 한다).

그런데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식의 표현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로마인’은 상식적으로 로마 시민이 아니라 로마시를 중심으로 고대 로마 제국을 건설한 라틴족을 일컫는다. 사실 서양말과 달리 우리말에서는 일반적으로 크든 작든 고을이나 도시 이름에 ‘~인’을 붙이지 않는다. 예컨대 ‘서울인’, ‘뉴욕인’이라 하지 않고 ‘서울 시민, 서울 사람’, ‘뉴욕 시민, 뉴욕 사람’이라고 한다. 게다가, 사도가 글을 써 보낸 것은 로마 시민이 아니라 로마에 사는 신자들이다(로마 1,7). 그리고 당시 로마 신자는 전체 시민 수에 비해서 아주 소수였다. 사도의 다른 편지들도 마찬가지이다. 둘째,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라는 명칭은, 한자 문화권 전체의 천주교와 프로테스탄트에서 다 같이 사용하는 ‘로마서’라는 명칭과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다. ‘편지/서간/서한’, 이 세 한자말이 이제 사전적 의미로는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지만, ‘로마서’는 ‘편지’가 아니라 ‘서간’(書簡)이나 ‘서한’(書翰)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사실 1940년대 덕원 베네딕도 수도원에서 펴낸 신약성경에서는 ‘성 바오로 종도 로마인에게 보내신 서간’이 정식 명칭으로, ‘로마서’가 약칭으로 사용된다.

이러한 문제들을 생각할 때 ‘필리피인들에게 보낸’이나 ‘로마인들에게 보낸’처럼 ‘고을 이름 + 인들에게 보낸’보다는 ‘고을 이름 + 신자들에게 보낸’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신자들’ 대신에 ‘교회’라는 낱말을 쓰는 것도 바오로의 의도에 맞기는 하지만(1고린 1,2; 갈라 1,2 등 참조), 그보다는 ‘신자들’을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들린다. ‘신자’ 외에 ‘신도’나 ‘교우’를 써도 무방하겠지만, 현재는 ‘신자’가 많이 쓰이는 말로 가장 자연스러운 것 같다. 특히 초대 교회에서는 ‘믿음’이 관건이었기 때문에 ‘신’(信)자가 들어간 낱말이 더 낫다고 볼 수 있다.

‘편지’라는 낱말도 문제를 안고 있다. 이 낱말이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편지란 보통으로 짧고 비공식적인 글월을 가리킨다. 그리고 ‘편지’라는 말에는 위에서 지적한 사항 외에도, 특별히 글을 써 보낸 이를 존경하거나 그 글을 존중한다는 뜻이 거의 담겨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믿음의 바탕인 ‘거룩한 글’을 여느 글처럼 예사롭게 ‘편지’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공식적인 글에는 예컨대 ‘(교황이) 성목요일에 사제들에게 보내는 서한’이라든지 ‘대통령의 서한’처럼, ‘서한’ 또는 ‘서신’이 자주 쓰인다. 공동 번역 성서 이전까지 천주교에서 쓰던 ‘서간’도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춘 글월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일반인들은 ‘편지’나 ‘서한’이나 ‘서신’보다 ‘서간’이라는 말을 덜 쓰기는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바오로 서간’, ‘사목 서간’, ‘옥중 서간’ 등의 표현으로 곧잘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디도에게 보낸 편지’와 ‘야고보(의) 편지’ 식의 표현보다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그리고 ‘디도에게 보낸 서간’과 ‘야고보 서간’과 같은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여겨, 서간들의 제목을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서간의 제목은 성격 각 권의 표지에만 쓰일 분, 실제로 미사 전례 등에서는 그저 “로마서” 등 같은 약칭으로 쓰일 것이다.

한편, 신명기, 시편, 묵시록 등과 같이 그 내용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거나 부정확하거나 알아듣기가 어렵다고 하는 다른 이름들도 더 정확하고 쉬운 말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그대로 두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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