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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성베드로와 성 베드로 놀라스꼬 성인 이름이 비슷한대 어떻게 다르신지 카테고리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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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현호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3 조회수572 추천수0 신고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를 받을 때에 성인의 이름을 딴 본명(세례명)을 정하게 됩니다. 말씀하신 놀라스꼬 성인께서도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계시지요. 그래서 우리는 베드로 사도님과 놀라스꼬 성인을 구별하기 위해 성 베드로 놀라스꼬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같은 예로 우리나라의 최초의 신부님 이신 김대건 신부님은 세례명이 안드레아 이십니다. 그래서 김대건 신부님을 세례명으로 정하면 세례명은 '대건 안드레아'가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 라는 세례명은 많은 성인들이 계시기 때문에 축일이 다른 많은 성인들이 계시지요. 놀라스꼬 성인도 그 분들 중에 한 분이구요.

예로 요한 성인은 예수님의 12사도들 중의 한분이 요한이 있고 또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신 요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도인 요한 은 '사도 요한', 예수님께 세례를 주신 요한은 '세례자 요한' 이라고 부릅니다. 그 외에 또 많은 요한 성인들이 계시겠지요.

 

베드로 성인은 성경에 나와 있는대로 어부인 시몬을 예수님께서 제자로 부르시고 또 교회의 반석으로 베드로라고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 사후 그리스도교를 만드는 기초를 세우셨으며 초대 교황님을 지내셨습니다. 로마에서 바오로 성인과 함께 순교 하셨습니다. 축일은 6월 29일 입니다.

   티베리아 호수에 인접한 마을 베싸이다 출신인 사도 성 베드로(Petrus)는 시몬이라 부르는 요한(Joannes)의 아들로서 겐네사렛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그의 아우 안드레아(Andreas)가 그를 예수께 소개했는데, 예수는 그에게 아라메아어로 베드로와 같은 뜻인 ‘게파’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요한 1,35-42).

   그는 가나안 혼인 잔치에서 베푼 그리스도의 첫 번 째 기적이 일어난 곳을 비롯하여, 자신의 장모가 치유되는 장면 등을 목격하였다. 베드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면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 16,16) 하고 고백할 때, 주님은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하셨다. 그리고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으로 가톨릭 교회는 베드로가 첫 번째 교황이며 교황권의 우위성을 입증하는 근거로 이해한다. 베드로는 다른 어느 사도들보다 복음서에 자주 언급되며, 그리스도의 주요 행적에도 항상 그가 함께 자리한다. 또 대사제의 관저에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실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승천 후 신도들의 우두머리이고, 유다(Judas)의 후계자를 임명했으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사도이자, 기적을 행한 첫 사도이며, 설교로 많은 사람들을 개종시킨 사도였다. 베드로는 43년경에 헤로데 아그리파에 의하여 투옥되었으나, 천사의 인도를 받아 피신하였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만인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기를 원하신다고 강조하였다.

   초기 전승에 의하면 그 후 그는 로마(Rome)로 가서 초대주교가 되었고, 네로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인 64년경에 바티칸 언덕에서 역십자가형을 받아 순교했다.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에는 그분의 무덤이 있다. 순교 직전에는 저 유명한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로 널리 알려진 주님의 발현을 보았다.

 

그리고로 놀라스코 성인에 대해 알아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축일은 1월 28일 입니다.

성 베드로 놀라스코(Petrus Nolasco)는 프랑스의 귀족 가문 태생으로 15세 때에 부친과 사별하면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다. 그 후 그는 에스파냐의 바르셀로나(Barcelona)로 가서 막대한 그의 재산을 무어인들에게 포로로 잡힌 그리스도인들의 석방 대속금으로 사용하였다. 그러던 중에 그는 어떤 환시를 보고, 그 지시에 따라 그리스도인 노예 해방을 위한 수도회 설립을 결정하였다. 그는 성 라이문두스(Raymundus, 1월 7일)의 도움으로 '속량의 성모회'(메르체다리오회)를 설립하였다. 이 수도회는 아라곤(Aragun)의 왕 야고보의 지지와 더불어 1235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이 회원들은 노예 석방을 위한 일은 무엇이든 하였다. 그런 과감한 행동을 하던 성 베드로도 한때 포로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1628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664년 보편교회에서 그의 축일을 기념하도록 선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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