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Re:고견 감사합니다 카테고리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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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안치형 쪽지 캡슐 작성일2007-01-24 조회수288 추천수0 신고

성심성의껏 써주신 답변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1.성모송은 성경에도 나와있습니다. 성모께서 엘리사벳을 찾아가셨을때 , 엘리사벳이 성모님께 성모송을 불러드렸습니다. 구원을 하실분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께 "빌어주소서"라고 합니다.

예수님께는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말하구요. 예수님께 자비를 베푸소서가 맞습니까 빌어주소서가 맞습니까?

예수님은 하느님자체이신데 무엇을 누구한테 빌어달라는 것입니까? 그러므로 성모송은 틀리지않습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하늘과 땅의 친교가 이루어 지는것입니다. 성인들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는 연옥영혼들을 위하여 서로 기도합니다. 이것을 부정하시면 사도신경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자체이므로 예수님께 기도한다는것은 하느님께 바로 기도를 올리는 것이겠지요.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성인들과 성모마리아를 부정하는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세례를 통해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최근에 겪고있는 영적인 변화와 제 머리속에서 지우려 해도 끝없이 떠오르는 생각은, 기도는 하느님과 저사이의 대화라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공경했고 그길을 따라걸었던 혹은 그분을 잉태하신, 축복을 허락받으신 마리아님을 존경하는 마음을 부정해선 안되겠지요.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것은 그렇게 존경할만한 분들또한 창조하신 절대자이신 아버지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행적과 살피심을 감사하면서 그분의 말씀을 따라 그분의 아들이 걸었던 길을 최대한 따라가려고 노력하는것이 참 신앙인의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2.우상은 그 물건자체를 신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모상을 깼을때 "내가 신을죽였어" 라고 하지 는 않을 겁니다. 부모님이 보고싶을때, 어떻게 합니까? 사진 을 보지요. 그럼 사진을 보고 보고싶다고 말도하고 뽀뽀도 하는데, 그 사진 자체를 부모님으로 생각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 성상들을 통해서 공경을 드리는 것이지 성상자체를 숭배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자세한 날짜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미사시간에 주보를 통해 타종교에서 천주교를 마리아를 믿는 종교라고 말할때 어떤식의 답변을 줄수있는지 읽은 기억이 나고 저또한 공감합니다. 천주교인들은 성모마리아를 숭배하지 않습니다. 존경하는것이지요. 절대자를 본적은 없지만 예수님의 살아생전모습이나 마리아의 살아생전 모습 혹은 그림을 통해서 추측할수가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그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할수 있는것이구요. 하느님이 경고하신게 그런 사람의 행동이 아닐까요. 모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듣고 잠시 자리를 비운통에 사람들이 불안해 해서 그 틈을 타 무언가를 만들고 하느님이라 믿고 흠숭했습니다. 하느님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겠지요. 문제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상을 통해서 하느님에 대한 찬양의 마음이 더욱 커져나온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일것입니다. 하지만 성당앞에 세워져 있는 성모마리아상과 천주교인들 집에 하나씩 있는 성모상과 그앞에서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을 타종교인들이 봤을땐 충분히 오해의 여지가 있는것도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모든이의 마음에 하느님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면 문제될것은 없습니다만 만약 집에있는 성모상이 떨어져서 깨지거나 성경이 불에탄다거나 십자가가 부러진다면, 저것은 돌일뿐이요 종이일뿐이고 나무일뿐이다, 라고 덤덤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액운이 생겼을때 혹, 십자가를 두손에 꼭쥐고 쓰다듬진 않았는지, 예수님 상앞에 엎드려 울면서 용서를 빌지는 않았는지. 믿음이 약했던 저는 적어도 그랬습니다.

종교는 하느님을 믿는 하나의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교리는 다를수 있겠지요. 하지만 진리는 하나라 생각하고 그 진리의 의미를 조금이라도 퇴색하게 할 여지가 있다면 피하는것 또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3.연옥은 성경에서 추측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보십시오. 현세에서는 용서받을 방법이 있지요? 하지만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라고하면 내세에서도 용서란 개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http://home.catholic.or.kr/attbox/bbs/anonymous/anonymousread.asp?gubun=300&table=gnanonymous&maingroup=1&group_id=1&sub_id=3&seq=89&id=617&user_auth=R 

설명할 분량이 너무많아 링크로 올려둡니다. 참고하세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이질문에 대해선 아직 저에겐 더많은 대화가 필요한듯합니다!

 

4.금욕생활에 대해 질문하셨는데 성경에는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아무 걱정 없이 지내기를 바랍니다. 결혼을 안하는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마음에 들까 하고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결혼한 남자는 어떻게 하면 아내의 마음에 들까 하고 세상 일을 걱정합니다. 그는 갈라져 있습니다. 또 결혼을 안하는 여자와 동정녀는 육으로나 영으로나 거룩해지기 위하여 주님의 일을 걱정합니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의 마음에 들까 하고 세상 일을 걱정합니다.

이처럼 결혼을 하면 주님보다도 자기 처와 자식들을 더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더 큰이유는 부정부패를 막기위하여라고 합니다.

-맞습니다.바울 사도가 이야기 한 부분을 보면, 결혼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는데) 더욱 좋으나, 참기 어렵다면 결혼하는 것이 좋다 라고 이야기 하는데, 이것이 결혼을 부정하는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결혼한 사람들이 유혹을 이기고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자식을 번창시키는 축복또한 주셨습니다. 자녀를 잉태하는것 또한 하느님의 큰 축복이면서, 새로운 한 개체로서 땅에 태어나 온갖유혹을 이겨가며 다시 하느님을 찬양하도록, 세속적인 재물이 아닌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도록 노력하는것이, 부모된 자의 도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한다고 해서 꼭 하느님을 멀리하는것은 아니겠지요. 오히려 혼자의 믿음에서 뻗어나가 자녀를 통해 가지가 뻗어나가고 결국 큰민족을 이루며,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 그수십 수백배에 달하는 하느님말씀의 종사자를 양성하는것 또한 크리스챤의 사명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선택일수도 있겠군요.

 

5. 십자가의 예수님에 대하여

형제님은 십자가를 부정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십자가로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런 거룩한 십자가를 예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하시면 안됩니다.

사이비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것이 예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서 십자가는 거룩하며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큰 의미를 지닙니다.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십자가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저역시 십자가를 걸어놓은 성전에 들어가 예배를 드립니다. 하지만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거룩하다 생각하지 십자가가 거룩하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랬습니다. 십자가를 땅바닥에 집어던지는 행위, 묵주를 장난감처럼 돌리고 악세사리처럼 착용하는 행위는 벌받는 행위라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아무거리낌 없이 십자가를 던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직도 십자가 앞에 서면 숙연해 집니다. 그분의 고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저의 마음에 자리잡으신 분은 여전히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너무도 영광스럽고 열등감과 알수없는 불안감에 쌓여있던 저에게 승리로 충만한 기분을 채워주시고 모든 악의 세력으로 부터 저를 지켜주십니다. 저는 그분을 십자가에 다시 올려놓고 그앞에서 기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재림하실때 십자가를 짊어진채 채찍질을 받으며 힘들게 골고다 언덕을 올라오시는 분이 아닌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내려오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그분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지 않아도 그분의 행위는 제마음을 울립니다. 죄를 지으면 양심이 견디지 못하고 꿇어앉아 기도하면 눈물이 나옵니다. 설령 모래뿐인 사막한가운데서도 제 안에 그분을 모시고 진심으로 기도한다면 그자리가 저에겐 성베드로성당보다 더욱 웅장할것이고 세계에서 가장 큰 십자가 앞에서 보다 더욱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어법상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  (수사+존칭접미사는 이루어질 수 없는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어법은 틀렸을지언정 그 대상이 세상의 창조주임을 마음깊이 믿는다면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문법이 성령을 통해 나오는 믿음을 가로막을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두 용어의 차이를 설명하는것이 큰의미가 없지 않나 싶어서 말씀드린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선 지금 이시간에도 각자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겠지요. 굳이 따지자면 예수님은 하느님이라 부른적이 없지요. 한글번역판에서는 그렇게 부르지만요. 중요한건 그분에 대한 믿음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역시 기도를 위해 제입에 익숙한 하느님이라 하고있지요.

 

 

제가 어떻게 보면 다소 공격적일수도 있는 글을 올린 이유는 저의 영적인 호기심의 해결과 동시에 많은 분들의 고견을 통해 성경에 나온 의미와 그에 따른 행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입니다. 혼자 성경을 보는데는 한계가 있는것 같아서입니다. 세례받고 성당에 다닌지는 오래지만 그동안 마음의 감동을 느낀적은 없었습니다. 최근에 성령님이 살아계심을 체험하고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침에 일어나면서 잠들기 전까지 제마음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영적인 호기심 때문에 질문을 올리는것입니다. 이제서야 하느님을 향한 눈을뜬 애기크리스챤이라고 할수있겠네요. 저는 천주교인 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해외에 나와있고 사정상 지금은 교회에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신부님에게나 목사님에게나 저에게 물어보시는 분들에게 제가 할수 있는 대답은 언제나 한가지입니다. 저는 천주교인도 아니고 기독교인도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는것도 하나님을 믿는것도 GOD를 믿는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언어를 통해 부르는 그분의 별명이 아닌, 예수그리스도님이 부르신 아빠를 믿는다고 대답합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고 전지전능하신 그분의 성함을 정하는 일을 감히 그분이 창조한 사람이 할수는 없을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로지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그분을 부르신 그방법대로 행하는것이지요. 하지만 단체활동을 통해 많은 크리스챤분들과 함께하기위해서 부르는 하느님 하나님 혹은 GOD가 제 마음의 중심을 흔들어 놓지는 못할거라 믿습니다. 저는 오늘도 하느님이란 그분의 여러개중 하나의 이름을 통해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곳을 알게되어 새로운 지식도 배우고 있구요. 아직 영적으로 미숙한 저에게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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