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운영자님 4773 답변좀 해 주세요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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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7-02-07 | 조회수400 | 추천수0 | |
말 그대로 정결예식에 사용하기 위해 물을 받아두던 독입니다. 워낙 물이 귀한 곳이었기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물을 저장해야 했고, 정결 예식을 위해서도 깨끗한 물을 항아리에 담아 두었던 것입니다.
아래 물과 정화에 관한 임승필 신부님의 글 중에서 일부 내용입니다.
물과 정화
고대인들은 집짐승과 곡식 등 사람이 먹는 양식을 여러 가지 형태로 신(神) 또는 하느님께 바쳤다. 이스라엘인들은 하느님께 올리는 제주(祭酒)로 포도주를 사용하였다(레위 23,13 등 참조). 그러나 인간에게 그토록 중요한 물은 예물로도 또 그것에 곁들이는 첨가물로도 바치지 않았다(1사무 7,6만 예외인데, 그 의식의 기능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물은 이와 다른 의미의 종교적 용도로 많이 쓰였다. 생명의 바탕인 물은 정화의 능력도 지닌다. 이러한 물이 성전에서 많이 사용된 것이다. 성전용 물만 나르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다(여호 9,21). 물을 담거나 나르는 여러 기구도 성전 안에 마련되어 있었다(출애 30,17-21; 1열왕 7,23-39). 이렇게 마련된 물로 특히 사제들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여러 직무를 수행하기 전에, 그리고 제단에서 의식을 거행하기 전에 몸 또는 손과 발을 씻어야 한다(출애 29,4; 레위 16,24 등). 이는 생사와 관련된 엄한 규정이었다(출애 30,20).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그래서 제사나 기도로 그분께 다가가려면 사람과 제물과 기물(器物)이 깨끗해야 한다. 깨끗함은 단순히 외형적·위생적 현상이 아니다. 민족마다 터부 또는 금기가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사람 몸에 나타나는 병적·생리적 현상이라든지(레위 14,1-9; 15,25-27), 시체와 접촉하는 것같이(레위 11,24-28) 의도적 또는 무의식적 행동으로 사람이나 기물이 일정 기간 부정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행동은 그 자체로서 범법 행위가 아니다. 부정(不淨)이 어떤 도덕적·윤리적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일시적으로 경신례(敬神禮)를 통한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를 제의적(祭儀的) 정과 부정이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부정을 벗으려면 일정 기간과 일정 의식 끝에 물로 옷을 빨고 몸과 때로는 기물까지 씻어야 한다. 특히 물에 몸을 담아 씻는 침수(沈水) 의식이 구약성서 말기에 오면서 여러 종교 운동 단체에서 애용된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비롯하여 그리스도교의 세례에서도 물이 큰 구실을 하게 된다.
구약성서에서는 정화의 용도로 쓰이는 몇 가지 특별한 물도 언급된다. 만드는 방법이라든가 기능이 늘 분명하지는 않지만, "거룩한 물"(민수 5,17), "속죄의 물"(민수 8,7), 그리고 "정화의 물"(민수 19,1-10) 등이 있다. 이것들은 우리는 현재 쓰는 ’성수(聖水)’의 전신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구약성서 시대에, 예언자들은 내적 정결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이사 1,16). 그러나 정결례(淨潔禮) 규정들을 신약성서 시대에 오면서 특히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폭넓고 엄격하게 적용했기 때문에, 그들과 예수님 사이에 정과 부정에 관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마르 7,1-23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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