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 다음의 글을 잘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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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소순태 | 작성일2007-07-24 | 조회수853 | 추천수2 | 신고 |
+ 찬미 예수
"주신 그러한 의문점을 가지지 않는다면, 지지하게 신앙에 임하지 않는 분"이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 하면, 가톨릭 교회의 2000여년 역사 중에서 거의 1800여년 동안 가톨릭 교회의 수많은 교부들과 신학자들이 평생을 두고 왈가 왈부한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손희송 신부님께서 1999년도에 마리아론의 과거 및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하여 우리말 논문을 쓰신 것을 알게 되었기에 알려드립니다. 어제와 오늘의 성모 마리아 - 손희송 신부 (클릭하십시요) 바쁘신 분은, 우선 위 자료에서 발췌한 다음의 내용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 프란치스코회 신학자 둔스 스코투스(†1308)의 입장은 후대에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옹호하는 이들에게 길잡이 역할을 하였다. 그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의 구원론적 문제점을 ‘선행구속’(先行救贖, praeredemptio)이라는 개념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즉 마리아는 아담의 후손이므로 의당히 원죄의 죄과를 받아야 했지만, 하느님은 미래의 예수 그리스도로의 구원 공로를 미리 앞당겨서 마리아를 원죄로부터 보호해 주셨다(praeservatio)는 것이다. 둔스 스코투스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로 인해서 오히려 그리스도의 구원 중재 능력은 더욱 완전해진다고 강조한다.41) ... 이미 17세기부터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믿을 교리로 규정해 달라는 신자들의 거센 요청이 있었지만 여러 교황들은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이 문제가 새롭게 다루어지고, 마침내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는 회칙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 (Ineffabilis Deus)을 통해서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 첫 순간에 전능하신 하느님의 특은(特恩)과 특대(特待)로 말미암아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 이 회칙은 신학적으로 둔스 스코투스의 논거를 수용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공로를 미리 앞당기는 ‘선행구속’이란 신학적 개념을 매개로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 교리가 모든 인간의 구원 필요성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된 구원의 보편성과 합치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 무염시태 교의의 신학적 근거가 "선행구속"이라는 것을 아셨으니,
1. 초대교회 시절부터 1308년에 이르기 까지 어떠한 논쟁들이 무려 1300 여년간 지속되었는지를 위 논문에서 읽어 보시면 될 것입니다.
2. 또한, 1308년부터 1854년 사이에, 성모 공경가들의 출현으로 어떠한 문제들이 야기되었는지를 위의 논문에서 읽어 보시면 될 것입니다.
1854년에 믿을 교리는 공포된 무몀시태 교의의 요지는, 기술적인 부분을 잘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성모 공경의 정도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핵심 내용은, 성모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실 때에 아무런 죄(원죄)가 없었음을 "선행구속"으로 설명하는데, (기술적인 면에서 추가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성모님의 생부모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확실하게 차단하면서,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성모님을 공경하려는 분들께 특별한 공경인 상경지례를 드릴 공간은 좀 넗혀 주면서도, 그러나, 지나치게 너무 들어 올리지는 말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뒤에서 잡아 당기는 것을 문장으로 잘 언급한" 교의가 무염시태 교의입니다.
핵심은, "선행구속"론을 먼저 잘 이해하는 데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족함이 많은" 저의 답변이 형제님께서 의문점을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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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신 질문:
원죄없으신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님이라 원죄가 당연히 없다는 논리는 수긍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성모님의 어머님은 또 어떻게 원죄없이 성모님을 잉태하셨나? 온전한 인간으로 태어나신 예수님도 원죄 때문에 세례자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것이 아닌가? 내 안에 하느님, 예수님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마라는 예수님 말씀에 근거하면 내 안에 하느님과 예수님이 계신다. 위와같은 논리라면 나는 원죄가 있는데 어떻게 하느님이 원죄있는 내 안에 계실 수가 있는가?
나는 원죄여부와 관계없이 주님께서 하시고자하면 원죄있으신 성모님에게서도 출생하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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