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형제도의 부활은 퇴보의 길이다 [필리핀 주교회의 성명서]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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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유재범 | 작성일2007-08-15 | 조회수487 | 추천수0 | 신고 |
사형제도의 폐지(1986)
1. 1986년에 있었던 헌법에 의한 사형제도의 폐지는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창조된 모든 인간의 존엄성과, 수태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명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하나의 큰 진전이었습니다.
이러한 진전은 1971년 유엔 결의문의 선언과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인권 선언(1948) 3조에 명시된 생명권의 전적인 보장을 위해서는, 사형이 적용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죄목들을 점차적으로 제한해 나가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우리는 전세계 모든 나라에서 사형제도가 폐지되기를 바란다."
우리 헌법에 획기적 일보를 기록한 현 시점에 와서 도덕적 요구도 무시한 채, 다시 뒤로 일보 후퇴하려고 한다면 이는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형제도 옹호론
2. 많은 매스 미디어 종사자들과 일부 사람들이 오늘날 사형제도의 부활을 줄기차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체를 취하려면 매우 신중한 도덕적 판단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주장들은 사형제도의 부활을 정당화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바입니다.
(1) 사형제도는 범죄를 사전에 억제시키는 수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식의 범죄 억제 효과는 그 어느 곳에서도 신빙성 있게 입증된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1989년 국제 엠너스티 보고서(Amnesty International Report)에 언급된 내용을 보면, "사형제도가 범죄 억제 효과를 가진다는 어떠한 명백한 증거도 없음이 여러 연구 결과에서 드러났으며, 아울러 그러한 모든 연구들에 내재해 있는 방법적 어려움들에서 보듯이, 사형제도를 공공정책화하기 위한 토대로써 범죄 억제 가설에 의존하는 것은 부질없는 것이다"(14면)고 했습니다.
또한 미국 주교들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많은 폭력 범죄들이 죽음의 위협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고무받은 논리적 계산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데에는 강한 의문의 여지가 있다. 살인자들의 수에 비해 사형 선고 사례가 적은 것도 죽음의 위협이 거의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는 범죄 억제의 유효성을 절감시키고 있다"(사형제도에 관한 성명서, 1980년 11월).
(2) 오늘날 예증으로 제시되는 사형제도 정당화에 대한 또 다른 이유는 범죄자들에게 짓밟힌 사법 질서의 회복과 범죄자들에 대한 응징입니다.
그러나 살인자의 경우라 하더라도 사형을 부과하는 식의 응징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국가가 살인자를 사형에 처함으로써 복수심을 만족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만족은 죄의 처벌에 대한 인도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인 접근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무엇보다도 십자가상에서 보여주신 그분의 모범은 보복적인 응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쁜 행위에 대해 보다 인간적이고 인도적인 처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범죄자가 희생자에게 가한 행위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를 벌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미국 주교들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형벌의 고문을 정당화해서는 안되고 또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고문해서 불구로 만들었다 해서 그 사람의 사지를 절단하는 식의 행위를 정당화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3) 우리 몸의 어느 한 부분이 병들면 그 병든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 당연하며 또한 그것은 몸 전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며 이는 사회 전체의 선에 이바지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우리는 이렇게 답합니다. 인간 개개인은, 몸의 어느 한 기관이 살아 있는 신체의 한 구성 요소인 것과는 달리, 단지 사회의 한 구성원만은 아닙니다. 인간은 사회의 선을 위해 살아야 하는 반면 사회는 각 개인의 선을 증진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인간은 그 자체로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며, 사회의 목표와 목적이기도 합니다. 반면 사지나 몸의 한 기관은 인체의 목표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범죄자는 우리 몸의 병든 기관처럼 다루어져서는 안됩니다.
사형제도에 대한 반대
3.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사형제도의 부활을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1) 무죄한 사람에게 사형 언도를 부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실수는 이전에도 있었으며, 대법원에서는 사형 언도를 파기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대법원이, 절대 오류를 범하지 않겠다는 선서를 하지 않는 이상, 하급 법원의 사형 판결을 확인함에 있어서 오류를 범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어떻게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한 오류는 최종적으로 형이 집행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2) 오늘날 우리 나라에 사형제도를 다시 도입하게 되면 이 제도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편견쪽으로 기울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현행 재판 절차들이 얼마나 부적절하며, 또한 부자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살인죄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비록 자신들을 옹호해 줄 사람이 있다 해도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사형제도로 고통을 당하게 될 사람은 범죄를 저지른 부자가 아니라 적절한 방어를 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필리핀 회의 2차 총회에서 결정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우리의 사형제도 반대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참되고 평등한 정의가 보장될 수 있도록 경찰과 사법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은 사형제도의 부활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3) 사형제도의 폐지는 또한 우리의 생명 수호 입장과 상통합니다. 우리는 생명을 수호하고 수태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생명을 더욱 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현 교황 성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이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생명의 권리는 최우선적이며 근본적인 권리로서 다른 모든 인권의 필수 조건이다…인간은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자연적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발전의 모든 순간에서 그리고 건강하든 병들었든 성하든 불구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모든 상황에서 생명권의 주체인 것이다"(평신도 그리스도인 38항). 우리는 인간 생명과 생명권은 사형 언도를 내리는 사법적 권한을 폐지함으로써만이 더욱 굳건히 수호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사형제도 복구 반대를 요청하면서, 우리는 인간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확신이 커지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하며, 외교 사절들에게 말씀하시는 자리에서(1983년 12월 19일) "사형 언도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관용과 용서"를 권유하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모범을 따를 것을 촉구합니다.
(4) 마지막으로 우리는, 사형제도 폐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자비로우심을 믿는 우리의 신앙과 가장 일치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성서에서 우리는 사형제도에 합법적 권위를 허용하는 구절들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죄인의 죽음을 원하시기보다는 그 죄인이 회개하고 생명을 얻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성서 전체에 걸쳐 더욱 깊이 스며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에제 18,23 참조). 예수께서도 죄인들을 위해 스스로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모세법에 따르면 죽어야 마땅할 한 여인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는 것에 대한 의견을 요청받으시자, 그녀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기를 거부하시고 그녀를 죽음으로부터 구해주셨습니다(요한 8,1-11 참조).
사형제도에 대한 대안
4. 사형제도를 부활시키는 대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1) 라모스 대통령이 대통령 임기 초기 동안 주장해 왔던 가난 퇴치의 고삐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대통령 취임 연설과 국회에서의 발언 참조). 가난, 특히 극도의 궁핍은 범죄를 키우는 비옥한 온상입니다.
(2) 법률 시행과 사법 체제의 개혁이 이루어져서 경제적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범법자들, 특히 중범자들에 대한 재판이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한 개혁은 범죄 억제에 사형보다도 더욱 효과적이며, 평화와 질서의 분위기를 정착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3) 형법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져서 범죄자들이 형을 마쳤을 때는 전보다 더욱 잔인한 사람이 되어 있기보다는 실제로 과오를 뉘우치는 사람이 되어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진정한 형무소 개혁은 다른 나라의 예에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4) 가증스런 범죄의 원인을 뿌리뽑기 위한 가차없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한 범죄 가운데는 갱 문화라든지, 마약 의존, 상습적 도박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5) 경찰과 제복 입은 망나니 군인들에 대한 정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들 중의 많은 수가 범죄자이거나 범죄자들과 공모하고 있습니다.
(6) 매스 미디어에 의한 폭력 장면을 줄이거나 없애야 합니다. 폭력 장면을 생생하게 그리고 반복해서 묘사하면서 폭력이 마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 것처럼 유혹하는 영화들이 끼치는 해악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7) 총기 금지를 강화시켜야 합니다. 그렇게되면, 제복을 입은 총기 소지권자들(경찰이나 군인) 외에는 그 누구도 공동 장소에서 총기를 휴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상과 같은 제안들이 실행된다면 사형 제도의 부활보다도 우리 사회를 모든 사람을 위한 더욱 안전한 사회로 만드는 데 큰 효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형제도 부활 반대는 폭력으로 분열된 우리 국가에 매우 강한 메시지를 던져 줄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빨리 폭력의 악순환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보고 듣는 것은 현 시점에서는 참으로 시급한 일입니다.
1992년 7월 24일, 타가이타이에서
(원문: Statement by the Catholic Bishops'' Conference of the Philippines(24 July 1992), "Restoring the Death Penalty: A Backward Step", Catholic International vol. 3. N. 18. 1992년 10월 15-30일자, 886-887면)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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