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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보니파시아" ....보니파시오 성인의 여성형 카테고리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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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수근 쪽지 캡슐 작성일2007-12-05 조회수1,786 추천수0 신고
 
+ 찬미 예수님.
 
보니파시오 성인의 여성형 입니다.
성인명 뒤에 -아/라 를 붙여 여성형의 성인으로 함께 기억합니다.
 
예) 스테파노 ....스테파니아.
      라파엘......   라파엘라.
      가브리엘.... 가브리엘라.
      미카엘.........미카엘라.
 
일반적으로 부부가 함께 세례명을 정하셔서 같은날 축일을
더 크게 기억한다고 합니다.
     




축일:6월5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San Bonifacio Vescovo e martire

Saint Boniface - Apostle to Germany


Born: c.673-680 at Crediton, Devonshire, England

Died: martyred 5 June 754 at Freisland, Holland; body at monastery at Fulda

Patronage: brewers, Germany, tailors

Bonifacio = che ha buona fortuna, dal latino = that it has good fortune, from the Latin



673년경 영국에서 태어났다. 엑시터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어,

719년 독일에 가 신앙을 전파하기 시작했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마인츠의 주교로 축성된 후 동료들과 함께 바바리아, 튀링겐, 프랑크 지방에 많은 교회를 세우고 재건하였다.

여러 공의회를 주관했고 많은 법을 공포했다.

프리스 지방에 전교하던 중 754년 그 곳 주민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의 유해는 풀다 수도원에 단치되어 있다.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의 편지에서

(Ep. 78: MGH, Epistolae, 3, 352. 354)



그리스도의 양떼를 지키는 충실한 목자



교회는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면서 이 현세 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유혹의 물결에 시달리는 큰 배와 같습니다.

이 배는 포기할 수 없고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꾸준히 조종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예로서 로마의 글레멘스와 고르넬리오와 다른 교황들, 카르타고의 치쁘리아노와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오 등과 같은 과거의 교부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외교인 황제들의 치하에서 그리스도의 배, 즉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는 정배인 교회를 가르치고 보호하며,

교회를 위해 수고하고, 피를 흘리기까지 인내하면서 교회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이분들의 모범과 이와 같은 다른 분들의 모범을 생각해 볼 때 나는 두려움으로 가득 찹니다.

"두려움과 무서움이 나를 덮치고, 내 죄의 어둠이 나를 뒤덮을 뻔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부들과 성서에서 이와 같은 선례를  찾을 수만 있었다면 교회의 행정 직책을 기꺼이 내놓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정이 이렇게 하는 것을 허락치 않고 또 진리는 진력날 수 있지만 패배당하거나 기만당할 수 없기에,

내 지친 영혼은 솔로몬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분께로  피신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에 의지하지 말라. 무슨 일을 하든지 그분을 생각하라.

그러면 그가 네 앞길을 곧바로 열어 주시리라." 또 어디선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이름은 튼튼한 성루, 무죄한 사람에게 안전한 피신처가 되리라."



옳은 일을 행하는 데 굳건한 자세를 취하고 유혹을 막을 수 있도록 영혼을 준비시킵시다.

그러면 우리가 하느님의 힘으로 저항하면서 그분께 다음과 같이 말씀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주여, 당신은 대대로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었나이다."

우리 힘만으로는 질 수 없는 이 짐은 주님께서 지어 주신 짐이기에

주님을 신뢰하고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라고 말씀하신 분의 도움을 빌어 지도록 합시다.

고통과 고뇌의 날들이 우리에게 닥쳐온 이때, 주님의 날이 임할 때까지 굳건한 자세로 전투에 임합시다.

우리 선조들과 함께 영원한 유산을 나누어 받을 수 있도록 그들의 거룩한 법을 수호하기 위해

하느님의 뜻이라면 죽음까지 불사합시다.



짖지 못하는 개가 되거나 말 못하는 양지기가 되지 맙시다. 늑대가 가까이 올 때 도망쳐 버리는 삯꾼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의 양 떼를 지키는 충실한 목자가 됩시다.

성 그레고리오께서 당신의 [사목 지침서]에서 제시하신 것과 같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한,

잘난 사람에게나 못난 사람에게나 가난한 이에게나 부자에게나 모든 계층과 연령의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하느님의 온갖 뜻을 꾸준히 전파하도록 합시다.

(가톨릭굿뉴스홈에서)







보니파시오는 라틴어로 "선행 실천"이란 뜻이다.

독일의 사도로 알려진 보니파시오는 독일 민족의 회개를 위하여

자신의 일생을 바친-원장으로 선출된 영광도 포기한-영국 베네딕토회의 수사이다.

그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의 그리스도교적 정통성과 로마 교황에 대한 충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정통성과 충성이 얼마나 필요했는지는 그가 교황 그레고리오 2세의 요청에 따라 719년에 첫 전교 여행을 하면서 본 상황에서 입증되었다.

그곳은 이교도적 생활 방식이 지배적이었다.

그가 그곳에서 본 그리스도교는 완전히 이교로 타락한 것이었으며 오류와 뒤섞인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주로 성직자들에게 그 책임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한 데다가 정신이 해이했기 때문이며,

때로는 그들이 주교에게 순명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어떤 경우에는 그들의 신품 자체까지도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것이 보니파시오가 722년에 처음으로 로마에 돌아와서 보고한 그곳의 상황이었다.

교황은 그에게 독일 교회를 개혁하도록 지시했다.

이 사명을 수행하기 위하여 그는 그 지역의 주교가 되어야 했다.

교황은 교회와 세속 지도자들에게도 충고의 편지를 보냈다.

보니파시오는 후에 자신의 사명이 칼 마르텔의 안전 통행권 없이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성공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결국 그 지방의 주교가 되었고 독일의 모든 교회를 재편성 할 허락을 얻었다.

그리하여 그는 훌륭한 성공을 거두었던 것이다.

프랑크 왕국에서 그는 주교의 선거에 평신도가 개입하고 성직자가 세속화되고 교황의 통제력이 결여되는 등 큰 어려움에 부딪혔다.

프리지아에서 마지막 선교중에, 그와 그이 동료 53명은 개종자들의 견진을 준비시키고 있던 중에 살해되었다.

독일 교회가 다시 로마에 충성하도록 하고, 이방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그는 두 가지 원칙을 따랐다.




첫째 원칙은 로마의 교황과 일치를 이루고 있는 주교에 대한 성직자들의 순명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고,

둘째 원칙은 베네딕토 수도회의 형식을 따른 기도의 집을 많이 세우는 것이었다.

수많은 앵글로색슨계의 수사와 수녀들이 그를 따라 대륙으로 건너갔다.

그는 베네딕토회 수녀들을 활동적인 교육 사업에 끌어들였다.



보니파시오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이라는 그리스도교 율법을 잘 지켰다.

보니파시오에게 그것은 육체적 고통이나 죽음만이 아니라 교회의 개혁을 위한 고통스럽고 그를 당혹스럽게 하는 일이었다.

선교의 영광은 새로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오는 데 있다고 흔히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다스리고 치유하는 것은 보다 덜 영광스러운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보니파시오는 이교의 미신을 파괴하려는 시도에서 그리스도교에 글자 그대로 돌풍을 일으켰다.

미리 예고한 날 모여든 군중 앞에서 그는 구텔베르크 산에 있는 도나르의 신성한 참나무를 도끼로 찍었다.

거대한 나무는 네 조각으로 갈라지면서 무너졌다.

사람들은 신들이 보니파시오에게 저주를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신이 무력하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 나무의 판자들을 성당 짓는 데 사용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편지



독일의 사도로 불리는 성 보니파시오는 원래 영국 사람이었는데 선교사가 되어야 할 소명을 느끼고 유럽으로 떠났다.

그는 여행하는 동안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자신에게 기도를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응답하기 위해서

수시로 편지를 써야 했는데 참으로 재미있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우선 자신이 편지를 써서 순서에 올라 있는 맨 처음 사람에게 보내면,

받은 사람이 거기에 자신의 편지를 더해서 다음 사람에게 보내고 그 사람이 다시 편지를 덧붙여서

다음 사람에게 보내는 식인데, 한 바퀴 다 돌아오면 자신의 지난 편지를 빼 버리고 새것을 써 넣어 다시 돌렸다.



보니파시오가 사용한 이 연락 방식은 그 후 멀리 떨어진 사람들과 연락을 취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가족들끼리 소식을 나누는 전통을 세우면 어떨까? 편지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전자 우편으로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이 어떤 것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연락을 취하는 것은 서로의 유대를 돈독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가족이나 친척들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자주 연락을 하겠다.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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