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체조배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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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한정식 | 작성일2008-09-17 | 조회수1,242 | 추천수0 | 신고 |
성당에는 항상 성체를 감실에 모셔 두고 그 옆에 성체 등을 켜 놓아 성체가 모셔져 있음을 알립니다. 이는 성체가 우리 생활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뜻에서 모셔 두며, 병자나 갑자기 죽을 위험에 닥친 신자들에게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서 모셔 두는 관례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성당의 제대에 올라가면 안 됩니다. 그냥 의자에 앉아서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이 없이 오로지 내가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자주 성당에 가서 빵의 형상으로 현존하여 계시는 예수님께 조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체 앞에서 깊은 애정과 존경으로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과 대화하며 기도하는 것을 성체조배라고 합니다. 성 알퐁소는 하루 중에 단 15분 동안 성체조배로 얻은 것이 다른 신심행위로 거둔 것보다 훨씬 컸다고 했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일에 앞서 성체조배를 했다고 합니다.
성체조배는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체조배의 시간은 내 안에 그 분이 머무실 공간을 마련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온갖 여러 가지 잡동사니 잡념을 버리는 시간입니다.
성체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성체조배는 아무 생각없이 또한 아무 기도도 없이 주님 앞에 그냥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간은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나와 주님이 만나는 시간입니다. 성체조배는 성체가 모셔져 있는 성당이나 성지 등의 성체조배실에서 합니다. 성체가 모셔진 성당에서 할 수 없는 경우는 조용한 장소를 택하여 탁자에 흰 보를 덮고 십자고상을 놓고 촛불을 켠 다음에 화살기도로서 예수님의 현존을 느끼는 방법도 있습니다.
분주했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쓸데없는 생각들을 피하기 위하여 눈을 감고 조용히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수님! 주님이 보고 싶어서 미천한 제가 이렇게 왔습니다’. 라는 식으로 주님을 찾아온 자신의 심정을 말씀드리고 그 성체 앞에 머무르면서 주님을 만나 보는 것입니다.
성체조배는 아무것도 아닌 미약한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그 분께 다가가서 모든 것을 거저 얻는 때입니다. 목마른 자가 메마르지 않는 샘에서 목을 축이는 때입니다. 장님이 빛이신 분을 만나는 순간입니다. 친구가 참된 벗이신 분을 찾아가는 때입니다. 길 잃은 양이 착한 목자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어리석은 자가 지혜를 찾아 얻는 때입니다. 고통당하는 자가 위로자를 만나는 순간입니다. 신부가 영혼의 신랑을 찾는 때입니다. 젊은이가 삶의 방향을 찾는 순간입니다.
이러한 성체조배의 의의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어른들 찾아 뵙니다. 이처럼 성체가 모셔져 있는 감실 앞에 나아가 윗 어른을 찾아뵙듯이 예수님께 인사를 드리고 묵상과 기도를 하는 것이 성체조배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성체조배에 관한 한가지 예화를 소개해 드린다면 조(Joe)라는 사람은 성체 조배를 매일 2번씩 했다고 합니다.
그는 직장 옆에 성당이 있었기 때문에 출.퇴근 때에 매일 성체조배를 했는데, 그 성당의 종지기가 봤더니 저 사람이 들어가는가 하면 나오고, 저녁에도 또 들어가는가 하면 또 나오고 금방 들어가는가 해서 가서 보면 없고...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가서 아무 것도 안 했습니다. 그냥 문 열고서 "예수님 저 왔습니다." 그리고 문 닫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매일 매일을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예수님을 찾아뵈었는데, 그 사람이 몸이 아파서 출근을 못하고 집에 누워 있었습니다. 누워 있으면서 ’오늘은 성체 조배를 못하겠구나’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문이 부시시 열리더니 "어! 조(Joe)! 나 왔어, 나 예수야."그리고 문 닫고 가시더랍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이죠. 그냥 이야기입니다만 시사하는 바가 있지요.
그러니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성체조배라고 하는 것은 가서 10분, 20분, 1시간 앉아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어른으로 생각하고 지존하신 예수님이니까 ’찾아 뵙는다’ 그런 뜻입니다. 찾아 뵙는다는 이야기는 가서 드릴 말씀이 많으면 가서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내 말씀을 모두 드리고 말씀을 들을 수가 있고, 또 말씀 드릴 것이 없고 시간도 없고 할 때는 문 부시시 열고 "예수님 저 왔습니다." 인사하고 그냥 가도 성체조배로 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 조배를 하는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성체는 예수님의 몸이라는 것은 교리를 통하여 배웠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 몸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으면서 당신 몸을 우리의 음식(?)으로 주셨습니다. 즉, 말하자면 성체는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데 사람들이 받아먹는 성체는 우리들 안에서 우리의 살과 피가 되고 있지만, 환자들을 위해서 보관되고 있는 그 성체를 밤이고 낮이고 혼자 외로이 두는 것보다는 우리 신자들이 자주 방문해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주님의 몸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마음으로 예수님이신 성체께 인사를 드리는 것이 성체조배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앙상담을 해 주시는 어떤 신부님은 이러한 성체조배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묻는 질문에 대하여 ’그것은 확실한 정답은 없다’라고 답변하시면서, 애인을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해야 되나 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구태여 형식을 만들면 있겠지만 우리 기도서 같은 것도 보면 전혀 기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성체조배 기도도 있고, 성체조배 책도 있는 것이지요. 그것은 기도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기 위한 것일 뿐, 예를 들어 서점에 가면 ’편지 쓰기’라는 책이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그대로 베껴 쓰면 자기의 편지가 아니지 않아요. 그 방법을 배워서 자기의 방식대로 쓰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를 위해서 만든 기도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면 좋겠다고 부언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애인을 만나서 서로 옆에 앉아 있기만 해도 흐뭇한 것처럼 예수님 곁에 가서 앉아 있으면 예수님 말씀을 듣고, 그 분은 내 귀청을 울려서 실제로는 말씀은 않지만 나의 마음이 준비가 잘 되어 있을 때 그 분과 함께 있으면 내 마음에 울려오는 그 분의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한 내 마음의 근심, 걱정이 있는 것도 말씀드리고 기쁜 일도 말씀드리면서 윗 어른이나 부모님과 상의하듯이 예수님께 대한 나의 사랑과 감사를 전하면서 나의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이 바로 성체조배라는 것으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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