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클리토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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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의와 역할: 성령은 성서에서 “하느님의 얼”, “숨결”, “바람”, “거룩한 영(靈)” 등으로 표현된다. 성령은 삼위 중 ‘제3위’로, 제1위 성부, 제2위 성자와 같은 분이시며, 영원으로부터 계시고 전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리고 위격적인 존재로서 성령은 인간을 성화(聖化)시키고 하느님께로 이끄는 역할을 하신다(요한 14, 26).
성령은 본성 면에서 성부와 성자와 같으시나, 성부와 성자는 성령을 통하여 일치하시며, 성령은 하느님의 진리를 계시하신다. 또한 성령은 영적인 능력의 원천으로서 영혼을 비추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견고케 하시고 위로하신다. 특히 인간에게 죄 의식을 느끼게 하고 양심을 각성시켜 주신다.
또한 성령은 회개하는 자를 돕고 하느님 생명의 새로운 원리가 되어, 그 안에 거처하신다. 뿐만 아니라 시간 안에 들어오시어 인간 사이에 거처하시고, 교회와 더불어 존재하시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구원의 사명을 수행하신다. → 삼위 일체
2. 성서의 성령: 구약에는 독립된 체(體)로서의 성령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 안에 진정한 평화와 화목을 일으켜 주시는 분, 지혜를 주시어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분, 하느님의 일꾼들에게 힘과 용기와 사랑을 주시는 분이시다.
신약의 성령은 파라클리토(Paraclito)이시다. 이는 ‘협조자’, ‘보호자’, ‘위로자’라는 뜻이다(요한 15, 26).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는 일에 관여하여,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하도록 하셨다. 그리고 예수를 인도하여 세상에서 그의 동반자로 함께 하신다. 성령은 예수 승천 후 10일 만에 약속대로 강림하셨다.
3. 성령 강림: 그리스도는 “모든 이는 성령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모든 이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와 일체를 이루고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성령을 약속하였고(요한 14, 16. 26), 승천 후 10일째 제자들 각 사람 위에 불 혀 모양으로 내리셨다(사도 2, 1-3).
이때부터 숨어 있던 사도들은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성령을 받은 자들은 신령한 언어(方言)를 말했으며, 그곳의 군중은 자기 지방의 말로 알아들었다. 이때 자신들이 메시아를 죽인 과오를 깨닫고 뉘우친 3천 명은 세례를 받았다(사도 2, 37-42).
결국 성령은 약속대로 세상에 오셨고 사도들은 이 성령의 힘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확신하였으며, 그분의 산 증인이 되었고, 세세 대대 지상 끝까지 그분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는 은총을 충만히 받았다. 따라서 성령 강림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4. 성령의 활동: 오늘날 성령의 활동은 우선 교회를 거룩하게 하고, 하느님 백성의 믿음을 북돋아 주신다. 또한 그리스도의 생애가 성령에 의하여 영위되고(루가 4, 14), 그리스도는 성령을 그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성령은 그리스도를 부활시켰고(로마 8, 11),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영광스럽게 하여 인간 구원의 도구가 되게 하였다.
또한 성령은 교회와 신자들의 마음을 성전으로 삼아 그 안에 거처하신다(1고린 3, 16). 그리고 교회를 가르치며 지도하고 아름답게 꾸미신다. 이로써 우리는 만물 위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또한 성령은 은밀한 내적 도우심으로 신앙을 완성시키며, 교회를 새롭게 하여 신랑(그리스도)과 일치를 이루어 나아가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과 충성을 다하여 성령을 공경하고, 어려움에 처할수록 힘과 위로의 샘이신 성령께 더욱 가까이 가야 하겠다. |
성령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따르도록 특별한 은혜를 주시는데,
특별히 견진을 통해서 받는 일곱가지 은혜를 ''''성령칠은''''이라고 합니다.
1. 슬기 : 구원에 필요한 일에 끌리어 맛들이게 하는 은혜
2. 통달 : 지력이 미치는 데까지 믿음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게 하는 은혜
3. 의견 : 마땅히 행해야 할 선과 피해야 할 악을 분별하는 은혜
4. 굳셈 : 세속, 마귀와 싸우면서 순교까지 할 수 있는 은혜
5. 지식 : 영생을 얻기 위해서 믿어야 할 것과 믿어서는 안 될 것을 분별하는 은혜
6. 효경 : 하느님을 참 아버지로 알아 사랑하게 하는 은혜
7. 두려워함 : 하느님의 전능하심 앞에 경외감을 갖고 죄를 범하여
하느님의 뜻을 거스를까 두려워하게 하는 은혜입니다.
슬기, 통달, 의견, 지식은 우리의 믿음을 굳게 해주는 은혜이고
굳셈, 효경, 두려워함은 우리의 사랑을 길러 주는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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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聖靈刷新運動 |
영어 |
Charismatic renewal moveme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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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역사하심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안에 구체적이고 생기있는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운동. 이 운동의 기원은 20세기 초엽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흑인 침례파 교회에서 시무어(Seymour)라는 목사의 영도 아래 신도들이 성령을 체험하고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데 있다. 이것이 원성령운동(classical pentecostalism)이며 오순절파 교회의 시초이다. 2차대전 후 개신교회(루터교, 장로교 등)들이 성령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를 신성령운동(neo-pentecostalism)이라 부른다. 가톨릭 성령쇄신은 1967년 미국 피츠버그에 소재하는 듀케인(Duquesne) 대학교에서 몇몇 평신도 신학교수들과 대학생들의 기도모임에서 출발하였다. 오래지 않아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이에 참가하여 오래지 않아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이에 참가하여 마침내 국제적 운동이 되었다. 불과 4년 후인 1971년 한국에서도 성령쇄신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기도모임이 시작되었다. 이 사람들은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파렐(Gerald Farrell, 白) 신부, 슬라비(Joseph Slaby, 徐) 신부, 조영호 수사 등이었다. 그 뒤 수차에 걸쳐 성령세미나를 한 후 1973년 12월 5일에 가톨릭 성신 운동협의회(회장 파렐 신부)가 창설되고 이 회는 뒷날 가톨릭 성령쇄신 봉사자위원회로 개칭되었다.
성령쇄신의 활동은 주로 세미나와 기도회로 나누어지며 기도회나 세미나 때 체험하는 성령세례가 중요하다. 성령세례는 양자의 어느 모임에 참가한 자들이 원하는 자에게 안수를 하고 성령의 충만함이 내리도록 하느님께 비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회개와 기쁨, 하느님의 현존과 그리스도의 사랑 등 갑작스런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성령세례는 성격상 성세와 견진과 신품성사를 통하여 신도들의 영혼에 이미 내재(內在)하고 있는 성령이 더욱 활기 있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게 우리를 쇄신시켜 달라고 비는 기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성령세례는 칠성사 외에 또 하나의 성사인 것이 아니고 성사를 대신하는 것도 아니다. 성세허원 경신처럼 그리스도가 원하는 대로 되려는 원의를 신앙으로 새롭게 하는 하나의 경신 내지 쇄신이다. 성령쇄신은 성령세례를 통한 체험 자체에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니고, 이를 바탕삼아 성령의 이끄심을 받음으로써 하느님 중심의 생활을 하고자 하는데 있다. 지속적 기도와 성서연구, 성령을 힘입은 봉사생활과 사랑의 친교 모임인 기도회로써 생활을 통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쇄신하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성령쇄신운동의 목적이다.
성서에는 초대 교회 안에 성령이 은사를 준 예가 기록되어 있다. 언어의 은사(사도 2:4-8-11), 예언(사도 11:27), 능력(사도 6:8), 기적의 은사(사도 2:43) 등인데 초대 교회는 이를 교회의 일상생활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교의신학적인 측면에서도 하느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성령을 체험하도록 할 수 있음은 물론이며, 그리스로가 약속한 은사는 성령 자신이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표현되는 것은 교회와 세상의 건설을 위하여 신도들에게 주는 다양한 능력이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예언을 멸시하지 마십시오"(교회헌장 12).
한국 가톨릭 성령쇄신은 전국기구인 한국 가톨릭 성령쇄신 봉사자위원회를 중심으로 14개 교구 중 13개 교구(춘천교구 제외)에 지도신부 및 봉사회가 조직되어 활동하고 있다. 1982년 11월 현재 성령쇄신 세미나의 수료생은 평신도 12만여명, 성직자와 수도자 1,200여명이다. 성령쇄신의 교육 및 홍보지로 월간 <성령쇄신>지를 발행하고 있으며 주요 책자로는 ≪성령은 나의 희망≫, ≪성령이 인도하는 신앙체험≫, ≪성령쇄신 봉사자 지침서≫, ≪봉사은사≫, ≪성령쇄신의 열매≫, ≪그리스도교 신앙쇄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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