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천주교 신자 여러분 카페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
답변글을 쓰기에도 제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올바른 글 부탁합니다.
자칭 교회 다닌다는자들
할말 없으면 그냥 무시한척한다.
자칭 하느님 믿는자들 할 말 없으면 무조건 성경 믿으라 한다.
이제는 그런 시기는 지났다.
교회가 더 이상 무지한 그리고 무고한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 장터로 변해서는 아니된다고 생각한다.
밑에 글 읽어 보고 다 함께 생각해 보자.
이 시리즈는 여러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자칭 사막 잡신 믿는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나 역시 사막 잡신이 얼마나 거짖과 위선으로 싸여 있는지 과학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하나씩 펼쳐 놓도록 하겠다.
만약 개독인들중에 밑에 글은 물론 향후 내가 올리는 글에 반박글이 있다면 늘상 하는식으로 아니 하이에나식으로 본질을 흐리는 글 말고 글 밑에 반박글을 올려 주었으면 한다.
위와 상관없이 본질을 흐리게 개인글이 어떠하다 하는식으로 본질을 흐리는 글에는 내 스스로 무시纛?미리 알려 드리는 바이다.
그리고 불교운운하는 개독인이 있는데 나는 전직 개독인이었다.(이 부분에서는 내 똥꼬가 찢어져 나올정도로 웃었다. 왜냐고? 왜 개독인들은 전부 저런식으로 위선적인 행태를 못 버릴까 해서이다.)
그것도 아주 절실한 그 누구보다도 더 한 개독인이었다.
하지만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부패와 폐해 그리고 비리와 거짖, 위선을 보다 못해 이것은 아니다 하는 생각에 반개독인이 된 사람임을 미리 밝혀둔다.
이것 역시 개독인중의 한명이 자기가 학살자 십자군이라도 된다는 식으로 본질을 흐리는 식으로 리필을 달았기에 다시 한번 밝혀 둔다.
사랑, 믿음, 소망, 복음 등등…….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들이다. 어디에서 들어본 말들일까? 바로, 21세기 벤처 사업인 교회(?)에서 쏟아내는 말들이다. 그들은 길거리에서 우리를 붙잡고 꼭 하는 말이 있다.
"교회 다니세요?",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할 때 우리가 불교를 믿는다거나,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을 하면, 그들의 반응은 우리가 악마가 씌었다, 귀신을 믿는다, 지옥에 간다는 저주를 스스럼없이 한다.
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특히 기독교인들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게 있다. 기독교인들은 내가 비판하는 것을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다. 보통 "비판은 무조건 나쁜 거야" 하고 말하는데, 이유 없이 비판하는 것과 잘못했을 때 비판하는 것은 같지 않다. 내가 하는 건 비난이 아니라 비판이다.
반기독교는 교회의 그림자라고 볼 수 있다. 교회가 지금까지 행동을 잘 했다면 나 같이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이 기독교인이라면,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믿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쓰는 글이고, 기독교를 믿지 않고 기독교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기독교의 패악성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기독교인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이단이 그랬다는 둥, 사이비가 그랬다는 소리를 한다. 하지만 이 글이나, 지금까지 내가 했던 말은 모두 정통 기독교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것도 알아줬으면 한다. 나도 기독교를 믿고 교회를 다녔던 적이 있었다. 나는 어릴 때 흔히들 말하는 모태신앙으로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의심하지 않고 믿었고, 나 역시 다른 기독교인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타종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중학교에 들어가자 교 회에서는 나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많아졌고, 신도들끼리 서로 감시까지 하기 시작했다. 나는 기독교에 대해서 조금씩 회의를 갖게 되었고, 그 때마다 나는 교회에서 가르친 대로 악마가 내 마음속에 들어온 줄 알고, 기도를 했었다.
그런데, 교회는 가면 갈수록 마음이 편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불안해졌다.
친구를 만나러 성당에 놀러가고, 가족들과 절에 놀러갈 때마다, 교회에서는 성당이나, 절에 가는 것조차도 나쁘게 생각했다. 그 때마다 나에게 회의를 느끼게 했고, 결국은 교회를 1달 동안 가지 않기로 하였다.
그러다가 여러 기독교 안티 사이트에 들어가서, 기독교의 악행들을 보게 되었을 때는 그 사실들을 부정하려고 애를 써 보았다. 하지만, 사이트의 글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1달 동안 안 다니기로 한 교회는, 영원히 다니지 않게 되었다.
그 때는 기독교를 믿는다는 게,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했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천국을 가기 위해서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때 내가 싸운 대상은 악마가 아니라, 내 양심이었던 것 같다. 나도 교회를 빠져 나왔을 때는 내가 의지하던 신이 없어지니 뭔가 허전하고 불안하기도 했지만, 기독교에서 빠져 나와서 느꼈던 자유로운 느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다.
기독교인들은 내 경험담을 들을 때 마다, 너의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만둔 게 아니냐고 따진다. 하지만, 믿음이란 강약이 존재할 수 없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믿는 방식의 차이일 것이다.
만약, 당신이 기독교를 믿고 있다면, 천국에 가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어도 교회를 다닐 수 있을까? 그리고, 정말 하나님이 있다고 확신한다면, 기독교인들이 울면서 “믿습니다!”를 외치며 기도를 할까? 신이 있다고 정말 확신한다면, 울고 악을 지르면서 믿는다고 할 필요가 있을까?
지난 2000년간의 세계역사를 보면 기독교는 인류에게 나쁜 짓을 많이 했는데, 지난 100여 년간의 우리나라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교와 교회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나라의 혼까지 팔아먹은 행태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김대건, 황사영은 보통 천주교에서는 성인으로 알고 있고 순교자로 알고 있다. 하지만, 김대건과 황사영은 천주교를 믿기 때문에 죽은 게 아니라, 프랑스에 조선 정부를 없애달라는 편지를 보내다가 잡혀서, 역적모의로 죽은 것이지 절대, 순교자가 아니다. 매국노를 순교자로 둔갑시키는 기독교를 보면, 딱히 해줄 말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기독교는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한 것을 말한다. 흔히들 기독교라고 하면 개신교만 말하는 줄 아는데 천주교도 합한 것을 말한다.
그리고 1919년 3.1 운동 때의 독립선언서 33인중 목사 16명은 기독교대표가 아니라 모두 개인자격의 참석이며, 그것도 다른 지도자들이 서명한 후에 맨 마지막에 서명했고, 결국 모두 변절하였다.
기독교의 지도자급 목사들은 일제에 붙어서 신사참배를 권유하고, 교회 잡지나 친일잡지에 아들은 학도병으로 지원하고, 딸들은 위안부로 보내서 일본천황에게 충성을 다하자는 글을 앞 다퉈서 발표했었다.1) 김길창, 김창숙, 템플턴 상을 수상한 한경직, 백남준, 신흥우, 전필순, 이용섭, 정춘수, 정인과, 양주삼, 박희도, 박인덕, 최태용 들이 대표적인 인물인데, 그들은 일본에 직접 가서 단체로 신사참배를 했다.
그리고 "조선을 사랑한다는 것은 일본제국을 사랑하는 것이며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일본국에 바치도록 신에게 명령을 받고 있다"라는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돈 많은 목회자들은 전투기와 군용차도 앞 다퉈서 일제에 바치기도 했다. <조선장로호>가 바로 기독교가 일제에 바쳤던 전투기의 이름이다.
그 때 일제와 협력해 민족종교, 이자 독립군의 사상적 근간이었던 대종교를 탄압했다. 광복 후에는, 그 친일파 목사들이 순 장로파들을 핍박하고, 순 장로파들의 교회를 빼앗아 교세를 늘리고 이승만 정권에 붙어 반민특위에서 살아남아 불교를 누르고, 군사정권에 붙어서, 전두환을 한국의 여호수아로 추대하자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을 반란으로 규정하는 등, 스스로 정권에 아부하였으며, 지금은 미국을 섬기자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게 기독교이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군사정권에 붙었었던 지도자급 목사들은 기독교가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말하는데, 그 때 당시 민주화를 말했던 목사들은 목사직을 박탈당했으며, 그 때 당시 민중과 함께 하려던 목사들은 감옥에 가고, 지금은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런데도 목사직을 박탈시켰던 지도자급 목사들은, 기독교가 민주화에 기여했다고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돈 많은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놀랍게도 1위부터 6위까지 우리나라에 있다. 그 교회들은 절대로 처음부터 돈이 많아서 지금처럼 큰 교회가 된 것이 아니다. 바로, 신도들의 헌금으로 커지는 것이 교회다. 그들은 그들의 경전인 성경의 구약,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냈던 10%의 세금과 말라기에 근거를 두는 십일조를 내라고 한다.
십일조는 자기가 번 돈의 10%를 헌금으로 교회에 내는 돈이다. 원래의 십일조의 의미는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나, 현재의 한국교회는 구제는 물론이요 자기네들마저 야훼에게 바쳐야할 십일조도 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는 그 큰 헌금을 많이 낼수록 꼬박꼬박
교회에 가는 횟수로 신앙심을 측정하고 존경한다. 그리고 유럽에서 십일조를 행했던 때는 마녀사냥 등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되던, 종교의 힘이 막강했던 시절이다. 지금은 한국의 교회와 미국의 극히 일부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더 우스운 건 그들이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고 의지하는 숭상의 대상인 예수에 의해 율법은 폐해졌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예수에 의해 신약에서 율법을 금지시켰다는 것이다2)
기독교인들은 헌금은 자유라고 말한다. 과연 헌금이 자유일까? 공개적으로 헌금 통을 돌리면서 걷으러 다니고 봉투에 실명을 써서 내야 하는 돈을 자유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각종 헌금을 내기 위해 할머니들은 공사장에서 막노동 한 돈을 아주머니들은 가정을 버리고 몇 천 만원씩 빚이라도 져서 내는 것이 바로 헌금이라는 굴레이다.
중산층이하의 가정에서 교회의 각종헌금을 낸다면 경제적인 독립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작정 헌금이라 하여 빚더미에 앉게 하는 경우는 국가경제에까지 미치는 영향이 크다 하겠다.
몇 푼 안돼는 헌금이 무슨 국가경제에 영향을 끼치겠냐고 하지만, 교회에 가면, 내가 아는 헌금의 종류들만 하더라도 '성전건축헌금, 기도원헌금, 새 성전 성구 구입 헌금, 일천번제 감사헌금, 일천번제 건축헌금, 십일조 헌금, 감사 헌금, 전도 헌금, 북한 선교 헌금' 이렇게 많이 있다.
그리고 건축헌금은 보통 1500구좌라고 해서 모두 채우기로 되어있는데, 1구좌 당 300~500만원 정도이다. 이걸 모두 채우면 최소 45억에서 75억 정도이다. 공식적으로 기독교의 헌금은, 전국적으로 연간 11조원, 비공식적 집계로는 12~17조 원가량이다. 아직도 500원, 1000원씩 내는 헌금을 생각하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교회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의 성공사례를 말하면서 전도를 한다. 하지만, 교회를 다녀서 성공한 사람들이 전체 신도수의 몇 퍼센트나 될까? 교회의 몇몇 성공사례를 이용한 광고를 볼 때마다, 나는 복권이 생각난다.
그들은 봉사활동 하나를 하면 교회 앞에 크게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광고를 한다. 또 가난한 집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하나 지어주고 그 대가로 교회에 나와 헌금을 꼬박꼬박 내라고 한다. 이게 진정한 봉사활동일까? 그럴 때마다 기독교인들은 우리에게 봉사활동 하는 시늉이라도 하냐고 물어본다.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사고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의 사고가 봉사활동을 할 때에는 꼭 남에게 알리면서 해야만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마 자신도 모르게 착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생색을 내면서하는 그들의 사회봉사에 교회재정의 몇%가 쓰일까?
노치준 교수의 2002년 통계를 보면 놀랍게도 3.8%만이 사회에 환원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거라도 감사하라면 할말이 없지만, 그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오히려 우스운 것이 아닐까?3)
한국의 교회는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 교회를 사고 팔 때 여러 종교들 중 유일하게 권리금을 주고받는 종교가 바로 한국의 기독교이다. 내가 앞에서 말 한 것처럼 교회를 볼 때마다 벤처기업이 생각난다. 몇몇 깨끗한 교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우리나라에 십일조를 걷지 않는 교회는 거의 없다. 자신들이 믿는 신인 예수의 말까지 어겨가며 돈을 위해 걷는 게 바로 십일조이다.
이번에는 그들이 주장하는 사랑으로 화제를 바꿔 보겠다. 항상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말을 하며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말 중에는 "무릇 너의 대대 자손 중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그 여호와의 식물(食物=예배)을 드리려고 가까이 오지 못할 것이라. 무릇 흠이 있는 자는 가까이 못할지니, 곧 소경이나, 절뚝발이나, 코가 불완전한 자나, 지체가 더한 자나, 발 부러진 자나, 손 부러진 자나, 곱사등이나, 눈에 배막이 있는 자나, 괴혈병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불알 상한 자나, ..... 흠이 있는 자는 나아와 여호와의 화제(제사=예배)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 즉 나아와 여호와의 식물(食物=예배)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레위기 21 ; 16~21)
"내(예수)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태 10;34~36) "내(예수)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5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누가 13;51~53)
이 구절들은 모두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장애인과 여자는 교회에 오지 말라고 하고, 불화를 주려고 왔다는 야훼와 예수가 사랑의 신이라는 말은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이런 구절들 때문에 독일 같은 경우는 구약 성경이 청소년 유해 도서로 분류되어 있다.
기독교인들은 항상 자신들이 말하는 기독교의 십계명, 사랑, 복음들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을까? 광화문 앞에서 촛불을 들고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 옆에 꼭 붙어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을 하나하나 잘 살펴보면 ○○교회, xx교회, △△△기독교 총 연합, 등등의 글을 어깨에 메
고 미국은 하나님(야훼)이 선택한 나라이므로 미국에 대항한 악마(알라)의 나라인 이라크는 망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한 술 더 떠서 20년 뒤의 이라크 사람들이 우리에게 고마워하며 기독교를 믿는 모습을 생각해보라면서 사랑과 평화를 내세워 전도하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성경자체가 구약과 신약에 걸쳐 다루는 주제가 어느 편에 속하는가? 라는 대전제 때문이다.
즉, 이분법적인 사고는 이미 그들의 심리 깊숙이 자리하고 있으며 사실 그들의 '사랑'이라는 입발림 말도 주안에서의 사랑이라는 말로 다시 고쳐 불러야 한다. 즉,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주안에서 만의'라는 관용어가 생략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들의 경전에 나타난 주 밖에서의 사랑의 예를 보자.
이웃민족을 속여 몽땅 죽이라는 둥, 강간을 하라는 둥, 임산부의 배를 갈라 애까지 죽이라는 신이 바로 고대 사막의 신, 저주의 신이자 복수의 신인 야훼이다. <민수기 31장> 그 잔인한 장면 중에서도 17절: 그러므로 아이들 중에 남자는 다 죽이고 남자와 동침하여 사내를 안 여자는 다 죽이고 18절: 남자와 동침하지 아니하여 사내를 알지 못하는 여자들은 다 너희를 위하여(?) 살려 둘 것이니라 라는 구절이 있다. 내가 부르는 야훼(yhwh)는 바로 오늘날 교회에서 우리나라의 고유의 명칭인 '하나님/하느님'을 강탈해간, 그들이 부르는 자비로운 신 하나님의 진짜 이름이다.
이러한 신관은 어쩌면 강력한 제국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인들의 삶의 투쟁을 묘사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문자 그대로 믿고 의롭다함은 어쩌면 그 많은 개신교인들의 범죄와 무관치 않으리란 생각마저 하게 한다. 또한 자애로운 신이라는 예수마저도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그의 독설을 듣는다면 섬뜩한 기분마저 느끼게 한다.
그 당시 종교의 주축세력에게 악마의 자식이니 독사의 자식이니 독설을 마구 뱉어내는 예수 실족하게 하는 자를 맷돌에 달아 바다에 던지라는 둥 실족하게 함에 손이 그리하면 손을 자르라 혹은 발이 그리하면 발을 자르고 천국에 드는 것이 낫다는 둥의 거침없는 과격한말은 사실 간곡한 그의 가르침의 표현일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문자적으로 접근하여 실지로 남근을 제거한 예도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그는 성인의 반열에 들게 되었다. 하지만 과연 올바른 것일까? 오히려 음욕을 품는 마음을 잘라야 하지 않았을까? 잠시 이야기가 빗나간 듯하지만, 예수마저도 밖의 사랑에 대해 먼지를 털고 전도를 포기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의 육성에서 말한바 전도를 포기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있는가?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예비 되어 있는데도 그는 미련을 버리라고 가르친다. 또한, 이방인에 대한 전도를 금한 것을 보면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아가페적 사랑을 주장하는 예수가 말이다. 땅 끝까지 전파하라는 말은 후세에 가필된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예수의 사랑. 그들의 성경을 보면 예수의 어렸을 적 모습이 없다. 어렸을 적 모습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게 바로 교회에서 가장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 14권의 외경이다. 외경은 그들의 경전에서 아주 비도덕적이고 추악한 것들을 따로 빼낸 책들이다. 외경에 속하는 책은 다음과 같다.
《제1에스드라서》 《제2에스드라서》 《토비트》 《유딧》 《에스델》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예레미야의 편지》 《아자리야의 기도와 세 젊은이의 노래》 《수산나》 《벨과 뱀》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상(上)》 《마카베오하(下)》 등이다. 영어로 편집된 대부분의 외경은 《예레미야의 편지》를 《바룩서》의 마지막 장으로 취급하여 두 권을 하나로 묶고 있는데, 이 경우 외경은 총 14권이 된다.4)
외경은 신학대를 나온 목사나 대단한 광신도가 아닌 이상 보통 신도들은 외경의 존재조차도 모른다. 가르쳐주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성경은 그들의 경전에서 외경과 위경을 빼낸 책이다. 그 문제의 외경에는 사소한 일로 노인이 도둑질을 하자 노인의 살가죽을 벗겨 항아리에 보관하고 신의 능력을 이용해 나무를 엎어뜨렸다가 세웠다가 친구를 죽였다가 살리는 젊은 예수의 모습이 나온다. 이 젊은 예수의 모습이 사랑스러운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은 해석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말 한다. 하지만 위에서 보았듯이 죽였다는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살린다는 표현이 될 수 있을까? 사랑의 신이라는 야훼가 남자를 안일이 없는 처녀를 바치라는 얘기와 사람들을 죽여라는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사랑스러워질까?
사람들을 신자와 불신자로 가르고, 불신자에게는 지옥에 가둬놓고 영원한 고통을 준다는 신이, 어떻게 사랑의 신이라고 불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만약 진정한 아가페적 사랑을 하는 신이라면, 오히려 불신자까지 사랑으로 끌어안거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야훼의 전지전능한 힘으로, 아예 불신자를 만들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나에게는 교회를 다녔던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있다. 자그마치 12년간 15살까지 교회를 다닌 기억이다. 교회에서는 내가 어렸을 때 부처는 둔갑한 악마라고 배우고 단군 신화를 가짜라고 철저히 세뇌를 받았었다. 또 그들의 배타성은 그들의 경전에서 또 나타난다. <다니엘 2장>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34절: 또 왕이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45절: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
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철, 놋, 진흙, 은, 금 : 다른 종교의 신상) 이 성경 구절 몇 줄로 기독교인들이 절에 불을 지르고, 불상의 목을 자르고 약 5000여 개의 단군 상을 훼손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기독교의 성격중 하나가 배타성이니 그것을 인정해 달라고 말한다. 이건 "나는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은 무조건 때리는 게 내 성격이니, 너도 내 폭력성을 인정해 줘!"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기독교인들은 그럴 때 마다 나에게, 그런 일은 기독교인이 한 것이 아니라 사이비와, 이단이 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유독 기독교만 이단과 사이비가 많을까? 그럼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한기총(한국 기독교 총 연합회)도 사이비란 말인가? 그리고 한국 기독교는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대부분의 사이비 종교를 기독교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의 조상인 단군 할아버지를 부정하고 고조선을 부정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곰이 어떻게 인간이 되냐고 말한다. 기독교인들은 일제시대 때 일본사람들이 우리에게 하던 말을 그대로 쓰고 있다. 더군다나 기독교인들은 고대사까지 부정하고 있는데, 요즘 중국이 역사왜곡을 하는데,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성경이 어느 종교의 경전보다도 모순이 많았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다.
수메르 소설을 옮겨놓은 노아의 방주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글로써 쓴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노아의 방주로 예를 들어보겠다. <창세기 6장15절>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특별히 대 홍수 속에서 방주가 마주쳐야 하는 파도치는 바다에서는, 현
대의 가장 큰 목선은 약 300피트(90미터)인데 이것은 강화용 강철 끈을 필요로 하고 너무나 많이 새기 때문에 끊임없이 물을 퍼내야 한다. 그러나 성경 속의 방주는 450피트 길이다. 오늘날의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약100m 넓이 약 20m 높이 약10m 정도라고 한다. 바닥면적만 약 606평정도 되는 것이다. 설사 그렇게 해서라도 방주가 제작되었다고 주장을 하더라도 지구상의 모든 생
물을 태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더구나 물이 9000 미터 높이로 지구를 덮으면, 대기권이 상승하고 복사열이 없어지고, 해수의 흐름이 바뀌어져서 지구엔 급속히 빙하기가 도래하고, 배안의 동물들은 고산병 내지는 질식사 하게 된다. 그런데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며 나무판자 몇 개를 들고, 나무판자가 방주의 파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바로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곤충의 다리는 모두 몇 개일까? 당연히 6개이다. 그리고 토끼가 새김질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물론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오직 진리만이 적혀있다고 말하는 성경의 레위기 11장에는 6절: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21절: 오직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찌니 라고 적혀있다.
종교는 신이 있다는 전제하에 믿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으로 종교를 밝혀내겠다는 얼빠진 단체가 하나 있다. 바로 창조과학회 인데, 창조론을 과학으로 밝혀내겠다고 만든 단체다. 지금까지 논문 하나 못 내고 있는 사이비 과학회이다. 우주의 역사를 성경에 나오는 대로 6000년이라고 주장을 하고 그 수많은 공룡화석에 대해서는 화석에 뼈와 피가 없다는 걸로 공룡이 없다고 말한
다. 지금 이걸 말이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진화론은 영어로 the theory of evolution 이지만 창조론은 영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외국에서는 창조론, 창조과학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주의라는 말 밖에 없다. 창조주의의 영어표현은 creationism이다. 여기에는 theory가 붙지 않는다. 이론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제대로 된 증거조차 내놓지도 못한 채, 창조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5)
325년 니케아 공의회(1차 종교회의) 에서는 예수를 신으로 만들고 2차 종교회의에서는 마리아를 신의 어머니로 만들기 위해 삼위일체의 교리를 인간들의 투표로 결정했는데, 그 삼위일체교리를 절대적인 교리로 수호하면서 지난 1600 년간 수없이 많은 살육을 저질렀다
즉, 삼위일체나 예수의 신성은 인간들의 투표로 결정된 것이며, 그중 삼위일체는 마리아를 숭상하기 위한 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개신교도들은 마리아를 부정하면서도 그 삼위일체교리는 숭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2세기의 마르시옹 주교는 신약 27권을 모아서 결정을 했는데, 그 2년 후에 그는 이단으로 숙청되었다. 즉, 기독교는 지금 이단이 만든 경전을 진리라고 믿으면서, 이단을 욕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의와 같은 기독교의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을 내가 활동하는 사이트이기도 한 반기독교 시민운동 연합에서 반박해 놓은 자료들이 수백 가지가 넘는다. 이게 바로 기독교인들이 절대 진리라고 주장하는 성스러운 경전, 즉 성경이다.
물론 성서는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이 과정에서 번역상의 오류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성서 무오류 주의자들은 성서는 한자일획도 오류가 없다 하면서 성서의 절대 진리를 주장한다. 그렇다면 감히 다시 묻고 싶다. 메뚜기 다리가 몇 개인가? 왜 성서만이 무조건 진리가 되어야하는가?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진리라고 주장하는 성경을 지키는가? <레위기 11장 7,8절>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는 기독교인은 보았지만, 이런 구절을 지키는 기독교인들은 본적도 없고, 그들이 자주 말하는 십계명조차 다 지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리고 1844 년에 발견된 시나이본 두루마리 사본엔 수정했던, 수정 중이던 자리가 16000 군데나 발견되었고, 사도신경은 위조된 바이블 구절에 근거 누가 29 장 승천사화 발현사화를 위조했었다.6) 아직도 성경이 진리라고 생각되는가.
나는 성경의 오류를 볼 때마다 성경이 성령에 의해 씌어졌다고 주장하는 성서 무오류 주의자들이 성경이나 제대로 읽었는지 궁금해진다.
기독교인들이 가끔 나에게 예수가 로마의 역사에 나온다고 나에게 따지곤 한다. 나는 예수가 있건 말건 상관없다. 설령 예수가 있다고 해도 그는 그 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신의 아들을 자칭하고 다닌 사람 중의 한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신이 ‘있다’, ‘없다’를 말 한 적이 없지만, 어이없게도 기독교인들은 가끔 하나님(야훼)이 없다는 증거를 대보라는 우스운 질문을 한다. 간단히 예를 들어보겠다. a라는 사람이 냉장고를 가지고 있고, b라는 사람이 냉장고를 갖고 있지 않다면, 두 사람 a, b 중 누가 냉장고가 있고 없고를 증명해야 할까?
가끔 기독교인과 기독교에 대해 말을 할 때, 기독교인은 자신이 불리해지면 나에게 악마라고 외친다. 기독교인의 그런 태도는 기독교인의 한계가 아니라 성경의 한계다.
미션 스쿨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제성을 띄고 있다. 예배시간에 졸거나, 일요일에 교회를 나가지 않거나, 학교에 성경책과, 찬송가를 가져오지 않으면 무릎을 걷어차이고, 자로 어깨뼈를 맞는다. 단지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물론 심하지 않은 학교도 있지만, 종교의 자유를 무시한 강제 예배는 모두 마찬가지이다. 대광고등학교에 다니는 3학년 강의석은 나같이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강제예배를 거부하다가 결국 퇴학을 당했고, 강의석의 카페활동7)으로 법원 판결로 퇴학은 취소되었다. 하지만 강의석은 학교에 다시 나간 첫날부터 기독교를 믿는 선생님들의 방해로 수업을 듣지 못하였고, 학교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내가 글에 강의석에 대해서 쓰는 것은 벌써 강의석의 단식이 1달이 넘었는데도, 눈 하나 깜박 안하고 교칙을 바꾸지 않는 기독교인 선생님들의 태도에 대해서 묻기 위해서이다. 단식이 1달이 넘고 생명이 위독한데도, 대광고 출신의 선배 목사들과, 기독교인 선생님들은 생명보다도 모교의 전통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강의석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었다.
하지만 강의석의 단식으로 기독교계열 미션스쿨의 종교 강요에 대해서 알려지게 되어서 결국 사립학교법이 개정되게 되었다. 사립학교법이 개정되고 몇 일후 대광고등학교는 종교 강요가 더 이상 불가능 해지자, 강의석이 단식을 시작한지 46일이 되던 날 강의석의 모든 요구조건을 들어주게 되었다.
그런데, 여러 기독교 단체에서는 사립학교법 개정을 절대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며, 강의석을 민주노동당이 뒤에서 지시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헛소리와 함께 사립학교법 개정을 취소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도 이 글을 읽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종교의 자유를 무시하고 강제성을 띤 교칙이 더 중요한지, 아니면 죽어가는 생명이 더 중요한지 물어보고 싶다.
몇몇 기독교인들은 나에게 색안경을 벗으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독교인에게 색안경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때마다, 그들은 기독교인의 시각으로만 성경을 봐야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색안경을 쓰고 성경을 읽는 건 기독교인들인 것 같다. 오히려 색안경은 기독교인의 시각이 아닐까?
그들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다는 식의 행동을 많이 한다. 원주 경찰서에서는 경승실, 경목실이 있는데 경승실은 불교를 믿는 경찰들을 위한 방이고, 경목실은 기독교를 믿는 경찰들을 위한 방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원주 경찰서 내 경승실을 폐지하자고 하면서, 경목실은 그대로 두라고 한다.8) 또 성남일화 축구단이 통일교가 운영한다는 이유 하나로 성남 일화를
스포츠로 전도를 한다며 몰아냈던 목사가, 지금은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자며 할렐루야 축구단을 만들고, 골을 넣을 때마다 모든 선수들이 가운데로 몰려들어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 지금은 축구팬들에 의해서 성남 일화는 다시 성남으로 돌아갔고, 할렐루야 축구단은 프로팀에서 쫓겨나 아마추어 팀이 되었다. 이런 것들은 여러 사례 중 한 예에 불과하다.
항상 기독교인들이 하는 말 중에 헌법 20조인 종교의 자유를 들며, 초등학교의 단군상이나, 다른 상징물들을 없애자고 말한다. 그런데 미션스쿨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 학교에 있는 종교 동아리로는 유일하게 기독교 동아리들 밖에 없다. 공공장소에서 종교의 자유를 말하는 기독교가 지금은 각 반마다, 학교 벽마다 기독교의 행사를 광고하고, see you at the pole이라는 학교 내 기독교 정기모임을 광고 하는 걸 보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나온다.
프랑스 같은 경우는 아예 학교나 공공 기관 내에서 십자가 같은 종교를 상징하는 물건조차 걸거나 찰 수 없고, 가져올 수도 없다.
기독교에서는 메탈음악과, 뉴에이지 음악을 악마의 음악이라고 말한다. 메탈 음악 중 일부는 악마를 찬양하는 음악도 있어서 이해할 수 있지만, 단순히 동양사상이 들어간 뉴에이지 음악을 악마의 음악이라고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세상은 사랑이라는 거짓된 가면을 쓴 기독교가 없더라도 얼마든지 아름답게 만들 수 있고, 이 세상은 기독교의 찬송가에 나오듯이 십자가의 군병들이 쳐부숴야 할 악마의 세상이 아니다. 반전주의자 중 한명인 가수 존 레논은, 자신의 노래에서 종교전쟁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그런 종교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기독교는 자신들의 교리에 맞지 않으면, 악마로 몰아세우는 중세 때의 유럽 사람들과 같은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선민사상으로 비 기독교인을 깔보고, 악마취급을 하며, 대부분의 종교전쟁을 일으킨 기독교의 태도 역시 고쳐야 한다.
르네상스 운동은 14~16세기에 서유럽에서 일어난 인간성의 존중과, 개성의 해방을 목표로 한 운동이었다. 내가 말하는 新르네상스는 기독교가 무시하는 인간성을 존중하고 개성을 해방시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르네상스 운동이다.
우리는 신문을 볼 때마다 한숨쉬게 하는 기사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목사들의 성폭행, 교회세습, 목사들의 폭력 등등……. 모두 근원은 그들의 경전에 있다. 기독교의 사회적 패악은 가난한사람 힘없는 사람의 편이 되기는커녕, 삶의 고단한 언덕에서 괴로워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오히려 파고들어 헌금을 착취하며 편협한 이분적 사고에 내둘리게 하며, 민족의 주체성을 흔들고, 무지 속에 새로운 광신도를 재생산하게 하는 시스템에 있다 하겠다.
나는 더 이상 기독교인들에게 마귀나 사탄, 악마라는 말을 듣고 싶지도 않고 내가 사는 나라의 역사를 부정하는 매국노, 매혼노를 보고 사는 것도 싫다. 더 이상 내 가족과 친구들이 일요일에 교회에서 그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배우며 손을 붙잡고 혼잣말을 하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현실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또 일요일에 교회에 가는 모습보다 서로 즐겁게 얘기하면서 보내
는 가족들을 보고 싶다. 글을 더 쓰고 싶지만 내용이 너무 길어질 것 같다. 혹시라도 기독교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다거나, 이글에 의문이 가는 점이 있으면 메일을 보내거나 언제든지 나를 찾아오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반기독교 연합 어느님의 말을 빌려서 쓰고 싶다.
믿는 자는 모르고
아는 자는 못 믿는다.
믿는 다는 말 속에는 모른다는 말이 내포되어 있다. 기독교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된다면 믿으려고 노력해도 못 믿게 만드는 종교가 바로 기독교이다.
이제 이 글의 뜻도 다 알 것이라 믿는다.
21세기 新르네상스!
그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