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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그리스도인에게 구원이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 카테고리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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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질문 곱비신부님  
작성자이삼용 쪽지 캡슐 작성일2009-09-15 조회수525 추천수1 신고
로마서 9장의 말씀을 함께 묵상해봅시다.
그리고 위 검색창 (and Naver등)에 <비그리스도인의 구원>을 검색보시기 바랍니다.
 
구원에 이르는 가장 확실히 보증받은 방법(길)은
예수를 믿고 예수를 통하는 것입니다.
(믿는다 하는 사람들이 모두 예외없이 구원받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그러나 결국 "구원"은  "하느님의 자비" (9:16)에 달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비그리스도인이라 하더라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피조물인 사람이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구원의 확실한 길을 걸어가면 될 뿐이고,
이러한 확실한 구원의 방법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도해야 되는 것은 틀림없는 우리의 사명인데,
그렇다고 우리 피조물이 하느님의 자비 (구원 의지)를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비그리스도인에게도 구원이 있다>가 아니라,
<비그리스도인에게는 구원이 없다라고 말할 수 없다>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텐데,
일부 극성스런 개신교신자들이 <종교다원주의> 운운하면서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몰아붙이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지금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구원 대상이고, 우리가 전도할 대상이지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고 보는 것이 "가톨릭적인" 열린 마음일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가 하느님을 옹졸하게 만들고,
우리 스스로도 편협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여기에 개신교의 <오직 예수>의 위험성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대로,
우리가 아는 만큼만 하느님(예수님)을 믿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우리가 다 알 수가 없는, 전지전능하시고 사랑 자체이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작은 지식 안에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하심을 가두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느님의 이스라엘 선택
6 그렇다고 하느님의 말씀이 허사로 돌아갔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7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다 그의 자녀가 아닙니다.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8 이는 육의 자녀가 곧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약속의 자녀라야 그분의 후손으로 여겨진다는 뜻입니다.
9 약속이라는 것은, “이맘때에 내가 다시 올 터인데 그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하신 말씀입니다.
10 그뿐만 아니라, 레베카가 한 남자 곧 우리 조상 이사악에게서 잉태하였을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11 두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들이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하느님께서는 당신 선택의 뜻을 지속시키시려고,
12 또 그것이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부르시는 당신께 달려 있음을 드러내시려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하고 레베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13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나는 야곱을 사랑하고 에사우를 미워하였다.”
14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하느님 쪽이 불의하시다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15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 베푼다.”
16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17 사실 성경도 파라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이렇게 하려고 내가 너를 일으켜 세웠다. 곧 너에게서 내 힘을 보이고, 온 세상에 내 이름을 떨치게 하려는 것이다.”
18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고,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어떤 사람은 완고하게 만드십니다.

하느님의 진노와 자비
19 이제 그대는, “그렇다면 하느님께서는 왜 사람을 여전히 책망하십니까? 사실 누가 그분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을 것입니다.
20 아, 인간이여! 하느님께 말대답을 하는 그대는 정녕 누구인가? 작품이 제작자에게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소?” 하고 말할 수 있습니까?
21 또는, 옹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한 덩이는 귀한 데 쓰는 그릇으로, 한 덩이는 천한 데 쓰는 그릇으로 만들 권한이 없습니까?
22 하느님께서 당신의 진노를 보이시고 당신의 힘을 알리기를 원하시면서도, 멸망하게 되어 있는 진노의 그릇들을 큰 은혜로 참아 주셨다면,
23 그리고 영광을 받도록 미리 마련하신 자비의 그릇들에게 당신의 풍성한 영광을 알리려고 그리하셨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렵니까?
24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유다인 가운데에서만이 아니라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도 불러 주셨습니다.
25 이는 바로 호세아서에서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아닌 자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고 사랑받지 못한 여인을 ‘사랑받는 여인’이라 부르리라.
26 그들에게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다.’ 하던 바로 그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리라.”
27 그리고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두고 이렇게 외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다 하여도 남은 자들만 구원을 받을 것이다.
28 주님께서는 말씀을 온전히 또 조속히 세상에 실현시키실 것이다.”
29 이는 또 이사야가 예언한 그대로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후손을 남겨 주지 않으셨으면 우리는 소돔처럼 되고 고모라같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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