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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Re:천주교의 구원관에 대해서 개신교신자 지인과 대화 도중... 카테고리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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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정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02 조회수520 추천수0 신고
 
이 참에 한번 같이 생각해 보고자 글을 올립니다.
 
"구원"이란 용어에 대하여 
가톨릭대사전은 그 의미에 대하여 이렇게 시작합니다.
“도와 건져 준다”로 풀이되는 구원이란 말은
누가 남을 재앙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아울러 먼저 상태로 회복시키거나 보다 나은 상태에 놓인다는 것을 뜻한다.
이 ‘구원’이란 단어는
위험을 제거하는 것과 마음의 위안을 제공하는 양면이 있는 동시에,
건져 주는 이와 건져진 이가 서로 불가결한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구원행위를 표현하는 말은 다양하나 그 중에서도 일반적으로 흔히 쓰이는 ‘살린다’라는 동사가 상황의 긴박함을 잘 말해 주는 바와 같이, 구원은 인생의 기본적이고 궁극적인 문제와 관련된다....."
 
우리 신앙은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유일하신 구원자로 오셨으므로 하느님 아버지와 인간을 이어주시는 구세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리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으보부터
"모든 죄를 용서받아 내적으로 변화되어 성화되고, 의롭게 되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양자라는 표시가 되는 세례때 받은 "인호"가 남아있으며
더욱이 마지막날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에 대하여 즉 가톨릭교회의 구원관에 대하여(또한 개신교와 어떤 차이점이 있으며) 확인하고픈 생각에서 글을 게시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아주 오래전에
인간의 구원을 인간의 행위(선행 등)로 구원을 받을수 있다고 주장한 펠라지오를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계셨던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하였습니다.
이때 펠라지오를 이단으로 단죄케한 중심에는 당연히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계셨습니다. 이 단죄는 전체교회(동서교회 모두, 당시에는 교회의 동서 분열이 없었으므로)에서 받아들여졌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어떤 행위로도 구원을 받을수 없으며 오로지 인간에게 먼저 선물로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하여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여 구원을 받을수 있다는 것이 그 요지입니다.
여기엔 인간은 인간의 자력으로는 선행도 할 수 없다는 것도 포함이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근거로 펠라지오를 이단으로 단죄한 후 세월이 흐르자 프랑스 지방의 일부 수도원을 중심으로하여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행위(선행)으로 구원을 받을수 있다 라는 주장이 성행하였으며
이 이론은 극단적인 펠라지오의 이론과 성 이우구스티누스의 은총에 대한 가르침을 적당히 섞어놓은 것이었으며 이 이론이 유행을 타게 되었습니다.
이 이론은 펠라지오 이론 반(半),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은총론 반을 섞은 것이라하여 반펠라지오 혹은 세미펠라지오 설이라고도 합니다.
교회는 프랑스 오랑쥬에서 공의회를 열고 이 이론도 이단으로 단죄하였습니다.  이 단죄는 교황님의 지지(추인)가 계셨으므로  전체 교회에서 세미 펠라지오설이 이단으로 받아졌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왜 먼저 하는가 하면
우리 교회 일부 신자들은 
구원은
"믿음과 선행"으로 받는다라고 생각하기때문에 우선 "믿음과 인간의 행위<선행 등>"에 대한 중요한 이단에 대하여 알아 본 것입니다.
 
구원론에 대하여 16세기 종교분열시에 분열의 중심 이론으로써 로마(가톨릭)교회 내부 분열의 핵을 이루었습니다.
당시에는 라틴어가 우리 교회의 공적인 용어였으며
비록 성직자라 하더라도 지적인 이태리 출신이 아니라면 라틴어에 대하여 자유자재로 구가할 수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여 서로간(종교개혁가들과 교회 신학자들)의 주장간에
언어 장벽에 의하여 불신과 오해가 생겼을 수 있으며 이런 불신과 오해는 상호 증오심으로 더욱 격차가 벌어져 상대가 아무리 "아"라고 주장하여도 "어"라고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교회사가들의 코멘트가 있습니다.  
 
교회는 오랜 세월동안 개신교의 개혁파(루터교)등과 구원론에 대하여 신학적 대화를 해 왔는데 근자에 이르러 가톨릭-루터교, 가톨릭-감리교등과 의견일치를 이루어 "의화론=구원론 일치에 대하여 선포"하는 성과를 거두어 교회일치에 큰 걸음을 당겼습니다.(이미 신문에 보도된 사실이듯)
 
그러면 가톨릭교회의 구원론의 핵심은 무엇이며 개신교 제파들과는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선 가톨릭교회의 구원론(=의화론)은
 
-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
- 성령의 은총이 사람을 감화시키며 그 감화에 사람은 자발적으로 순명하여 신앙을 받아들이고 고백한다
  (이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인다라함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함에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대단히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 자체 능력으로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이는 것(믿음)은 성령의 은총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즉 "내(인간) 힘으로는 나의(인간의) 구원에 있어 아뭇 것도 할수 없다"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세례받은 즉 의화된 사람들의 선행(공로)은 구원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라는 질문이 나타납니다.
의회된 사람의 깊은 내부에는 성령께서 주신 은총으로 믿음과 희망, 사랑을 이루어나갈수 있도록 인간을 재촉하므로
의화된 사람들은(즉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성령의 가르침에 귀 귀울려야하고 행동으로 실천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끊이없는 노력은 자신의 성화를 성장시키고 타인의 구원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교회는 이러한 인간의 노력을 공로라고도 말하는데(그래서 우리는 주님앞에 공로를 쌓으라고 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인간이 자신과 이웃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이러한 공로들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는 선행되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인간의 공로라 할수 없다고도 가르칩니다.
 
그러면 교회는 왜 공로(선행 등)를 쌓으라고 그토록 강조하는 것일까요?
한마디로 그것은 "성경에서의 주어진 명령"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보면 하느님의 사랑, 이웃사랑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실천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하였으며, 인간의 행동(사랑의 실천, 선행 등)에 의하여 삼십배, 오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을 것이며
사랑의 실천이 없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염소떼"라 주님꼐서 가르치셨기도 하지요.
이러한 공로를 지속적으로 쌓을수 있는 원천은 우리가 세례를 받을때에 성령으로 받은 은총으로 그렇게 할수 있습니다.......
 
하여 가톨릭신자들은 교회로부터 선행이 매우 중요하고 하여 사회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도록 강요를 받아왔습니다.(??~~@@)만,
의화된 그리스도인들의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선행은 다시 말하면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물이므로)
 
하여 구원을 받으려면 "믿음과 선행"이 필요하다 라고 말하는 것은 가톨릭신앙으로 볼때는 사실 이단적인 표현이며 또한 대단히 모호한 표현입니다.
가톨릭신자들은 이런 표현보다는 "은총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고 하여야 올바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일반적인 개신교들의 구원론도 우리 가톨릭신앙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들은  하느님의 은총에 대하여 우리교회의 가르침과는 좀 다릅니다.
개신교 창시자들이 당시 단죄를 받은 것은 (라틴어라는 언어의 불통을 넘어^^) 은총론에서 단죄를 받았다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은총은
"하느님 자신이고, 하느님의 거져주시는 선물이며 인간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능력" 등등
이라고도 믿습니다.
 
당시 개신교들은 은총은 단지 하느님의 선물일 뿐 인간을 변회시킬수는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물론 개신교 창시자들 사이에서도 일치를 보질 못했지만)}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세례성사에 대하여 몇가지를 부정하였고 이러한 부정이 다시 단죄를 받게 된 것입니다.
세례성사는 바로 믿음(신앙)의 고백에 대한 것이므로 죽을 운명에 있는 사람들을 의화시키는 세례성사의 기본 교리를 매우 중요합니다.
 
세례성사는
- 하느님이 우리를 의롭게 만드신다=의화=성화
- 세례성사는 당사자의 모든 죄(원죄, 본죄)를 용서하신다
- 세례성사는 인간을 내적으로 완전히 변화시킨다
가 우리 교회의 세례성사 교리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개신교들은 하느님의 은총은 인간을 질적(내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대부분 믿지않았기에
- 세례성사는 하느님이 인간이 '단지 의롭다고 인정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義認(의인)론=稱義(칭의)론
  하여 인간의 죄는 완전히 용서 받은 것이 아니다
- 그러므로 세례성사때 인간의 내적 변화가 전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하여 세례를 받았어도 겉으로만 의롭다 인정을 받았을 뿐이고 속으로는 아직도 죄로 가득차 있기에(성화가 되지않았기에)  개신교 창시자들은 의화된 그리스도인들도 "죄인인 동시에 의인이다"하였고
이에 대한 보충이 오늘날 개신교(특히 장로교)안에서 "성화론"교리로 발전이 되었습니다.
 
우리교회는 당시 저러한 명제를 비웃으며 "그리스도인들은 의화되었으므로 당연히그리스도인은 義人(의인)이다" 라 하였습니다.
 
"의인이지만, 죄로 가득한 세상에 남아 있어 항상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사욕편정)이 우리안에 남아있으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기도와 공로에 힘쓰며 또한 죄를 짓게되면  
즉시 회개하고 고해성사를 보아 자신을 정화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모든 것은 아니지만 대체 이러한 것에서 서로 차이를 보여 서로 단죄하고 갈라지는 큰 요인이 되었던 것인데요...
 
가톨릭-루터교 의화론 일치 선언문과 그 해설에서 당시 개신교 창시자들이 주장했던 "죄인이면서 의인"이라는 것
이를테면
"은총은 사람을 변화시킬수 없다라며 의화란 단지 겉으로만 의롭다 인정받고 속으론 썩있다라는 의인론" 등에 대하여
상호 그러한 용어들이 당대에 어떤 의미에서 사용되어왔는지(당대에서 오늘날까지)
서로 충분히 검증하여 그렇다면 이런 명제는 상호간에 이견이 없는 것이라라며 이해하고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가톨릭적인 주장이 훼손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루터교, 감리교-가톨릭간의 의화론(구원론) 일치 선언문(밀 해설)에서 
당대에 교회가 개신교 창시자들을 단죄한 것은 그대로 유효하지만 그 단죄가 오늘날 그들을 따르는 신도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음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면
그러므로 가톨릭신자들은 구원은 "믿음과 선행으로 받는다"라느느표현으로 계속 주장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구원은 "믿음과 은총"으로 받는다 라고 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다른 교파 사람들이 수시로 묻는 질문 중 하나인
"오늘 그대는 구원을 받았음을 확신하는가??"에 어떻게 답변을 하여야 할런지는 대충 요약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듭니다.
미사와 영성체 그리고 고해성사등을 제대로 하고 사는 평범한 신자들은 "그렇다"라 답변을 하여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아, 그리고 연옥은 구원받은 사람의 영혼이 지상에서 이루지 못한 잠벌을 한시적으로 정화하는 상태 혹은 장소이므로 당연히 구원을 받은 영혼이어
연옥 영혼을 떠올리면서 구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간주하여 질문에 머뭇거리는 일도 없어야 할 것 같습니다.
 
생각이 가는대로 쓰다보니 문맥이 맞지않은 부분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가톨릭의 구원관과 루터교, 감리교를 제외한 다른 개신교들의 구원관의 차이점의 요지는 제대로 설명한 듯합니다.
도움이 되시기를 바라며.
 
혹시라도 잘못된 표현이 있는 점은 지적해 주시면 검토후 즉각 교정합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1987 성령의 은총에는 우리를 의롭게 하는 힘이 있다. 곧, 성령의 은총은 우리의 죄를 씻어 주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로마 3,22)를 누리게 해준다.”
 
1992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우리는 의로워질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 뜻에 맞는 살아 있는 거룩한 제물로 당신을 바치셨으며, 그분의 피는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한 속죄의 도구가 되었다.
의화는 신앙의 성사인 세례로 주어진다. 의화는 당신 자비의 능력으로 우리를 내적으로 의롭게 하시는 하느님의 의로우심에 우리를 부합하게 한다.
의화의 목적은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고, 인간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주는 것이다
 
1993 의화는 하느님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 사이에 협력 관계를 이룬다.
인간 편에서, 의화는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신앙의 동의 안에서 그리고 그 동의에 앞서고 그것을 보전하시는 성령의 이끎에 사랑으로 협력하는 실행 안에서 표현된다
 
1996 우리는 하느님 은총으로 의화된다. 은총은 하느님의 자녀48) 곧 양자가 되고49) 신성(神性)50)과 영원한 생명51)을 나누어 받는 사람이 되라는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호의이며 거저 주시는 도움이다.
 
1999 그리스도의 은총은 하느님께서 우리 영혼을 죄에서 치유하여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령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 안에 불어넣어 주시는 당신의 무상 생명이다. 이 은총은 세례로써 받는 성화 은총(gratia santificans) 또는 신화 은총(gratia Deificans)이다. 이 은총은 우리 안에서 성화 활동의 샘이 된다
 
2001 은총을 받아들이도록 인간을 준비시키는 것은 은총이 이미 작용한 결과이다.
은총은 우리가 신앙을 통한 의화와 사랑을 통한 성화에 계속 협력하도록 해주는 데 필요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시작하신 일을 완성에 이르게 하신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하기를) 원하는 의지를 일으키심으로써 세상에서의 일을 시작하시며, 이미 회개한 우리의 의지를 자극시켜 협력케 하심으로써 일을 완성하십니다."
 
2006 일반적으로, ''공로''라는 말은 공동체나 사회가 그 구성원의 행실에 대해 마땅히 주는 보상을 가리킨다.
그 행실이 선행일 때는 상이 주어지고, 악행일 때는 벌이 주어진다. ''공로''는 정의의 덕과 관계되며 정의의 원리인 평등에 상응하는 것이다.
 
2009 천주성에 참여시켜 주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하느님께서는 거저 베푸시는 의로움의 결과로 참된 공로를 베풀어 주실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가 되게 하고, “영원한 생명의 약속된 유산”62)을 받게 하는 은총에 의한 권리, 사랑의 완전한 권리이다. 우리 선행의 공로는 하느님 선의의 선물이다.63)
 “먼저 은총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드려야 합니다. (……) 공로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2027 회개의 기원이 되는 첫 은총을 받을 만한 공로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성령의 이끎에 힘입어,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을 위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데 유용한 모든 은총뿐 아니라, 필요한 물질적 재화까지도 얻게 해주는 공로를 쌓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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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3 세례를 통하여 모든 죄, 곧 원죄와 본죄, 모든 죄벌까지도 용서받는다.59) 세례로 새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을 아무런 죄도 남아있지 않다.
곧 아담의 죄도, 본죄도, 죄의 가장 중대한 결과인 하느님과의 단절도 남아 있지 않는 것이다.
 
1265 세례는 모든 죄를 정화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 신자를 “새사람”(2고린 5,17)이 되게 하며,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61)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62) 그리스도의 지체,63)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로마 8,17), 성령의 성전64)이 되게 한다
 
1266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께서는 세례 받은 사람에게 성화하는 은총, 곧 의화하는 은총을 주신다. 이 은총은,

- 향주덕(向主德)을 통하여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바라고,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하 며,
-
성령의 은혜를 통하여, 성령의 이끎에 따라 살고 행동할 수 있게 하며,
-
윤리덕을 통하여 선이 성장하도록 해준다.

 
 
 
 
 
 
 
 
 
안녕하세요.

개신교 신자인 분과 이야기를 하다가 구원관이 어떻게 되냐고 묻길래
“예전에는  ''예수님을 믿고 선행을 행함으로서 구원받는다''였다가 최근에
 한국천주교와 감리교사이에 이렇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고 성령의 은총으로 선행을 행한다'' 가
 공식적인 구원관이다”라고 답했습니다.옳게 답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어~ 맞게 알고 있네요. 구원받으셨네요”라고 하더군요.

예전에 본당신부님께서 한국천주교와 감리교 사이에 구원관에대한
의견의 일치를 얻은 내용이라면서 소개해준  내용을 바탕으로
말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고 성령의 은총으로 선행을 행한다”

이것이 의견의 일치를 본 내용만을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인지 아니면
우리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이 이렇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인지 갑자기
혼동되기 시작했습니다. 잘못 말한 것은 아닌지 계속 걱정이 되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안네요.

로마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은 당시 로마인들에게 유대인 관습을 지키지 않아도 됨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선행 없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이야기 하면 안된다고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했다는 자료도 있고
마태오복음에는 “악행을 일삼는 자들을 모조리 자기나라에서
추려내어 불구덩이에 쳐넣을 것이다”라는 말씀도 있고 해서
제가 한 이야기가 잘못된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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