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명
61. 순명의 바탕
순명은 사제가 지녀야 할 아주 중요한 가치이다.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바치신 희생 자체는 성부의 뜻에 대한 그분의 순명과 신의를 통하여 구원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 곧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다"(필립 2,8). 히브리 서간은 예수께서 "그분 자신이 겪으신 것들로부터 복종을 배우셨다"(히브 5,8)고 지적한다. 따라서 성부께 대한 순명은 그리스도의 사제직의 핵심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스도의 순종처럼 사제의 순명도 그의 합법적 장상들을 통하여 그에게 분명히 나타나는 하느님의 뜻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같은 순중 의지는 인격적 자유의 진지한 행위, 기도 중 하느님 대전에서 꾸준히 심화되는 선택의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사에 의해 그리고 교회의 위계적 구조에 의해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순명의 덕은, 먼저 부제 서품식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는 사제 서품식에서 성직자에 의해 명확히 약속된다. 이로써 사제는 자신의 순종 의지를 강화하고, 또한 그리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기까지 순중하는 하느님의 종이 되신 그리스도의 순명(필립 2,7-8 참조)의 활력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96)
현대 문화 안에서는 개인의 주관성과 자주성의 가치가 마치 각 사람의 품위에 본질적인 것처럼 강조되고 있다. 그 자체 긍정적인 이 가치가 절대적인 것이 되고 또 그 정당한 맥락에서 벗어나서 주창된다면 부정적 가치를 지니게 된다.97) 이런 태도는 교회의 집단들 안에서 그리고 공동체에 봉사하는 사제 활동이 주관적 영역에 한정될 경우에는 언제든지 사제 생활 자체 안에서도 드러날 수 있다.
사실, 사제는 그의 직무의 본질 자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제는 그의 장상들에 의해 정당하게 지시되는 모든 것을 기꺼이 수락하고 또 합법적 장애로 면칙되지 아니하는 한 특별한 방식으로 소속 직권자로부터 그에게 맡겨진 과제를 받아들이고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98)
62. 위계적 순종
사제는 교황 성하와 그 자신의 교구장에게 "존경과 순명을 표시할 특별한 의무"를 진다.99) 특정 사제단에 소속됨으로써 사제는 개별 교회에 봉사하는 책임을 지게 되는데, 개별 교회 안에서 일치의 윈리와 바탕은 주교,100) 말하자면 자신의 사목적 직분의 수행을 위해 요구되는 통상적이며 고유하고 직접적인 모든 권한을 소유하는 주교이다.101) 신품성사에 의해 요구되는 이 위계적 에속은 보편 교회의 관할권자이며 또한 그리하여 모든 개별 교회의 관할권자인 교황 및 교구장과 관련하여 그 교회론적-구조적 성취를 발견하게 된다.102)
신앙과 도덕의 사항에 있어서 교도권에 복종해야 할 의무는 사제가 교회 내에서 수행해야 할 모든 역할에 근본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이 영역에서의 불찬성은 신자들간에 추문과 혼란을 야기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교회가 규범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사제만큼 인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상 교회의 교계 제도와 조직의 구조가 가시적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교회에 맡기신 직무, 특히 교회 지도와 성사 집전은 올바르게 이루어지도록 적절히 조직되어야 한다.103)
그리스도의 직무와 그분의 교회의 직무에 관해서, 사제는 분열을 조장하고 평신도들과 여론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다 주는 주관적 기준들에 의거한 온갖 종류의 편파적 굴종을 회피하면서 모든 규범을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의무를 관대히 떠맡는다. 실제로, "교회 법률은 그 본성상 반드시 준수되어야 하며" 또 "머리가 명한 것이 몸 안에서 준수되도록"104) 요구한다.
더욱이 관할권자에게 복종함으로써 사제는 사제직 내에서의 상호 사랑을 증진시키며 또한 진리 안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일치를 다지기도 한다.
63. 사랑으로 행사되는 권위
순명의 준수가 실제적이 되고 교회의 친교를 육성할 수 있는 것이 되려면, 권위를 누리는 이들(관할권자, 수도회 장상, 사도 생활단 의장)은 자신의 필수적이며 꾸준한 개인적 모범을 보여야 할 뿐 아니라 교도의 영역과 규율의 영역 안에서 나타나는 모든 의향을 충실히 따를 것을 요구함으로써든 아니면 주도권을 행사함으로써든 자기 자신의 제도적 직분을 사랑으로 수행해야 한다.105)
그 같은 순종은 자유의 원천이다. 순종은 원만하고 안정된 인격의 바탕이 되는 조화를 조성하면서 평온하고 일관성 있는 사목적 태도를 취할 줄 아는 사제 안에서 진정한 성숙의 성장을 자극하기 때문에 그러하다.
64. 전례 규범에 대한 존중
이 문제의 수많은 국면들 가운데, 전례 규범과 관련된 국면은 현대에 특별한 관심사로 부각될 수 있다.
전례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수행으로서,106)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107) 전례는 사제가 그 안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자이며 교회에 충실히 복종한다는 특별한 인식을 가져야 하는 영역이 된다. "거룩한 전례의 주관은 오로지 교회의 권위에만 즉 사도좌와 법 규범에 따라 교구장에게 속한다."108) 그러므로 그 같은 사항에 있어서 사제는 그 자신의 일방적 결정에 의해 어떤 것도 첨가하더나 제외시키거나 변경해서도 아니된다.109)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탁월한 행위이며 그리고 사제가 신자들의 선익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또 교회의 이름으로 집전하는 성사의 거행에 특별히 해당되는 진실이다.110) 신자들은 한 특정 집전자의 개인적 취향에 따라서가 아니라 또한 자기 자신을 하느님 백성의 보편성으로부터 단절시키려는 경향을 띤 특수 단체들의 표현으로서 승인받지 아니한 그런 유별난 예식에 따라서도 아니며 오히려 교회가 원하는 바대로 전례 거행에 참여하는 참다운 권리를 누린다.
65. 사목적 계획에 있어서의 일치
사제들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주교가 - 사제 평의회의 협조로111) - 결정하는 사목 계호기의 수립에 책임있게 참여할 뿐 아니라 이 계획들과의 조화 속에서 그 자신의 공동체를 발전시켜야 할 필요도 있다.
지혜로운 창의성, 견문이 넓은 사제에게 고유한 독창적 정신은 위축되어서는 아니됨은 물론 풍성한 사목적 능률에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이 분야에서의 독립에 대한 그릇된 인식은 필수적 친교를 파괴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복음 선교의 과업 자체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
66. 교회 복장 착용의 의무
성스럽고 초자연적인 실재들의 외적 표징들이 사라지려는 경향이 있고 또 세속화되고 물질주의적인 사회 안에서는, 공동체가 사제를 그의 옷차림새에 의해서도 하느님의 사람 및 하느님의 신비를 분배해 주는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음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사제의 복장은 공적 봉사자로서 그의 헌신과 신원을 나타내는 명료한 표지이기 때문이다.112) 사제는 일차적으로 그의 처신을 통해서는 물론, 그의 신원 그리고 하느님과 교회에의 소속을 진정으로 모든 신자에게 또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옷차림으로써도 자기의 신분을 확인시켜야 할 것이다.113)
이런 연유로, 사제는 "주교회의에서 제정한 규범과 그 지방의 합법적 관습에 따라 적절한 교회 복장을"114) 착용해야 한다. 이는 복장이 성의(聖衣)가 아닐 경우에 평신도의 옷차림과 달라야 하고 또 사제 직무의 품위와 성스러움에 맞갖아야 함을 뜻한다. 스타일과 색상은 언제나 교회법의 의향에 합치되어 주교회의에 의해 확정되어야 한다.
이 규율의 정신과 맞지 않는 까닭에 반대되는 관습은 합법적 풍습으로 간주될 수 없으며 관할권자에 의해 철회되어야 한다.115)
전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제가 이 고유한 교회 복장 착용을 기피한다면 이는 하느님께 축성된 자로서의 자기 신원에 대해 확고한 의식을 지니지 아니함을 드러내는 처사라 하겠다.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