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Re:천주교는 '자살'할 자유를 막아야 합니까? | 카테고리 | 천주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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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의형 | 작성일2011-01-27 | 조회수618 | 추천수0 | 신고 |
답 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님의 글과 저의 글에 대해 서로 어떠한 바른 길을 가기 위해서 ‘삶’에 대해 두 가지로 나누고 싶습니다. 한 가지는 하느님과 아무런 상관없이도 살 것 같은 그저 동물적인 삶(육적인 삶)을 말하고 싶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삶(영적인 삶)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말하는 삶의 희망이 없음은 동물적인 삶에서 영인 사람이 살아갈 때에 육체적으로 분명히 느끼고 알 수 있는 삶에 대한 고민입니다. 영적인 하느님 영역과 매우 거리가 멀리 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님의 의견은 인간의 육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동일하게 삶을 말하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영과 육이 조화로운 그런 삶이 가장 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문제로 육과 영적인 것을 동시에 판단하실 분은 하느님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육적인 삶에 대한 절망입니다. 바로 영적인 것을 가장한 세력들이 권력을 잡아서 육적인 삶을 통제하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통제하는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통제 권한의 남용과 고민 없은 무책임한 행동과 지시는 결국 육적인 삶에 대한 부자유함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영과 육이 조화로운 것을 판단하기 매우 어려운 것을 가장해서 실제 영적인 종교 권력이 부도덕해서 부적절한 통제로 육적인 삶을 억압하는 도구로 쓰여 지는 것은 결국 영적인 것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과 육이 조화로울 때 사람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만 깨끗하고 육이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하는 것은 영이 타락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에 대한 불공평을 영이 있어 극복한 것이 기독교 역사이고 천주교의 주요한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육과 영이 조화를 이루고 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육과 영이 조화롭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살의 육적인 문제가 영적으로 극복이 되는 것이라면 님의 의견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영적인 문제가 생겨 육이 고달프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면 당연히 영과 육이 조화를 이루지 않겠습니까! 천주교에서 자살을 막지 말라는 것은 육의 문제가 영적인 것이니 영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것과 같이 종교 지도자가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는 육적인 문제이지 영적인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영적인 문제는 오직 사회의 악과 그 구조 안에서 상위지도층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회와 개인은 아무런 상관없이 고통 받아야 한다면 문제가 심각한 것이 아니고 뭡니까? 그래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힘든 것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입니다. 사회와 국가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 안에 기독교인이 모두가 나쁜 것이 아니기에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마저 막는 것은, 육과 영의 두 가지 문제의 포기라고 보다는, 개인의 육을 포기하지 말고 영적인 삶을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영이 육에게 바른 것처럼 육이 영이 바른 길을 위한 최후의 선택인 것입니다. 영적인 삶을 가정해서 현실의 육적인 것을 부도덕한 통제에 대해 거부하는 육과 영을 추구하는 삶을 막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영적으로 문제가 없는 종교 지도자라면 이런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육적인 자살만 문제시하고 막는 것을 게을리 하는 것은 결국 영적인 문제와 육에서 통제를 하는 지도층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추기경의 작은 실수는 육적인 것에 엄청난 결과를 가져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추기경의 작은 편애는 결국 육적인 삶들이 둘로 나눠져서 서로 죽이고 죽는 살육 전쟁이 생기는 것입니다. 추기경의 작은 발언은 그 언어에 의해 한쪽은 정죄를 받고 한쪽은 이유없이 정죄를 당할 것입니다. 이유없이 당해야 하는 살인일 것입니다. 이를 막는 방법이 있으면 말해 보세요. 스스로 자성하고 반성하면 될까요? 하느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구원해 주실까요? 다른 희망이 있어 기쁩니까? 만일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는 작은 실수와 작은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완고하고 고집만 부리고 중립을 지킨다고 다른 쪽에 커다란 아픔을 주는 것이 영적인 문제로 해결되는 것입니까? 절대로 영적인 문제가 아니라 육적인 삶의 문제입니다. 육이 부정하여 영이 타락하게 된다면 육을 부정하고 영을 구원하게 하는 것이 가장 기독교적인 것이 아닐까요? 다시 말해서 자살이라는 것은 육적인 타락을 부정하는 것이고 영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육적인 몸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것을 들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를 막는 것은 자살로 인한 육적인 삶에 대해 잘못된 통제를 한 영적인 삶으로 가장한 현실의 통제하는 지도층의 문제를 숨기는 것으로 사용하는 것이 자살을 막는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살을 막는 것은 저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기회를 잃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모르고 다른 해결방법이 있는데 자살을 선택한 것은 우매할 수 있고 그 우매함으로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온다면 저는 분명히 말하지만 자살을 절대적으로 반대할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힘과 방법에 선택의 여지마저 빼앗기고 그것마저 탄압을 하고 있고 그 방법으로 해결을 볼 수 없을 만큼 영의 문제는 심각해지고 현실의 지도자들과 그 주변은 아무런 의식마저 느끼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영과 육이 완전히 분리된 경우입니다. 이는 죽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서로 죽이고 죽는 것보다 혼자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닐까요? 이런 상황에서 육을 영과 조화롭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더러운 통제에서 육을 더럽히지 않고 육과 영을 함께 조화롭게 하는 선택이 최선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완성된 조화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는 오직 하느님만 아실 문제이지 인간이 종교적인 지도자가 막고 종교라는 이름으로 막을 수 없는 문제라고 봅니다. 오히려 이를 막는 종교지도자의 부도덕과 사회 지도층의 문제를 들어나게 하는 것을 막을 뿐입니다. 자살은 결국 남은 자에게 영과 육을 조화롭게 할 수 있는 가능성과 현실의 육적인 삶에서 어떻게 보다 더 영적인 삶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새로운 가능성과 방법을 고민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자살이 없고 현실의 고통에서 좀 더 나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육적인 문제에 대해 무능한 것인지 영적으로 무감각한 것인지 천주교와 천주교 지도자는 외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탄압까지 감수해 가면서 육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가혹한 탄압만 남는다면 자살만큼 좋은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영적으로 문제 되는 것과 육적인 삶에서 이런 타락과 단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과 육을 분리하는 것처럼 영과 육을 분리하는 시대에서 천주교가 영과 육을 분리할 수 없는데도 영과 육을 분리하는 것을 하면서 개인에게 자살을 막는 것은 영과 육이 분리하고 있는 서로의 일체감을 부정하고 있는 인간에게 더 이상 하느님을 가장해서 영과 육을 분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을 통해서 영과 하나가 되어 일치하려고 하는 것을 막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인에게도 자살이라는 쉽지 않는 문제에서, 자살을 천주교 이름으로 무조건 막는 것은 천주교의 부도덕한 것을 들어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심각한 문제를 감추어 두고 그냥 덮어 두려고 하는 것은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악을 남겨두는 것이 될 것입니다. 종교라는 권력으로 개인의 자유마저 억압하는 권력은 결국 사회와 국가를 서로 죽고 죽이는 잔인한 삶의 현장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 자살을 선택해 악과 구분한 삶은 하느님이 마지막으로 줄 수 있는 선택권일 것입니다. 이를 막는 것은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을 부정하고 악에게 충성 맹세를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자살’을 막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과 사회 지도층의 문제가 사회전반에 만연한데, 영과 육을 단번에 판단하고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특히 육적인 문제에서 영적인 삶이 자유롭지 않아 힘들어하는 사람을 모른 척 외면하고 오히려 탄압까지 서슴지 않게 범하면서 벌이는 이들은 분명히 영적인 삶마저 부정하는 세력들입니다. 이들이 부정하여 자살을 할 수 없음을 들어내는 것은 선을 악으로 갚는 자들이 누구임을 분명히 하고 이들이 선을 추구하는 자들 탄압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은 오직 ‘자살’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편 38편 21절 선을 악으로 갚는 자들 제가 선을 추구한다고 저를 공격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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