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성경에 살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살인할 경우가 있습니다. 카테고리 |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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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의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1-01-29 조회수1,863 추천수0 신고
사람 사는 세상에서 어느 곳에 있든지 거의 대부분이 살인을 법으로 금하고 있습니다.
사형제도 마저 금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사형제도가 남아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 어려운 얘기입니다.
 
하지만 본인은 살인하지 말라는 당연한 얘기를 하는 것보다 살인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 점에게 종교가 잘못되면 아편보다 더 심각함을 말하기 위해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저도 분명히 말하지만 살인은 막아야 하고 살인은 해서도 안되고 그냥 당해서도 안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살인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일까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있고 꼭 지켜야 할 것있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지키기 위해서 살인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저는 분명히 그렇다 말할 것입니다.
그럼 왜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는지 다시 되물을 것입니다.
저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바로 신앙입니다.
바로 성경으로 알 수 있는 하느님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하느님이라고 하면서 얼마나 많은 전쟁이 일어났습니까?
정말 참혹한 전쟁 중에 종교의 이름으로 일어난 전쟁이 가장 참혹했고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전쟁들이었습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상대를 죽인 것입니다. 살인이지요. 이런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반대로 살인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자고 하는 종교가 살인하는 것은 나쁜 것도 모르고 나쁜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살인하라고 하는 말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공격하고 죽이는 세력들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민이 있습니다. 누가 이기고 누가 져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는 쪽이 져야 하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자가 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실로는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아주 먼 역사이어야만 겨우 알뿐입니다. 많은 공부와 시간이 있어야 겨우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의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결국 저는 살인을 하지 말라는 우선적인 말로 시작한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하느님의 이름으로, 종교의 이름으로 죽일 권한이 누구에게 있겠습니까?
결국 인간의 판단이 죽인 것이지, 종교와 하느님의 이름으로 죽인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래서 종교의 전쟁은 사람이 살인한 전쟁이지 종교가 선을 이룬 전쟁이 아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살인을 하는 것과 살인을 막는 것은 결국 사람의 일이지 하느님과 종교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죽고 죽이는 문제는 종교와 하느님 이름으로 막는 것은 사실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종교의 핵심을 전혀 모르고 하는 인간의 탐욕스러운 살인자의 얘기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또한 인간의 역사에서 종교의 역사는 이런 인간의 탐욕을 이기고 승리한 역사이기도 합니다. 결국 서로 옳다고 싸우면서 싸워서 이긴 쪽에서 자신이 하느님의 선을 이루었다고 자신을 합리화 하는 것이 종교이었습니다.
그 종교가 정치에서 분리되어지고 민주주의로 변화과정을 이어오면서 법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치 권력이 생겼고 법의 권력이 생겼지만 하느님께서 종교가 지향하고 있는 것과 함께 하는지는 언제나 묘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법과 권력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더욱 노골화되어 자신의 탐욕을 합법화 하는 것이 바로 종교 권력과 정치 권력과 법의 권력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 가가 중요한 것이지?
종교와 법과 권력이 이기는 것이 바로 정의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고민할 것은 하느님과 누구와 함께 하느냐 입니다.
그런데 살인이 그냥 이루어지면 어떻게 합니까?
또 다른 살인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이미 살인이 일어난 후에 종교와 법과 권력이 살인을 하지 말하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저 악만이 들어난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서 살인하지 말라고 하면서 살인이 이루어지면 죽은 사람이 말이 없듯이 당하고 난 후에는 전혀 손쓸 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인을 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인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살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누구도 살인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에서 살인을 당하면서 상대를 용서해서 서로 선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 종교의 역사입니다.
분명한 것은 잘못이 무엇이고 분명히 지켜야 할 것이 분명해야 종교의 역사가 바르게 쓰여지는 것이고 사랑과 화해가 진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인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라고 하는 것은 분명히 들어난 것입니다.
바로 종교의 가치와 하느님과 함께 해야 함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 지켜야 할 가치가 있어서 용서와 화해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용서와 화해에 대한 의미가 없이 계속 악이 들어나고 악이 활개를 친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전쟁과 싸움 속에서는 자신의 신념대로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서로 다른 신념으로 싸울 때에 상대의 존재감을 없애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제거하기 위한 상대라면 끝까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럴 때 살인하라는 말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자신의 생존권을 침략하여 약탈한다면 당연히 싸워서 이겨야 하지 않을까요? 살인이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은 살인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느님는 누구와 함께 하는가 입니다. 정말 고민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고민해야 합니다.
 
만일 상대가 자신의 생존권을 위협해서 자신을 죽이려 왔다면 살인을 해야합니다. 그게 하느님 뜻이라면 말입니다. 또한 내가 상대에게 하느님을 저버리고 상대의 생존권과 존재감을 죽였다면 상대의 죽이는 행위에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다.
현실과 하느님과 함께 하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살인하지 말라는 말로써 끝나는 것은 진정한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아니기에 계속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또다른 가능성입니다. 나는 하느님 뜻과 잘 살고 있는데 상대가 자신을 위해 침범해서 살인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상대는 하느님뜻과 함께하지 않으니 싸워서 이겨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이렇게 좋은 승리로 남았으면 좋겠지만 절대로 누구에게 하느님의 뜻이 함께 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이게 오늘날까지 온 인류의 대부분의 많은 역사들이었습니다.
 
저는 살인하지 마라! 살인하라! 라고 말을 꺼낸 이유는 이런 것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뜻을 잘 따랐든지 상대가 하느님의 뜻을 잘 따르지 못했던지 꼭 먼저 해야 할 것이 있고, 그 상위의 입장에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는 꼭 이런 것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살인이 이루어지는 것은 인간의 보이지 않은 시기심일 수 있고 오해일 수 있고 작은 실수에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삶의 구조적 문제나 실제의 손해와 피해가 있어서 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남이 실수를 하지 않게 이런 모든 것을 돌보고나서 자신이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는지 항상 고민하고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법을 지켰다고 교회권력에 충성했다고 정치권력에 잘 지낸다고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상대가 오해와 실수가 없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법의 기준으로 상대가 나를 공격했고 누군가 죽였다고 살인자라고 하면 안됩니다. 만일 그 죽인 사람이 이미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보고 억울한 것이 있고 자신에게 피해를 준 것이 분명한데 상대에게 살인했다고 그에게 똑같이 살인하는 것은 결국 악만 남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가 먼저 살인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게 해결이 되지 않았다면 살인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살인이 다른 가능성으로 해결될 수 있는데 살인이 이루어졌다면 저는 이 살인은 잘못된 것이고 하느님과 함께 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살인하기 전에 살인할 수 밖에 없는 것을 오해와 실수가 없게 미리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억울함이나 실수와 오해가 없게 말입니다.
그런데 약자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특히 이런 피해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알아도 어뗳게 해결할지 잘 알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저의 살인과 자살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약자는 언제나 해결도 못하고 살아야 하는 것은 진정한 하느님의 뜻도 아니고 종교의 존재가 존재감마저 상실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유독 카톨릭의 게시판에 자살을 막는 것에 대해 얘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어쩌면 살인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과 누구와 함께 하고 있는지 모르기때문에 생긴 말일 것입니다. 알 수 있다고 해도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알기 때문에 우선 살인을 막는 것이 급선무이라서 살인을 금하는 것 일 것입니다. 또한 살인이 일어났다고 해도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서 다시 극복된 역사 경험이 있어서 극복할 것을 믿는 결단으로 살인을 금하는 것입니다. 만일 살인이 일어나면 이런 여유조차없이 전쟁으로 계속 끝없이 종교와 전혀 다른 현실이 있기에 살인은 막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꼭 집고 갈 것입니다. 평화입니다. 평화를 위해 결국 살인을 막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서로 오해와 실수가 없이 또한 피해와 손해가 없이 계속 지속되는 것이라면 분명히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서로 죽이고 죽는 것이 아니라면 싸울 수도 죽일 수도 없는 것이 아닙니까?
겉으로 평화라고하면서 자신의 존재감과 생존권까지 위협이 되었다면 전쟁과 같은 상황이 아닙니까?
법의 정의가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죽이고 죽는 법이라면 이러한 법을 지켜야 할까요?
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하느님과 함께 하는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해야 할까요?
지금은 자살로 죽은 사람이 더욱 많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화만을 얘기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일까요?
교회에서 자살을 금했다고 자살을 막으면 그게 진정한 평화일까요?
 
겉으로 평화스럽지만 실제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지 않으면 그것은 분명히 종교 가치가 작동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살인을 금하고 자살이 무조건 나쁜다고 하는 것은 절대로 옳은 행태도 아닐 것입니다.
 
서로 이웃을 사랑하고 내 몸같이 돌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살했다면 그것이 자신이 진정으로 해야할 것을 못해서 나의 모르는 사회 악으로 한 것이 아닌지 말입나다. 아니면 난 모르고 한 나의 행복 추구가 남의 존재감을 완전히 묵살 될 것이 아닌지 말입니다. 또한 나의 이익추구가 결국 남의 이익을 지나치게 침해한 것이 아닌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죽이고 가져간 것이라면 난 죽이라고 말하겠지만 죽이지도 않고 가져갔기 때문에 그것을 찾을 수 없어 죽게 된 것이라면 저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그게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가능성마저 없는 것이라면 죽어도 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함께 함을 증명이 된다면 자살해도 좋다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살인과 자살이 일어나는 것은 분명히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들어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는 정의와 법은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어떤 것이라도 무의미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살인과 자살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소리에 귀기울이지 않는 카톨릭이라면 저는 하느님과 함께 하고 있는 종교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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