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호세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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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중규 | 작성일2001-03-05 | 조회수3,514 | 추천수0 | |
만일 그리스도교(결국은 야훼니즘)가 인류에게 주어지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아직도 다신론적인 종교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도체 이 현실생활이란 유일신을 잘 계시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떤 애니미즘, 좀 더 진보해도 고대 희랍적인 다신주의에 빠져들기가 쉽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사랑과 미움’이 한 신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것은 ’질병과 치유’ ’평화와 전쟁’ ’화해와 불화’ ’행복과 불행’ ’운명과 우연’ ’창조와 파괴’ ’기쁨과 슬픔’ ’빛과 어둠’ ’술과 이성’ ’서정시와 폭풍우’ ’정열과 절제’에도 마찬가지다. 하물며 더 나아가 그 모든 속성이 오직 한 존재에서만 비롯된다고 보긴 더더욱 어렵다.
그리하여 그토록 쉽사리 동서고금을 통해 다신교가 꽃을 피웠던 것이다. 거기엔 미신적인 샤머니즘은 물론이요 온갖 고대종교들, 그리고 비록 다신론적인 신앙과는 본질적인 차별성을 지녔다 할 지라도 그 문화적 양식의 유사성을 부인만할 순 없는 천사와 악마가 등장하고 성인들에 대한 신앙이 전승되는 우리 종교까지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는 있다.
그렇게 볼 때 유태교의 유일신 사상이나 신앙은 분명 신적 계시라고 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그것이 스토아 철학처럼 사변적인 산물이 아니라 그들은 그 진실을 살아 있는 현실 속에서 발견하고 체험 자각한 것이니, 이건 놀랍고도 신비로운 사실이다! 결국 그것은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요지를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계시체험은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혹은 어머니)로 깨닫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희랍신화 속의 ’신들의 아버지’와의 차이를 깨달아보라! 참으로 그것은 붓다의 깨침 이상의 큰 깨달음, 그것도 현자가 아닌 지극히 평범한 민중 속에서의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그렇게 유일신 사상은 야훼가 유대 민족에 대해 단순한 군사적 수호신의 성격을 벗어나 아버지나 어머니로 여겨지게 된 호세아 시대 이후부터 참으로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럴 때 "나의 하느님 나의 아버지시여!" 그 한마디 속엔 이미 온 우주의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만드는 그 무엇이 스며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만백성으로 표현되는 모든 인간, 아니 온 우주"가 하느님 안에 하나를 이루며 구원받게 될 수 있는 그 어떤 힘이 된다. 따라서 새 하늘 새 땅의 새 예루살렘에의 믿음조차 이미 호세아에서부터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의 이름 그대로 호세아는 참된 구원의 선구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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