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하신 주님의 상처 입은 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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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중규 | 작성일2001-03-07 | 조회수4,450 | 추천수1 | |
부활하신 주님의 발현 앞에 여인들과 제자들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까닭은 무엇인가. 그녀들은 바로 주님을 알아보았으나 제자들은 모두 그렇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 골고다산상 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분의 부활하신 모습은 분명 상처받은 그대로였을 것이다. 이마의 가시관 상처, 옆구리의 창에 의한 상처, 손발의 못자국, 온 몸의 채찍질 상처 등등, 그야말로 제자들이 무서운 유령으로 착각할 정도로 그분의 모습은 비록 부활의 빛으로 거룩한 변모를 입긴 하셨겠지만 끔찍했으리라. 고문사한 박종철이 다시 살아나 고문 받아 상처 입은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고 상상해보라.
그러니 십자가 사건을 함께 겪지 못한 제자들 (요한을 제외하고는 -사실 그런 까닭에 요한은 가장 먼저 그분을 알아뵙는다)에게 있어선 당연히 그분의 모습이 생경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것은 십자가 아래까지 아니 무덤까지 따라가 그분의 참혹한 모습을 똑똑히 보았던 갈릴리 여인들이 그분을 바로 알아 뵌 것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왜 그분은 상처가 나은 깨끗한 몸, 그야말로 외적으로 온전한 몸으로 발현치 않으셨던가.
그것은 부활체험과 십자가체험 사이의 빠스카적인 ’한 길’을 나타낸다. 십자가의 그 고통의 주님을 겪으며 만난 자만이 부활의 그 영광의 주님을 알아 뵙고 맛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의 상처를 내보이시는 까닭은 우리의 하느님은 상처받은 존재 곧 십자가에 매달린 하느님이심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시다.
이 상처야말로 우리 하느님의 본마음 그 사랑의 온전한 표현이요 증거다. 그분의 육화는 단순히 인간이 되신 것만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가장 상처받은 인간 곧 밑바닥 인생이 되신 데 참 의미가 있다.
즉 사랑의 심연 그 끝에 그분은 계신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 우리 발밑에 계시게 되었다. 참으로 십자가의 그 상처는 대지의 상처요 아가페의 흔적이다.
그리하여 십자가의 그분이 하느님의 성자로 참 예수 그리스도임을 아시는, 아니 이 세상에 그분이 오신 까닭이 바로 거기 있음을 아시는 성모님께서는 그 모습 속에서 벌써 부활의 불씨를 보았고 또한 부활을 확신했기에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무덤으로 찾아가지도 않으셨다.
그녀는 십자가 아래서 삐에타적 극한 체험을 통해 그분과 완전히 일치하였기에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먼저 그분을 만나 뵙고 또 당연히 알아 뵙는 부활체험을 하셨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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