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경] 한국 천주교회의 우리말 성서번역사와 우리말 성서번역의 의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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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2 | 조회수5,578 | 추천수0 | |
[한국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 교회 4] 우리말 성서 번역사 한국 천주교회의 우리말 성서번역사와 우리말 성서번역의 의미
이 논고는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이루어진 우리말 성서번역의 역사를 정리하고 그 의의를 고찰한다. 연구자는 우리말 성서 번역사를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성서번역을 기준으로 하여 4기로 구분한다.
제1기는 ’성경직해광익’(1790-1800년)부터 한기근 신부 번역의 ’사사성경’이 출판되기 직전까지(1909년), 제2기는 ’사사성경’(1910년)부터 ’복음성서’(1948년)까지, 제3기는 선종완 신부의 구약성서 번역(1958-1963)부터 ’공동번역성서’까지, 제4기는 ’200주년 신약성서’부터 ’신약성서 새번역’까지로 분류한다. 이 분류는 한국인의 한글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성서번역의 성격 변화가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우리말 성서 번역사와 그 의미에 대한 선행연구는 대부분 우리말 성서번역의 신학적, 국어학적 고찰에 그치고 있고, 그 중 신학적 연구는 하느님 말씀으로서의 성서전파와 번역된 성서의 분량 및 전문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달리 이 논고는 한국인의 자기 언어인 한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정도에 따라 성서 번역사를 정리하고, 자기 언어에 대한 자각으로 표현되는 주체적 자의식과 성서번역의 연관성에 대하여 고찰하는 점에 차별성을 둔다. 연구자는 이 관점을 ’정신사적 관점’이라고 표현하고, 우리말 성서번역의 신학적 의의보다는 정신사적 의의에 대한 고찰을 중점적으로 시도한다.
1977년 ’공동번역성서’가 출판되기 전까지 한국 천주교의 성서번역은 개신교와 비교할 때 매우 부진했다. 천주교의 성서번역이 부진한 원인은 무엇보다도 교회가 성서의 중요성과 가치를 강조하지 않은 데 있다.
천주교 최초로 구약성서를 원문에서 번역한 선종완 신부는 신자들이 놀랄 만큼 성서 지식이 없고 복음 정신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낙담했고, 교회가 가장 중요한 성서번역 보급사업을 도외시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이렇게 천주교 성서번역이 부진한 근본적 원인은 성사와 교리중심의 구원관과 신앙관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성서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개신교 신앙생활과 달리 천주교 신앙생활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전까지 1566년에 발행된 ’로마 교리서’에 근거한 교리교육과 성사거행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교회가 예비신자나 신자 교육에서 가장 중시한 것은 교리암기와 성사생활이었고, 성서에 대한 내용은 부차적으로 여겼다.
가톨릭 교회의 구원관은 성사 중심, 특히 성체성사인 미사 중심이다. 이런 배경 하에서 ’성경직해’의 번역은 성서번역이라기보다 미사 전례서 번역이라고 평가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천주교의 성서번역이 개신교에 비해 부진했던 원인은 천주교의 신앙관 및 구원관 자체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성서의 중요성과 가치를 새롭게 부각시켰고, 이 신학적 변화가 한국 천주교 성서번역에 결정적인 계기를 부여하였다. 실제로 한국 천주교는 이 공의회 이후부터 성서번역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그 결과 지난 30여년 동안 3가지 번역본을 출간했다.
’공동번역성서’는 개신교와 공동으로 성서를 번역했다는 점(교회일치)과 한국 천주교 최초로 신구약성서의 완역본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신학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와 ’구약성서 새번역’, ’신약성서 새번역’은 가톨릭 성서학자들의 힘으로 원문에서 직접 번역했다는 점과 ’본문’에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점에서 천주교 성서 번역사의 신기원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성서번역의 핵심적 관건은 하느님 말씀인 신구약성서를 얼마나 빨리 그리고 얼마나 온전하게 번역하여 전파하느냐이다.
’성경직해’는 비록 신약성서 중 일부이지만 최초의 한글 성서번역이라는 신학적 의의를 지닌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성서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자극 받아 실현된 ’공동번역성서’는 한국 천주교회가 최초로 신구약성서 번역본을 갖게 되었다는 의의를 지닌다.
그리고 ’200주년 신약성서’와 ’구약성서 새번역’ 및 ’신약성서 새번역’은 한국 천주교회가 성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데 필요한 본문에 충실한 번역본을 갖추었다는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다만 성서의 우리말 번역작업이 내포하고 있는 본질적 문제, 즉 과거의 언어로 기록된 성서를 현재 살아있는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이 안고 있는 과거 언어와 현재 언어 사이, 그리고 외국 언어와 우리 언어 사이에서 생기는 의미상의 거리를 연결시키는 문제는 과제로 남아 있다.
왜냐하면 본문에 충실한 번역이라도 그 번역된 성서를 읽는 일반 독자는 현재 통용되고 있는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바로 이들에게 본문의 의미가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천주교회의 우리말 성서 번역사를 정신사적 관점에서 고찰할 때, 각 번역본의 의의는 다르게 평가된다. 성서번역은 한국인의 자기 언어인 한글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정도에 따라 변한다. 서양 근대의 성서 자국어 번역이 보여주듯이, 성서를 자기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주체적 자의식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글본 ’성경직해광익’의 의의는 재평가되어야 한다. 18세기 말에 이루어진 한문본 ’성경직해’와 ’성경광익’의 우리말 번역은 성서를 자기 언어인 한글로 번역했다는 주체적 수용의 의의와 아울러 조선 후기 몇몇 실학자들에게서 주체적 자의식이 태동하였다는 획기적인 현상으로 평가할 수 있다.
19세기 말에야 한국의 몇몇 선구자들이 자기 언어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보다 1세기나 앞선 성서의 부분적 한글번역은 주체적 자의식 태동이라는 정신사적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러나 자기 언어로서의 한글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것은 1960년대이다. 1960년대에 국민 절반 이상이 문맹에서 벗어났고, 이는 한글이 한국인의 문화어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1950년대까지 이루어진 성서의 우리말 번역은 천주교와 개신교를 막론하고 한글의 중요성에 대한 깊은 인식 없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즉 1950년대까지 이루어진 천주교와 개신교의 성서번역은 외국인 선교사들 중심으로 행해졌다.
그러나 한국인의 자기 언어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성서번역은 획기적인 변화의 양상을 보인다. 1958-1963년에 출판된 천주교 선종완 신부의 구약성서 번역과 1967년에 출판된 개신교의 ’신약전서 새번역’은 우리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최초로 드러나는 우리말 번역이다.
외국인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한국인들이 성서를 원문에서 직접 번역하였다는 것은 자주의식의 증거이다. 또 성서체의 한글 문장이 아닌 한국인의 생활감정이 담겨있는 살아있는 한글 표현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은 자기 언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증거이다.
이런 변화는 1977년 출간된 ’공동번역성서’에서 꽃을 피워 우리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성서번역이 이루어졌다. 정신사적 관점에서 ’공동번역성서’는 우리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주체적 자의식이 어우러져 나온 최초의 번역성서라는 의의를 지닌다.
1970년대부터 유럽에서 서양 성서학을 배운 성서학자들이 귀국하면서 성서번역은 새로운 양상을 띈다. 로마 가톨릭 성서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년) 이후에 본격적으로 ’역사비평적 성서연구 방법론’을 수용하였고, 이 방법론에 의거한 성서학을 배운 학자들은 ’공동번역성서’가 우리말에 치중한 나머지 본문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판단하에 본문에 충실한 새로운 번역을 시작한다.
이렇게 완성된 ’200주년 신약성서’(1991년, 보급판)는 자연스러운 우리말 표현보다는 성서 본문을 중시하여 직역에 가깝게 번역되었다. 성서 본문의 본래적인 의미에 충실하여 성서 전문가들의 해제와 주석에 도움이 되는 전문가들을 위한 번역이다.
2002년에 완료된 ’구약성서 새번역’과 ’신약성서 새번역’ 역시 원칙적으로 성서 본문에 충실한 번역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200주년 신약성서’와 성서번역의 원칙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한다.
즉 197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이루어진 성서번역은 우리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보다 성서 본문에 충실한 번역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 무게를 싣는 양상을 띄고 있다. 결국 우리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서 나오는 우리말로 번역하기는 아직 과제로 남아있다고 하겠다.
[평화신문, 2003년 7월 13일, 이성우(가톨릭대학교 인간학연구소 전임연구원), 김원철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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