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약] 1세기 침례 운동과 예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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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2 | 조회수3,954 | 추천수0 | |
1세기 침례 운동과 예수
그리스도교는 일종의 침례운동 또는 세례운동으로 볼 수 있다. 사실 예수가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후에 그리스도교는 세례를 집전하며 그 의미를 강화해 나갔다. 즉 세례를 구약의 할례에 대치되며 새로운 하느님 백성에 가입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입문성사로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원시 그리스도교의 전승은 예수와 세례자 요한 사이의 긴밀한 연결과 동시에 간격에 대해 말한다. 왜냐하면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침례활동에는 상당한 유사점과 오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음사가들은 많은 경우 세례자 요한을 평가절하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초기 교회 공동체의 이러한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원 후 1세기에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침례운동과 예수의 관계, 구체적으로는 세례자 요한의 활동과의 관계를 고찰하고 예수의 독창적 활동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1. 기원후 1세기의 침례운동
기원후 1세기의 종교적으로 혼란한 상황 - 전통적인 유대종파들의 파벌화내지는 세분화와 침례운동의 부흥 - 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세정례 또는 정화욕에 대한 이해와 함께 대중적 종교운동으로 발전한 침례운동의 관계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러한 시도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침례활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유익하다.
물에 관계되는 의식 - 세정례와 정화욕 - 은 고대 중동지방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널리 실천되었다. 물은 생명과 풍요의 표지로 이해되었고, 종교적 의미의 목욕은 일종의 통과의식 혹은 입신의식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흔히 도덕적 의미를 상실하고 마술적 요소로 전락될 위험을 지니고 있었다.
구약성서의 정결례는 성과 속의 한계를 지어줄 뿐 죄를 사해주는 힘은 없다. 정 · 부정에 대한 물의 의식은 인간을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는 데 목적을 두고 있었다. 즉 속죄의 제사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물의 의식이 이해되었고, 의식적인 정 · 부정에 관한 규정도 일차적으로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제들에게 해당되었다. 그래서 죄의 사함을 받으려면 물의 의식이 아닌 제사를 바쳐야 하고, 이러한 의미에서 대속죄일은 중요시되었다.
신구약 중간시대에는 의식적인 세정례가 유대인의 생활 전반에 침투되어 있었다. 종교심이 부흥하고 종말론적 구원에 대한 열망은 신흥종교내지 유사종교를 꽃피게 했다. 이런 경향은 유대의 전통적 집단을 여러 종파로 분리시키게 결과도 가져왔다. 여기서 물과 음식에 관련되는 정화의 종교의식은 이런 종파들의 상호구별과 식별에 있어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사두가이파는 모세의 이름으로 지정된 것 외에 일체의 물의 예절을 묵살하거나 중요시하지 않았다. 반면 바리사이파(율사) 사람들은 여러 가지 '씻는 예절'이나 침례의식을 중요시했다. 이들은 하느님 말씀의 보편성에 근거해서 그들 종교를 좀더 활성화시키고자, 본래 사제들에게 부과되었던 정화의식들을 모든 유대인에게 확대하였다. 율사들의 해석과 조상들의 전통을 더욱 정확하게 규정함으로써 정화의 예절은 이제 유대인 생활 전반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고, 일반 서민이 미처 다 지킬 수 없을 정도로 세분화된 정화의식으로 인해 기존의 전체적 통일성이 깨지고 여러 소집단으로 분리되게 되었다. 바리사이파 운동이 그 이상은 훌륭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폐쇄적인 사회, 자폐적인 소집단을 양산하고 말았다.
예수는 이러한 '거룩한 소집단'을 거부하였다. 엣세네파에게 있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심해 그들은 자폐적인 분리주의 집단이 되었다. 플라비우스 요셉이 전해주듯 꿈란 공동체는 정화의 정도에 따라서 4가지 계층 또는 계급으로 나뉠 정도였다. 이들에게 있어서도 세정례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 효능을 지니지는 않았다. 이들도 당시 다른 유대인 율사들과 같이 마음의 참회를 우선하였고, 그러한 조건들이 충족되었을 때 세정의 의식은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줄 뿐이었다.
이렇듯 서력 기원 1세기를 전후한 시대에 사회에 만연되어 있었던 물과 관계된 의식은, 사두가이파를 제외하고는 대개 회심 - 세정례 - 제사의 도식으로 이해되었고, 실제적인 생활에 있어서는 대다수의 서민 대중을 죄인으로 만드는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기원후 1세기에 시도된 것이 침례운동들이다.
이 운동은 일종의 종교부흥운동으로 특히 서민대중에게 종말의 심판을 경고하며, 흐르는 물에 담기는 침례예식을 통해 죄의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도록 계도하였다. 이 운동에서 침례의 효과는 기존의 사고와는 달리 직접적인 죄의 사함을 발했다. 그리고 이 구원의 침례의식은 여타한 배타성을 배제한 동시에 일체의 정.부정의 장애를 타파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침례파의 대중적 종교운동은 기존 유대계의 종파들과는 달리 통일된 파벌을 형성하지 않았다. 가령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와 같이 그 창설자나 지도자의 인격에 의지했기에, 그들이 사라졌을 때 쉽게 붕괴될 위험도 갖고 있었다.
2. 세례자 요한과 나조라 사람 예수
세례자 요한과 예수는 둘다 침례를 베풀었고, 종말에 대한 기대와 긴장이 감돌았던 당시 팔레스티나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을 토대로 세례자 요한과 예수가 당대의 사회구조 속에서 어떻게 자신들의 정체를 세웠고, 또 예수와 세례자 요한과의 유사성 및 특수성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요한과 예수의 침례동작은 단순히 유대교의 구조물에 부가되는 첨가물이 아니라 유대교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 동작으로 말미암아 구원 자체, 구원의 모든 제도적 장치가 문제되었다. 그 결과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는 공통적으로 정치적, 종교적 지배자들에게 박해받고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당면한 더 큰 문제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였다. 사실 세례자 요한의 침례운동은 그의 사후에도 유대세계 안에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또 초기전승들의 몇몇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구절들은 둘 사이의 관계에 있어서 부담적 요소로 자리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예수의 부활 사건을 근거로 재해석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침례의식 그 자체의 의미에서 탈피하여 오직 예수의 죽음이라는 구세사적 사건 속에서 구원의 실재를 보았다. 여기서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선구자요, 참된 구세주는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이심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작업을 통해 그리스도 사건에 있어서 세례자 요한의 위치와 역할을 정확하게 규정지을 수 있었다.
이제 문제는 나자렛 사람 예수의 침례행위의 독창적인 면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적어도 공생활 초창기에 세례자 요한과 거의 동시적으로 침례를 베풀었다. 하지만 공관복음은 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많지 않은 신약성서의 자료들을 근거로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차이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신약성서는 세례자 요한을 사막에서 사는 금욕주의자로 소개하는 반면 예수는 광야를 떠나 이 세상과 정면으로 대결하며 늘 축제중에 사는 인물로 소개한다. 그럼으로써 비록 세례자 요한과 같은 침례주의 집단 출신이었지만, 얼마 안가서 요한과는 달리 독특한 길을 걸었음을 증거해 준다. 사실 예수는 금욕주의자도 아니었고, 또 그러한 규정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예수의 메시지는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었다. 기존 종교집단들이 세부적인 정화 규정들을 가지고 사람들을 분리시키고 일부 선택된 자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었던 것에 비해, 예수는 세례자 요한과 같은 맥락 속에서 보편적인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즉 이방인이든 사마리아인이든 상관없이 회개하고 침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세례자 요한과는 달리 예수는 구원문제에 있어서 어느 정도 편파적인, 즉 구원은 우선 유대인에서부터 온다는 말씀에 관한 것이었다. 이미 헬레니즘화된 공동체와 연관을 갖고 세계를 향해 선교의 여정을 걷던 초대교회는 예수의 이같은 말씀을 세심한 주의를 갖고 받아들였다. 예수의 이러한 관점은 비록 편파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스라엘을 통한 세계 구원 즉 이방인에게도 언제나 열려있는 실재로서 예수의 복음을 이해함으로써 헤쳐나갈 수 있었다.
예수와 요한이 침례를 베품은 당대의 랍비들의 사고와는 달리 사제간의 인격적 유대를 기초로 공동운명을 지니는 제자단을 구성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침례운동에 있어서 세례자는 그를 중심으로 모인 집단의 일치의 중심이자 구심점이었다.
그런데 요한에 의한 예수의 세례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요한은 죄의 용서를 위한 참회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그의 세례동작은 전통적인 세정례를 능가하는 동작으로 실제적인 죄의 용서를 포함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죄없으신 예수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았을까? 이 문제에 직면해서 요한복음 저자는 아예 예수의 세례 이야기를 누락시키고, 루가도 예수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마태오도 예수의 세례 사실을 인정하되, 그 의미는 모든 의를 성취하기 위함이라고 한정한다.
예수와 세례자 요한과의 이러한 일치와 간격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초기 공동체는 새로운 신학화 작업을 시도한다. 그들은 예수가 침례자였음을 인정하지만, 이내 침례주는 일을 그만두고 침례가 주는 모든 것을 집약하여 당신의 말씀과 행동으로 현실화시켜 주셨다고 보았다. 예수의 말씀은 용서를 발하고, 그의 악마추방과 이적행위는 구원의 도래를 현재화시켜 주며, 순교 예언자로서의 그의 삶과 죽음도 결국 구원을 위한 삶이요 죽음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용서를 베풀어 준다는 침례주의자들의 침례의식 - 대표적으로 세례자 요한의 침례행위 - 이 예수의 고통과 죽음이라는 구세사속에 흡수되었다. 즉 구원을 주는 것은 더 이상 침례의 의식적인 동작이 아니라 주님이신 그분 자신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요한이 비록 새로운 시대의 장을 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구원의 시간의 성취하고 현실화시킨 예수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렇듯 초세기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십자가에 무력하게 죽어가신 예수만이 구원의 유일한 실재임을 복잡하고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들 속에서 점진적으로 깨닫고 신앙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관계를 정립함에 있어서도 예수의 빠스카 사건에 중심을 두고 해석하였다. 즉 세례자 요한의 침례행위는 구원의 결정적인 '때'를 실현하신 예수에 의해 그 의미를 제공받는다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교 세례의식의 참된 의미를 예수의 구원의지로부터 찾고 온갖 오해를 해소한 것이다.
[신학생 때 정리한 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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