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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유다서 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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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3 조회수4,332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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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서 입문

 

 

유다서를 읽는 현대의 독자들은 자기들과는 너무나 다른 사고 방식을 접하고서는 당혹감을 느낄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서간에서는 여러 부류의 것들이 암시되는데 그것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알기가 쉽지 않다.

 

이 서간은 신자들에게 ‘거짓 교사들’을 조심하라고 타이른다. 그런데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지금으로서는 분명하지 않다. 정통 그리스도교에 적대적인 이 인물들은, 그리스도교가 시작되던 당시 유다교의 논쟁 문학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던 표현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모습으로밖에 그려져 있지 않다. 그들은 곧 포식가, 난봉꾼, 욕심쟁이, 이기주의자 등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에 분열을 가져오고 천사들을 모독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한다고 지탄받는다. 이들은 영지주의자들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곧 인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유일하고 참된 영지(靈智; 그리스 말로는, 그노시스)를 스스로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 영지의 이름으로 육체를 업신여기고 자연을 거스르는 악덕에 몰두하며 그리스도의 강생도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영지주의자들이라고 할 때에, 필자가 왜 이들을 “현세적 인간”이라고 비아냥거리는지 이해가 간다(19절). 뛰어난 자질을 지녔다고 자부하지만, 사실은 성령이 아니라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자들이 어떤 교리를 내세웠는지 명확히 구분해 내기란 쉽지 않다. 필자가 속한 신자 집단만 어느 정도 자세히 알 수 있을 따름이다.

 

이 집단은 기원전 2세기 이후부터 유다교의 묵시 문학 작업에 몰두하여 「에녹서」, 「모세 승천기」, 「열두 성조의 유언」 같은 책들을 전승시킨 계통의 사람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에녹서」의 한 구절을 직접 인용하기도 하고(14-15절), 「모세 승천기」 또는 그와 유사한 문헌을 원용하기도 한다(9절).

 

이 집단에서는 특정 부류의 천사 공경을 매우 중시한다(8절). 이들의 특성은 또 몸이 제의적(祭儀的)으로 더러워지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고, 불경한 자들은 가망이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들과는 떨어져 있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살에 닿아 더러워진 속옷까지 미워하라’(23절). 본디 바오로와 반대되는 이러한 생각은 쿰란-에세네파의 문헌에서 볼 수 있는데, 이 공동체에서도 위에서 언급된 묵시 문학 작품들이 애독되었다. 이는 유다서 필자가 속한 유다계 그리스도인 집단이 어떤 계통에 속하였는지 추정하는 데에 흥미로운 단서가 된다. 필자는 또 천사들을 공경하는데, 이것이 그의 그리스도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그는 이단자들에게 대항하여 “유일한 주인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명백히 고백한다(4절). 인간을 영생으로 이끌어 주시는 분은 예수님뿐이시다(21절).

 

불경한 자들이 받을 심판에 대한 이 서간의 설교도 묵시 문학의 선상에서 이루어진다. 그들은 가차없이 벌을 받을 것이다. 그 벌은, 타락한 천사들이 받은 심판, 소돔과 고모라 주민들의 멸망,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인들이 광야에서 당한 몰살에서 이미 예고되었다. 구약성서의 이러한 예들을 끌어들이는 데에서 예형론적(豫型論的) 사고 방식을 볼 수 있다. 악인들은 예전에 이루어진 큰 단죄로 이미 벌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들이 벌써 코라가 반항할 때에 멸망한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한다(11절과 각주). 현재는 이미 과거에 예고되었고 또 그 안에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약성서의 현실화는 유다인들의 생각을 잇는 것이다. 이 관념은 물론 특정한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행동 방식이 늘 같고 성서는 현재에도 항상 효력을 지닌 규범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한 가지 방식이다.

 

필자는 자신을 야고보의 동기 또는 동생으로 소개한다. 사실 신약성서 다른 곳에서도 주님, 그리고 요세(또는, 요셉) 및 시몬과 형제간인 야고보와 유다가 언급된다(마르 6,3; 마태 13,55). 이 서간의 필자는 이 유다를 말할 것이다. 곧 사도 6,16과 사도 1,13에서 열두 사도 가운데 하나로 나오는 유다-타대오와는 다른 사람이다(마르 3,18; 마태 10,3 참조). 그러나 이 “주님의 동생”이 유다서를 직접 썼는지는 의심이 간다. 사실 이 서간 자체 내의 몇몇 사항이 사도 이후의 시대를 가리킨다(예컨대 3절에서는 신자들에게 전승된 신앙에 대해 말하고, 특히 17절에서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이제는 전체적으로 과거에 속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필자는 “주님의 동생” 유다에게서 비롯하는 가르침을 원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속한 집단에서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와 유다를 공경하면서 그들의 가르침을 유포시키려고 노력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유다인들의 옛 세계에 뿌리를 내린 서간의 집필 연대를 너무 늦게 잡을 수는 없다. 그래서 80-90년 정도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유다서는 그 성격이 특수한데도 베드로 2서에서 이용된다(베드로 2서 입문 94-95쪽 참조). 이로써 유다서가 꽤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특이한 사조가 그 기초가 됨으로써, 우리에게는 자연히 낯선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서간이 경전으로 채택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시리아 지방 교회에서 특별히 그러하였다. 교회 역사가 에우세비우스는 4세기에 어떤 이들이 이 서간의 경전성을 부인하였다고 전한다. 다른 한편으로, 유다서는 180년경 로마에서 작성된 무라토리 경전 목록에 들어가 있고, 테르툴리아누스와(20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도(185/186-254년) 성서로 인용한다. 3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이 서간을 주석하기도 한다. 이로써 이 서간이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카르타고에서는 매우 일찍 성서로 받아들여졌음을 알 수 있다. 예로니모는(345-420년), 이 서간이 교회에 알려지지 않은 문헌들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사람들이 주저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출처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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