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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칼과 성서를 든 사람,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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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3 조회수4,914 추천수0

신약성서의 인물 : 칼과 성서를 든 사람, 바오로

 

 

답동 성당 제단 오른편의 성 바오로상

 

신약성서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위대한 인물을 뽑으라고 한다면 과연 우리는 누구를 뽑을 수 있을 것인가? 아마 여러 인물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베드로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세례자 요한을 뽑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나에게도 질문이 주어진다면 나는 사도 바오로를 위대한 분으로 뽑고 싶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삶을 꾸린 철저한 그리스도인 이었으며, 지중해 각지에 예수 그리스도를 널리 알린 사도이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신학을 전개한 신학자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초대교회의 주요한 인물일 뿐만 아니라, 신약성서의 가장 위대한 저술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도행전과 바오로의 서간들을 통해서 이미 그의 활약상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가 소명을 받았으며, 자신의 온 정열을 불태웠으며, 선교에 대한 열정에 휩싸여 있었고, 종종 다른 사도들과의 다른 견해로 좌절을 경험했다는 사실도 읽었을 것이다. 또한 온갖 박해와 시련에 맞서 싸워 나간 것을 알게 된다. 역사의 예수를 전혀 알지 못했던 그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게 되었으며, 박해자에서 이방인의 사도로까지 변했는지의 이야기는 우리를 놀라움에로 불러일으킨다.

 

나는 종종 답동성당 제단 오른편에 모셔져있는 성 바오로상을 바라보게 된다.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성서를 든 모습을 말이다. 이는 그의 회심 이전과 이후를 잘 드러내어주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칼과 성서를 든 바오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칼을 든 바오로

 

칼을 든 바오로는 개종 즉 회심 전의 바오로를 말할 수 있다. 바오로는 바리사이 전통의 유다인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바오로가 가졌던 큰 자부심은 그가 평범한 유다인을 훨씬 뛰어넘는 사람이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때 내 동족 중 동년배들 사이에서는 누구보다도 유다교를 신봉하는데 앞장섰으며 내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일에 있어서도 훨씬 더 열성적이었습니다."(갈라 1,14)

 

바오로는 예수 시대의 율사이었던 가믈리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전해진다.1) 그러나 그가 동정심이 풍부하고 융화적인 인물이었던 가믈리엘 율사 밑에서 수학을 했든 안 했든, 우리는 그의 글들에서 랍비적인 해석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성격을 보면 그는 결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미적지근하고 느릿느릿한 것을 싫어했고, 어떤 일이든 자기의 방식으로 좇았을 법하다. 그러나 다행히 그때에 바오로는 부활한 주님을 만난 것이다. 

 

다마스커스로 가면서 바오로는 몇몇 그리스도인들을 압송해 오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었다. 그는 산헤드린의 지지를 받고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바오로와 같이 율법에 따라 살고, 율법 공부에서도 상당한 학식을 갖추고 있기에 자신들의 일을 수행할 인물로 뽑았을 것이다. 또한 필립 3,4-5에서는 바오로가 그리스도인 이전의 바리사이로서의 삶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고 있다.

 

바오로는 또한 세계적인 문화를 섭렵한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먼저, 그의 이름을 보자. 바오로는 로마식 이름이다. 우리는 종종 바오로가 회심 후에 자신의 이름을 사울에서 바오로로 바꾸었다고 하는 주장을 접하게되는데 그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아마 그는 두 가지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는 유다 문화권에서(사울),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쓰이는 이름(바오로)이었을 것이다. 또 다른면은 바오로는 헬라적인 환경에서 유다식으로 교육받은 유다인이며 유다교뿐 아니라 매우 대중적이고 세련된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지적이고, 사명을 받았으며, 그의 편지에 나오는 시(詩)들에서 보여지듯 풍부한 상상력을 글로 담아낼 줄 알았던 인물이다. 당시에 그는 미래가 촉망되는 인물이었음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칼을 들은 바오로는 우리 인간적인 면에서 바라볼 때에 완벽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바오로가 부활한 주님을 받아들여 경험하지 않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전해질까? 당시 최고의 악당이 되어있지는 않았을까? 또는 소경이 되어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인물로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 그에게 놀라운 사건이 바로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일어난 것이다. 회심으로 가는 바오로의 모습을 생각해 보자.

 

 

성서를 든 바오로

 

무엇인가 놀라운 일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벌어졌고, 바오로는 박해자에서 사도로 탈바꿈한다. 그는 예수의 계시를 통해서 하느님에게서 축복을 받았으며, 순간적으로 일어난 인생의 짧은 사건은 그의 평생에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회심을 하고 박해자 때와 마찬가지로 충동적이고 참을성 없는 바오로는 몇 일도 안 가서 다마스커스의 신자들과 유다인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르침을 베풀고, 죽고, 부활한 후 그를 따르던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이어 나가라고 명령한 다음 이 세상을 떠나가셨다. 이제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응용하며, 거기에서 적절한 결론들을 이끌어냈고, 그에 기초한 공동체를 구성했으며, 공동체를 이끌어 나갈 지도력을 육성시켰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았으며, 사랑을 베풀었고 훈계를 하였다.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러 차례 여행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많은 고통을 겪었고, 그때마다 기도했으며 설교하고 소명을 내리고 신자공동체를 세웠다. 바오로의 모든 열정은 새로운 길과 새로운 가르침으로 불타오른 것이다. 이러한 그의 열정은 기원후 67년에 유혈의 제사2)로 마감하게 된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를 체험했고 그로 인해 일생이 완전히 바뀐 인물이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바로 바오로가 초월적인 거룩한 분을 체험하였다는 사실이며, 그는 이제 칼을 버리고 성서 곧 주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회심은 바로 이렇게 삶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회심의 길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은 회심의 길이었다. 열정에 싸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바오로는 열정에 싸여 그리스도를 온 세계에 알리는 사도가 되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바로 바오로의 인생을 바닥부터 뒤집어 놓는 전환점이 된 것이다. 죽음의 칼에서 생명의 말씀인 성서에로의 변화. 우리는 그 무엇을 전환점으로 삼고 있는가? 또한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끌고 있는가? 우리의 전환점이 되고, 삶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곧 바오로 사도가 체험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모든 사람은 여행 중에 있다고 말한다. 마치도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여행의 도상에 있기에, 그 여행 중에 모든 이들이 하느님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천상 행복을 위한 여정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고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런 일이 오늘날에 어떻게 일어나며 또한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어떠한 의미를 주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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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행전 22장 3절 참조.

2) 바오로의 순교는 기원후 67년경 로마 시외, 아르데아로 가는 길가에서 집행되었다. 그곳에는 오늘 트레 폰타네(Tre Fontane: '세 개의 샘'이라는 뜻)라는 이름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형리의 칼에 베어진 바오로의 목이 땅에 떨어지면서 세 번이나 튀어 올랐고 목이 떨어졌던 자리에서 각기 샘물이 샘솟았다고 한다.

 

[인천가톨릭대학교 김일회 신부님께서 신학교 홈페이지 성서신학 자료실에 올려주신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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