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인물] 넘어지고 깨져도 주님만을 따른 베드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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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04-11-03 | 조회수4,236 | 추천수0 | |
신약성서의 인물 : 넘어지고 깨져도 주님만을 따른 베드로
신약시대에 베드로는 주님의 으뜸가는 사도로서 자리를 차지하지만 신뢰와 배신, 강함과 연약함을 가졌기에 우리들에게 신앙의 표양을 그대로 보여 준다. 먼저 베드로에 대해 간략히 보고 베드로를 통해 얻게 되는 교훈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① 베드로의 신분은 벳사이다인 요나의 아들로서 안드레아의 형제인데 본명은 시몬이다. 시몬은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수께서 직접 게파(ghefa)라고 바꾸어 불렀다. 게파라는 말은 시리아어로서 희랍어로 번역하면 베드로 즉 반석이라는 뜻이다. 베드로는 갈릴래아 바다에서 어업을 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족과 생업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12제자 중 수위를 차지했고 야고보와 요한과 더불어 친근하였으며 그의 행적과 공로가 지대하다(요한 1, 41-44: 마태 10, 2; 마르 5, 37; 마르 14, 33).
② 베드로의 성격은 정열적이며 충동적이고 확고한 결심과 순간적인 주저함으로 인한 동요로 많은 실패가 전해지고 있다: 주님을 배반하지 않는다고 목숨을 바쳐 맹세하고도 주님을 세번씩이나 부인하였다(마태 26). 바다 위를 걸어 주님께 다가가지만 풍랑을 보고 무서워하여 빠졌으며(마태 14), 우직하게 타인보다 먼저 주님을 메시야라고 말하고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었다(마태 16).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것을 예언하실 때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간하다가 책망을 받았으며(마태 16),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때 함께 산에 올라가서 장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에게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주고 내려가지 말고 그대로 안주하여 거기에 살자고 하였다(마르 9).
③ 베드로의 선교활동에 대해 간략히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 후 40일간에 11차례 나타났는데 그 중 베드로는 7차례 만났다. 베드로는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 중 유다 후임을 택하는 일을 주장했고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후 열성적으로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오순절 설교를 통해 하루 삼천 신자를 얻고 기쁨과 나눔의 뿌리인 초기 교회 공동체를 만들었으며, 성전 문간에 있는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치는 기적을 베풀기도 하였다(사도 2-3).
성격이란 태어나면서 형성된다고 하지만 성장하면서 환경적인 요인이 가장 많이 작용하게 된다. 자신의 삶의 환경을 통해 형성된 성격은 한 평생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어부였던 베드로처럼 그 자신의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베드로의 성격은 좋은 면으로 나타날 때는 최대의 장점이 될 수 있었고, 나쁜 면으로 나타날 때는 최대의 약점이 되기도 했던 것이다. 우선 베드로는 대단히 급한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 급한 성격으로 인하여 좋은 일에는 앞장을 선 경우도 있었고 실수 할 때는 또한 여지없이 넘어졌던 것을 볼 수 있다.
베드로의 급한 성격은 그의 신앙생활에서 장점으로 나타난 경우가 있다. 예컨대 마태오 복음 14장에 갈릴래아 바다 위에서 한 밤중에 다른 제자들과 노를 젓고 있을 때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모두들 유령이라고 벌벌 떨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니 두려워 말라고 하셨다. 이때 베드로는 만일 주님이시거든 저도 바다위로 걸어가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 오라 하실 때 그는 서슴없이 물위에 발을 내밀어 물위를 걸었던 놀라운 은혜를 체험했던 것이다. 그 배에는 다른 제자들도 많이 있었으나 물위로 걸었던 제자는 오직 베드로뿐이었던 것이다.
또한 마태오 복음 16장에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앉아 조용히 묻기를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냐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하고, 혹은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한다고 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물음에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 앞서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이때 주님은 베드로의 대답을 듣고 "시몬 바르요나, 너에게 복이 있다. 너를 베드로, 즉 반석(petra)이라 부를 것이요, 그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요,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리니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처럼 베드로의 성격이 순종하고 헌신할 때는 장점이 되어 주님을 위해서 봉사하는 일에 늘 앞장서는 자가 되었고, 주님의 칭찬을 받고 은혜를 깊이 체험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의 성격이 단점으로 나타날 때는 그의 조급한 성격은 늘 사탄의 이용물이 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주님의 칭찬을 받고 난 뒤에 예수님을 붙잡고 십자가를 지지 말도록 간청하다가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장애물(scandal)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하고 책망을 들었던 것이다. 또한 최후 만찬의 식탁에서 예수님이 대야에 물을 담아 가지고 오시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 베드로 차례가 되자 "주님, 절대로 제 발을 씻기지 못하나이다"고 말을 한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 발을 씻지 아니하면 너와 내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시자 금새 베드로는 자시의 말을 바꾸어 "제 발 뿐 아니라 제 온몸도 씻어 주소서"라고 했다.
주님께서는 최후의 만찬례에서 "오늘 밤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고 도망갈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은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강하게 대답을 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새벽닭이 울기도 전에 세 번 자신을 부인할 것이라고 했을 때 그는 죽는 한이 있어도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결국 그는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것이다.
베드로의 성격에서 우리가 한번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성격이든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게 될 때 자신의 장점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어떤 성격이든 오직 자신만을 위한다면 분명히 자신의 단점이 되었던 것이다. 즉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님을 위할 때는 믿음의 반석이 될 것이며, 자신만을 위할 때 신앙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베드로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작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① 자신을 과신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베드로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는 다른 존재로 생각하는 우월감을 가졌을 때가 많았음을 성서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야기 중에 등장하는 말 중에 '나' 라고 하는 말이 문제이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 자신은 다르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자세는 영적으로 볼 때 가장 사탄이 이용하기 쉬운 자리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자세에서도 바로 이러한 생각 때문에 결국 예수님을 받아 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의 기도에도 "나는 저 세리들과 같지 않고",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드러내기를 좋아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하느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것 같으나 실제로는 은혜를 잃어 가는 것이다.
베드로가 다른 제자들 보다 낫다고 생각했을 때는 실제로 다른 제자들보다 나은 것이 전혀 없었을 때, 즉 자신의 약함을 알고 겸손함을 깨달은 그 순간이었다. 우리의 일상에서의 유혹이란 대체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다른 사람들 보다 나 자신의 더 낫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잘못을 범했을 때 나 자신도 그러한 잘못을 범할 수 있기에 일상 안에서 더 조심하고 올바른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에서 보여 주는 것은 자신을 믿고 있을 때가 항상 넘어짐의 시기였음을 보여 주고 있기에, 예수님 안에서 겸손이라는 말을 더 깊이 배워야 하겠다.
② 유혹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베드로가 주님을 모른다고 한 환경은 이러한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우선 베드로는 빌라도의 법정이 아닌 가야파의 집에서 주님을 모른다고 하였다. 가야파의 법정은 사형을 집행하는 곳이 아니다. 재판은 결국 빌라도의 법정에서 최후의 판결이 나게 되어 있다. 즉 베드로는 이미 마음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야파의 집에서 주님을 부인했던 것이다.
또 칼을 든 군인이 베드로를 붙잡고 위협을 했더라면 베드로가 본능적으로 두려워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수도 있음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질문한 사람은 여자아이였다. 그런데 베드로는 맹세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베드로는 이미 마음으로 주님을 모른채 하기로 생각하고 그 가야파의 집에 들어갔던 것이다.
만일 자신의 마음의 중심을 어디에 두는 가에 따라 삶의 기준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베드로는 처음에 목숨을 살기 위해 두려움으로 주님을 거부했지만 깊은 참회와 용서를 통해 사도로서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죽는 순간까지 전하였으며, 마지막에 가서는 주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수 없다며 거꾸로 매달려 순교의 영광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사도 베드로를 통해 볼 수 있듯 인간적 약점과 연약함이 있지만, 마음의 중심을 '나'라는 잣대에 두지 않고 주님의 잣대로 삶을 꾸러간다면 넘어졌을 때 다시금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많은 유혹들을 갖도록 하지만, 주님의 잣대인 믿음을 다시 한번 견고하게 다지도록 하였으면 한다.
[인천가톨릭대학교 김일회 신부님께서 신학교 홈페이지 성서신학 자료실에 올려주신 자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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