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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물] 탕자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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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3 조회수4,337 추천수0

[성서의 인물] 탕자의 아버지

 

 

나는 평생동안 모은 재산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온 사람입니다. 나에게는 사랑하는 아들이 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둘째 아들은 나에게 상속재산을 미리 달라고 요구했지요.

 

"아버지, 언젠가 저에게 주실 상속지분을 기왕이면 지금 주십시오. 아버지, 제가 젊을 때 재산을 물려받아 제 마음대로 사업을 해 보겠습니다."

 

나는 무척 마음이 섭섭했어요. 작은 아들은 마치 나에게 "나는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어요. 이제 아버지는 저에게 필요치 않습니다. 아버지가 이젠 지긋지긋 합니다. 차라리 죽어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어요.

 

한편 나는 아들이 걱정도 되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요. 그러나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지요. 나는 작은 아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재산을 몽땅 팔아 고향을 떠나 먼 타향으로 떠났습니다. 나는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 같아 몹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떠난 지 얼마 안되어 나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아이는 매일 주색잡기에 빠져 황폐한 삶을 살다가 결국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잃어버린 돈과 함께 그 많던 친구들도 모두 떠나고 말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그 아이가 힘들고 외로웠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던 작은 아들은 농장에서 돼지 치는 일까지 했다고 합니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었던 그 아이는 어느 날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몰골을 보고 너무 비참해서 죽고 싶을 생각까지 들었답니다.

 

작은 아들은 비로소 고향 하늘을 향해 울면서 후회했다고 합니다.

 

난 사실 작은 아들이 떠난 후 하루도 편히 잠자리에 들지 못했습니다. 밤에도 문소리가 나면 그 아이가 돌아왔나 해서 마당으로 뛰어나가곤 했지요.

 

밥은 제대로 먹었는지 추운데 고생은 안 하는지 내 마음은 늘 그 아이 걱정뿐이었죠. 아마도 이런 것이 아비의 마음인가 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작은 아들이 고향을 향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는 동네 어귀로 나가서 한나절이나 기다렸죠. 한참 후에 저 아래서 작은 아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너무나 모습이 비참해 보여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도 모르게 뛰어가 그 아이를 덥석 끌어안고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 아이도 내 옷소매에 눈물을 떨구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하느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괜찮다. 괜찮다… 나는 네가 이렇게 살아온 것만으로도 기쁘단다. 너는 여전히 내 아들이란다. 어서 집으로 가자꾸나."

 

작은 아들은 하염없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하인들에게 작은 아들에게 새 옷을 갈아 입히고, 소를 잡아 잔치상을 차리고 이웃 사람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농장에서 날이 저물도록 일하다가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 부근에 이르렀을 때 집안에서 큰 풍악소리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집 안에서 나온 하인이 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동생 분이 돌아왔습니다."

 

"뭐, 내 동생이 돌아왔다구? 그럼 집에서 벌이는 잔치가 그놈을 위한 것이란 말인가?"

 

큰아들은 화가 치밀어 땅에 털썩 주저앉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큰 아들의 마음을 눈치채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너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 얼른 들어가 동생을 보지 않고…"

 

큰 아들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 보고 축하 해주라고요…아버지는 정말 너무 하십니다. 저는 지금까지 아버지의 뜻대로 열심히 일만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동생은 그 동안 무슨 짓을 했습니까? 탕자가 되어 돈이 다 떨어져 몸 둘 곳이 없으니까 돌아온 것이 아닙니까? 저에게는 무관심하고 오히려 저놈에게는 잔치를 베풀어주는 아버지를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난 큰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고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래, 네 말이 옳다. 너는 충실한 아들이다. 나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단다. 내 것은 모두 네 것이란다. 그러나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 돌아 왔지 않느냐? 그러니 기뻐해야 하지 않느냐?"

 

나는 큰 아들의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분명한 건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큰 아들, 작은 아들 모두 사랑하는 자식입니다. 아들들이 아비의 마음을 이해하기엔 시간이 많이 흘러야겠지요.

 

하느님은 탕자의 아버지 같은 분이시다. 모든 이의 하느님이시다. 모든 민족, 인종, 계급을 초월해서 하느님은 모든 이가 구원되기를 바라신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이 함께 화해하고 어울려 사는 게 그 분의 뜻이다. 그런데 오늘의 세상은 그렇지 못해 여전히 하느님의 마음은 슬프실 것 같다.

 

[평화신문, 2001년 11월 11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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